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사도 스라나
* * *
미궁 주변 도시에서 후퇴를 거듭하며 결성된 혼성부대는 거침없이 전진했다.
상대하는 몬스터는 단순한 적이 아니었다. 동료를 죽이고 친구를 죽인 적. 그것들은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고 삶을 통째로 앗아갔다.
사도 요르네스의 영역 아래, 혼성부대는 광기에 물들었다.
"크아아, 죽어라."
"이새끼, 죽어 죽어."
멈칫거리는 몬스터에 도끼를 내리찍고 포효를 내질렀다. 트롤의 몸을 창으로 뚫어내고 휘저었다.
정당한 복수. 쌓아왔던 울분과 분노를 터트렸다.
승리는 마약과 같았다. 혼란이 가득한 전장 속에서 순수에 가까운 파괴를 반복하며 전진했다.
승리에 도취하며 또 한걸음 걸었다.
눈앞에서 터져나가는 몬스터의 체액은 세상이 조금 더 어두워졌음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가랑트런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을 보았다.
"요르네스님."
조용히 되뇌었다. 요르네스를 부르는 외침이 아니었다.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현재 요르네스는 각성에 돌입했다.
멈출 수도 없고 멈춰도 안 되었다.
요르네스는 이미 흐름에 이미 올라탔다. 강제적인 정지는 불가능했다.
정지 시 일어나는 반발만으로도 사제급 육체는 바로 산산조각이 날 흐름. 사도급이라고 해도 무사할 수 없었다.
가랑트런트는 억지로 호흡을 조절했다.
치밀어오르는 광기를 침착하게 다잡았다.
"요르네스님을 위해 대비한다."
진형의 선두에서 뒤로 물러났다.
굳이 뒷걸음질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멈춰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랑트런트는 진형의 뒤에 위치하게 되었다.
가랑트런트는 사도 요르네스의 눈길을 느꼈다.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자신이 대비하겠다고, 요르네스의 각성을 방해하는 자는 막아내겠다고 말없이 의지를 굳혔다.
가랑트런트는 두 가지를 몰랐다.
요르네스가 가랑트런트 역시 혼란 속에서 싸우다 죽기를 바라고 있음을 몰랐다.
그런 요르네스를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악마를 몰랐다.
*
"인간의 감정은 대단하네."
이른 밤의 악마 더스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궁 20층, 이른 밤의 미궁층은 사라져버렸지만, 계단과 계단의 연결이 끊어지고 줄어들어 소멸이 가까워졌지만, 미소지었다.
미궁층이 분쇄되어 나온 힘으로 지상을 물들였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미궁님은 무슨 생각이실까? 하긴, 하위 격인 내가 최상위 격인 '미궁'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지."
더스크는 하늘과 대지와 대지 위에서 몸부림치는 인간들을 보았다.
"그저 즐기면 충분할 뿐."
더스크가 양손을 옆으로 펼쳤다.
"뜨겁던 해는 떨어졌으나, 해에 가려졌던 달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암흑으로 물들어가는 이 시간.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원과 같다."
양손 끝에서 검은 의지가 선이 되어 퍼져나갔다.
"죽은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으므로."
세상이 검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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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굳이 하늘을 볼 필요도 없었다.
세상이 검어졌다. 해가 지고 난 후, 완전한 어둠으로 변하기 전의 세상과 같았다.
타인을 볼 수 있지만, 외곽선만이 선명하고 표정은 알 수 없어졌다.
미궁 지하 20층, '이른 밤'의 층은 아군을 희생시킬 수 없는 층이었다.
그저 억지로 진행해 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 빠져나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페로의 탈출 권능도 20층부터는 소용없었다.
그래서, 이번 회귀 전의 나, 예전의 나는 페로를 쉽게 버렸었다. 탈출을 위해 희생된 페로는 내게 보복을 했었다.
이미 희생되어 죽었던 페로는 죽은 모습으로 다시 움직여, 그를 버렸던 나를 쫓아와 나를 죽였었다.
수없이 반복한 희귀 속에서 미궁 20층에서 실패한 기억.
그 기억 속의 일이 이번 회차에 재생되고 있다.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난다. 아직 밤이 되지 않았기에."
이른 밤의 악마의 권능.
그리고, 죽은 자에게 이른 밤의 시간은 영원하다.
죽은 것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돈 속에서 파괴되어 순수한 죽음으로 돌아갔던 것들이 모욕당하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명은 흘러야만 살 수 있다.
그래서, 더이상 흐름이 없는 존재를 우리는 시체라고 부른다.
신체가 파괴되어 더이상 흐름을 갖추지 못해 시체가 되었던 것들이 일어났다.
파괴된 신체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여전히 흐름을 간직한 존재, 생명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신체, 혹은 신체의 일부.
하지만, 하늘이 검게 물든 순간부터,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된 순간부터 시작된 죽음은 순환을 허락받지 못하고 모욕당했다.
제대로 불에 태우지 못한 인간 시체들이 움직였다.
