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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1.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5) (6/152)



〈 6화 〉1.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5)

화장실에서 먼저 화연이 나간 뒤.
적당히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도 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여자화장실에서 태연하게 나올 수는 없었는지라 적당히 눈치를 보면서.

‘이러고 있으니 무슨 첩보 영화라도 찍는 거 같네.’

실상은 고작 섹스 한  하려는 것뿐인데 말이지.

화린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화연이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신호를 주듯 슬쩍 눈짓하는 게 보였다.
자연스레 나는 화연과 화장실에서 나눈 정사를 잊은  마냥 아무렇지 않게 잡담을 나누었다.

“진짜요?! 총기함 키를 들고 휴가를? 와 대박!”

어떻게 잡담을 하다 보니 튀어나온 화제 중 하나가 군대에서의 일화였다.

“푸하하하! 미쳤다 진짜!”

여자들과의모임에서는 일반적으로는 금기에 가깝게 여겨지는 군대 이야기.
허나 그것이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잘 먹히고 있었다.
너무 크게 웃는 화린의 모습에 처음에는 그냥 재밌는 척 하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절단기로 끊고 근무 섰지 뭐. 걔도 휴가 도중에 헐레벌떡 와서는 결국 영창 가고.”
“미쳤다…….”

그런데 아직 어린 화린이야 그렇다 쳐도……. 화연이 쟤도 엄청 기대하면서 듣는 거 같은데.
심지어 방금 화장실에서  짓을 하던 것도 까먹은 기색이다.

이건 즐거운 척이 아니라 진짜 재밌어 하는 거 아닌가?

의아해하는 나에게 화연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그 때였다.

“나도 군대 갔다 오긴 했지만 그 정도로 고문관인 이야기는 처음 듣네.”
“엥?”

이건 또 무슨 말도  되는 소리야.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에 오히려 얘기를 꺼낸 화연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어? 뭐, 내가 잘못 말했나……요?
”아니, 군대를 다녀왔다고? 무슨 소리야?”
“아, 제가, 아니 내가 얘기 안 했나?  1사단 출신이야.”

이게 무슨…….

충격 받은  심정을 모른 채 화연이 자신의 군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GOP근무라 고생 좀 했지. 근무 설  팅커벨이라도 나오면…….으, 진짜 생각도 하기 싫다.”
“나는 제발 언니처럼 최전방만 안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팅커벨이 뭐야?”
“아, 근무지에서 엄청나게 큰 벌레가 있는데…….”

어느새 바톤을 넘겨받아 군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화연과 그걸 또 흥미롭게 듣고 있는 화린.
그리고 그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혼란스러웠다.

설마 이 세계는 여자도 군대를 가는 건가?

‘아니…….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내 목적은 화연과의 하룻밤이다.
순간 충격 받아서 잠깐 잊었는데 이렇게 군대 얘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었다.

‘슬쩍 신호라도 줄까.’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화연] 언제 보낼 거야?

이전에 등록해둔 카톡으로 화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까똑!

소리와 함께 화연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카톡을 확인한 화연이 나를 보며 싱긋 웃고는 타이핑을 치기 시작했다.

“흐흐흐.”
“누군데 그렇게 징그럽게 웃어?”
“넌 몰라도 돼.”
“별로 알고 싶진 않거든.”

동생과 투닥거리면서도 화연의 입가에는 웃음이 지워지지 않았다.
뭐랄까, 누가 봐도 음흉해 보이는 미소였다.

곧이어 내 주머니  핸드폰이 진동하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화연] 이미 수 다 짜 뒀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알아서 가게 될 테니까.
[나] 뭔 소리야? 그리고너 갑자기 왜 다시 존댓말 써?
[화연] 뭔가 어려워서……. 나도 모르게 자꾸 존댓말이 나오네ㅋㅋ
[나] 그냥 편하게 불러. 나도 그게 좋으니까.

“흐흐.”

계속해서 히죽거리는 화연을 보며 화린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아무것도.”
“흐음…….”

조용히 톡을 하는 나와 히죽거리는 화연을 보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화연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곧이어 테이블 위에 올려둔 화린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

상대방을 확인한 화린의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엄마가  전화했지?”

설마 준비해뒀다는 게 엄마한테 이른다는 거였냐.

