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 강탈, 지원마법사 오노르
* * *
시란느가 마력을 모았다.
네리미아와 헤스티의 도움을 받아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으나,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마녀도 아니고.’
마녀는 자신으로부터 기인한 힘을 쓴다. 순수하기에 광기를 띈다.
시란느의 마법은 시란느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혈통으로 내려오는 힘을 쓰는 느낌이었다.
[워러 샷]
시란느의 의지에 따라 물덩어리가 맺혔다. 물이 근처이기에 쉽게 맺힌 푸른 물덩어리가 적을 향해 날아갔다.
‘다분히 정치적인 공격.’
우리 일행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시란느의 미숙함이 보이는 공격이기도 했다.
마법사로서 전투에 임했음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이후에 정치적으로 유리하고 싶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마법을 쏘아내자마자 자신의 수준을 인식하고, 헤스티와 네리미아의 보조에 전념하는 위치로 움직였다.
*
푸른 머리의 지원마법사 오노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시란느의 워러 샷은 오노르의 호흡도 빼앗지 못했다.
“히익.”
시란느가 오노르의 기세에 짧게 신음을 토했다.
변화가 일어났다.
화염 마법으로 원거리 공격하던 오노르가 두 눈에 화염을 담았다.
두 손에 불꽃을 머금은 채 돌격해 들어왔다.
전사에 떨어지지 않는 움직임.
접근전을 위한 마법.
일행은 즉시 경계를 올렸다. 마법사와 마전사는 대응이 달라져야 했다.
[그라비티 콘트롤]
헤스티가 반응했다.
조화를 추구하는 헤스티가 성취를 이룬 마법.
다른 마법과 동시에 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효과를 발휘하는 특징을 가진 [그라비티 콘트롤]
예전에 펼쳤던 그라비티 콘트롤과 같은 마법이었지만, 헤스티의 성장은 전혀 다른 마법을 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왔다.
돌진해 들어오는 지원마법사 오노르와, 자리를 지킨 채 마법을 준비하는 붉은 머리의 지원마법사 엘레나의 사이에 중력 중심점을 잡았다.
오노르와 엘레나를 겨냥한 마법이었지만, 주변의 병사들까지 영향을 받았다.
“어어, 허억.”
“으악.”
중력 중심점과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끌려가자 병사들이 신음을 내뱉었다.
붉은 머리 지원마법사 엘레나가 두 손을 확 펼쳤다.
마력을 전개해 헤스티의 마법의 영향을 뿌리쳤다.
더 이상 수희를 쫓지 않았다. 후드를 둘러쓴 채로 헤스티를 향했다.
*
“수희.”
“맡겨줘요.”
후작가 기사단장 베리랑트는 내가 막으면 된다.
붉은 머리 엘레나는 원거리 마법사이기에 헤스티를 비롯한 일행이 대처할 수 있다.
문제는 달려드는 푸른 머리 오노르.
엘레나와 거리를 두고 마주한 헤스티가 돕는다고 해도 네리미아와 시란느가 감당하기 어려웠다.
수희가 나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
다만, 바리스와 방식이 달랐다. 바리스라면 시란느의 앞으로 나서면서 오노르를 막았겠지만, 수희는 연결되는 동선을 막지 않고 훑었다.
나는 베리랑트의 대응을 살피면서 수희에 가세했다.
“적에게 문제가 있군.”
베리랑트는 오노르의 앞에서 오노르를 엄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할 수 있도록 거리를 잡았다.
단지, 오노르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기에 공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진형 역시 오노르를 중심으로 우리와 함께 포위하는 형태가 되었다.
베리랑트가 당장 검을 마주쳐 올 가능성이 적었다.
마법사가 많은 만큼, 병사들의 진형을 정비하는 시간을 버는 모양새였다.
*
“간다. 헤스티, 네리미아 수속성으로 압박해줘.”
나는 신호를 보내고 달려들었다.
푸른 머리 오노르에게 느껴졌던 기이함. 시란느에게 보이는 특이 반응.
에리와 에드샤를, 둘과 깊은 관계를 맺은 나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시란느의 푸른 머리카락과 오노르의 푸른 머리카락은 우연이 아니었다.
오노르를 흔드는 방법은 시란느와의 경험을 되새기면 파악할 수 있다. 시란느의 어미라면 수속성 마법에 반응할 것이다.
‘우선은 장비를 부순다.’
[워러 리플]
[워러 리플]
헤스티와 네리미아가 동시에 마법을 시전했다.
물방울이 흩날렸다. 비산한 물방울이 호수에 만들어진 파문처럼 전방을 향해 물결쳤다.
단일 위력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스티와 네리미아가 만든 물결은 서로 상쇄되지 않았다. 합쳐지는 교집합의 영역에서는 소모된 수분과 집중력에 비할 수 없는 위력이 펼쳐졌다.
나는 달려나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티와 네리미아의 물결이 오노르를 밀어낼 뿐만 아니라, 오노르의 뒤쪽에 시전된 중력 마법이 오노르를 끌어당겼다.
“수희, 함께.”
밀어내고 당기는 것은 오노르뿐만이 아니었다. 수희와 나는 밀어내는 수분을 등에 지고, 당기는 중력을 이용해 더욱 빠르게 오노르에게 달려들었다.
오노르가 두 손에 열기를 집중시켰다.
전방으로 화염을 방사하는 마법. 사정거리가 짧은 대신, 바로 눈앞의 적에게 집중된 화력을 선사하기에 마법사보다 마전사를 위한 마법.
하지만, 나와 수희에게는 그저 사정거리가 긴 무기에 불과했다.
