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3. 모델, 아이돌, 연예인(10) (24/152)



〈 24화 〉3. 모델, 아이돌, 연예인(10)

다슬과의 정사가 있은 뒤 2주.
2주 사이 나는 슬슬 피팅 모델 아르바이트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사실 패션몰 모델 알바라고 해서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었다.
그저 새로운 회사로 와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한 뒤 의상 소개란에 올릴 사진을 찍는 정도였으니까.
얼굴도 노출이 된다는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뭐,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안녕하세요.”
“아, 오셨어요?”

사무실로 들어서자 의상을 정리하던 진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진아와의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 컴퓨터 앞에서 바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패션몰 대표이자 사진작가인 최수민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수민에게 다가간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셨나요.”

내가 인사를 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미건조하게 답하고는 다시 컴퓨터 앞으로 시선을 돌리는 수민.
여전히 사진을 찍을 때를 제외하면 무뚝뚝한모습이다.

‘확실히 얼굴은 예쁜데…….’

솔직히 처음에는 저런 모습도 쿨해서 매력적으로 느껴진 게 사실이다.
사실 지금도 흑심이 없다고는 말 못 하지.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말이 이어져야 뭐라도   있는 법.
패션몰 대부분의 실무를 보고 있는 진아의 경우에는 자주 이야기를  거리가 있어도, 대표의 경우에는 달랐다.
잦은 출장 탓에 퇴근 시간에는 수민의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들뿐더러, 각종 의복업체를 둘러본다던가, 본사인 ‘피버 에이전트’에 지원 업무를 가는 등 눈코 뜰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지금으로서는 수민과 친분을 쌓을 시간 자체가 없다.
이렇게 출근 시간에 인사를 하는 게 전부일 뿐.

‘천천히 생각하자고.’

그럼에도 나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내가 급하게 움직일 이유도 없고.

일하다보면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라는 식으로 천천히 때를 기다릴 뿐이다.

“오늘은 조금 늦게오셨네요.”

수민과의 인사를 마치자 진아가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그런 진아를 향해 나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아직 저도 준비 다 안 끝났는걸요. 대기실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방긋 웃으며 안내하는 진아를 따라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 2주 동안 나는 진아라는 여성과 붙어 다니며 나름 친해진 상태였다.
워낙 바쁜 최수민과 달리 김진아의 경우에는 거의내 전담 마크맨 마냥 나를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딱히 의도한  아니지만 그 동안 호감도도 올랐고.

‘별 의미는 없지만.’

사실 김진아와의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금의 내게는 화연과 다슬 두 사람만으로도 살짝 버거운 상황이었으니까.

심지어 방금 전에도 그녀의 자취방에서 화연과  판 하고 오는 길이다.
오늘이 개교기념일이라나 뭐라나.

‘주화연 걔는 진짜…….’

나는 방금 전 나를  붙잡던 화연의 모습을 떠올렸다.

-현수야, 한 번만 더…….

아직도 그녀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귀에서 울려 퍼지는 듯하다.
옷을 입고 있는 내게 나체로 애처롭게 늘어지는 화연의 모습은 처절할 정도였다.

-야,   가야 된다니까! 갔다 오면 또  줄게!
-진짜지?
-그래, 그러니까 제발  좀 보내주라.
-알았어. 어쩔 수 없지…….

현관문을 나가기 전까지 시무룩해 하던 화연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 그녀를 떠올리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완전 섹스 중독이잖아…….’

물론 나도 그런 화연이 싫다는 건 절대로 아니다.

소설  히로인이라는 위치 때문일까.
그녀는 내가 본 여성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라 할 수 있었다.

소심한 데다 다소 칙칙한 차림으로 다니기에 눈에  띄지 않을 뿐, 자세히 살펴보면 원래 세계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의 미녀가 바로 주화연이라는 여자였다.
하물며 외모 뿐만 아니라 가슴도 크고, 몸매도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나이스 바디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나체로 섹스를  달라고 한다는데 안 베길 남자가 어디 있겠냐고.

‘그래도 걔는 너무 심해.’

하지만 화연은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보정된 육체를 지닌 나조차도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차라리 다슬이 정도면 양반이지…….’

술을 마셨을 때의 다슬도 화연만큼 심하지는 않다.

화연의 경우에는 일주일에도 5번은  연락이 오는 찰거머리 같은 스타일인 반면, 다슬의 경우에는 한 방에 끝까지 하는 무대포 스타일이다.
물론 둘 다 쉽지는 않지만 나로서는 차라리 최다슬이 나았다.
걔는 적어도 술만 안 마시면 평범하니까.

뭐, 사실 그래봤자 오십보백보 수준이긴 하지만.

‘생각 좀  봐야겠네.’

