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6. 양손에 꽃(5) (48/152)



〈 48화 〉6. 양손에 꽃(5)

시끌벅적한 클럽 속.
그런 클럽의 테이블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여성.

다리를 꼰 채 따분하다는 듯한 핸드폰 스크롤을 휙휙 넘기는 그녀의 모습은,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

얼핏 봐도 냉기가 풀풀 풍겨나는 표정.
상당한 미인임에도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 탓에, 주변의 남성들도 쉽사리 그녀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홀로 남게 된 그녀는, 왁자지껄한 클럽의 소음에도 불구하고 고고히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야, 혜진아!”

그런 그녀에게 겁 없이 어깨를 툭 치는 한 여성.

그제서야 혜진이라 불린 여성이 고개를 들었다.

“뭐.”
“오늘 물 좀 괜찮지 않아?”

친구의 말에 혜진이 스테이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허나 그것도 예의상 보는 척이라도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그 표정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괜찮기는 개뿔.”

곧바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리는 혜진.
그런 혜진의 모습에 함께 온 친구의 입이 튀어나왔다.

“야, 너는  클럽까지 와서 이러고 있어. 재미없게.”
“피곤해.”
“너 어째 오늘따라 의욕이 없어 보인다? 오늘 낚으러 안 가?”
“됐어.”
“에이씨, 하드로 5바(bottle)나 시킨 거 안 아까워? 최소한 시킨 건 다 비워야지!”

그 말에 혜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차피 돈도 넘치는 주제에 남기는 건 지독하게싫어하는 녀석이다.
예전에 이에 대해 물어보니 부모님이 자린고비 스타일이라 습관이 된 것 같다나 뭐라나.

허나 그런 설명을 기억하고 있어도 저런 태도가 마음에  드는 건 매한가지였다.

“너 혼자 해.”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혜진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지금은 남자 꼬시는 것도 귀찮다.
클럽까지 와서 이러는 것도 웃기는 소리긴 하지만 실제로 귀찮아진 걸 어쩌겠는가.

“오늘은 진짜 할 생각 안 든다.”
“나 참! 그럴 거면 클럽은 왜 왔대!”
“됐으니까 너나 놀다 와. 난 자리 지키고 있을 테니까.”
“나 혼자 낚으면 미안한데! 너 테이블 혼자 잡아도 괜찮겠어?”
“니가 언제 그딴  신경 썼다고 그래?”
“하긴 그것도 그렇지!”

낄낄 웃은 녀석이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혜진은 여전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럼 이 누님은 괜찮은  하나 잡아 오마!”

떠나가는 친구를 위해 혜진이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친구가 떠나가는 기척과 함께 혜진은 다시 한동안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결국 게임마저 귀찮아진 혜진은 결국 고개를 들고 무대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

“드랍 더 비트!”

마침 DJ의 말과 함께 음악이 변경되는 시점.
이제는 태교음악보다도 더 친숙해진 전자음을 들으며, 혜진은 같은 여자들의 구애쇼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그런 혜진의 시야로 무대 한가운데에서 음악에 정신을 놓은 남녀가 엉덩이를 흔드는  보였다.

“애쓴다, 애써.”

혜진은 그런 그들을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그래,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허나 그들을 비웃으며즐기던 것도 잠시.

“재미없네.”

거의  번도 더 겪은 광경을 보며 혜진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어제까지만 해도 여댓 명의 남자를 테이블로 데려와 꽐라로 만들었다.
물론 끝까지 달려서 재미를 본 녀석도 한 명 있었고.

하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이전과 똑같이 만족하지 못했다.

그나마 괜찮았다고 생각한 녀석의 정력이 처참했기 때문에.

‘어째 제대로 된 남자가 없어.’

얼굴이 반반하다 싶으면 밤일에 서툴고, 밤일에 능숙한 놈들도  번이 한계였다. 물론 얼빠인 혜진에게 못생긴 녀석들은 처음부터 탈락이다. 그런 놈들과는 자신의 가랑이가 젖지도 않았다. 거기에 못생겼다는 놈들이 잘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이 클럽도 여기까진가.’

