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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1.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2) (3/152)



〈 3화 〉1.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2)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정조가 뒤바뀐 소설의 세계관 속.
뭐, 정확히 말하면 남녀의 정조관념 외에도 여러 가지 부분이 바뀌긴 했지만.

아무튼.

지금 나는 이곳이 그 소설  세계관이란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와중이었다.

“와, 오빠 진짜 잘생기셨다. 여자친구 있어요? 없으면 전화번호 좀.”
“저기, 지나가다 너무  스타일이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 평소엔 진짜 안 이러거든요…….”
“자네 혹시 연예인 해볼 생각 없나?”

고작 15분.
편의점까지 오면서 고작 15분 동안 내가 제안 받은 것들만 나열해도 저 정도다.
단순한 헌팅만 두 번에 심지어 연예인 제안까지.
뭐, 연예인 어쩌고 하는 사람한테는 명함이야 받긴 했다만.

‘딱히 잘생겨져도 연예인 할 생각은 안 든단 말이지.’

딱히 관심 받으면서 사는 건 내 성격에 안 맞다.
하물며 명함에 적힌 기획사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기획사인 거 같고.

뭐, 대형 기획사라도 부담돼서 거절할 테지만.

‘이 정도로 바뀌면 뭔가무서울 지경인데.’

헌팅에 연예인 제안까지 받다니, 나나 세상이나  바뀌었다는 게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진이 빠지는 기분이다.
정작 아직 아르바이트는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지.

“후우…….”

교대를 마친  카운터로 돌아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다.”
“무슨 일을 했다고 힘들대.”

내 중얼거림에 맞춰 어이없다는 듯 되묻는 상대방.
그런 상대방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일 때문이 아니라……. 그럴 일이 있어서요. 그보다 퇴근  해요?”
“딱히 집에 가도  일 없걸랑요.”

방금  새벽 알바도 끝냈을 터인데 목소리가 참 기운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상대방이 씨익 웃었다.

“뭐 고민 있어요? 있으면 풀어 봐요. 마침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참고로 지금 나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막 알바를 마친 이전 알바생.
심지어 방금  교대를 마쳤는데도 퇴근도  하고 카운터 앞에 죽치고 나와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거다.

당연히 성별은 여자.

“……안 졸려요?”

이제는 카운터에 아예 턱까지 기대고 있는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들이대면 아무리 둔한 나도 그녀의 속셈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나랑 친해지고 싶은 건가.’

확실히 내가 잘생겨지긴 잘생겨진 모양이다.
평소라면 별 대화도 안 했을 텐데.

‘속물인 건 알지만……. 그래도 좋긴 좋네.’

이유야 어찌됐건 좋다.
여자들이 먼저 접근한다는데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뭐, 이 세계 남자들은 나처럼 생각할지 어떨지 모르겠다만.

물론 눈앞의 여자처럼 예쁘면  좋고.

‘그래도  부담스럽긴 하네.’

다만 좋은 건 좋은 거고, 불편한 것도 전혀 없진 않다.
이제 막 이 세계에 적응을 시작한 나로서는  살가운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애초부터 인싸였다면 몰라, 지금까지의 나는 여자랑 별 접점도 없는 인생을 살아왔지 않았는가.

하물며 원래 세계에서 그녀와의 관계는 말 그대로 서로 인사 정도만 하는 사이에 불과했다.

그런 고로 나는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의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그저 여대생이라는 추측만  뿐, 남은 재고 인수인계와 인사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사적인 대화 한  해본 적조차 없었다.

그나마 몇  섞었을 때는 원래 밝은 성격인 걸 아니 나도 상대하고 있는 거지.
원래부터  무시하던 사람이 막 바뀐 거였다면 나도 역겨워서 상대 안 했을 거다.

‘일단 내 외모가 바뀐 건 원래 그런 걸로 인식되는 모양이네.’

일단 알바생과의 대화로 그걸 확인한 걸로 충분히 만족한다.
뭐, 성격이야 원래 밝은 편이었던 걸 아니 별 거부감은 없기도 하고.

