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15층 공략
* * *
찰랑거리는 물소리.
작은 보트가 만들어내는 일상적인 소음.
규칙적인 소음 사이에 은밀한 살기가 숨었다.
“온다.”
보트 옆에서 물기둥을 세운 채 이동하던 오노르와 시란느는 처음부터 방어를 위한 위치를 잡고 이동해왔다.
바리스와 수희는 경계를 위한 위치에서 물기둥을 방어로 이용할 수 있는 위치로 변경했다.
에리와 에드샤, 그리고 탈출 마법이 특기인 페로는 엘프들이 만든 배 위에서 대기했다.
머메이드 다섯.
그들의 접근이 네리미아의 감각을 통해서 내게 인지되었다.
동시에 느껴지는 네리미아의 마음속 적개심.
네리미아는 내게 완전히 종속되었기에, 나는 그녀가 느끼는 외부 감각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우리와 동료라서, 나의 눈치를 봐서 접근하는 머메이드에게 살기를 띄우는 것이 아니었다.
‘하긴, 동족에 살벌한 건, 인간도 마찬가지지.’
인간은 생존이 걸려있으면 당연하게 같은 인간을 적대했다. 생존이 아닌 이익을 위해 적대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이는 인간이 문제가 아니라 생물의 특징일지도 몰랐다. 같은 종이라도 두 무리를 좁고 식량이 부족한 곳에 밀어 넣으면 서로 적대할 것이다.
인간과 머메이드 종족이 아니라, 동족에 목숨을 거는 에리와 에드샤의 종족인 키벨레 종족과 엘프 종족이 특이하다고 봐야 했다.
‘네리미아는 애초에 혼혈이기도 하고.’
인어의 눈물층의 머메이드는 허벅지 아래부터 물고기 비늘이 덮인 형태였다.
그에 비해, 네리미아는 두 다리가 인간처럼 갈라졌다. 다리의 안쪽은 인간의 피부이고 바깥쪽은 비늘로 덮였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기에 머메이드라고 부를 뿐, 다른 종족명으로 불러도 될 정도였다.
“끌어들일게요.”
헤스티가 선언하듯이 말했다.
인지되는 머메이드는 일반 몬스터, 아무리 머메이드가 수속성 몬스터에 15층 몬스터라고 해도 헤스티와는 격이 차이 났다.
사제가 사도에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제가 신도들을 쉽게 다루는 것처럼, 네리미아와 연계한 헤스티의 의지가 물을 매개로 넓게 퍼졌다.
마치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커다란 솥의 물처럼, 원거리의 머메이드가 개입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해류가 일행을 향해 흐르기 시작했다.
“하아, 접근전하러 오네.”
수희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일행을 향해 해류가 흘렀다. 머메이드가 느끼기에 돌진할 때도, 돌진 후 빠져나갈 때도 이용하기 좋은 해류.
랜스 돌격의 유혹을 느끼는 기사와 같았다.
해류를 타는 머메이드는 달리는 말 위의 기사와 비슷했다. 말의 속도와 말의 무게까지 충격량으로 뿜이내는 기사처럼 머메이드 역시 해류 덕분에 가속한 속도를 치명적인 공격으로 이어낼 수 있다.
빠져나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속도를 잃어버린 기사는 보병대에게 포위되어 잔혹하게 처형되지만, 뚫고 지나갈 속도가 유지되는 동안 보병대를 향한 일방적인 상성을 가진다.
바리스와 수희가 물 위를 걸었다.
여유로운 바리스와 수희에 의심을 가질 만 하것만, 이미 시작한 돌진이기에, 그리고 몬스터이기에, 적개심에 몸을 싣고 달려들었다.
바리스와 수희는 물 위,
머메이드가 창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찌르기 위해서는 수면에 가까워져야 했다. 그녀들은 속도를 올렸다.
낼 수 있는 최고 속도까지 꼬리를 흔들며 헤엄쳐왔다.
헤스티의 의지가 해류에 개입했다.
흐르는 관성을 유지한 채, 방향을 위로 치켜올렸다.
머메이드는 최고 속도를 냈다.
이는 제어의 극한에 도달한 상태임을 의미했다. 최고 속도에서는 아래에서 쳐올리는 해류를 거부하고 다시 깊게 잠수할 여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대로 머메이드들이 수면 밖으로 튕겨졌다.