이렇게 언제까지고 그녀의 섹스 타령에 휘둘릴 수는 없다.
이 세계에서 여자들과의 섹스 라이프를 즐길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렇다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섹스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계속 이러면 정말 거리를  필요도 있을지도…….

“죄송해요. 아직 오기로 한 의상이 도착을  해서요.”

대기실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진아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아가 양 손에 들고 온 종이컵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커피에요.”
“아,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건네며 커피를 받자 진아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진아가 민망하다는 듯 작게 웃었다.

“아하하, 사실 의상이 오기 전까지 저도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없어서요.”
“아, 네.”
“여기서 같이 좀 기다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알바한테 무슨 허락을 받으세요.”
“에이, 알바라도 일단 한 번 일했으면 동료 직원이죠.”

흠, 나는 솔직히 그렇게 의미를 두진 않고 있는데.
그냥  많이 주니까 하는 거지.

막상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부끄러워지잖아…….

“현수 씨 덕분에 저희 회사 분위기도 더 밝아진 거 같아요.”

내심 민망해 하는 나를 보며 진아가 밝은 어조로 연신 입을 열었다.

“항상 여자 둘이서 말없이 일하는 것도 나름 고역이었거든요.”
“그런가요?”
“그렇다니까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언니……. 아니, 대표님도 저렇게 항상 무뚝뚝하시고. 제가 아무리 말을 해도 항상 저렇다니까요! 적어도 손님들 올 때는 좀 웃으면서 대해야 되는데.”
“하하…….”
“아무튼 현수 씨 덕분에  밝아진 거 같아서 좋네요.”

남자들만 있어서 칙칙한 게 아니라 여자들만 있어서 칙칙한 건가.
정조역전세계 아니랄까봐 이런 부분에서도 세심하구만.

새삼스럽지만 그냥 내 존재만으로도 칙칙한 분위기를 타파할 수 있다니, 이것도 묘한 기분이다.

“맞다. 깜빡하고 말씀을 못 드렸는데 오늘은 다른 알바도  거예요.”
“그런가요?”
“네. 현수 씨랑 합을 맞춰보고 괜찮다 싶으면 같이 촬영도 들어간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지금까지 하던 것보다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언니가 약간 일에 관해서는 완벽주의거든요.”
“언니요?”
“아, 대표님이요. 으, 자꾸 이런 말실수를……. 이거 말하지 말아 주세요. 직장에서 언니라고 부르면 저 혼나거든요.”
“그럴게요. 대표님한테 언니라고 부를 정도면 원래부터 친하셨나 봐요?”
“아, 네. 원래는 대학교 선배였는데…….”

내가 그리 생각하는 사이에도 진아는 이런 저런 잡담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뭐, 물론 대부분은 업무에 관련된 공적인 대화이긴 했지만.

그렇게 대표인 수민과 진아와의 과거 인연을 듣던 와중.

까똑!

톡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진아가 핸드폰을 꺼냈다.
메시지를 확인한 진아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오려나 봐요.”
“의상 말인가요?”
“아, 의상은 오는 중이에요. 방금은 의상이 아니라 아까 말한 또 다른 알바 얘기예요. 본사 쪽에서 한 명 오게 됐거든요.”
“그러면 드디어 다른 분도 볼 수 있겠네요.”

이 2주 동안 내가이 사무실에서 본 사람은 진아와 수민 둘 뿐.
연예인 지망생들을 위한 패션몰로 세운 회사이건만, 정작 여기에 알바를 하러 온 지망생들은 한 번도  적이 없었다.

아마 전에 말했던 인력이 부족한 탓이겠지.

그걸 메꾸고자 나도 이곳에 알바를 하게 된 거고.

그러면 본사 쪽에서  일이 없어진 지망생  명이 알바  오는 건가.
연예인 지망생이면 분명 얼굴도 평균 이상일 텐데.

……여자이려나?

여자면 좋을  같은데.

“연예인 지망생이죠?”

혹시나 싶어서 묻는 내 질문에 진아가 긍정했다.

“네. 그렇다고 들었어요.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연예인이면 사인이라도  장 받았을 텐데.”

내 말에 진아가 쿡쿡 웃었다.

“에이, 저희 회사에 이름난 연예인이 오는 경우는 잘 없어요. 일단 지망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회사니까요.”
“그건 좀 아쉽네요.”
“그래도 모르죠. 현수 씨가  마음만 있다면 볼  있을지도?”
“말했다시피 전 연예인 할 생각 없습니다.”
“일곱 번째 퇴짜네요.”

그리 말한 진아가 쓰게 웃었다.
애초에 그리 기대하지 않은 눈치긴 했지만.

앞서 진아가 말했다시피 이전에도 벌써  번이나 제안을 받았다.

