소설리스트

〈 73화 〉8. 연예계의 사정(4) (73/152)



〈 73화 〉8. 연예계의 사정(4)

비서의 연락을 받은 나는 전철을 타고 곧바로 회사로 향했다.

까똑! 까똑!

본사로 향하는 와중에도 내 핸드폰은 한껏 불을 내뿜고 있었다.
애초에 TV에 나온 상황인 만큼, 이번사태를 안 건 주 자매만이 아니었으니까.

“죄송합니다, 잠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간신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액정 위로 수백 통의 톡이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톡 수를 보낸 건, 다름아닌 최다슬.

솔직히 좀 의외다.
다른 섹파면 몰라도 다슬이라면 가장 덤덤하게 넘어갈 줄 알았으니까.

뭐, 전에도 연예계 관심이 많다는  정도야 알고 있었지만…….
설마 연예뉴스까지 챙겨보고 이렇게 연락할 줄은 몰랐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우선시해야 할 건 이런 게 아니다.

얘는 나중에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간단하게 톡 보내주는 수밖에.

까똑!

톡을 보내기 무섭게 곧바로 다슬이 보낸 답장이보였지만 일단 무시.
곧이어  다른 단톡방을 열어 상황을 확인했다.


[김진아] 와……. 현수 씨 본사 가자마자 대박사건 ㄷㄷㄷ
[이연주]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너구리 그림)
[이연주] 본사 가자마자 뭐하는 짓인지 ㅉㅉ
[김진아] 오늘 연예 뉴스 1페이지에서 하루종일 보겠네요ㅋㅋㅋ
[최수민] 진아 씨. 웃을 일이 아니에요.
[김진아] 에이 솔직히 언ㄴ
[김진아] 아니 대표님도 좋으시면서
[최수민] 여기서는 언니라 하지 말랬죠.
[최수민] 그런데 제가 왜 좋다는 겁니까?
[김진아]사진에서 보니까 현수 씨가 입은 옷 저희 패션몰 옷이던데요? 예상하는데 저희 오늘 좀 바쁠걸요? 출근해서 패션몰홈페이지 보면 기쁨의 비명 지를지도 몰라요.
[이연주] 네?
[초수민] 진아 씨. 그만해요.
[김진아]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블레임 룩?
[이연주] ……아니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최수민] 톡 그만하는 게 좋겠다.
[최수민] 회사에서 이야기하자.
[김진아] 네? 왜요?
[김진아]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 강아지 그림)

역시 피버샵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나.

“……나 참.”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니 절로 헛웃음이 터진다.
이 사람은 내가 단톡에 참여하고 있는 걸 모르고 있는 건가?

~♬

다시 메시지를 작성하는 와중 울리는 벨소리.

발신표시를 확인하면서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대표님?”
“죄송합니다.”

통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다짜고짜 사과를 하는 패션몰 대표 최수민.
무미건조해도 힘이 있던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시들시들했다.

“진아 씨가 무례한 말을 했더군요.”

아, 왜 그런 건가 했더니 진아 씨가 보낸  때문이었던 건가.
이 사람도 아랫사람 때문에 고생이 많네.

“괜찮습니다.”

내심 당황했을 대표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크게 신경 안 써요.”
“정말 죄송합니다.”
“뭘 이런 걸로요. 굳이 전화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진아 씨의 행동에 악의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별 생각 없이 한 말인  같으니까.

“아무튼 잘 연락하셨어요.”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잘 됐다.

지금의 나는 ‘피버샵’ 소속으로 있는 상황.
그런 이상 피버샵 대표인 최수민에게도 연락은 해둘 생각이었다.

나는 대표에게 지금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북적거리는 전철 내 소리가 시끄러울 법도 하건만 대표는 그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말을 들으면 작게 맞장구를 칠 뿐.

“뭐, 그래서 지금은 회사로 가는 중이고요.”
“당사자들이랑 얘기를 나누게 되겠군요.”
“그렇겠죠? 저랑 화정 씨, 그 외에 매니저랑 본사 대표님이랑……. 비서장님도 오실 거 같더라고요. 아무튼 대충 그렇게 보고 결정할 거 같네요.”
“그러시군요. 일단 저도 주시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시길.”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금껏 무심한 듯 거침없던 대표의 말문이 잠시 멈추었다.
전화기 너머로도 머뭇거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말문을고르는 듯 조용하던 대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사히 끝났으면 좋겠군요.”

무사히라.

