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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4화 〉 전쟁 전조 (114/139)

〈 114화 〉 전쟁 전조

* * *

안토니오 후작가에서 후켄스 백작가에 선전포고를 한 만큼, 상황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우리가 후작가 영지 내의 보급 창고까지 털어서 단기 결전으로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후작가에서 백작가로 이어지는 길, 군대가 움직인다면 반드시 사용할 진격로.

나는 수희에게 손짓했다.

수희가 은신을 유지한 채 경계를 올렸다.

나는 주변 사물을 [종속]했다. 종속화된 물건은 진격로로 지나가는 적의 병력의 규모와 구성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종속]된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강자가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사제급 이하는 종속시킨 사물을 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도급 이상 강자는 종속화된 물건을 알아차렸다.

*

진격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대규모의 병력이 후작가에서 백작가로 출발했다. 우리가 빼앗고 차지한 켐프텐 주둔지 방향으로 오지 않았다.

이전 전투에서 후작가는 주둔지로 공격해왔다가 패배했다. 마법사 대비를 하지 않았고, 헤스티에게 큰 피해를 입었다.

귀족들의 마법사와 강자를 상대할 수단인 지원마법사는 분산 운용을 할수록 위력이 떨어졌다.

분산 운용했다가 반격으로 지원 마법사 자체를 잃을 위험도 있는 만큼, 단기 결전을 유도하면 백작가를 노릴 거라는 예상이 맞아들어갔다.

‘창병 다수. 기마병. 대형 방패를 든 중보병.’

[종속]화한 사물을 통해 정보를 뽑아냈다.

중보병의 대형 방패는 마법 저항 처리가 된 장비로 보였다.

‘기사단.’

기사단 역시 특별한 문양이 그려진 장비로 마법 저항을 확보했다.

팍­.

종속화시킨 물건이 파괴되었다.

“흠.”

“준영씨?”

“적에게 영역을 파악하고 배제할 줄 아는 자가 있어.”

“그럼….”

“정찰을 끝낸다. 우리가 적 주력을 유인할 필요가 없어. 그자의 정체는 후작가와 백작가의 주력이 맞붙을 때 드러날 테지.”

나는 수희에게 손을 뻗어 만지작거렸다.

“잘 부탁해 수희. 종속물로 정찰하기가 까다로워진 이상, 우리 본대도 반응할 수 있는 거리에서 머물러야 해.”

“흐흐. 네.”

우리는 적의 위치를 알지만, 적은 우리의 위치를 모르게 해야 한다.

나와 주력 멤버뿐만 아니라, 시란느와 시란느의 호위대, 엘프들과 엘프들이 거느리는 부대까지 동원하는 만큼, 수희가 숨어서 적 정찰을 먼저 차단하는 역할이 중요했다.

내가 직접 정찰하고, 수희가 적 정찰을 차단하면 전투를 통제해낼 수 있다.

* * *

* * *

거친 숨소리, 긴장으로 가득한 인간들.

투박한 가죽옷을 입고 철검과 나무 방패를 든 값싼 용병에서 마법 저항 장비를 장착한 기사까지, 장비는 달랐으나 행군하는 속도는 같았다.

특이한 점은 창을 든 징집병이 없었다.

후작가가 자애로워서 징집병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귀족들이 징집병들을 험하게 다룬다고 해도 손해를 무시하지 못했다.

징집병을 잃으면 영지에 타격이 컸다. 농번기에 농민이 없다면 한해의 농사를 그냥 날리게 된다.

특히, 가죽옷도 입지 못한 징집병은 대량 살상 마법에 더욱 약했고, 적의 성을 점령하고도 적의 마법에 징집병을 대량으로 잃어버리면 이기고도 패배한 전쟁이 된다.

그래서, 적에게 마법사가 있다면 용병 비중이 높은 것이 좋았다.

경험 많은 용병은 하급 지휘관의 역할을 할 수 있고, 전선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점처럼 흩어진 하급 지휘관은 상대 마법사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무슨 일이지?”

후작가 기사단장의 부관은 행군 간의 이상을 알아차렸다.

선두 정찰대의 귀환이 아니기에 최우선 사항이 아니더라도, 전투를 앞둔 만큼 완벽해야 했다.

