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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 전초전 (115/139)

〈 115화 〉 전초전

* * *

웅성거렸다.

거리가 있는데도 군중이 만드는 소음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후켄스 백작가 성 앞에 후작가의 부대가 진영을 세웠다.

긴장으로 가득 찼던 밤이 지나고 일반인이 사람의 외형을 간신히 구분할 정도로 새벽이 되었다.

후작가 부대가 전투 준비를 마치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미묘한 거리.

우리의 주력 일행은 후켄스 성과 후작가 부대가 모두 보이는 산등성이에 숨었다. 엘프와 노예병들은 아예 반대쪽 너머에 대기해 은폐를 유지했다.

나는 옆의 헤스티를 보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

“강한 마법사가 있나 봐요.”

내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헤스티의 말에 동의했다.

인간의 체력은 무한하지 않았다. 돌진은 성벽에 최대한 가까워진 상태에서 시작해야 전투력이 유지되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군대는 돌진 직전까지 천천히 다가가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었다.

화살이 날아와도 사상률이 낮은 거리. 그리고 마법사의 대량 살상마법의 효과가 떨어지는 거리.

그 거리 밖에서 후작가 부대가 멈췄다.

“시작이군.”

후작가 부대 중앙에서 붉은 화염구가 피어올랐다.

백작가 성과 후작가 부대의 거리는 후작가가 준비하는 마법사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줬다.

화염구가 하늘로 떠올랐다.

어스름한 새벽을 대낮으로 바꾸며 백작가 성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일행의 시선이 백작가를 향했다.

일반적으로 성에서 방어하는 자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이 유리함이 없다면, 백작가는 후작가 부대에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화염구 마법은 성을 대상으로도 유효한 타격을 가하는 마법이었다.

백작가 성에서 푸른 빛이 울렁거렸다.

성 중앙에서 울렁거리며 밀려 나온 빛은 화염구가 떨어질 공간에 푸른 막으로 변화했다.

뿌우웅­.

후작가 부대 본진에서 나팔소리가 울렸다. 나팔소리는 전염되는 것처럼 소리가 더해졌다.

나팔수들이 진격 신호를 전달받고 진격 신호를 전파했다.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백작가는 지원마법사를 마법 방어로 돌렸군요.”

헤스티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이 후작가에서 쏘아졌던 화염 마법은 백작가 성 중앙에서 일으킨 방어 마법에 막혔다.

공격한 마법이 막혔지만, 후작가 부대는 마치 전초전을 승리로 장식한 양, 사기를 올리면서도 단단하게 전진했다.

백작가의 재력으로는 지원마법사 한 명이 한계.

그 한 명은 방어 마법을 씀으로써 위치와 포지션을 드러냈다. 즉, 백작가로 다가가는 군대를 대량 살상마법으로 공격할 수 없다.

““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격으로 치명상을 입는 거리까지 접근했고, 지휘부의 명령으로, 혹은 전장의 흥분으로 보병대가 성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성에서도 이에 맞서 사격을 시작했다.

또다시 후작가 부대 본진에서 화염구가 솟아올랐다.

정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백작가 성에서도 푸른 울렁거림이 솟아올랐다.

“아.”

헤스티가 탄성을 터트렸다.

백작가의 지원마법사가 푸른 울렁거림을 일으키기 무섭게 새롭게 피어오르는 화염구.

이전의 화염구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더 큰 화염구가 솟아올랐다.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포물선이 아니라, 상승 후 직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백작가의 방어 마법이 시작된 곳, 백작가의 지원 마법사를 노렸다.

“대기.”

나는 일행에게 말했다.

백작가가 드러낸 하나의 패, 지원마법사를 처리하기 위해서,

후작가는 두 개의 패를 드러냈다.

패의 차이로 압도하는 순간, 기사단까지 투입하면 빠르게 전투는 끝난다.

최소한 후작가의 의도는 그러할 것이다. 지원마법사의 위치를 드러낸 이상, 후작가는 이득을 봐야 한다.

후작가 기사단이 움직였다.

성벽을 향해 쇄도했다.

“백작가 기사단은?”

“아, 전부.”

옆에서 대기하던 시란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전부 성안인 듯해요. 별동대가 없어요.”

“극단적이군요.”

시란느의 말에 에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법사가 존재하는 공성전에서는 속도와 공격력을 겸비한 기사 부대가 별동대로 존재해야 한다.

최소한 위협을 가해 집중을 흩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마법사가 마음 편하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구도가 나온다.

지금, 후작가 기사단만 봐도 별동대를 대비해, 기사단 전부를 투입하지 않고 일부는 본진에 대기시키고 있다.

“후켄스 백작은 평상시에 도박을 즐기나?”

“…. 차곡차곡 쌓는 방법을 좋아하세요.”

시란느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운이 아니라 자신의 보는 눈을 믿는 건가. 우리의 개입을 확신하고 있어.”

별동대를 두지 않으면, 지원마법사들이 일방적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한순간만큼은 큰 이득이 있다.