바리스와 수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팅겨나온 머메이드들이 바리스의 양손검에 갈라지고, 수희의 쌍검에 치명상을 입었다.
“주인님. 저거, 재미있어 보여.”
아리나란이 내게 보챘다.
얌전하게 배 위에 있던 아리나란. 좀이 쑤시는지 피막의 날개를 꿈틀거렸다.
“물에 젖을 텐데 괜찮겠어?”
피와 물은 성질이 가까웠다. 쉽게 섞였다.
그래서, 피막을 가진 아리나란은 물을 싫어했다.
물에 들어가는 정도로는 몸이 상하지 않지만, 얼음판 위를 걷듯 집중력을 요구했다.
“헤스티 덕분에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티가 시전한 [물의 가호]는 바리스와 수희가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했다.
[물의 가호]는 이미 피막을 다루는 데 익숙한 아리나란에게 물을 공기처럼 편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풍덩.
아리나란이 물속을 헤엄쳤다.
네리미아가 눈을 둥글게 떴다.
다이빙한 아리나란이 네리미아의 옆을 지나갔다. 수중에 대한 아무런 훈련이 없는 상태인데도 순식간에 물에 적응했다.
아리나란의 헤엄은 비행과 닮았다.
피막으로 감싼 몸은 유선형이 되었고, 어느 면에서는 네리미아보다 더 머메이드와 닮은 라인을 이루었다.
“에에, 욕심쟁이.”
네리미아가 질 수 없다는 듯이 치고 나갔다.
머메이드를 하나 잡고 나서 방어 태세를 취했던 바리스가 쓴웃음을 흘렸다.
긴장감에 올렸던 가드를 내렸다. 수희가 어깨를 으쓱이곤 물결이 만드는 굴절에 숨어들었다.
남은 머메이드 정도는 아리나란과 네리미아의 경쟁적인 전투에 맡겨두는 것이 나았다.
살짝 오른 흥분에 실수하기에는 아리나란과 네리미아의 전투 경험과 능력이 높았다.
네리미아가 물의 창을 만들어 내질렀다.
이때까지 마법으로 싸웠던 것은 접근전이 약점이라서가 아니었다.
허벅지 바깥이 비늘로 쌓인 두 다리는 수중에서 기동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줬지만, 육상에서는 바리스와 수희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최적이 아닌 몸은 속도와 감각이 떨어져 바리스와 수희를 돕지 못하는 상황을 넘어 진형 전열의 약점이 되어버릴 수 있었다.
아리나란이 머메이드 무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중심을 잡고 적을 상대하는 바리스라면 바깥에서부터 긁어내듯 상대했겠지만, 아리나란은 하늘을 나는 것처럼 헤엄을 쳐 돌격해 머메이드 진형을 흩트렸다.
공기와 물은 저항이 달랐다. 하지만, 고속으로 급강하해 한순간에서 승부를 내고, 치명상을 주는 방식에 익숙했다.
순간에 만들어내어 사출한 피막의 가시가 스쳐 지나가는 머메이드를 노렸다.
머메이드 셋을 동시에 노려 셋을 모두에게 가시를 박아넣었다.
박아넣은 가시는 머메이드의 몸속에서 변화했다. 쉽게 박혀 들기 위해 가늘고 매끈했던 가시가 꽃을 피우는 것처럼 갈고리를 펼쳤다.
아리나란이 돌격에 들어가던 속도와 머메이드들이 맞서기 위해 달려들던 속도.
한점에서 교차하고 다시 멀어지는 속도는 머메이드의 몸속에 박힌 피막의 가시가 머메이드의 몸속을 헤집는 힘이 되었다.
“헤에. 아리나란님, 온전한 놈도 상대할 수 있는데.”
네리미아는 투덜거리면서도 전투의 흐름을 오인하지 않았다.
흩어진 머메이드의 진형 바깥쪽에서 창을 내질렀다. 아리나란에게 당해 상처를 입은 머메이드를 한쪽 끝에서부터 마무리했다.
요격 나온 머메이드들을 정리했다.
*
미궁층 공략은 이삼일 안에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휴식이 중요했다.
작은 섬을 찾아 배를 대고 야영지를 만들었다. 일단 에드샤와 에리는 5층 거점으로 보내 둘의 긴장을 풀었다.