다만…….
막상 태도 변화가  느껴지니 깨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왜요? 혹시 이러고 있으니까 불편해서 그래요?”
“네. 좀 부담되네요.”
“아! 저 지금 좀 상처 받았어요. 잘생겼다고 그렇게 막 말하기 있기에요?”

내 말에 눈을 과장되게  찌푸리는 그녀.
어째 이 외모 덕에 무슨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거 같다.

‘피곤하네…….’

허나 대화가 이어질수록 나는 묘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 편의점에 오면서 대시한 여자만도 주화린을 포함해 총 세 명.
더불어 출근하기 무섭게 알바생이 퇴근도 안 하고 내 앞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으니 조금 피곤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평소 홀로 지내는 걸 선호하는 내게는 이미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한계치에 달할 정도였다.

오늘 하루만 해도  정도인데, 아마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지겠지.

‘하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이래서 인싸도 아무나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건가. 배부른 고민이 따로 없네……. 이럴 거면 그냥 전처럼 계산만 하는 인간 바코드기였던 시절이  나은 걸지도 모르겠어. 원래 세계의 미녀들도 이런 고민을 했던 거겠지?’

원래 세계에서는 마냥 배부른 고민으로 점철된 삶이라 생각했거늘.
막상 내가 겪으니 앞으로 겪을 고생길이 눈에 훤하다.

‘아냐, 굳이 이렇게 생각해서 뭐해!’

앞으로의 고민만 생각하던 내가 고개를 휘휘 털어냈다.

걱정부터 앞서는 게 내 나쁜 버릇 중 하나란 말이지.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까.

갑자기 고개를 휙휙 흔드는 나를 맞은편의 알바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에요, 갑자기? 왜 머리를 흔들고.”
“아니, 생각할  있어서……. 그보다 자꾸 놀리지 좀 마요. 진짜 부담되니까.”
“흐응.”

복잡한  기분을 모른 채 그녀는 차가운 내 말투에도 불구하고 능글맞게 웃었다.

“너무 싫어하는 거 아녜요?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친목도모나 하자는 건데.”
“오버는 그 쪽이 하는 거겠죠. 평소를 떠올려 봐요.”
“전 평소에도 이랬는데요?”

오히려  말에 그녀가 희한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좀 이상하시네.”
“뭐가 이상한데요?  원래 이랬는데.”
“뭐, 성격이야 전에도 좀 소심하긴 했는데……. 오늘은 묘하게 차갑네요.”

갸웃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외모 변화에 대한 인식은 변한 그대로 덧씌워진 모양이다.

“뭐, 아무튼 원체 대화한 적이 없잖아요, 우리. 그러니까 이렇게  트자는 거죠.”

그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지금까지 그녀와의 관계를 떠올렸다.

일단 내성적인 나와 활달한 성격의 차이는 둘째 치고, 교대할 때나 보던 사람인지라 내가 눈앞의 그녀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
 섞은 것도 그나마 교대를 하면서 서로 짧게 인사하는 것 뿐.
사적인 대화야 뭐 말할 것도 없겠지.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공적인 관계.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 나와의 관계였다.

‘세계관이 바뀌었으니  주변도 그에 맞춰 변한 걸까.’

앞서 말했듯 원래 세계에서 그녀와 나의 관계는 일자리에서 인사 정도만 하는 관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허나 그녀와의 대화를 곱씹고 있자니 묘하게 바뀐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이것도 세계관이 바뀐 것에 대한 반응인 걸까?

‘원래 세계가 아닌 이 세계의 내 반응이 적용된 버전……. 이라던가.’

뭐, 그렇다고 해도 크게 바뀐 거 같진 않다.
애초에 저쪽도 나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는 모양이고.

말이 없는  향해 다시 한 번 그녀가 재잘재잘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내가 뭐 갑자기 이랬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이러실까. 아, 혹시 당 떨어져서 그래요? 저번에 보니까 저혈당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음료수라도 하나  줘요?”
“저혈당이라고 내가 말했었나요?”
“말하긴 했는데 말  해도 알 거 같더라고요. 볼 때마다 맹한 게.”
“…….”

거 참 말 거시기하게 하시네.
예쁘니까 봐 준다.

