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 몬스터 웨이브 (134/139)

〈 134화 〉 몬스터 웨이브

* * *

우리는 대량의 비행 몬스터를 처치했다.

"왕국군 상공으로 이동한다."

일행에게 알리고 비행선을 이동시켰다.

하피와 와이번을 한번 몰살시켰지만, 비행 몬스터도 계속 보충되었다.

하지만, 지상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미궁 내 비행 몬스터의 수가 적은 만큼 보충되는 속도가 지상 몬스터보다 떨어졌다.

"왕국군을 전멸시킬 수 없지."

"다행이에요."

구원을 암시하는 나의 말에 바리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용사 바리스는 사람들을 도우려 하고, 돕는 만큼 강해졌다.

왕국군의 수뇌부는 책임을 져야 했다. 또한, 일정 이상 정보를 획득할 수 있어 왕국군에 동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귀족들도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징집된 병사에게 책임을 묻을 수 없었다.

"다만, 약간의 보여주기가 필요하겠지."

미궁을 두려워하고 인간의 영광을 바라는 사고방식이 주입된 징집병들은 우리와, 우리에게 동조하는 후켄스 백작을 악으로 규정하는데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쓰는 힘뿐만 아니라, 부대 지휘관으로 움직이는 엘프들을 보았다.

미궁에 대한 적개심을 우리와 후켄스 백작에 대한 적개심으로 바꾸는 선동에 쉽게 넘어갔다.

"선동은 다시 뒤집으면 될 뿐."

지속적인 선동으로 형성된 여론은 견고한 법이다. 가벼운 설득으로 깨트릴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기 직전의 구원은 개인의 사고방식을 비틀어버릴 수 있다.

비행선에 달라붙는 비행 몬스터를 향해 헤스티와 네리미아, 시란느와 오노르, 페로가 마법을 쏘아내며 싸웠다.

바리스와 수희, 엘프들 역시 투창을 던지고 화살을 쏘아내며 전투를 이어갔다.

싸우면서 왕국군에게 다가갔다.

바로 왕국군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비행 궤도를 올려서 인지하지 못하는 높이로 다가간 다음 높이를 낮췄다.

그래서, 비행선이 몬스터를 몰고 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비행선을 쫓아 날아오르는 몬스터도 왕국군을 덮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에 괴물이."

파이어 볼트가 날아오긴 했지만, 비행선을 맞추지 못했다.

왕국군의 의도가 아니라, 공황을 일으킨 마법사의 돌발 행동이었다.

"스락 멈춰. 진정해."

"몬스터가, 하늘에 커다란 것이."

"진정해, 적이 아닐지도 몰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하고 괴이한 비행물체.

하지만, 몬스터와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왕국군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징집병도 공중에서 싸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비행선의 궤도를 낮추자, 아군이길 바라는 염원이 표정에 드러났다.

나는 비행선 안에 서서 기운을 일으켰다. 숨을 들이켰다.

"왕국군에게 알린다. 우리 '숲속에서 걸어 나온 자'가 몬스터를 유인할 테니, 후퇴하라. 후퇴해서 다시 진영을 갖춰라."

나의 증폭된 목소리가 전장 구석구석까지 울렸다.

"아아."

"살 수 있어."

눈에 보이는 패배에, 죽어가는 전우에 절망하며 발악하던 병사들이 흐느꼈다.

죽어가는 병사들은 '숲속에서 걸어 나온 자'가 누구를 뜻하는지 상관없었다.

그저 전투의 광음이 가득한 전장에서 음성을 전달할 만큼 강한 자가 후퇴를, 생존을 말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보병대장은 물론, 멀리 보는 것이 중요한 기사단장과 포병대장도 비행선이 가까워지면서 몬스터의 반응이 더 격렬해졌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미 접전을 이어가고 있는 바싹 달라붙은 몬스터 때문에, 몬스터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느낄 뿐이었다.

그저 인간의 진지를 꿰뚫으려는 움직임으로 파악했다.

"당신은 누구요?"

"숲속에서 걸어 나온 자."

나는 전장을 사이에 두고 포효하듯이 외치는 기사단장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리고 그대들을 구할 자."

나는 비행선의 고도를 낮췄다.

수희를 직접 공격할 방법이 없어, 방해물로 보이는 왕국군을 덮쳤던 몬스터들이 확연하게 반응했다.

도끼나 단검을 던지면 닿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몬스터들을 광폭하게 만들었다.

병사들은 숨을 죽였다. 광폭해졌지만, 몬스터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내가 유인한다."

온 전장에 울리도록 크게 외쳤다.

"피리레, 비행선 밖으로 흙을 넓게 뿌려."

조용히 다크 엘프 피리레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게 종속된 흙이지만, 특별한 효능은 없었다. 하지만, 비행선에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흩뿌려지는 흙은 대단한 마법 시약처럼 보일 것이다.

하늘에서 나타난 비행선, 비행선에서 흩뿌려지는 마법 시약.

미친 듯이 밀려들던 몬스터가 자신들끼리 충돌하는 것을 각오하면서도 방향을 트는 광경.

'숲속에서 걸어 나온 자'라는 이명이 있는 우리를 구원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왕국군은 이른 타이밍에 왕국군에게 몬스터를 유도한 것이 우리라고 알아차릴 수 없었다.

