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2. aqua man(4)
얼굴로 쏟아지는 햇살.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나는 힘겹게 눈을 떴다.
“끄응.”
눈을 뜬 내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잠에 빠진 화연의 모습.
작게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잠든 화연을 나는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잘 땐 이렇게나 얌전하면서.’
아기처럼 잠든 화연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젯밤의 정사를 떠올렸다.
천사처럼 자고 있는 화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젯밤에 그렇게 신음을 내지르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으응.”
햇살이 거슬렸던 것인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이는 화연.
완전히 나체로 있는 화연의 몸이 한층 더 내게 밀착했다.
지푸라기 한 올 없는 그녀 나신이 움직일수록 탱글탱글한 가슴이 나를 살살 간지럽혔다.
얘는 자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유혹하네.
‘어제 그렇게 물을 뺐는데…….’
막상 또 이러니까 서긴 서는구나.
“크흠…….”
홀로 민망한 기분이 작게 헛기침을 한다.
이건 못 참지.
결국 참지 못하고 나는 곤히 잠든 화연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으으음…….”
몰캉거리는 가슴을 주무를 때마다 화연이 몸을 뒤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화연의 가슴을 이리저리 주물렀다.
아침부터 이렇게 여자 가슴을 만질 수 있다니.
이게 인생이지.
“으음.”
이렇게까지 대놓고 주물거리고 있는데 잠에서 깨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스르르 눈을 뜬 화연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깼어?”
“으음, 당연히 깨지……. 그렇게 만지는데…….”
“감촉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정말 변태라니까…….”
화연이 몽롱한 표정으로 날 보며 작게 웃었다.
개구쟁이 아들이라도 보듯 그 미소는 한껏 자애로웠다.
그런 그녀의 모습 덕분에 내 아래쪽은 말 그대로 폭발 직전.
“풋.”
자신의 허벅지에서 꿈틀거리는 내 자식의 열기를 느낀 것일까.
나를 바라보는 화연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또 하고 싶어졌어?”
“그런 게 아니라……. 남자는 원래 아침에 서. 생리현상이라고.”
“그런 거 치곤 엄청 딱딱한데?”
화연이 소악마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주 놀릴 생각 만만하구만.
“그럼 안 빼줘도 별로 상관없겠네?”
“해주면 나야 나쁠 거 없지.”
“솔직하지 못하긴.”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리 말하려던 내 말문은 그대로 막혀 버렸다.
기습적으로 화연이 내 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으응…….”
갑작스레 들어오는 화린의 혀를 나는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으응, 츄읍…….”
건조했던입안이 서로의 타액으로 점차 젖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로 잠에 취해 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열락으로 젖어갔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화연의 입안에서는 기분 좋은 냄새가 느껴졌다.
그다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딱 적당한 느낌의 사람 냄새랄까.
“츄릅, 후우…….”
그다지 길지 않은 딥키스가 끝난 뒤.
“후후.”
입가를 닦은 화연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침에 이러는 것도 좋네.”
“그러게.”
“그러면 또 할래?”
나를 바라보는 화연의 표정은 이미 욕망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딥키스 한 번 한 걸로 또 시동이 걸린 모양이다.
“아, 잠깐만.”
나는 스윽 아래쪽으로 몸을 내리려는 화연의 행동을 제지했다.
“우리 그거 한 번도 못해봤잖아. 펠라치오.”
일단 어제 못한 것부터 좀 해 보자.
“아, 그러네.”
차선책을 제시하자 화연이 괜찮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연도 나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첫 경험인데 펠라도 한 번 안 해봤구나. 마침 나도 궁금했거든.”
“그래?”
“응. 물론 빨리는 것도 포함해서.”
“네 것도 빨아달라고?”
“당연하지. 나만 빨면 뭔가 좀 불공평하잖아. 너도 해 줘.”
이건 내 예상 밖인데.
어쩐다?
허나 내가 고민할 새도 없이 화연의 몸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잇.”