나는 어이없다는  화연을 바라보았다.
반면 화연은 계획대로군, 라는 표정을 지으며 씩 웃고 있었다.

“뭐해? 안 받고.”
“설마 언니…….”
“뭐가?”

의심스러운 시선의 동생을 향해 어깨를 으쓱하며 시치미를 떼는 화연.
정말 언니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치졸함이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화린이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엄마? 무슨 일이야? 아니, 그게……. 어? 지금?”

화연이 뭐라 얘기했는지는 몰라도 전화기 너머 화린의어머니는 엄청나게 화가  모양이었다.
스피커폰도 아닌데 고함을 치는 목소리가 나한테도 얼핏 들릴 정도였으니까.

“하, 하지만! 나 지금 언니랑 있는데 괜찮잖아! 집 앞이기도 하고……!”

나를 바라보며 통화를 하는 화린의 표정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건 내가 원한 바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일 뿐이었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무나.

“어, 엄마! 잠깐만!”

설득 실패로군.
표정이나 저 목소리만 들어도 대충 짐작이 간다.

시무룩하게 전화를 내려놓는 화린을 보며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음, 이러니까 나도 화연이 쟤랑 다를 게 없긴 하네.

“……언니.”

물론 그걸로 쉽게 포기할 화린이 아니었다.
화린이 애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언니를 올려다보았다.

“왜?”
“나 언니 집에서 자면 안 돼? 어차피 여기서 집도 별로  멀고…….”

그야말로  몸의 간절함을 얼굴로 끌어올린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화린.
심지어 욕설을 주고받던 언니에게 그러고 있다.

아마 화린의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거겠지.

“괜찮잖아, 그치?”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나라도 마음이 흔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언니가 누구인가.
섹스에 미친 여자, 이 세상에서도 탑급의 변태녀,

“싫은데?”

바로 욕망의 화신 주화연이다.

“내가 왜?”

봐라,  냉담한 모습을.
자매애고 뭐고 섹스 앞에서는 소용없다는 태도가 아닌가.

“내가 미쳤다고 널?”

화연이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이미 나와의 하룻밤을 결의한 그녀에게 망설임은 없었다.

“재워줄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깨셔.”
“크윽……!”
“어차피 내일 학교 가려면 책가방도 챙기고 교복도 입어야 되잖아.”

거기까지 말한 화연의 목소리가 한꺼풀 부드러워졌다.

나와의 하룻밤을 위해 화연은 온갖 회유책으로 자신의 동생을 돌려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나와 자신의 하룻밤을 위해서.

채찍 다음에는 당근이다 이건가.

‘내 앞에선 소심 그 자체더니 지 동생한테는 여포네.’

태연하기 그지없는 화연을 보며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섹스 하나로 저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걸까.
 정도면 무서울 지경인데…….

“너 지금 안 들어가면 진짜 내일 학교 못 간다? 개근상 받고 싶다면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 나중에 또 보면 되는 걸 가지고.”
“언니가……. 언니가 말했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이……. 배신자!”

부들부들 떨던 화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 오빠아아…….”
“미, 미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화린.
 처절함마저 느껴지는 표정에 나도 모르게 순간 움찔 몸을 떨었다.

미안하다 화린아.

“어머니도 걱정하시는데 이만 가보는 게 어때……?”
“으, 오빠마저…….”
“미안.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결국 내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화린이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씨!”

마침내 포기했는지 화린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한 표정으로 화린이 자신의 언니를 가리켰다.

“언니  이를 거야! 남자한테 홀려서 그러고 있다고!”
“뭐, 뭐?!”

물론 그 와중에 언니에게 한 번 쏘아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참으로 훌륭한 자매애로군.

“너 말하면 죽어! 야!”

당황한 화연이 한껏 성을 냈지만 화린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걸로 응대했다.
그러고는 홱 몸을 돌리고는 출구로 터벅터벅 향한다.

나와 화연은 뒤도 안 보고 멀어져가는 화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도 방금 전까지는 내가 있다고 예의바른 척이라도 했었는데, 방금 전 일로 어지간히도 심기가 뒤틀린 모양이다.