처음 수민이 제안했을 때 한 번, 그리고 진아가 이걸로 6번.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종종 이렇게 장난식으로 제안을 하곤 했다.
어지간히도 내가 연예 관련해서 일을 했으면 바라는 눈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입었던 의상 반응은 보셨어요?”

곧바로 거절을 하는 나를 보며 자연스레 화제를 바꾸는 진아.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반응이요?”
“아, 네. 지금 예약 주문도 계속 들어와서 재고도 추가로 시켰을 정도예요. 후기에도 지금 모델이 멋지다느니 재질이 너무 좋다느니 난리도 아닌데. 혹시 안 보셨나요?”
“죄송합니다. 사실 제대로 살펴본 적은 없어서…….”
“그럼 지금 한 번 보시겠어요?”

진아가 스마트폰을 키고는 오라는  손짓했다.
내가 다가가자 패션몰 사이트에 접속한 진아가 열심히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 설립 자체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라 패션몰에 공개된 리뷰가 평균적으로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기에 금방 찾을 수 있다는 게 조금 슬프지만……. 이건 그냥 넘어가고.

“보세요. 멋지죠?”

진아의 말과 함께 나는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액정 위에는 여름용 패션을 선보이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마를 까고 시원해 보이는 복장을 입은 채로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는 내 모습은…….
솔직히 나지만 멋있네.

거기다 저 기럭지, 진짜 모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완벽한 비율이다.

크, 진짜 살 맛 나네.

‘밑에 후기도 좀 볼까.’

슬쩍 아래로 드래그를 하니 벌써부터 후기가 주르륵 쓰여 있었다.
앞서 본 다른 제품들 대부분이 텅 비어 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나는 그런 후기들을 가만히 읽어 내려갔다.

-옷 너무 맘에 들어요^^ 이번 여름에 남편에게 선물할 예정인데 재질도 참 좋네요. 남편이 좋아했으면 좋겠네요~
-시원해 보여서 바로 구매 눌렀습니다! 사업 번창하시길!
-해외여행 갈  입고 갈 예정이에요~. 배송상태도 만족합니다~.
-처음 패션몰인데 꽤 괜찮네요. 자주 애용할 

후기와 함께 내가 입은 옷의 상품평에는 만점이라  수 있는 ‘만족’ 표시가 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잘 입는다 해도 옷 자체의 질까지 높일 수는 없는 법.

즉,  옷을 선택한 수민과 진아의 선택이 탁월하다 할 수 있었다.
옷이 별로였다면 모델이 어떻든 간에 이런 점수가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남친 주려고 샀는데 이거 모델 보니 눈이 높아져서+_+ 모델분이 엄청 옷 소화를 잘 하시네요ㅋㅋ
-저 모델 오빠 누구예요? 이름이라도 좀ㅜㅜ

반면 옷보다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궁금해하는 후기들도 종종 보였다.
심지어 아예 구매 표시도 없이 나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는 댓글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한테 관심 있는 덧글도 있네요. 옷을 봐줘야 할 텐데.”
“그 옷을 살려주는  현수 씨잖아요. 저희한테도 좋은 거죠.”
“그게 그렇게 되나요.”
“이렇게 보시다시피 현수 씨가 저번에 홍보해주신 의상이 호응이 좋아요.”
“에이, 뭘요. 저야 옷 입고 광고만  것 뿐인데요. 대표님과 진아 씨가 노력한 덕분이죠.”
“아니에요. 현수 씨가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관심도 못 받았을 거예요.”
“그래도 저보다는 두 분이 열심히 한 덕분에…….”
“아니, 그래도 현수 씨가 모델을 맡아준 덕분에…….”

잠시 서로 간에 큰 의미 없는 칭찬 릴레이가 이어진 뒤.

곧이어 진아가 다행이라는  말했다.

“아무튼 현수 씨 덕분에 저희도 이걸로 한  돌렸네요. 최근에 좀 힘들었는데.”
“힘들다니요?”
“아, 실은 저희가 패션몰 연지 얼마 안 됐잖아요. 홍보도  안 되고 하다 보니 한 달 째 재고만 쌓이고 있었거든요. 완판된 건 이게 처음이에요.”
“아……. 그랬군요.”
“아, 언니한테 제가 이 말 했다는 건 비밀이에요. 저래 뵈도 엄청 신경 쓰고 있거든요. 제가 마음대로 말한 줄 알면 언짢아할 거예요.”

아까부터 말하지 말라는 건 다 말하고 있는 거 같은데.

그보다 지금 이런 회사 사정까지 알바인 나한테 마음대로 말해도 되는 건가……?

딩동.

그  벨소리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회사로 들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나와 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왔나 봐요."
"우리도 나가 보죠."

나와 진아는 함께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이미 마주한 대표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소개 받고  이연주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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