꿈틀거리며 내 몸 위로 올라탄 화연이 머리를 이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눈앞으로 어젯밤의 정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화연의 엉덩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얘는 가슴도 큰데 엉덩이도 꽤 빵빵하네.
‘으, 내 정액 다 묻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화연의 엉덩이는 분명 매력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건들 수가 없었다.
냄새도 냄새지만…….
심리적으로 거부감 장난 아닌데.
“잠깐, 화여……. 윽!”
내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이미 화연은 움직이고 있었다.
탁탁탁.
텐트를 친 내 아래쪽에서 화연의 한동안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아침발기로 빳빳해진 내 자식은 그녀의 손길만으로도 엄청난 자극감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마냥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는 화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입 안으로 들어가는 감촉이 느껴진다.
“하읍.”
그 순간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
“으악!”
나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란 화연이 물고 있던 자지에서 입을 떼고는 이불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뭐, 뭐야? 왜 그래?”
“이, 이빨! 이빨 닿잖아!”
“아…….”
내 말에 화연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 괜찮아? 많이 아팠어?”
“아니, 아프다기보다는……. 좀 섬뜩했어.”
“다음에 연습 좀 하고 해야겠다.”
“그, 그러자.”
와, 진짜 섬뜩했네.
순식간에 내 발기가 풀려버린 탓일까.
꿈틀거리며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 올라오는 화연의 모습이 보인다.
동시에 정액 투성이었던 화연의 엉덩이도 다시 아래로 향했다.
‘살았다.’
제자리로 원상복귀한 화연을 보며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그걸 빨아야 되나 싶어서 영 거시기했는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로군.
“미안…….”
내 품에 다시 쏙 안긴 화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처음이라서 실수했네…….”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응…….”
“…….”
순식간에 어색해진 분위기 속.
묘한 아쉬움을 느끼며 나는 속으로 작게 입맛을 다셨다.
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
“일단 씻고 올게.”
일부러 쾌할한 어조로 말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화연이 껌딱지 마냥 내 몸에 착 달라붙었다.
“같이 씻자, 응?”
“같이?”
“괜찮지?”
망설이는 나를 향해 몸을 착 밀착시켜 작게 비비는 화연.
풍만한 가슴살이 내 가슴팍을 부드럽게 쓸어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랫도리가 다시 불끈 서는 게 느껴진다.
아아, 고작 같이 씻자는 저 말 한 번에 다시 한 번 일어나다니.
남자란 이다지도 슬픈 생물이었던가.
“으음…….”
육탄공세를 펼치는 화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며 나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시작했다.
수능 때 객관식 문제 찍을 때도 이 정도로 고민은 안 했던 거 같은데.
“……아냐. 따로 씻자.”
안달나려는 심정을 억지로 숨기며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거부의사를 내비쳤다.
물론 나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함께 들어가는 화장실에서 한 판뜨는 건 물론이고, 모텔 연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일정은 그걸로 땡.
여기서 유혹에 지는 순간 하루를 완전히 종 치게 되는 거다.
‘정신 차리자.’
자꾸 흔들리는 욕망에 나는 이성으로 저항했다.
‘이런 세계랍시고 너무 방탕하게 살다가는 인생 망하지.’
아무리 정조가 뒤바뀐 세계라고는 하지만, 여기도 원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규칙이 존재한다.
하물며 이 세계는 단순히 소설 속인 세상이 아닌, 원래 내가 살아온 세계와도 뒤섞인 곳이 아닌가.
즐기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진짜 기둥서방 마냥 섹스만 하면서 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성욕에못 이겨 소설 속 주인공 마냥 365일 발정난 채로 지내는 건 너무 꼴불견이니까.
“나 곧 알바 가야 돼.”
생각을 정리한 나는 억지로 덤덤한 어조로 화연에게 말했다.
물론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계속 뒹굴거리면 늦는다고. 너도 일하러 가야지.”
“에이…….”
아깝다는 듯 입맛을 쩝쩝다시는 화연이었지만 어림도 없지.
원래 이런 건 첫 단추가 중요한 법.
괜히 못 이겨서 막 달려들었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다.
“빨리 씻고 나올게.”
