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2. aqua man(5) (14/152)



〈 14화 〉2. aqua man(5)

화연과 그런 얘기를 한 지  한 달.
한 달 동안 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했다.

먼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그 다음은 이사 준비를 시작한 것.

뭐,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인간관계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애초에 원래 나라는 인간 자체가 그다지 인간관계가 넓은 편은 아니었으니까.

“다음에 또 놀아요, 오빠!”
“그래.”

일단 지금도 주화린과는 꾸준히 만나고 있다.

물론 만나는 와중에도 결단코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애초에  이상으로 나아갈 생각도 없지만.

아무리 역전세계라지만 미자를 건드리자니 내 취향도 아니고, 그럴 깡도  되거든.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아, 미남 아저씨다!"
"얘도 참, 호호, 우리 애가 좀 극성이죠?"
"아, 아닙니다."

그 외에도 옆집 6살 딸이 있는 옆집 유부녀와의 관계가 한층 더 살가워지기도 했지만…….
이건 일단 넘어가고.

그보다 현재 내가 신경 쓰는 또  사람.
주화린과 주화연 다음으로 현재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명의 관계.

바로 전 직장동료 할 수 있는 인물인 최다슬이 있었으니.

우우웅.

진동과 함께 핸드폰 액정에 표시된 세 글자, 최다슬.

그런 그녀의 이름을 확인한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잠깐 놀란 목소리를 내던 것도 잠시.
곧바로 쾌활한 어조의 다슬이 말을 이어갔다.

“제 전화 받네요? 안 받을 줄."
"내가  네 전화를  받아?"
"최근에 피하는 것 같길래요."
"아니, 딱히 그런  아닌데."
“그래요? 그런 것 치곤 되게 오랜만에 얘기하는 거 같은데요. 최근엔 톡도 잘  보고.”

슬쩍 떠보는  느껴지는 다슬의 목소리.

긴장된 것을 숨긴 나는 태연한  대꾸했다.

“아, 미안. 톡은 그냥 내가 잘 안 봐서.”

정확히는 안 척 했다고 하는 게 맞다.
클릭만 안 했다 뿐이지, 무슨 내용이 왔는지는 종종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최다슬이라는 존재는 나로서는 조금 껄끄러운 감이 있다  수 있었다.

최다슬은 주 자매 마냥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니다.
세계가 바뀌기 전에도 옅게나마 나와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지않은가.

거기에 아싸인 나와는 성향이 정 반대인 인싸 of 인싸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접근이 조심스러워 진단 말이지.’

물론 그렇다고 일부러 피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알바 시간도 어긋나 원래 만나기도 쉽지 않았던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반쯤 손을 놓은 사이 화연과 잠자리를 가지고.
나도 모르게 진짜로 조금씩 잊어가던 찰나.

갑자기 이렇게 다슬 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거기다……. 오빠 알바 그만두셨다면서요?”

이번에도 떠보는 느낌으로 내게 묻는 다슬의 목소리.
묘하게 추궁하는 듯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어, 어어. 그렇게 됐네.”
“와, 그만두는데 얘기 한 번 없고.”
“어쩌다 보니…….”
“진짜 실망입니다, 실망.”

내 대답에 어느덧자연스럽게 대꾸하는 다슬.
마치 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 같은 말투다.

뭔가 휘말리는 느낌인데 이거.

“아니, 그렇다고 실망할 것까지야.”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고요.”
“무슨 이유?”
“지금 오빠 대신에 일하는 애가 여자란 말이에요.”
“그거랑 네가 실망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야 퇴근할 때마다 오빠 얼굴 보면서 퇴근하는 게 제 인생의 몇 안 되는 낙이었으니까요!”
“……그게 실망한 이유야?”
“당연하죠!”

마치 진심인 것 마냥 소리치듯 말하는 다슬.
허나 목소리에는 나조차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장난기가 가득 섞여 있었다.

“나 참.”