야영지에서 헤스티가 두 눈을 감고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몸을 이완하면서도 물의 통제를 놓지 않았다.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물의 영역을 인지하고 운용하며 명상을 이었다.
섬 위에서 바리스와 수희와 함께 휴식하는 가운데, 아리나란이 다가왔다.
부드럽게 나의 등에 달라붙어 왔다.
나는 천천히 몸을 아리나란에게 기대었다. 직접적인 애무는 아니지만, 아리나란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은근한 무게감을 좋아했다.
네리미아가 눈치를 보내더니 조심스럽게 달라붙어 왔다. 나의 허벅지에 자신의 머리를 올려고 부볐다.
섬에 정선한 배를 보고 말했다.
“우리 배에 대포는 언제 달아요?”
“대포?”
“네, 배에는 대포를 단다고 했어요. 머메이드들을 쫓아 보내는데 쓴다고 들었어요.”
“그래, 그랬었지.”
미궁은 온갖 출신의 사람들이 뛰어드는 곳.
뛰어드는 자 중에는 먼 곳에서 온 선원과 선장도 있었다.
그들은 화약 무기에 대해 말했다. 대포로 쓸어버리고 싶다고 말버릇처럼 떠들곤 했다.
그렇게 그들이 떠들면 연금술사 출신 마법사가 투덜거렸다.
‘불안정하고 위험한 무기는 바다에서만 쓸 수 있다고.’
“흐음, 구하기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안정성이 떨어져.”
연금술사가 했던 말을 기억해내고 네리미아의 젖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안정성요?”
“그래, 화약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물질이 아니야, 몬스터의 사지를 파쇄할 만큼 강력한 힘을 내지만, 대포를 운용하는 선원도 날려버린다고 해.”
“으흠.”
“그나마 바다 위에서는 화약과 연관된 불의 힘이 눌러져 있어. 오작동의 가능성이 작지. 무엇보다 상대하는 몬스터가 수속성인 만큼 대포의 오작동을 유도하지 못해.
하지만, 지상에서는 달라. 고블린이나 오크 주술사 정도 되면 적진을 화속성 파형으로 흔들 수 있어. 오작동이 일어나기 쉬워.”
그리고 전투의 주력이 누구인가도 중요했다.
대규모로 모인 기량이 평범한 병사가 주력이라면 대포는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몬스터는 물론 인간도 싸울수록 강해지는 세계였다.
순수한 병사 집단은 아무리 많은 수가 모여도 기사단을 이길 수 없다.
“강한 몬스터는 물론,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인간은 날아오는 투사체를 보고 폭발 범위 밖으로 피해버리니까.”
“대포는 움직일 수 없으니, 바로 돌진해 들어가서 파괴해버리겠어요. 으으, 여기 인어의 눈물층에서밖에 쓸모없겠군요.”
“그래, 다수의 궁수가 모여 화망을 구성해 강한 몬스터를 상대하는 식이 되면 모를까. 아니면 강자가 서로 부딪힐 만큼 뭉쳐서 달려온다던가.”
나는 조용히 말을 멈췄다.
헤스티와 물의 마녀이었지만 적에게 붙잡혀 화염 마법사로 개조당했던 오노르와 시선을 교환했다.
강자가 서로 부딪힐 만큼 뭉쳐서 몰려나오는 상황이 존재한다.
미궁에서 시작되는 몬스터 웨이브.
몬스터 웨이브를 감당해야 하면서 화망을 구성할 정도로 대포를 모을 수 있는 집단 역시 존재한다.
왕국.
“물의 마녀였던 저를 굳이 화염을 다루는 지원마법사로 개조해야 할 이유.”
오노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시는 몬스터 웨이브를 당하지 않겠다는 왕국의 발악이군요.”
오노르는 슬픈 눈으로 시란느를 안았다.
나는 체념이 담긴 오노르의 눈과 마주했다.
아무리 대의가 있다고 해도 개인에게 고통을 가한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를 한순간에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완전한 신.
신성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완전한 신이 아닌 이상, 나는 나와 내 품속에 안긴 이들을 위해 적은 적으로 두고 싸울 것이다.
‘다만, 우리가 우위에 선다면, 절멸시키기보단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할 순 있겠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