흠, 어째 아까 화연이도 그렇고 최다슬도 그렇고 내 걱정이 좀 과한 거 같은 느낌이네.
어감도 묘하게 내가 고생할 거라는 느낌이 강하고.

물론 나도 당사자니 고생은 하겠지만……. 그래도 나보다는 연예인인 화정이 더 피곤하지 않으려나?

“뭐, 나쁜 일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일단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네. 바쁜데 실례했습니다. 수고하시길.”
“대표님도요.”

그렇게 나는 패션몰 대표와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와중에도 톡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와 각종 개인 톡이 쌓여가고 있었다.

“…….”

톡을 보면 볼수록 점차 알 수 없는 위화감이 계속해서 쌓여갔다.

도대체 뭐지,  느낌은.
이유를 모르겠네.

그렇게 찝찝한 느낌을 뒤로 한 채 나는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네놈은 일을 하기는 하는 거야!”

내가 가장 먼저 목도한 것은, 무릎을 꿇은 여성과 그 앞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 대표의 모습이었다.


***


방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은 여성은 일찍이  얼굴이었다.
바로 화정의 매니저였다.

 뒤로는죄인 마냥 구석에 앉아 고개를  숙인 윤화정이  있었다.

“입이 있으면 말을 해!”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근육질의 마귀할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와, 목 혈관 터지겠네.

”죄송합니다…….“
”닥쳐! 내가 지금 사과하라고 매니저를 붙인  알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매니저 앞에서 사장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과할 일이 없게 처신했어야 할 거 아냐!“
”…….“
”넌 오늘부로 끝이야! 당장 나가!“
”사, 사장님……!“
”당장 안 꺼져!“
”흐윽……!“

사장 김옥희의 일갈에 결국 매니저가 눈물을 흘리며 회의실을 나갔다.

아니, 오자마자 대체 이게 무슨 난리야?
설마 진짜 해고하는 건가?

”크흠…….“

내 뒤로 떠나가는 매니저에게 시선을 던지던 사장이 그제서야 내가 도착했음을 인지했다.
날 보며 시선을 던진 사장의 말투가 갑자기 한껏 부드러워졌다.

”자네 왔나?“
”아, 네…….“
”생각보다 일찍 왔군.“
”저기, 방금은……?“
”후우…….“

씩씩거린 채 서 있던 사장이 나를 보고는 숨을 골랐다.
그래도 아직 이성이 남아있긴 한 모양이다.

”일단 앉지 그래.“
”네.“

사장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사이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나는 소파 옆에 서 있는 화정의 모습을 힐끔 살폈다.

"화정 씨."
”안녕, 하세요…….“
”…괜찮아요?“
”네, 네…….“

안색이 시퍼래진 화정이  보고는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조차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그렇게 술을 마셨으니 분명 숙취도 남아 있을 텐데…….

설마 그런 상태에서 뭘 챙겨먹지도 않고 바로  건가?
아니겠지?

”자네한테는 면목이 없구만 그래.“

잠시 딴 생각에 빠진 사이 사장이 내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제야 나도 사장을 마주보았다.

”괜한 스캔들 때문에 자네도 마음고생이 심했으리라 보네. 아니, 어쩌면 이제부터가 시작이겠지. 마음 단단히 먹도록 하게.“
”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

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방금 전까지 매니저한테 온갖 성질을 부리고, 상황을봐서는 화정 씨도 한 소리 들은 듯한데.
그래서 당사자인 나도 최소한 욕설 한두번 정도는 받나 싶었더만, 이게 웬걸.

이 차이는 도대체 뭐지?

왜 나는 이렇게 흐지부지 넘어가는 거냐고?

왜 나만 이렇게 특별취급을 받는 거 같은 느낌이 들지?
기분 탓인가?

”아니, 잠깐만요.“

당황한 심정을 숨길 여력도 없이 곧바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시선에 사장은 도리어 연민과 동정 가득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편하게 말하게나.“


방금 전까지 핏줄까지 드러내며 성질을 내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실실 미소마저 짓는 사장.
마치 나한테 알랑방귀라도 끼는 느낌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아.“

그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내려치는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나한테는 이렇게 친절한 건지.
여기까지 오면서 느꼈던 위화감은 무엇인지.

지금 딱  이유를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도……. 정조역전세계라 그런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나한테 유독 피해자 역할을 강요하는 세태가 대충 이해가 갔다.
나는  세계에서 남성이고, 이런 성별 관련 이슈에서는 보통 여성이 잘못했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하물며 나는 일반인, 화정은 연예인이었으니 더더욱.

허나 그렇다는 걸 감안해도 굳이 화정 씨나 매니저가 욕을 먹어야 했는가?
그 부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갔다.