그런 다슬의 말투에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는 여전하네.”
“그보다 갑자기 왜 그만둔 거예요?”
“아, 뭐  다른 일도 좀 알아보려고. 편의점 알바만 하면 재미없잖아.”
“저 보기 싫어서 그런  아니고요?”
“그럴 리가 있나.”
“아니, 이거 솔직히 합리적 의심 가능한 각인데. 솔직히 오빠 술 마시자 마시자 말만 하고 한 번도 같이 마신 적 없잖아요. 맨날 튕기기나 하고.”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역시 저 때문에 알바 그만둔 거 맞네. 민초우유  게 그렇게 미웠어요?”
“민초우유가 좀 극혐이긴 해.”
“에휴, 이렇게 민초의 훌륭함을 모르는 사람이 또 있네. 불쌍해라.”

이놈의 민초단은 여기서도 극성인 건가.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참…….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전화기 너머로 다슬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민초 어쩌고는 진심이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나중에 시간 나면 꼭 같이 놀아요. 다음에 연락할  튕기기 없기. 오케이?”
“그래. 꼭 연락 줄게.”
“꼭이에요, 꼭!”

이런 식으로 결국 다슬과의 관계 전진은 다시  번 보류.

나는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참 예측이 안 된다니까.”

못 말리겠다는 듯 그리 말하면서도 입가로는 미소가 지어진다.
이게 바로 최다슬이라는 여자의 매력인 거겠지.

힘이 넘치는 다슬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여태껏 망설인 게 바보같이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등장인물이든 아니든, 어차피 지금의 내게는 이게 현실이다.
그리 생각하면 히로인인지 아닌지 따위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애초에 나도 최다슬이 진짜 싫어서 피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먼저 연락 준  고맙긴 하네.’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이 압도적인 외모 덕분이겠지만.

아무튼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느긋하게 다슬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르겠다.

“반면에 이 여자는…….”

그런 반면 내 생각 이상으로 관계가 바뀐 인물도 있다.

몇 번이고톡을 해도 확인조차 하지 한  없는 메세지 창.
심지어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에휴.”

기약 없는 기다림에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마냥 기다린다 해서 딱히 답이 나오지 않을  같은데.

잠시 핸드폰을 노려보던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쩔 없지.”

그렇다면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


결정을  나는 곧바로 그녀, 주화연이 일하고 있는 직장으로 향했다.

‘괜찮겠지?’

그렇다고 직장까지 가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싶으면서도, 머릿속 한켠에는 낙관적인 기대감이 남아 있었다.
결국 화연도 막상 나와의 관계를 단호하게 쳐내지는 못했지 않은가.

그러니 직접 찾아간다고 나무라지는 않을 거다.
아마도.

“여긴가.”

그렇게 나는현재 화연이 일하고 있을 학교 앞에 서 있었다.

이제 막 점심시간인 걸까.
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공을 차며 뛰어노는  보였다.

나는 그런 학교 안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야, 패스!”
“아, 병신아! 뭐해!”
“막아, 막아!”

그러고 보니 여기 여고였지.

역전 세계라 그런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애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노는 모습은 내게는 참으로 진귀한 광경이었다.
역시 단순히 정조관념만 바뀐 건 아니구나.

그렇게 내가 들어갈 생각도 못한  멍하니  있는 사이.

툭.

내 앞으로 철조망을 넘긴 축구공이 턱 굴러왔다.

“거기 공 좀 차 주세요!”

철조망너머에 있던 여학생 한 명이  보며 소리쳤다.

앞에 공 굴러오면 차주냐?

당연히  차주지.
왜 안  주냐고?

그야 내가 직접 갖다줄 거니까.

‘땀 흘리며 운동하는 여고생이라……. 귀하군.’

역시 이건 직관 안 할 수가 없거든.

애초에 들어갈 생각이기도 했고.

나는 축구공을 들고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공을 부탁한 여학생이 입구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헉…….”

가까이에서 날 보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여고생.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동공이 잔뜩 흔들리는 게 보인다.
그녀가 이마에 잔뜩 맺힌 땀을 헐레벌떡 닦았다.

“어, 그, 저기, 그, 공이, 넘어가서, 그, 들고 계신…….”

얘는 자기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 줄은 아는걸까.

다행히 지리멸렬해진 문장을 해석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딱히 애들 앞에서 긴장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뭐, 여기서 붙들고 있어 봤자 애먼 여자애를 괴롭히는 꼴이기도 하고.

허나 이 여학생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내게 그런 악취미는 없다.