애절하게 바라보는 화연의 눈빛에도 나는 냉정하게 뒤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는 꼭 펠라를 할 수 있었으면좋겠군.
그리고 파이즈리도.
그렇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
빠르게 샤워를 마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함께 밖으로 나왔다.
“으, 출근하기 싫어.”
툴툴거리면서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화연.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 화연의 복장은 어제 입고 온 간호사복은 아니었다.
현재 화연이 입고 있는 옷은 산뜻한 코트에 적당한 길이의 검정색 블라우스.
그야말로 평범한 커리어우먼 같은 복장이다.
이전 화린과 만나면서 보였던 후줄근한 차림이 아니라.
‘얘가 학교 선생님이라니.’
며칠 전 쪽지로 본 설정과 이전에 본 소설 내용을 떠올리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음란한 애가 선생님이라.
학생들이랑 음담패설이라도 하는 건 아닌가 몰라.
“끄응……!”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스트레칭을 하는 화연.
그럼에도 쉽사리 피로가 가시지 않는지 표정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으으, 몸이 무거워……. 허리도 힘이 없고…….”
“나도.”
하긴 어제 그렇게 해댔는데 정상이면 그게 더 이상하지.
사실 나도 화연과 비슷한 상태이긴 하다.
크게 내색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아, 진짜 출근하기 싫다아…….”
평소와 다른 몸 상태가 마음에 안 드는지 화연이 계속 툴툴거리는 소리를 내는 화연.
나는 그런 화연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일은 해야지.”
“아쉬워서 그러지.”
“아쉽다니 뭐가?”
“더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쉽다고.”
“……방금까지 몸 무겁다고 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리 말하며 씨익 웃는 화연.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더 하자고 했으면 할 기세다.
진짜 기가 막히는 성욕이네.
‘음란도는 아직 그대로인데.’
혹시나 해서 슬쩍 살펴본 화연의 음란도 수치는 여전히 70.
물론 이미 70이라는 수치만 해도 성인 여성 세 명을 합친 수치.
심지어 어제그렇게 해댔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줄지 않은 거니 말 다 했다.
도대체 저 수치에서 더 오른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거의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사회성마저 소멸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데 우리 궁합 꽤 괜찮은 거 같지 않아?”
내가 두려운 상상에 몸을 떠는 사이 화연이 입을 열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 안 해?”
“너 처음이라면서 그걸 어떻게 아냐? 다른 사람이랑 해본 적도 없는데.”
“하지만 현수 넌 처음 아니잖아. 네가 잘 알 거 같은데.”
“아니, 야……. 몇 번이나 말하는데 나도 네가 처음이었다고.”
“아직도 그 얘기야?”
“진짜라니까?”
“그럼 그런 걸로 치지 뭐.”
와…….
얘 진짜 안 믿어주네…….
아무리 내가 첫 만남에 고기집에서 씹물을 줄줄 흘리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아니.
그럼 역시 그렇게밖에 안 보이려나.
내가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그냥 치녀로밖에 안 보일 거 같긴 하다.
여기 세계 기준이면 뭐 치남이라고 하려나?
아님 제비?
“그리고 나는 속궁합만 말한 거 아니거든.”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화연이 말을 이었다.
“뭐라고 해야 되지,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
“느낌?”
“응. 단순히 섹스 말고도 너랑 잘 맞는 거 같다는 거야, 성격이라든지 취향이라든지. 서로 크게 부딪치는 것도 없고.”
“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계속해서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설파를 하고 있는 화연.
그런 화연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나로서는 다소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몇 번 몸 섞은 걸로 사귀니 마느니 하는 얘기까지 나오는 건 아니겠지.
그럼 꽤 귀찮아질 거 같은데.
“그래서 말인데 현수야.”
거기까지 말한 화연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누가 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표정으로.
“우리 그냥 섹파 말고 좀 더 진지하게 관계를 맺어보는 건 어때?”
설마 했는데 진짜 하네.
“응?”
기대감이 잔뜩 섞인 화연의 모습.