이동을 돕는 물과 중력의 힘을 타고, 방사되는 화염의 사정거리 밖에서 한순간을 노렸다.
수희가 쌍검을 들어 올리고, 내가 레리아나의 검을 들어 올렸다.
레리아나의 검에 나의 기운이 맺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오목한 오노르의 라인, 허리는 가는 대도 풍성한 가슴은 로브를 입었음에도 확연했다.
핑크빛이 짙어졌다. 내가 어떻게 대처할 거라는 의지를 전하지 않았는데도 레리아나는 알아차린 것만 같았다.
수희가 파고들었다.
검을 내질렀다. 오노르가 손을 움직였다. 파고드는 수희를 향해 화염이 방사되었다. 수희의 속도에 반응한 오노르.
수희가 화염에 덮어 쌓인 채 회피했다.
“칫.”
다시 거리를 벌리며 회전하며 몸에 붙은 화염을 떨구었다. 치명상을 피했다.
일대일이 아니라, 이 대 일의 상황.
오노르는 수희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을지 몰라도 동시에 가해진 레리아나의 검을 막지 못했다.
로브 후드의 앞부분을 자르고, 얼굴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얼굴의 윗부분을 덮고 있던 가면을 긁어내듯이 검을 휘둘렀다.
보석이 달려있던 가면이 부서졌다.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오노르의 전신으로 레리아나의 검의 특성이 발휘되었다.
저항력이 높아 몸이 터져나가지 않았지만, 마치 감전된 것처럼 김이 피어올랐다.
“꺼꺽.”
기이한 비명을 토해냈다.
소리 없는 비명이 다른 곳에서도 피어올랐다. 놀란 시란느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 머니?”
나는 오노르의 몸을 낚아챘다.
왼팔을 오노르의 몸에 두르고, 오노르의 가슴을 꽉 잡았다.
오노르는 약한 이가 아니었다. 레리아나의 전격으로 전신이 훑어졌음에도 몸은 부드러웠다.
“수희, 헤스티 우리는 전장에서 벗어난다. 엄호를 부탁해.”
지원마법사는 귀족의 힘을 유지하는 축이다.
관련된 비밀은 이 전투의 전리품 이상의 가치가 있다.
후작가 기사단장 베리랑트가 급히 움직이지만, 기사단을 상대하던 에리와 에드샤가 승기를 굳히고 가까워졌다.
수희, 헤스티, 에리, 에드샤면 베리랑트와 기사단의 잔당을 감당할 수 있다.
남은 지원마법사 엘레나 역시 제정신이 아니라서 베리랑트와 힘을 합치지 못한다.
“네리미아 물의 보호를. 시란느, 어머니에게 받았던 목걸이를 가지고 와.”
전에 물의 힘을 유도하는 방식을 경험했었다.
시란느의 마법을 깨웠었다.
오노르의 남은 옷을 완전히 찢었다.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적대하는 이를 깨우기 위해서는 알고 있고 해본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몸부림치는 오노르.
깨어진 가면 속에 얼굴의 일부가 드러났다. 다만 이마 부분은 깨어진 조각이 떨어지지 않았다.
접착제든 못이든 얼굴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엄…. 마.”
“시란느, 어서 목걸이를.”
덜덜 떨며, 혼란해 하는 시란느를 다그쳤다.
네리미아가 더 이상 못 보겠는지, 손을 휘둘렀다. 정교한 물의 운용으로 시란느의 목에서 목걸이를 당겼다.
시란느가 반사적으로 목을 움직이자, 네리미아가 벗겨내고 물에 담아 부유시켜 내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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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으로 시란느의 목걸이를 꽉 잡았다.
이십 대 후반으로밖에 안 보이는 오노르.
목걸이를 잡은 손으로 목 부분을 훑었다.
강력한 공격을 받았으면서도 부드러운 몸. 전투를 거쳤으면서도 여전히 부드러운 살결은 내재한 마법의 힘을 느끼게 했다.
목과 젖가슴을 계속해서 만졌다.
시란느는 목걸이를 물려받았다.
목걸이는 시란느의 어미 오노르에게도 익숙한 물건일 것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시란느보다 오노르에게 더 익숙할 것이다.
오노르는 긴 시간 목에 걸고 다니며 자신이 가진 물의 힘을 목걸이 안에 담았다.
그녀의 피를 이어받은 시란느가 마녀의 광기를 제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에리, 에드샤, 수희가 방어진형을 완성했다. 피리레와 드리아데를 비롯한 엘프까지 소환해 전선을 고착화시켰다.
기사단장 베리랑트는 또 다른 지원마법사인 엘레나를 제압하는 데 집중했다.
오노르에 이어 엘레나까지 잃을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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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영역]
일행의 보호 아래, 헤스티와 네리미아가 마법을 시전했다.
시란느가 물의 마녀 힘을 일깨울 때, 헤스티 역시 물의 마법에 대한 끄나풀을 잡았다.
조화를 추구하는 헤스티의 경향은 이미 완성한 경지와 새로움을 충돌시키지 않고 튼튼한 한걸음으로 내딛게 했다.
네리미아가 마법을 쓰면서, 마법을 쓰는 헤스티의 품을 파고들었다.
헤스티가 네리미아를 보고 웃었다. 물에 대한 적성이 뛰어난 네리미아가 없었다면 순수한 물의 영역 선언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완전히 물로 감싸진 공간 안에서 나는 오노르에게 입을 맞췄다.
귀족들이 지원마법사들을 어떻게 세뇌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세뇌방법을 모르기에 오노르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돌리는 방식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우회하는 방법이 있다.
성적인 방식이고, 내게 종속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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