넘어오지 않는 놈들을 제외하고 여기 클럽에 있는 괜찮은 남자 대부분은 이미 대충 맛을 본 상태.
어차피 오는 놈들도 다 거기서 거기라 얼굴마저 외운 녀석들도 있을 정도다.
현재 무대에서 춤을 추는 남자 중에는 실제로 자신과 잔 녀석도 보였으니까.

슬슬 다음 클럽에서 맛볼 남자들을 물색할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생각한 혜진이 마지막으로 스테이지를 둘러보던 순간이었다.

“저기요!”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건가 했다.
그러나 지척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 곳에는, 자신을 똑바로바라보는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먼저 말을 거는 남자는 오랜만인데.

‘어디 얼굴 구경이나 한   볼까.’

조금 흥미가 동한 혜진이 자신을 부른 남성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적어도 이 클럽에서 놀면서 본 적은 없는 얼굴.
그러나 자신이라면 놓칠 리가 없는,  반반한 생김새의 남자다.

“누구?”
“혼자 왔어요?”

혜진이 그런 사내를 보며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자신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건방지게 자신의 용건부터 들이대다니.

허나 일부러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거리낄 것 없다는 듯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사내를 보며 혜진이 피식 웃었다.

‘이거 재밌네.’

보통은 인상이 무서워서인지 얼굴만 살짝 찌푸려도 기가 죽는데,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런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첫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긴 값은 한다 이건가.’

확실히 얼굴은 꽤 반반하게 생겼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잘 생겼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짧게 입은 아래로 드러나는 근육.
자기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거겠지.

 정도 근육이라면 밤일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나쁘지 않네.’

그래. 어차피 마지막으로 한 거.
마지막에 한  걸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일단 앉아 봐요.”

속으로 결정을 내림과 함께 혜진이 맞은편 빈자리를 가리켰다.

좋아.
우선 괜찮은지 간부터 좀 보도록 할까.

***

자리에 앉은 현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야, 분위기 보소.’

말투도 그렇게 생긴 것도 그렇고 한 성깔 할 거 같은데.
이거 진짜 나쁜 여자 제대로 찾아온 거 아냐?

“자.”

내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그녀가 잔 하나를 내밀었다.
내가 잔을 받자 그녀가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 하나를 쪼르륵 따랐다.

“이름이?”

밖에서 말할 때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목소리.
그럼에도 똑똑히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린다.
엄청난 소음을 자랑하는 클럽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후우, 쫄지 말자.
기왕 하기로  거 제대로 해야지.

애써 태연한 기색을 유지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김현수입니다. 그쪽은요?”
“고혜진. 나이는?”
“스물여섯입니다.”
“직장은?”
“그건 왜요?”
“그냥 궁금해서.”
“이거 혹시 무슨 면접 보는 겁니까?”

난데없이 왜 신상을 줄줄이 묻고 있어.

어이없다는 듯 묻는 내 말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서로 최소한 알  알고 있어야지. 그래야 대화를 해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겠어?”
“그럼 그쪽은 무슨 일 하는데요?”
“나? 백수.”

진짜 시발세상이다.
시발.

“……모델 합니다.”
“생긴 대로 사네.”

……이거 칭찬 맞지?
살면서 칭찬을 이렇게 욕처럼 하는사람은 또 처음 본다.

“스물여섯이랬지.”
“네.”
“더 어릴 줄 알았더니 동갑이었네?”
“그래서 아까부터 그렇게 반말하는 겁니까?”
“싫으면 너도 반말하던가.”

하라면 못할  아나 보네.
살짝 욱한 심정과 함께 나는 툭 내뱉었다.

“어, 그래.”

곧바로 말을 놓는 내 말투에 그녀의 눈 크기가 살짝 커졌다.
설마 바로 말을 놓을 줄은 몰랐다 이건가.

“순둥이인 줄 알았더니.”