그런 화연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일부러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뭐, 그러면 사귀자고?”
“아하하……. 말하자면 그렇게 되는 건가.”
“화연아.”
차라리 그녀의 입에서 마침 이 이야기가 나와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을 하려고 불렀던 거였지.
나는 화연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일단 말해두겠는데.”
처음으로 내가 진지한 모습을 보여준 탓일까.
그런 내 모습에 화연도 바짝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동안 난 누구 사귈 생각 없어.”
“어, 어째서?!”
내 대답에 말도 안 된다는 듯펄쩍 뛰는 화연.
그런 화연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나는 냉정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괜히 귀찮은 건 사양이니까.
“나 누가 나한테 달라붙는 거 별로 안 좋아해.”
“하지만…….”
“그러니까 한동안은 계속 이대로 지내자. 서로 적당한 섹스 파트너 정도. 그 이상은 나도 싫거든.”
“그건…….”
“뭐, 네가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는 건 뭔데……?”
“당연히 이걸로 딱끝내자는 거야.”
조금, 아니 상당히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 말.
하지만 나는 일부러 그리 말했다.
“…….”
내 말에 화연이 풀이 죽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거 같아도 아마 꽤 고민하고 꺼낸 얘기겠지.
그렇기에 지금의 내 직설적인 거절에 꽤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일이다.
원래 세계에서 정조역전세계로 온 만큼,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이 있었다.
단 한 사람에게 붙잡혀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알았어. 그 대신에…….”
“대신에는 뭐가 대신에야.”
뭐라 말을 꺼내려는화연의 말을 내가 싹둑 잘라냈다.
“뭐 조건 붙이려고 하지 마. 우리는 그냥 이렇게 서로 즐기는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하,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싫으면 관둬도 돼. 나야 별 상관없으니까.”
화연이 내 말에 충격받은 듯 숨을 들이켰다.
입을 작게 벌린 채 멍하니 날 바라보던 화연의 고개가 점차 푹 숙여졌다.
“알았어…….”
내 말에 어지간히도 실망한 듯 눈을 내리깔며 중얼거리는 화연.
뭐, 좀 안타까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나도 즐기고 싶단 말이지.’
기왕 정조역전세계에 왔는데 여기 세계의 남자들 마냥 내숭 떨거나 정조를 지키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도 사람인데.
그러니 아예처음부터 거짓말로 붙어 지낼 바에는, 이렇게 처음부터 선을 긋는 게 서로 속 편하다.
조금 양심이 없고 말지, 마냥 개새끼로 남고 싶진 않으니까.
‘……조금이 아닌가?’
뭐, 아무튼.
저 말을 꺼내기까지 고민한 화연도 화연이지만, 나도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낸 결과가 이것이다.
친구 이상 연인 미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타협이다.
“그러면 나중에 또 보자.”
축 늘어진 화연을 향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일 열심히 하고.”
“응…….”
내 말에 축 늘어진 채 떠나가는 화연.
그런 화연을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좀 미안하긴 하네…….’
뭐, 사실 따지고 보면 나도 첫 관계를 맺은상대방이니까.
내가 먼저 섹파니 뭐니 하긴 했다만 정이 가는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화연 한 명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됐어.’
떠나가는 화연을 보며 나는 애써 납득했다.
‘막상 그만 보잔 얘긴 쟤도 안 했고.’
그렇게 실망하면서도 결국 섹파를 그만둔다는 말에는 수긍했다.
즉, 아무튼 나와 섹스를 그만두는 건 싫다는 얘기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내게 미움 받는 게 싫었던 걸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지금의 나는 화연 한 명만을 바라볼 생각은 없다.
화연에게는 좀 불쌍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거 참.”
이제 고작 10일 밖에 안 됐건만.
환경이 바뀌니까 나도 나름 인간이 덜 됐구나 싶은 걸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러다가 진짜 카사노바 되는 건 아닌가 몰라.
“온지 얼마 됐다고.”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린 것도 잠시.
화연이 떠나간 방향과 반대로 나도 몸을 돌렸다.
일단은 일이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