사실 조금 놀려줄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 꼴을 보고 있자 그러기엔 너무 미안해서 말이지.

“자.”

그냥 빨리 보내주는  낫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들고 있던 공을 그녀에게 건넸다.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은 채 여고생이 축구공을 홱 낚아챘다.

와, 뭐 고맙단 말도 없이 그냥 가져가네.

“가, 가가가…….”

아, 아니구나.
그냥 긴장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한 거네.

“감사합니다앗!”

잔뜩 발개진 얼굴로 고개를팍 숙이며 인사를 하는 그녀.
그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쌩 사라졌다.

더불어 사라진 그녀를 제외한 주변의 학생들이 날 주목하기 시작했다.

“누구지?”
“몰라. 와, 근데 진짜 잘생겼다. 연예인인가?”
“연예인보다 잘생겼는데?”

어느새 나를 주변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한 주변.
심지어 드리블을 하던 여학생 한 명이  보고는 우뚝 서기까지 한다.

여고생 얼굴을 붉히고 주목을 받는 인생이라니.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오는구나.

“이거 참.”

확 달라진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색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

운동장에서의 해프닝도 잠시.

“와, 미쳤다! 얼굴 대박!”
“누구세요? 교생 오신 거예요?”

학교 안은 그래도 좀 얌전할 줄 알았더니 오히려  반대.
오히려 운동장에서보다 더 대놓고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경비에게 양해를 구하고 학교에 들어설 때만 해도 별 문제 없을 줄 알았더니.

심지어 마침 점심시간이었던 탓에 복도를 지나다니는 학생들도 한둘이 아니다.
특히 어떻게든 내게 말을 붙이려는 인싸 여고생 무리가 복도 한 칸을 지날 때마다 달라붙을 지경이었으니까.

이래가지고 교무실까지 수나 있으려나.

“그……. 교무실이 어디에 있니, 얘들아?”
“저기요, 저기.”
“저 따라오세요!”
“진짜 교생실습 오셨어요? 아, 제발 우리 반 배정됐으면!”
“그게 아니라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누구요? 제가 찾아드릴게요. 야! 교생쌤 사람 찾으러 오셨데!”
“아니, 그러니까 교생으로  게 아니고…….”

나 선생님 아니라니까. 그리 말할 틈조차 없었다.
그저 양해를 구하며 나를 둘러싸는 학생들을 피해 겨우겨우 움직일 뿐.

그렇게 여고생 무리에 휩싸인 채로 나는 겨우 교무실에 도착했다.

겨우 애들을 물린 뒤에야 나는 교무실 문을  수 있었다.

드르륵.

“실례합니다.”
“네, 무슨 일로 오셨……. 어?”

마침 입구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선생님이 한 명이 날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바로 내가  학교에서 아는 유일한 얼굴이었다.

이 무슨 나이스 타이밍.

“어어?”

 깜짝 등장에 놀라 눈만 껌뻑이며 나를 바라보는 화연.

그런 그녀의 앞에는 면담 중이었던 건지 여고생 두 명이 함께 앉아 있었다.

“와, 연쌤 남친? 대박!”
“미쳤다, 존잘!”

굳어 있는 화연을 대신해 여고생  명이 나를 보며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우리 연쌤이랑 무슨 관계에요? 진짜 남친이에요?”
“와, 연쌤 개부럽다!”
“너, 너희들!”

서둘러 정신을 차린 화연이 손을 거칠게 휘저었다.

“이걸로 면담 끝! 너희들은 이제 교실로 돌아가!”

선생님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목소리를 까는 화연.
허나 이미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걸 보아하니  소용은 없을 거 같다.

“헐, 대박. 연쌤 이렇게 당황한 거 처음 봄.”
“이거 딱 봐도 연쌤 짝사랑 각인 거 인정?”
“어, 인정.”
“선생님 그만 놀리고! 빨리 교실로  들어가?”
“에이 쌤~. 아직 쉬는 시간이거든요~.”
“1분 남았다!  때까지 여기 남아있는놈들은 벌점 1점이야!”
“와, 권력남용! 횡포다!”

음, 역시나.

장난기가 넘치는 여고생들은 나가면서도 화연을 놀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학생들과 사이가 꽤 좋아 보이는 걸로 봐서, 의외로 음란도와 교육자로서의 자세는 별개인 걸지도 모르겠다.

