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7. fever time(9)
너 혼자 산다.
약 2년 전 공중파에서 시작한,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연예인들을 관찰하는일상 예능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현재는 공중파에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중에서도 유달리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각종 개인방송이 난립하는 와중에도 최고 시청률 30퍼센트에 달하는 성적을 보이고 있는 이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상 현재 방송 중인 국내 예능 프로그램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나도 재밌게 챙겨보고 있는 유일한 공중파 예능이기도 하고.
그렇게 대단한 프로에 출연자로서 제의를 받은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것도 보조 출연자가 아닌 주요 게스트의 친구로서 말이다.
여기까지가 비서에게 들은 이야기.
“그러니까…….”
이미 식사시간도 지나고 사원들도 거의 없는 사옥 식당실 안.
그곳에서 현재 이연주에게 앞서 비서에게 들은 이야기를 간략히 설명하는 중이었다.
“현수 씨가 거기 출연한다고요? 너 혼자 산다에?”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라니까요?”
벌써 몇 번이나 강조했던 말을 다시 한 번 꺼낸다.
그러지 않으면 이 여자의 머릿속에서 내가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냥 비서 분께서 해보면 어떻겠냐 하고 물어봤다는 거죠.”
“그럼 아직 하는 건 안 정해진 거네요?”
“몇 번이나 그렇다고 말했잖아요.”
“흐응.”
내 설명이 납득이 가지 않는지 그녀의 표정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이쪽 직종에서 일하지 않으면 쉽게 출연할 수 없을 텐데.”
확실히 그 부분은 나도 의문이다.
좀 제대로 설명이라도 주고 갈 것이지.
그러고 보니 아까 비서가 자기 회사 사람 중 한 명이 출연한다고 했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그 사람의 친구라는 설정으로 나가는 게 아닐까?
일반인인 내가 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방법이라면 그 정도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너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런 식으로 출연하는 일반인들도 흔하게 보였고.
혹여 그런 식으로 결정이 난다면 이후에 그 출연하게 될 사람과 인사도 하면서 합을 맞추거나 하는 걸까?
일단 친구라고 한다면 서로간에 좀 아는 게 있어야 할 테니까.
물론 아직까지 출연할지 말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황.
나름 친한 연주 씨라 해도 여기서는 입조심을 할 필요가 있겠지.
“…….”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는 눈빛을 애써 외면하고 입을 다물었다.
묵비권을 행사하자 그녀가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말하기 싫다면 저도 더 안 물을게요.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현수 씨가 거기 출연하는 건데요? 연예인도 아닌데?”
“저도 모르죠. 모델 일이라도 해 봤다고 그러는 거 아닐까요? 따지고 보면 이것도 나름 연예계 쪽 일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에이, 그런 작은 패션몰 모델이 무슨 연예 직종이에요. 그냥 알바지.”
“……그렇긴 한데.”
막상 이렇게 대놓고 팩트를 들이대니 할 말이 없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너무 묻지 마요.”
“아, 진짜 궁금해 죽겠네. 조금만 말해 주면 안 돼요?”
“결정되면 얘기해 줄게요.”
“쳇.”
혀를 차는 연주 씨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보다 괜히 사람들한테 막 얘기하고 다니지나 마요. 알았죠?”
“안 그러거든요? 참 나, 저 그렇게 입 가벼운 여자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겪어보고도 모르겠어요?”
“욱하는 거 보면 발화점은 엄청 가벼워 보이던데.”
“무슨 소리에요!”
“봐봐요, 가벼운 거 맞네.”
“뭐라고요?!”
마침 홀로 먹는 것도 심심했던 지라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녀를 놀리면서 시간을 때웠다.
아무튼 놀리는 맛이 있는 여자라니까.
***
길고 길었던 식사시간도 끝이 나고.
나와 연주 씨는 휴게실에서 이후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수 씨는 그럼 오늘 어떻게 되는 거예요?”
“오늘은 그냥 사옥 구경이나 하라더군요. 아직 일이 정해진 게 없다고. 연주 씨는요?”
“저도 비슷해요. 이대로 집에 가도 되긴 하는데……. 연습이나 더 하려고요.”
“연습이요?”
“아이돌 데뷔까지 얼마 안 남았거든요. 안무나 발성 연습 같은 거 하는 거죠.”