기사단장의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해 무능한 자로 찍히고 싶지 않았다.

“지원마법사가 움직였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부관은 인상을 썼다.

지원마법사는 부관의 통제 밖의 사항이었다.

거기다가 지원마법사의 부대는 다른 부대와의 교류를 거부하는 부대였다.

“베리랑트님.”

부관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후작가 기사단장 베리랑트가 천천히 다가와 긴장하지 말라는 뜻으로 부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언제봐도 기분 나쁘군.”

“지휘 선상에서 벗어난 부대라 아쉽습니다.”

부관은 기사단장의 말에 호응하면서도, 살짝 말조심했다.

기사단장이 지원마법사를 쉽게 말하지만, 부관에게는 아니었다.

지원마법사나 지원마법사 관리자나 모두 기분 나쁜 건 사실이지만.

부관은 성큼성큼 걷는 기사단장 베리랑트의 뒤를 따랐다.

*

검은 로브를 걸친 두 명의 여인. 긴 지팡이를 든 한 명의 늙은이.

로브의 후드를 둘러쓴 두 명의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푸른색의 머리카락과 붉은 머리카락이 후드 안쪽에 보였다.

“단장님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지? 관리자.”

짧게 내뱉는 질문에 지원마법사 관리자가 손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는 척했다.

늙은 관리자는 굳어진 자신의 표정을 숨겼다.

지원마법사 관리자인 만큼 비싼 시약을 다루고 상당한 재정을 소모하지만, 무력으로 기사단장에게 뻗댈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원마법사 오노르가 이상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이상 반응?”

“네, 자리에서 벗어나 돌멩이를 잡고 힘을 투사했습니다.”

베리랑트가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관리자가 돌멩이를 넘겨주자 베리랑트는 인상을 썼다.

“평범한 돌멩이지요?”

돌멩이에는 마법의 여운만이 강하게 느껴졌다. 지원마법사가 돌멩이에 힘을 투사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베리랑트는 살짝 인상을 썼다.

관리자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방지게도 관리자 본인이 돌멩이에서 이상을 발견 못 한 이상, 베리랑트도 무언가를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느껴졌다.

챙­.

“너는 내게 질문할 자격이 없다.”

베리랑트의 검날이 관리자의 목에 닿았다.

“기사단장님. 이건 너무 무례….”

얼굴을 붉히며 불만을 터트리려다가, 단순한 위협을 넘어, 목이 따끔해지자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전시다. 전군을 통제하는 건 나고. 예의를 따지려면, 후작가에 돌아가서 따지게. 아, 그러려면, 살아서 돌아가야겠지.”

관리자는 모욕감에 지팡이를 잡은 손을 떨었다.

관리자의 전투 마법 수준은 기사단장이 눈길을 줄 정도도 되지 못했다. 관리자의 목에 검을 겨누면서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상황에 치욕을 느껴 이를 악물었다.

기사단장의 눈은 두 명의 검은 로브를 입은 여인을 담을 뿐이었다.

푸른 머리와 붉은 머리의 지원 마법사들을 살폈다.

“동료가 위험한데도 어깨 한번 꿈쩍이지 않는군.”

“....”

“명령을 받아야 움직이는 것들이니까요.”

관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부관이 처음부터 자신에게 한 질문이었다는 양 말을 받았다.

“그럼, 왜 돌멩이에 움직인 걸까?”

“오류가 일어났거나 지속 명령이 유지되고 있는 거겠지요.”

“지속 명령?”

“뭐, 침입자를 경계해라. 적 마법사를 경계하라 같은 거 말입니다. 이런 명령은 계속 유지되니까요.”

“관리자를 지켜라는 지속 명령이 아닌가 보군.”

“헐, 큰일 날 소리 하십니다.”

부관은 기사단장이 관리자를 압도하는 분위기가 좋은지, 웃으면서 말했다.

자신의 목을 손을 긋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런 명령을 내렸다가는 반란죄로 잡힙니다. 관리자라고 해도요.”

지원마법사의 주인은 후작이지, 지원마법사 관리자가 아니었다.

관리자를 지켜라는 명령은 관리자를 벌할 수도 있는 주인을 위협하는 명령이었다.