“빅뉴스! 빅뉴스! 연쌤 남친 존잘남!”
“하, 정말…….”

복도에서 소리치는 그녀들의 목소리에 한숨을 쉬며 얼굴을 가리는 화연.
그 모습에 괜시리 죄책감이 들었다.

‘역시 말도  하고온   그랬나.’

역시 아무리 그래도 직정에까지 찾아온  오버한 걸지도.
얘도 선생님이니 어느 정도의 위엄은 있어야 할 텐데.

일단은 사과부터 하자.

“미안. 갑자기 찾아와서.”

곤란해 보이는 화연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런 내 모습에 화연이 당황한  크게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민폐는 무슨!”
“그래? 그러면 다행이고.”
“이, 일단 앉아서 얘기할까?”

여전히 당황한 채로 화연이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손짓에 따라 맞은편에 앉자 화연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양손에 종이컵을 들고 오는 화연의 모습이 보였다.

“믹스커피야.”
“아, 땡큐.”
“교장 선생님한테 허락은 받고 온 거지?”
“응. 너 만난다고 하니까 흐뭇하게 웃으면서 들여보내주시던데.”

참고로 이미 교무실로 오기 전에 교장실에서 제대로 허락을 맡았다.
뭐, 실은 거기까지 가는 데에도 꽤나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지.

내 대답에 화연의 얼굴이 기괴하게 비틀렸다.

“……나중에 오해 풀어야겠네.”
“오해?”
“남친이라고 오해한  같아서 말이야.”

뭐, 사실 그것도 크게 상관은 없는데.

일단 정조역전세계니 원래 세계의 남자들처럼 여기 여자들도 잘생긴 연인에 대한 과시욕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렇게 치면 오히려 좋을 거 같기도 한데…….

“휴, 다른 선생님들한테 어떻게 설명한담.”

허나 내가 그리 생각하는 것과 달리 화연은 그다지 나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시키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다.

하긴, 그래도 직장에서 연인 얘기 나오는 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
직장 생활을 안 해봐서 잘은 모른다만.

나는 그런 화연을 향해 다시 한 사과했다.

“미안, 역시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거 같다.”
“괘, 괜찮아! 현수 네가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

미안함이 잔뜩 어린  표정에 화연이 한 번 더 손사래를 쳤다.

“…….”
“…….”

순식간에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커피만 홀짝인다.

음,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네.
물론 톡을 안 본 화연의 잘못도 있지만, 막상 여기까지 찾아온 나도 어른스럽다고 할  있는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더불어 주변에서 자꾸 선생님들이 힐끗거리는 게…….
괜히 생각 없이 말했다가 큰일날 느낌인데…….

“이,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 분위기를 읽었는데 화연이 분위기를 느끼지 못할 리가 없지.

보다 못해 일어나는 화연을 따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딩동댕동~.

교무실을 나서기 무섭게 수업을 알리는 친근한 느낌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보아하니 학교 종소리는 세계가 바뀌어도 여전한가 보네.

금세 조용해진 교실을 지나 나는 얌전히 화연의 뒤를 따랐다.

곧이어 도착한 곳은 학교 뒤편의 구석진 조그마한 정원.
곧이어 화연이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화연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갑자기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진짜 깜짝 놀랐어. 말도 없이 찾아와서,”
“미안. 최근에 연락을  받길래. 톡도 안 보고.”
“아, 그건……. 그랬지. 응. 좀 생각할 게 있어서…….”
“혹시 저번에 내가 말했던 거 때문에 그래?”
“그, 그야 뭐…….”
“솔직히 난 너랑 이런 식으로 헤어지는 건 싫거든.”

내 말에 화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어어어? 헤, 헤어져? 우리가?”
“아, 물론 섹파로서 말이야.”
“……아, 응.”

거기에서 화연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그렇겠지.”

조금 실망한 듯한 기색.
허나 나는 눈치채지 못한 척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학교까지 온 거야.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답장도  하고.”
“그건 미안…….”

내 말에 화연이 멋쩍은 듯 시선을 돌렸다.

“……실은 나도 그래.”