이 불같은 성격의 소녀가 아이돌이라니.
이 사람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팬들 관리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네.
“……뭔가 표정이 재수 없는데요.”
“무슨 소리에요. 그보다 데뷔는 언제쯤 하게 되는데요?”
모른 척 화제를 돌리는 내 기색을 깨닫지 못하고 연주 씨가 대답했다.
“글쎄요. 정확한 시기는 대표님만 알아요. 적어도 몇 달 내로는 하게 된다고 들었어요.”
“솔로에요?”
“아뇨. 3인조에요.”
3인조라.
요즘 시대에 혼성 그룹은 당연히 아닐 테고.
아이돌 연습생이라면 얼굴이나 몸매도 보통 이상은 될 텐데.
마침 견학이나 하라는말도 있었고, 이렇게 된 거 구경이나 한 번 해 볼까?
“저 구경 좀 해도 됩니까?”
“구경이요? 뭘요?”
“연습하는 거요.”
여기까지 왔는데 미녀들을 안 보고 갈 수 없는 노릇이지.
그제야 내 물음을 이해한 연주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 대표님 허락도 받았다면야 상관없긴 한데…….”
“왜 말문을 흐려요?”
“아니……. 막상 보고 싶다고 하니까 좀 민망해서요.”
“뭐가요?”
“그게…….”
힐끗 나와 눈이 마주친 연주가 한숨을 쉬듯이 말을 이었다.
“그, 갑자기 알바 동기였던 사람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좀 민망하네요.”
하긴 지금까지 나도 아이돌로서 연주를 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연주 씨도 처음을 제외하면 굳이 나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 한 적은 없었고.
그리 생각하니 민망할 수 있으려나?
“에이, 그런 생각하면 안 되죠.”
허나 나는 그런 연주를 향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줘야 되잖아요. 벌써부터 자신감 없이 그런 태도면 어떡해요.”
“그렇긴 하지만.”
“괜찮아요. 춤 못 추고 노래 못 불러도 안 웃을게요.”
“그런 의미로 한 말 아니거든요?”
“알아요. 아니까 이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아니면 데뷔한다는 말도 그렇게 쉽사리 할 수 없을 거면서.”
“…….”
내 말에 입을 꾹 다문 채 지긋이 날 노려보는 연주 양.
뭔데. 또 왜 그런 표정으로 보냐고.
“그…….”
한참 동안 가만히 날 보던 연주가 기어코 말문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별 재미는 없을 거예요.아직 데뷔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인 안무 연습이나 계속 반복해서 발성 연습만 하는 거라.”
“괜찮습니다. 평소 못 보던 연주 씨 모습도 보는 거니까 분명 재밌을 거 같아요.”
“……무슨 뜻이에요그건.”
“아무튼 딱히 문제될 거 없다면서요. 안 되나요?”
“그야 안 될 건 없지만…….”
“제가 1호 팬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주 말은 청산유수야…….”
내 넉살에 연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허나 그리 말하면서도 입가에는 작게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툴툴거려도 막상 팬 해준다고 하니까 기분 좋은가 보지?
“알았어요. 그럼 따라와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는 연주를 보며 나도 그녀를 따라 휴게실을 나섰다.
드디어 아이돌 지망생들과의 접점이 생기는 건가.
그렇게 나는 연주를 따라 지망생들이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들어와요.”
문앞에 도착한 연주가 그리 말하며 연습실 문을 열었다.
나는 그런 연주를 따라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섰다.
환한 조명이 사방으로 반사되는, 거울 벽으로 이루어진 방 안.
그곳에는 신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트레이닝복 차림이로 춤을 추고 있던여성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나 왔어.”
연주의 목소리에 춤을 추던 두 사람이 홱 고개를 돌렸다.
“언니 왔…….”
“연주 너는 무슨 밥을 그렇게 오래 먹…….”
말문을 이으려던 두 사람이 내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다소 의아한 표정의 두 사람을 관찰하며 나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 누구세요?”
앞서 연주를 언니라 불렀던 단발머리 여성…….
아니 ‘소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50을 겨우 넘을 법한 키는 물론이고 몸도 아이마냥 빈약한 모습에 목소리도 중학생 마냥 앳되다.
확실히 더 크면 미인으로 클 게 확실한 인상이긴 하지만…….