왕국을 수중에 넣은 기초가 완성되었다.

"크윽."

총지휘관이 침음을 토해냈다.

"하루, 하루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나는 다시 크게 외쳤다.

왕국군은 전멸하면 안 되지만, 계속해서 싸워줘야 했다.

시간을 넉넉하게 주면 피난을 떠나는 왕과 귀족을 호위하기 위해 스스로 전선을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면 왕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도중에 멈출 수밖에 없다. 다시 시작될 전투를 준비하기도 벅찬 시간이다.

왕국군이 후퇴할 틈을 만들겠다는 나의 말에 반응하는 이는 왕국군뿐만이 아니었다.

바리스가 미소지었다.

그녀의 환희가 보호막을 빛나게 만들었다.

전투가 아니라 학살로 변하려던 전장이었다.

우리의 개입은 분명 구원이었다.

미궁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왕국군에게 유도한 것이 우리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광폭한 몬스터를 가장 준비되고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왕국군에게 유도해, 미궁 주변 도시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수긍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이는 바리스의 용사로서의 신성한 행위, '구원'의 빛을 퇴색시키지 못했다.

무너져서 학살로 변하려는 전장으로의 난입은 바리스의 성장을 이끌었다.

부상당한 징집병이 억지로 몸을 움직여 뒤로 빠지는 광경은 바리스의 의지를 굳건하게 세웠다.

바리스가 막아내지 못하고 무너지면, 비행선은 상공으로 후퇴할 것이다.

그럼, 수희를 공격할 수 없다고 판단한 몬스터들은 다시 왕국군을 노릴 것이다.

"제가 지켜내겠어요."

우리와 후켄스 백작을 압박했던 왕국군의 규모는 바리스의 구원을 바라는 총량과 같아졌다.

바리스의 보호막이 퍼졌다.

비행선을 전체를 감싸고 날아오는 단검과 도끼를 튕겨냈다. 임프들의 화염 마법마저 비행선에 달라붙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바리스가 피워내는 보호막은 병사들에게 마치 폭우 속에서 발견한 불빛과 같았다.

왕국군 지휘관들이 후퇴를 이끌기 시작했다.

지휘관은 후퇴하라는 나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진형이 와해되지 않고, 병사들이 탈영하지 않은 것은 몬스터가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탈영해도 몬스터에게서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시에 따라 몬스터랑 싸워야 생존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징집병들은 비행선이 몬스터를 유인하는 지금만이 뒤로 빠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알았다.

원하는 명령을 내려주지 않으면 그대로 흩어져버릴 것이다.

"후퇴한다. 모든 군은 네룬 성에서 재집결한다. 기사들은 대포를 끌어라."

결국,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무장한 병사가 네룬 성으로 걸어서 이동하고 재정비까지 해내기에는 하루는 너무나 부족했지만, 그래도 죽음을 미룰 수 있음에 안간힘을 다했다.

왕국군 내부에 벌어지던 기사단과 포병대의 알력 다툼도 생존이라는 명제 아래서는 조용해졌다.

자신의 말에게 짐을 끌게 하느니 말의 목을 치겠다던 기사도, 짐을 끌게 하면 스트레스받아서 기량이 떨어지던 말도 세상을 메운 몬스터 앞에서는 뻗대지 못했다.

기사단에게 포병의 화력 지원은 생명줄과 같음을 이 전투로 뼈저리게 느껴버렸다.

왕국군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

*

*

"흐음, 쉽지 않네."

준영과 일행의 아지트, '숲속의 저택'에서 에드샤가 중얼거렸다.

죽 뻗은 팔과 다리를 크게 흔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에리가 에드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에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게 변한 하늘을 누비는 비행선을 탄 준영을 생각했다.

"에리, 다시 작업하러 가자."

"네. 가요."

가볍게 대답한 에리는 에드샤와 함께 공사를 벌이는 곳으로 향했다.

흙에 친숙하고 몸이 대지와 떨어질 때, 불쾌감을 느끼는 에드샤와 에리는 비행선을 타지 않았다.

대신, 숲속의 저택 방어와 숲속의 탑 관리를 맡았다.

에리는 준영 대신 대외적인 교섭을 맡아왔기에 교섭할 줄 알았고, 후켄스 백작과 밀려드는 피난민을 수습해낼 수 있었다.

"피난민들이 흙과 돌을 얼마나 옮겨놓았으려나."

에리는 단순한 수용과 식량 분배를 넘어, 방어를 위한 대규모 공사를 시작했다.

개념은 후켄스 백작이 제안한 방벽과 비슷했지만, 규모가 달랐다.

단순한 방벽은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수 없었다.

방벽 뒤에서 인간이 서 있으면 몬스터는 방벽을 넘거나 심지어 부수고 난입해 인간을 죽였다.

'몬스터가 질색할만한 방어물로, 마치 절벽처럼.'

숲속의 저택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 형태로 둥글게 땅을 파고, 원 안쪽에 파낸 흙으로 벽을 만들어 쌓아 올렸다.

토목 기술은 흙의 성분까지 간섭해내는 에리와 에드샤의 마법으로 대체했다.

에리와 에드샤가 피난민을 동원해 만드는 구조물은 거대한 탑의 하층부를 연상시켰다.

마치 하늘을 거역하기 위해 쌓아 올리는 것만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