혜진이라는 이름의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생긴 거랑 다르게 막 당하기만 하는 스타일은 아닌가 봐?”
“꼭 생긴 대로만 사는  아니거든.”
“생각보다  비꼴 줄도 알고 말이야.”
“너만 하겠어?”

 말에 혜진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씨익 웃엇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듯이.

허나 나는 그런 혜진을 보며 내심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

백수에 테이블까지 잡고 양주를 5병이나 시킨 것만 봐도  수 있다.

이 여자야말로 말로만 듣던 그 제별 3세니 뭐니 하는 부류일테지.
그냥 졸부라고 여기기엔 그녀에게서 풍겨나오는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이거 어쩌면 타겟을 잘못 잡은 걸지도…….’

허나 사실 나로서는 재벌 2세니 뭐니 하는 여자를 만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진짜 무슨 야동마냥 양아치 같은 여자 한 명 낚아서 다슬과 쓰리썸을 즐길,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클럽을 방문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건 나쁜 여자가 아니라 그냥 쌘 여자 아닌가.

“뭐, 직접 테이블까지 와서 말도 걸고 했으니.”

내심 당황한 내 심정도 모르고 혜진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용기를 봐서 허락해 줄게.”
“뭘 허락한다는 건데?”
“시키고 싶은 거 있으면 시키고 쉬고 싶으면 여기서 쉬란 얘기야. 물론 오늘밤 한정.”
“난 그쪽이랑 대화를 나누려고 온 건데.”
“아, 미안하지만 난 오늘 좀 피곤해서. 그냥 친구 따라 놀러온 거거든.”

허나 또 이런 스타일의 여자가 싫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두워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상당히 미인으로 보이고.

무엇보다 이렇게 콧대 높게 나오는 여자를 쉽사리 내버려두고 가자니 괜히 승부욕이 발동한단 말이지.

내 예상과는 꽤 그림이 달라졌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그녀와의 동침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한  해볼까.’

나는 어느새 말문을 멈추고 핸드폰을 만지는 혜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일단은  더 자극을 줘야 될 것 같은데.’

처음에는 내 접근에잠시 관심을 보였으나 현재 혜진은 관심을 끊고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 여자는 어느 정도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핸드폰을 만지는 저 모습조차도 아마 나름대로 관심 수급을 위한 나름의 방법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정말로 관심이 없었다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테지.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닌데.”

그리 확신한 나는 곧장 입을 열었다.

젊은 여자가 테이블까지 잡고 클럽에 와서 남자에 관심이 없다?
하물며 이런 정조역전세계에서?

절대 그럴 리가 없지.

“그럼 뭔데?”
“말했잖아. 너랑 대화 나누러 왔다고.”
“대화?”

다시 한 번 대화를 강조하는 내 말에혜진이 피식 웃었다.

탁.

테이블에 핸드폰을 소리 나게 내려놓는 혜진.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진심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모습을 나는  더 자세히 관찰했다.

차가운 미소를 지은 그녀의 구릿빛 피부는, 딱 보기 좋게  있다.
팔뚝에 드러난 장미 모양의 타투는 묘한 퇴폐미를 더했다.
거기에 한껏 치장을 한 듯 기다란 속눈썹과 관능적인 눈빛은, 그녀의 차가운 외모를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금발이기만 했어도  금태양의 정조역전 버전이었겠는데.

“정말 대화만 나누러 온 거 같진 않은데?”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옅은 자홍색 립스틱을 바른입술을 열었다.
후 하고 입을 여는 입에서 옅은 담배 냄새와 섞인 박하향이 느껴졌다.

“아니면 더한 걸 바래?”

침을 꿀꺽 삼키고 싶은 것을 나는 가까스로 참아낸다.
이 시끄러운 클럽 안에서마저도 그 소리가 들릴 만큼 그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심장을 겨우 제어하며 나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처음부터  얘기하면 재미없지.”
“큭큭.”

내 말에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는 혜진.
어느새 내 옆에 바짝 붙은 혜진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생각보다 밀당 좀 할  아네. 오케이.”

재밌다는 듯 날 바라보던 혜진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10점 줄게.”
“뭐?”
“참고로 커트라인은 70점이야.”
“그게 무슨 점수인데?”
“나랑 놀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점수지.”