한참을 망설이던 화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마치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망설이듯, 화연의 눈빛은 슬쩍슬쩍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나도 만나고 싶었어. 그랬는데 뭐, 네가  말도 있고 해서 생각이 복잡하다고 해야 되나? 다시 보면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머리가 하얘져서…….”
“그래서 연락도 안 받은 거구나.”
“응. 사실 나도  달 동안 너희 집 찾아가고 싶은 거 엄청 참았던 거야. 생각 정리도 안  채 보면 괜히 실수라도 할까 싶어서. 뭣보다 혹시 네가 부담스러워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고…….”

역시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뭐, 그 정도는 나도 예상했던 바지만.

물론 나도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고자 그렇게 말했던 게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한 달이 넘게 연락 한  안 할 거라고는 예상을 했다.
하물며 음란도 70에 달하는 주화연이기에 더더욱.

아마 지금도 꽤나 참고있을 확률이 높다.

‘안 좋은데.’

그렇기에 나는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필요성을 느꼇다.

내가 피하고자 했던  과도한 집착이지, 이런 섹스리스 상태가 아니다.

심지어 나나 화연이나  짓은 좋아하고 있지 않은가.
서로 간에 뒹구는 걸 좋아하는데, 괜한 오해로 이렇게지내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말했다시피 미리 얘기만  주면 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화연을 대신해 나는 말문을 열었다.

“나도 딱히 네가 싫어서 그런 말 한 게 아니니까. 너랑 자는 건 나도 좋아하고.”
“……응.”

여전히 망설임이 남아있는 화연의 눈빛.
허나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안도감이 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정도면 괜찮겠지?

“알았어. 기억할게.”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화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걸로 해결된 걸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 그리고 할 말 하나 더 있는데.”
“뭔데?”
“나 이사할 거거든.”
“이, 이사?!”

말에 화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긴, 이 분위기에서 갑자기 이사라는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사실 이전에 톡으로 전하긴 했다만, 애초에 내 톡을 확인도 안 했으니까.

“응. 좀 멀리 떨어질 수도 있…….”
“어, 어디로?!”

내 말조차 끊으며 다급하게 묻는 화연.

그런 화연을 보며 나는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반응 보니까괜찮겠네.’

방금의 반응으로 나름 확신이 선다.
싫다던가 하는 이유로 나를 피했다던가 하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멀리 안 가.”

내심 안도하면서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냥 앞으로 좀  벌  있는 곳을 찾을까 해서. 교통이 좀 편한 지역으로 이사했을 뿐이야.”
“휴우, 그렇구나…….”

내 대답에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화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러고는 또 다시 말이 없어진다.

“…….”

나는 참을성을 가지고 그런 화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뭐, 나야 반응도 확인했고 할 말도 다 끝났으니.

이제는 내가 할 일이라곤 화연이  말을 받아주는 것 뿐이다.

“저……. 현수야.”

시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화연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이제 와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한데……. 앞으로도 계속 연락해도 될까?”
“그러려고 나도 이렇게 찾아온 거잖아.”
“그, 그치?”
“당연하지.”

재차 확인시켜주듯 말하자 환한 미소를 짓는 화연.
그런 화연을 마주보며나도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그녀와 내 관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테지.

너무 끈적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건조하지도 않은 적당한 관계.
이 관계는 웬만해서는 계속 유지하고 싶다.

나는 그런 화연과의 관계가 꽤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럼 난 가볼게.”

대충 이야기가정리됐다 여긴 내가 마무리하듯 말했다.

“시간 뺏어서 미안했어.”
“아냐아냐! 오히려 내가 고맙지. 이렇게 찾아와 줬는데.”
“그렇게 말해주면 다행이고. 그럼 갈게.”
“응!”

환한 미소로 내게 손을 흔드는 화연.

그런 화연의 배웅을 받으면서 나는 학교를 나섰다.

“그럼 가장 큰 일 하나는 끝냈고. 다음은…….”

홀로 남은 나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오늘 외출의 목적은 단순히 화연을 만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으니까.

굳이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고 오늘 이렇게 밖을 나온 이유.


“안녕하세요. 아, 네. 저번에 명함 주신 것 때문에 연락드렸는데요.”

그건 바로 내 새로운 직장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피팅모델 구하신다고 하셨죠?”

나는 손에 들린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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