“끈질긴 녀석 같으니라고…….”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에야 화연이 긴장이 풀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화연이 내개 몸을 기울였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화연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진심으로 그랬던 거야?”
“당연히 진심이지. 너야말로 화장실에서 그렇게 질질 흘려댔으면서.”
“무, 무슨! 남자가 그렇게 말투를 천박하게……!”
“그래서?야한 남자는 싫어?”
“완전 좋지!”

즉답. 심지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
너무 빠른 대답에 나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어이없이 바라보는 내 모습에 화연이 당황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그야 좋긴 한데! 그래도!”

너무 고민도 없이 대답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내 시선에 한껏 풀이 죽은 화연이 힐끗힐끗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뭔가 사회 통념이라는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고깃집 화장실에서 첫 경험은 좀…….”
“됐으니까.”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의 화연을 보며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은 거 맞지?”
“어, 어어. 그건 그런데.”
“그럼 일어나자.”

 정도 얘기했으면 화린도 슬슬 집으로 돌아갔겠지.
기색을 보아하니 거절할 거 같지도 않고.

그리고…….

솔직히 나도 한계란 말이지.

“이모, 여기 계산요.”

나는 곧바로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타이밍을 놓친 화연이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내가 계산하면 되는데.”
“됐어. 나중에 또 사주면 되지.”
“어? 나중에……?”
“그럼 오늘 보고 말려고 그랬어?”

 말에 화연의 입꼬리가 살살 흔들렸다.
미소가 새어나오려는 걸 참는 모양새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말없이 길을 걸었다.

나는 내 뒤를 따라오는 화연을 힐끔 바라보았다.

‘얘는 어디 가냐고 물어보지도 않네.’

벌써 10분  길을 걷고 있는데 입만 달싹일 뿐, 나와 시선을 마주치면 홱홱 고개를 돌려버리기 일쑤다.
이래가지고는 분위기도 제대로 못 잡겠는데.
나도 나름 처음이라 떨리는 거 억지로 숨기고 있단 말이다.

분위기도 풀어볼  나는 가벼운 분위기로 입을 열었다.

“너 근데 진짜 엄청 밝힌다.”
“뭐, 뭐?!”

내 말에 화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마치 믿기지 않는다는 듯.

“뭐, 뭔 소리야?! 애초에 네가 먼저……!”
“아니, 나도 나지만 그런다고 받아주는 너도 그렇긴 하잖아. 살다 살다 너 같은 변태는 처음 본다.”
“여, 여자는 원래 그런 거거든!”
“너 설마 팬티  젖은 건 아니지?”
“무, 무슨……!  진짜, 무슨 남자가 그런 야한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야한 남자가 좋다며?”
“아, 아니, 그, 그건 그렇지만…….”

화를 냈다가 부끄러워 하다가, 참 종잡을 수가 없군.

한참 변명을 하려던 화연이 흠칫 놀라 발을 멈췄다.
그제서야 뭔가를 깨달은 듯이.

“그, 그보다 지금 어디 가는 건데?”
“빨리도 묻는다.”

 아직도 제정신 아니네.

나는 어리둥절한 화연을 보며 주변을 가리켰다.

“봐봐. 여기가 어딘지.”
“응……?”

그제서야 나만을 바라보고 있던 화연의 고개가 주변으로 돌아갔다.

거리에서 토를 하는 남자와 음흉한 눈빛으로 남자를 도와주는 여자들.
퇴폐적인 기운을 풍기는 각종 모텔 간판의 네온사인.
저 멀리서 들리는 남녀의 웃음소리와 각종 고성방가.

우리는 그런 어느새 골목 거리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물론 내가 유도했기에 온 거지만.

“너, 너너너…….”

그제서야 상황을 깨달은 화연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마 온갖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있겠지.

"지지지, 지금! 뭐, 뭐뭐뭐 뭘 하려는 건지 아아알고……."
“제발  진정하고 제대로 말해줄래?”

골목길 한복판이라는 것도 잊은 걸까.

“너!”

나를 바라보며 화연이  소리쳤다.

“지, 진짜로 할 거야?!”

뭘 한다는 건지는 이미 말  해도 알  있겠지.

“오늘밤에! 나랑?!”
”어.“

놀라움. 흥분. 기대. 불안.
그 모든 것이 섞인 화연의 표정.

물론 그 중에서 기대감이 가장 크다는 것은 나라 해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화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할 건데.“

이래서야 처음에 긴장하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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