뼈 하나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은 몬스터가 인간들을 장례를 치러 줬다고 여겨질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웨이브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몬스터의 사체를 먹지 않았다.
동족 포식도 서슴지 않았던 몬스터들이 인간만을 노리고 먹고 즐겨왔다. 그 때문에 몬스터의 시체는 죽을 때의 모습을 가졌다.
독기가 강해 제대로 썩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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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크으 윽."
요르네스가 피를 토해냈다.
가랑트런트가 달려가 부축했지만, 흘러내리는 피를 멈출 수 없었다.
"크으 윽 이럴 수는, 이럴 수 없다. 나의, 나의 힘이."
"당신의 힘이 아니었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악마가 속삭였다.
"그래도,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당신 덕분에 수고를 덜었으니까요. 미약한 신성을 믿는 자라도 넓게 도망치면 귀찮아지거든요. 당신이 예쁘게 모아준 덕분에 편해졌어요."
가랑트런트가 부축하지 않은 손으로 검을 잡았지만, 악마는 가까이 있지 않았다.
먼 곳에서 귓가에 속삭인 악마가 미소지었다.
"저를 찬양해주세요. 그대들은 여전히 움직일 겁니다. 뭐, 심장은 뛰지 않겠지만요."
혼성부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미 피가 식었다. 땀에 젖은 몸이 더 차가워지듯이 두려움에 떨었다.
진격한 길을 되돌아가려 했다.
보란성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혼성부대가 처치한 몬스터들이 다시 일어나 막았다. 몬스터들에게 죽은 인간들도 아직 먹히지 않아 남아있던 몸의 일부로 막아섰다.
학살이 시작되었다.
각 교단의 사제들이 원망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쓰러진 사제들은 안식을 얻지 못하고, 각 교단의 신도들을 유혹한 어버스나이트 사제들을 공격했다.
반격을 맞고 부서졌다.
부서진 몸 일부로 다시 달려들었다.
끝내 어버스나이트 사제를 쓰러트렸다.
"요르네스님."
가랑트런트가 요르네스를 엎고 달렸다.
하지만, 가랑트런트도 요르네스의 끝을 예감했다. 점점 가벼워지는 무게는 요르네스의 뼈와 살뿐만 아니라 존재가 흩어지는 것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혼돈이시여, 순수이시여.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실패의 절망에 가랑트런트가 피를 토했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까?"
울분을 토해내면서도 요르네스를 포기하지 못해 엎고 보란성을 향해 달렸다.
달리던 가랑트런트는 빛을 보았다.
전멸을 앞둔 혼성부대는 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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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
"네. 준영씨."
세계가 검어지고 죽은 자들의 시간으로 세상이 뒤덮일 때, 용사는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
전해져오는 체온에서 삶을 느끼고 미래를 꿈꿨다.
그리고 작은 희망을 품었다.
앞으로도 함께 하겠다는 희망.
잔혹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채로 움직이는 죽은 자들의 일부를 보면서, 절망하며 도망치는 인간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은 지켜내겠다는 결의가 되었다. 결의는 힘이 되었다.
처참하고 애달픈 모습을 볼수록 바리스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지켜내겠어요. 모두를. 그리고 당신을."
어둠 속의 단 하나의 점.
점이었던 빛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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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아아."
디펜그라드 사제 스라나는 몸을 떨었다.
어디선가 억지로 쥐어짜 내서 건네는 성력에 몸을 떨었다.
분명 그 방향은 미궁 쪽이었다.
"신성이시여. 당신은 어디서."
신성을 직접 느끼는 존재, 이를 사도라고 불렀다.
사제 스라나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각성을 믿을 수 없었다.
동시에 각성을 도와주는 디펜그라드 신성을 동정했다. 신성은 온전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경애했다.
온전한 상황이 아니면서도 힘을 건네는 신성에게 감복했다.
이른 밤의 악마, 더스크가 지상을 물들인 검은 색은, 신성에게도 자신의 살을 도려내듯이 빼낸 힘을 숨겨 보낼 수 있는 경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스라나가 디펜그라드의 신성한 행위를 행하지 않았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미약한 방어자와 절망하며 쫓기는 도망자.
그리고 압도적인 적.
디펜그라드 사제들이 추구하는 '신성한 행위'였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려진 사제가 될 수 있는 신성한 행위였다.
스라나 역시 이를 이루어내고 사제가 되었었다.
"디펜그라드님. 저는 희망을 놓지 않겠습니다."
스라나는 다짐했다.
각성이 이루어지면서 권능이 확장되었다.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되고,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사도로 각성할 수 있던 이유를 깨달았다.
사제가 되는 조건과 사도의 차이를 알아차렸다.
이른 밤, 해가 사라지고 달이 은혜를 베풀기에 이른 시간.
스라나는 빛을 보았다. 빛을 보고 희망을 보았다.
지키는 자가 가져야 할 마지막 조건은 희망임을 알아차렸다.
용사 바리스가 내뿜는 빛이 디펜그라드 사제 스라나를 사도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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