적어도 지금 모습은 고등학생인 주화린보다도 어려 보였다.
설마 중학생은 아니겠지?
“김현수라고 합니다.”
물론 그리 말할 순 없는 노릇인지라 겉으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슬쩍 고개를 숙이는 소녀.
꽤 소심한 성격인가 보네.
“이번에 피버샵에서 파견을 나온…….”
“아, 전에 연주가 말한 그 분이구나?”
이어지는 인사를 툭 끊는 또 다른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다가오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현수 씨 맞죠?”
앞서 본 소녀 같은 인상의 연습생과는 정반대의 인상의 여성.
마침 연습을 했던 탓인지 딱 달라붙는 트레이닝복 바지와 탱크탑의 얇은 복장을 입은 채였다.
탄탄해 보이는 복근에서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게 특히 야하게 느껴졌다.
크, 저 배꼽 한 번 핥아보고 싶네.
“이야기는 들었어요.”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손을 내미는 그녀.
내밀어진 손을 마주잡자 그녀의 땀이 내 손바닥 너머로 느껴졌다.
“아, 죄송해요. 연습하던 중이라 땀이 좀.”
“아뇨. 괜찮습니다.”
죄송하긴 무슨.
오히려 나한텐 포상이구만.
“후우.”
악수를 끝내고 땀이 맺힌 머릿결을 휙 넘기며 그녀가 말했다.
“연주 때문에 고생이 많았죠? 애가 워낙 고집이 세서 같이 일하기 피곤했을 텐데.”
“아, 뭐 고생이랄 것까지야…….”
“무슨 소리에요, 언니!”
“아하하.”
연주를 놀리는 웃음소리에서 호탕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짧게 웃은 그녀는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권하영이라고 해요.”
“김현수입니다.”
스스로를 권하영이라 소개한 그녀와 악수를 하면서 나는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른 채 시선을 피해야 했다.
땀으로 인해 저 빵빵한 가슴 너머로 속옷이 비춰보였기 때문이다.
혹시나 해서 삼각팬티를 입고 온 게 천만 다행이다…….
꼭 정력이 쌔다고 좋은 건 아니네.
“아! 오빠가 연주 언니 썸남이에요?”
악수를 마치기 무섭게 방금 전 소녀가 말을 걸어온다.
방금 전의 소심했던 기색이 거짓말인 것 마냥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와! 연주 언니가 현수 씨 노래를 부르길래 어떤 분인가 했는데!”
“너, 너너너너는 내가 언제 노래를 불렀다고 그래!”
잠자코 있던 연주가 돌연 소리를 빽 질렀다.
“그, 그리고 썸남 아니거든? 오해하잖아!”
“어? 아니었어요? 언니 이 오빠 얘기할 때마다 엄청 들떠서 얘기했었잖아요!”
“내내내내내가 언제! 아니거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래요? 아니면 말고.”
“큭, 민아 너어……!”
보지 않아도 등 뒤에서 부들거리는 연주의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혹시나 했는데 쟤는 이런 꼬마한테마저도 놀림 받는 포지션인 모양이다.
뭐, 그게 이연주라는 여자의 매력이긴 하지.
“안녕하세요!”
부들거리는 연주를 뒤로 한 채 소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민아라고해요. 잘 부탁드려요, 현수 오빠!”
“아, 저는…….”
“아, 오빠 이름은 아니까 소개 안 해도 돼요. 자요!”
점잖게 악수를 청하던 하영과 달리 민아는 쾌활하게 내게 손바닥을 쫙 펴서 내밀었다.
나는 그런 민아의 요청에 맞춰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예이!”
하이파이브를 받아주자 그녀가 기쁜 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
아까는 그렇게 소심한 척 하더니 캐릭터가 확 바뀌니까 조금 당황스럽네.
“그럼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오빠!”
“아, 네. 그러죠.”
“말 편하게 하세요, 오빠. 저 아직 고등학생이걸랑요.”
“어……. 그럴까?”
그럼 그렇지.
이 외모에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했으면 기네스북 감이다.
“하아…….”
그렇게 내가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등 뒤로 연주가 한숨소리와 함께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뭘 이럴 줄 알았다는 걸까.
궁금했지만 나는 그녀의 정신건강을 위해 굳이 캐묻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