그렇게 내가 잠자코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고자 이런 저런 말을 꺼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대방이 알아서 대화를 이어간다니, 확실히 이런  외모 버프의 영향 덕분인가 싶다.

뭐, 이런 대화로도 내 주변의 변화를 잡아낼 수 있다면…….
이런 잡담도 딱히 나쁠 건 없겠지.

“그래서 음료수, 마실 거예요 말 거예요?”
“나 참…….”

날 보며 방긋방긋 웃으며 말하는 그녀.
 모습에 참지 못하고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사주신다면야 감사히 받죠.”
“……헐.”
“왜요?”
“아주 살인미소네, 살인미소.”
“네?”
“평소에도  자주 웃고 그래요.  웃던 사람이 웃으니까 깜짝 놀랐네. 이제 철벽남 컨셉은 포기한 거?”
“내가 언제 그랬다고…….”

어떻게 저런 소릴  하나 깜짝 안 하고 하지?
내가 얼굴이  화끈거리네.

“부끄러워하기는.”

피식 웃던 그녀가 그제야 카운터에서 고개를 뗐다.
음료가 있는 쪽으로 향한 그녀가 음료수를 들고는 말했다.

“이거 어때요?”
“아, 뭔 민촙니까. 그거 비싸기도 엄청 비싸던데. 그냥 싼 걸로 줘요.”
“기왕 사주는 거 맛있는 거 먹어요.”
“민초가 맛있다고요?”
“아, 그냥 대충 먹어요.”
“아니…….”

황당해 하는 내 반응조차 무시한 채 그녀가 바코드를 들고는 알아서 삑삑 찍었다.

뭐, 데X와보다는 낫긴 한데…….
그래도민초는 좀…….

“그런데  쪽 이름은 뭐예요?”

내 말에 음료수를 찍던 그녀가 고개를 홱 젖혔다.
아, 저건 진심으로 충격 받은 표정인데.

“우와, 이건 진짜 쇼크다. 설마 진짜 몰라요?”
“……그쪽도 제 이름 모르잖아요.”
“김현수. 맞죠?”

거기서 내 이름을 알면 내가 뭐가 되냐고.

“어…….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그.러.니.까.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데 교대하는 사람 이름 정도도 몰라서 되겠냐고요오.”
“아니, 어떻게 그러니까 알았……,”
“자, 그럼 여기서 퀴즈! 제 이름이 뭘~까요?”
“하아…….”

미안해지려던 기분이 쏙 들어가는군.

장난기가 가득한 그녀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냥 마음대로 하세요. 일하는 거 방해나 하지 마시고.”
“잠깐, 제 이름은요!”
“뭔데요?”
“최다슬이에요. 최.다.슬!”

그녀가 계산을 마친 민초 우유를 계산대에  쳤다.
나 화났다, 라는 어필을 하듯이.

“나이는 스물 셋!”

한숨을 쉬기도 지친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알겠어요, 미안해요. 앞으로 꼭 기억할게요.”
“흠……. 믿음이 안 가는데, 믿음이.”
“아, 기억한대도!”

참다못한 내가 성질을 내는 것으로 그녀와의 잡담은 겨우 끝이 날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그보다 중간에 손님이 왔던 덕이  컸겠지만.


***

한참을 떠들던 그녀가 떠나간 뒤에야 나는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다행히 그나마 외진 곳에 있는 편의점이라 손님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뭐, 그거 때문에 벌써 6개월째 일하고 있는 거지만.

‘최다슬인지 뭔지  여자도 갔으니……. 혼자서 좀 정보를 찾아볼까.’

그리 생각한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혹시나 해서 아침에 확인했던 웹소설 사이트에도다시 한 번 들어갔다.
당연히 기대는 안 했다.
아침에는 분명히 사라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 기대대로 소설은 여전히 없었다.

“응?”

그러나 전과 달라진 게 하나 눈에 띈다.

아침에는 분명 없었던 쪽지 하나.
그리고 나는 쪽지함을 연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 그 작가 필명인데?’

내가 본 소설.
'정조역전세계’의 작가가 보낸 쪽지가 있었던 것이다.

꿀꺽 침을 삼킨 나는 두근거리며 쪽지함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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