부관은 지원마법사와 관리자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지원마법사가 귀족가의 큰 힘인 만큼 관련 지식은 참모에게 필수였다.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멀리 보았다. 후켄스 백작가 방향.

지원마법사가 무언가를 느껴서 움직였다면, 적은 숨은 능력이 있는 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어쩌면, 힘든 싸움이 되겠어.”

아무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 * *

* * *

후켄스 백작가에 전운이 감돌았다.

아름다웠던 정원의 나무는 베어져 성문을 보강하는 데 사용되고, 꽃이 피었던 자리에는 병사들의 임시거처가 만들어졌다.

적당한 항복이 아닌 결사 항전을 각오한 태세.

영지의 농민들을 징집해 성을 보강하고,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있어야 할 자리를 지정했다.

고급스러운 가구 위에 험한 종이가 어지럽게 펼쳐졌다.

한쪽 구석에 적당히 놓인 술잔은,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기는 후켄스 백작의 집무실 같지 않았다.

뺨은 붉었으나 눈빛은 선명했다.

기사들과 관리들이 급하게 만든 방어전 관련 서류를 보다가, 급히 짧은 메모를 작성해 시종 편을 통해 방어준비를 하는 기사들과 관리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시란느가 언제 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후켄스 백작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란느에게 외모를 꾸미라고 할 걸 그랬나?”

시란느의 호위대가 보고 듣은 정보는 후켄스 백작에게도 들어왔다.

물론, 시란느가 포섭한 자들, ‘숲속에서 걸어 나온 자’들이 강력함은 호위대를 통한 정보가 아니라, 돌아가는 전황 파악으로도 알 수 있었다.

호위대의 정보로 파악한 내용은 보다 상세한 것들.

강력한 마법사가 여성이고, 마전사도 여성이라는 점. 이종족이 그들의 리더인 남성을 극진히 모신다는 것.

“주력 인원에 젊은 남자가 하나도 없어. 모두 젊은 여성에다가 연인 사이.”

후켄스 백작은 자신의 소환 명령에 늦장을 부리는 시란느와 준영을 원망하지 않았다.

더 큰 먹이를 탐내는 건 인간의 본성이니까. 다만, 먹이 크기를 재보다가 시기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황 파악이 확실한 것 보면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이지만.”

백작이 허무하게 무너지면, 시란느 역시 허무하게 무너진다.

욕심이 있다면 반드시 도울 것이다.

다만, 성향을 분석해봤을 때, 시란느가 조금 더 꾸미고 갔다면 유리한 전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무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시종이 백작님이 바쁘시다며 입장을 막으려고 하지만, 두 여자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울렸다.

“병신년들.”

백작의 눈빛이 한없이 차갑고 서늘해졌다.

백작 부인과 백작 부인의 딸 세니안.

자신의 부인이고 딸이면서도, 백작가가 아니라 후작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 년들.

적령기인 딸 세니안뿐만 아니라, 백작 부인 역시 한 아이를 낳은 여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미모의 1/10만큼만 영리했다면.

“수작을 부렸으면, 살아날 자리도 마련했어야지.”

똑똑한 년이었으면 선전포고가 선언되기 전에 후작가로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후작가에서는 백작 부인과 세니안이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경계의 영지 소유권을 빼앗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 빼앗을 생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후작가의 주둔지 공격 실패와 영지 내 식량 보급고의 약탈이 섬멸전을 강요했다.

백작 부인과 세니안이 죽어도 후작가에서는 아쉽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죽음을 이용할 생각일 것이다.

후켄스 백작이 백작 부인과 세니안의 배신행위에도 처벌하지 않는 이유 역시 후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작은 입술 끝을 올렸다.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 상황이 되었어도 자신의 정원이 망가졌다고 화를 내려온 병신년들.

무의식중에도 후작가에 도움이 되는 짓을 하려는 두 년들.

그래도 외모는 아름다웠다.

자신의 주변을 미녀로만 채운 강자에게 줄 선물로 적당할 정도로.

귀족의 명예는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승리하면 단지 가족을 피난 보냈을 뿐이고, 패배하면 더 심한 모략으로 명예가 땅에 떨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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