애초에 나와 화정은 출연을 목적으로 친분을 쌓는 것이었고, 파파라치한테 찍힌 게 나와 화정, 매니저의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은가.

솔직히 지금 상황은 납득이 안 가긴 한다만…….

뭐, 그래도 일은 벌어졌으니일단 수습부터 해야겠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해 보자.

”그보다 방금 매니저는 정말로 해고하실 셈인가요?“

내 물음에 사장이 노골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닐세.“
”이상하잖아요. 이게 왜 매니저 잘못입니까?“
”담당 연예인을 케어하는 것도 매니저의 역할이야. 그걸 제대로  했으니 자른다는 건데 그게 무슨 문제지?“
”아니죠, 처신을 못한 거니 제 잘못이죠.“
”뭐?“

설마 내가 이런 말을  줄은 몰랐다는  입을  벌리는 사장.
그런 사장의 표정에 오히려 내가 내심 당황할 정도였다.

”자네……. 진심인가?“
”아니, 진심이고말고가 아니라 사실이잖아요. 제가 화정 씨한테 그렇게 술을 먹이지 않았으면 됐을 일인데. 당연히 전적으로 제 잘못 아닌가요?“
”허 참. 자네가 먹였다라? 살다 살다  황당한 소리를 다 듣는군.“
”네?“
”당연히 남자 앞에서 술을 마신 여자 쪽이 잘못이지 않나.“

흐음, 역시 그런 느낌인 건가.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사장의 방식이 옳은 대처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간의 인식이 사장의 말 대로라고 해도, 여자든 남자든 술 적당히 마셔야 되는 건 똑같잖아.
오히려 그게 역차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굳이 잘잘못을 따진다고 치면…….“

머릿속으로 상황을 곱씹는 사이 사장이 찌릿 내 옆을 바라보았다.

”윤화정 저 녀석의 처우가 잘못됐다고 해야겠지.“

그런 사장의 시선에 화정의 얼굴이 더욱 파랗게 물들었다.

”죄송합니다…….“
”너는 앞으로 주의해. 매니저 자르는 걸로 봐  테니.“
”하지만……. 데뷔 때부터 함께 해온 매니저인데…….“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소리가 나와? 어?“
”…….“
”조심해. 지켜볼 테니까. 앞으로 이런 일 더 있으면 그 땐 연예인이고 계약이고 없을  알아.“
”알겠습니다…….“
”현수 씨한테도 한  더 사과하고.“
”…….“

윽박지르는 사장의 모습에 화정이 힘겹게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해요, 현수 씨…….“

죄스런 표정으로 날 보던 화정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론 절대 이런  없을 거예요…….“

태도를 보아하니 화정 씨도 스스로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진짜 미치겠네.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
이거 내가 이상한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도대체 왜 화정 씨 혼자서 잘못을 짊어져야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냐고.

파파라치한테 찍힌 게 잘못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나도 잘잘못을 따지는 게 도리가 아닌가?

왜 나는 오로지 피해자로서'만' 취급받는 거지?

”……사장님.“

결국 참지 못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는, 세간의 인식이 어떤지는 아직도 제대로 판단이 안 선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확실히 알겠다.
이렇게 화정 혼자 짐을 떠안는 건 너무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설령, 만약  세계가 저 사장의 말투처럼 말도 안 되는 남녀차별로 이루어진 세계라면.

나는 이딴 세계에서의 부귀영화는 필요 없다.

”뭔가.“
”그 매니저 다시 불러주세요.“
”그러니까자네가 그럴 권한은……."
”안 부르면  일  합니다. 방송 출연도 안 할 거고요.“
"뭐?"

사장 김옥희의 당황한 표정.
그런  곁에는 어안이 벙벙한 듯 날 바라보는 화정의 모습이 보였다.

”해고하다고 하셨던 발언 재고해 주시죠.“
”자네가 거기까지 건드릴 수는 없어!“
“그러셔야 할 겁니다.”

다시  번 화를 내려는 사장의 얼굴을 향해 내가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사장님과 비서실장님 사이가 좋으신 모양이더군요.”

다소 흐름에서 뜬금없는 말.

허나 그런 내 말에 사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
“더 듣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전 여기서 얘기해도 상관없는데.”
“자, 잠깐!”
“현수 씨……?”

허둥지둥 손을 내젓는 사장과 그런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화정.

그런 두 사람의 기색을 살피며 속으로 작게 미소를 지었다.

창조주가 보내준 설정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정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데서 도움이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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