후작가의 기사들, 백작가 지원 마법사가 압도당한 틈을 타 성벽을 넘기 위해 달라붙은 기사들.

후작가의 전 전력이 아니었다. 최소한 별동대를 대비한 병력을 뺀 전력이었다.

백작가 기사단의 총 전력으로, 후작가 일부를 뺀 후작가 기사단을 성벽의 이득을 받으며 상대했다.

후켄스 백작의 도박이 먹혀들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후작가 기사단은 더 강한 기사단임에도 성벽에 막히고 손해를 보기 시작했다.

“에리, 엘프들과 노예병들을 산등성이에 일렬로 배치해.”

“네, 준영님.”

명령에 에리가 바로 움직였다.

“후켄스 백작이 벌린 판에 어울려주지.”

후켄스 백작은 후작가 총지휘관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첫 번째 선택은 첫 전투를 서로의 속셈을 파악하기 위한 위력 측정 전투로 넘기고, 후퇴해 다음 전투를 기약하는 것.

하지만, 이는 후켄스 백작이 이득을 얻는 전투로 정리된다.

후켄스 백작은 둘 다 지원마법사의 패를 보였지만, 후작가는 두 명의 패를 보였다.

그리고 성벽에서의 기사단의 격돌에서 후켄스 백작이 이득을 보았다.

후작가 총지휘관은 기사로 이루어진 별동대가 없다는 정보를 얻었지만, 이는 다음 전투에 적용된 사항이지, 이번 전투에서 불이익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후작가 기사단장이 직접 성벽 공략을 위해 움직이는 것.

힘으로 밀어붙이는 셈이고, 가장 깔끔한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이는 우리의 존재가 없을 때 이야기였다.

“에드샤, 산등성이에 개인 방어벽과 참호를 지어줘.”

또한, 엘프들에게 일러 창대에 긴 천을 달도록 지시했다. 종속된 공간이라면 거리와 들고 있는 짐에 상관없이 이동시킬 수 있는 만큼, 상비하지 않은 물건도 즉시 보급이 가능했다.

“수희 은신을 거둬.”

“네, 준영씨.”

우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일반적인 행군 진형이 아니었다.

산등성이에 낮은 성벽이 이어지고, 50개가 넘는 깃발이 올랐다.

요새가 한순간에 지어졌다. 깃발 때문에 적지 않은 부대가 지키는 요새처럼 보일 것이다.

부대가 돌격하기에는 애매한 위치.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백작가 성을 공략하기 전에 반드시 파괴했을 위치에 세워진 요새.

괜히 대규모 전투에서 적의 성과 요새를 하나씩 누르며 전진하는 것이 아니었다.

총지휘관의 명령이 병사들에게 즉시 전달되지 않는 전투에서 전투중 병력의 진격 방향 전환은 극히 어려웠다.

그리고, 적을 진격하는 정면이 아니라 측면이나 후면을 공격받은 부대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무너지곤 했다.

이는 인간의 한계에 가까운 힘을 내는 기사단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직, 한계를 넘은 강자만이 극복 가능했다.

나는 산등성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결정해라. 지휘관.”

들리지 않을 거리에서 물었다.

* * *

* * *

“에릭.”

“네, 기사단장님.”

“네가 전 병력을 이끌고 백작가 성벽을 넘어라.”

“…. 알겠습니다.”

“타론, 대기 중인 상급 기사들을 모아라. 나와 함께 간다. 나머지 기사들은 에릭과 함께 백작가 성을 공략한다.”

“지원마법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관의 질문에 베리랑트 기사단장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부관이 여기서 통제해. 내가 저 산등성이에 도착할 때까지 마법으로 공격하고, 백작가의 지원마법사가 움직이면 그에 대응해서 우리 쪽 지원마법사들을 사용해.”

* * *

* * *

“결정했군.”

나는 적진의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후작가의 기사단장은 강자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강자다.

그래서, 강자가 내릴만한 선택을 했다.

부대와 기사단을 백작가 성에 돌격시키고 우리를 상대로는 자신과 상급 기사로 상대하기로 결정했다.

“수희.”

“네, 준영님.”

적은 헤스티의 화염 마법과 에드샤의 어스 계열 권능은 알지만, 수희를 알지 못한다.

대량 살상 마법사만이 강자가 함께하지 않는 부대에 극단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경지에 도달한 은신은 두 단계 이상 차이나는 전사로 감지할 수 없다.

“후작가 기사단이 숨긴 패를 보인 것이 백작가에게는 큰 변수가 아닐지 모르지만.”

내 말에 수희가 웃었다.

“그러니까, 저는 저쪽 지원마법사만 피하면 되는 거죠.”

후작가 기사단의 강자는 이쪽 산등성이로 오고 있다. 후작가의 지원마법사 위치는 이미 수희가 파악했다.

수희가 몸을 숨겼다.

다가오는 기사단의 강자를 피하고, 후작가 부대 본진을 향해 우회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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