시험을 치는 학생을 바라보듯 혜진이 기대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방금 전의 접근은 그녀 나름의 테스트였던 걸까.

‘거 참 비싸게도 구네.’

그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며 나는 작게 웃었다.

커트라인은 무슨.
바로 월반까지 해 주마.

“읍!”

웃고 있는 혜진을 향해 나는 곧바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곧바로 혀를 집어넣었다.

“무슨……! 하읍!”

잠시 반항하며 입술을 떼려던 혜진의 고갯짓에도나는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다시 입술을 부딪히며 혀를 집어넣었다.

“읍! 으읍!”

여전히 반항기가 남아있는 혜진의 혀를 억지로 농락한다.
동시에 짧은 나시를 입은 그녀의 상의 아래로 쑥 손을 집어넣었다.

“으읍?!”

방금 전까지의 고압적인 태도와 달리 한껏 당황한 기색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즐기며 나는 브라 너머로느껴지는 가슴을 가볍게 주물렀다.

아니, 잠깐.

‘이거……. 뽕인가?’

그녀의 가슴을 만진 순간 느껴지는 감각에 나는 당혹감을 겨우 억눌렀다.
지금 만지는 이건 가슴이 아니라 다른 감촉이었으니까.

생각보다 가슴이 작은 걸까.

뭐, 그래도 모양은 이쁜 것 같으니까.

“으읍!”

입을 맞댄  놀란 표정을 짓는 혜진의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적어도 크게 거부하는 기색은 없었다.

 손으로 가슴인지 뽕인지 모를 것을 주무른  나는 그녀의 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으으응……. 츄릅…….”

점차 묘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혜진의 혀놀림도 조금씩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내 혀놀림에 맞추어 그녀도 농후한 입맞춤을 즐기기 시작했다.

“후아앗……!”

내 타액과 그녀의 타액이 서로의 입 안에서 격렬하게 뒤엉켰다.

센 척 하기는.
결국 키스 한 방이면  이 모양이라니까.

“하으읍……. 푸하!”

한참 혀를 나눈 뒤에야 나는 입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신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는 내 손을 보며 그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읏, 순둥이처럼 생긴 주제에……. 생각보다 대담하네?”
“이거 뽕이야?”
“…….”

 말 한 마디에 혜진이 나를 째릿 노려보았다.
워낙 인상이 차가운지라 그냥 살짝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꽤 무서운 느낌이었다.

이건 앞으로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네.

황급히 가슴에서 손을 뗀 내가 화제를돌렸다.

“그보다 어때?”
“뭐?”
“이 정도면 커트라인은 넘었나?”

 말과 함께 나는 그녀를 보며 빙긋 웃었다.

“허, 참.”

그런 내 모습을 어이없이 보던 것도 잠시.

“따라와.”

씨익 웃은 그녀가 갑자기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녀를 따라가던 나는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도착한 순간 눈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여긴 여자 화장실인데?

그야 나도 첫 경험은 화장실이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걔는 소설  등장인물이었고…….

“우왓!”

이어지는 생각을 끊어내듯 나를 거칠게 끌어당기는 혜진.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나는 반강제로 화장실에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쿵.

문을 열기 무섭게 내 가슴을 밀친 그녀가 나와 함께 화장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내 멱살을 꽉 쥐었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튀는  아니겠지?”
“아니…….”

어, 갑자기 이러니까  당황스럽네.
아니, 물론 좋긴 한데…….

벽에 몰린 내가 당황한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읍!”

곧이어 내게 입맞춤을 하는 혜진의 모습.
허나 그 부드러운 혜진의 입술을 음미할 새도 없었다.

“하아앙!”

다른 화장실 변기 문 건너로 들썩이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하아앙! 좋아앗!”

아니, 잠깐만.
설마 우리 말고도 또 누가 여기서 하고 있는 건가?!

이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다슬이 이전에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화장실만 가도 알 수 있을 거라 했더니.
그게 설마 이런 이 뜻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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