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전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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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끝났다.
에리가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시란느님.”
시란느는 침을 꼴깍 삼켰다. 에리를 바라보자, 다가오라는 손짓이 보였다.
“네, 에리님.”
저절로 존칭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시란느가 백작의 자녀라고 해도, 강력한 무력을 접했다.
직접 대치했을 때는 상대의 전력을 추측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전력을 확인했다.
에리의 무리는 시란느의 호위대를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전멸시킬 수 있는 마그레 부기사단장의 전력을 전멸시켰다.
‘후켄스 백작가의 전력을 동원해야 할 정도야.’
이조차도 시란느가 백작가 소속이기에 후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엘프들이 보여줬던 은밀한 기동을 생각하면 지원 마법사들과 함께 하는 백작가 본대가 아니면 그대로 밀릴 것이다.
‘저들 중 누구도 후작가 부기사단장에 밀리지 않아.’
부대 단위 작전뿐만 아니라, 개별 격돌도 어렵다는 의미였다.
결국, 이들과 맞서려면 백작가 본가에서 방어전을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본가에서 방어전을 치를 상황이 오면 이미 백작가는 패배였다.
후작가에서 난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후작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누구에게 지느냐만 달라질 뿐이다.
“저것의 머리를 수습하세요. 다른 놈들 것도.”
“아아….”
시란느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고 올리는 사이 계산을 이어갔다.
‘이들이 없는 것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
후작가를 압박하려면 정보통제가 중요했다. 부기사단장 마그레뿐만 아니라 병사도 빠져나가면 후작가는 정보를 입수하고 대응할 것이다.
병사들까지 모두 확보하려면 포위 인원이 중요했다.
엘프들조차 강했지만, 그 수는 40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은 도망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감각이 뛰어나기에 놓치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부터 더 많은 인원을 동원했으면 더 확실했을 것이다.
‘백작님께서는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적장의 머리를 수습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후작가와 분쟁을 시작하겠다는 뜻이었다.
백작가에게는 이미 어느 쪽에 붙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그리고 답은 명백했다.
후작가는 백작가가 필요없지만, 이들은 백작가가 필요했다. 이들은 중간을 채워줄 인원이 없다.
시란느는 고개를 들었다.
에리와 마주했다.
“배려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란느는 호위대를 불러 수급을 수습시켰다.
갈 길이 멀었다. 어디에서 후작가와 에리 무리의 충돌이 일어나야 백작가와 시란느 자신에게 유리할 지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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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명 병사를 포로로 잡았다.
조금이라도 지휘선상에 있는 자들은 그대로 처리하니, 동원된 병력에 비해 살려줄 만한 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저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혹 인신공양 등을 생각하는지, 긴장한 얼굴로 시란느가 물었다.
“우리에게 넘기셔도 됩니다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숲속의 탑에 밀어 넣고 탑에서 죽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 번에 소모하는 것보다 다르게 쓰는 것이 낫다.
“노예병으로 쓸 생각이야.”
“아, 저들은 운이 좋군요. 고문 후에 처형은 피할 테니.”
노예병 역시 비참한 처지지만, 살아남는 것이다. 고문 등으로 신체가 상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병으로 쓰기 위해서는 가하는 가혹 행위에 한계가 있으니까.
이는 포로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전투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전투 때까지 살 수 있을 테니까.
“관리 인원을 빌려줬으면 해.”
“어느 정도를 원하십니까?”
“선임급 하나와 병사 서넛이면 좋겠군.”
“네, 그 정도는 바로 내드리겠습니다.”
시란느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응했다.
인력의 유출이긴 하지만, 이쪽에서 병사들을 직접 관리할 의도가 없음을 알아낸 것이다.
무릇 두 세력이 연합할 때, 전담하는 부분이 다르면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병력을 직접 관리하기에는 애매해.’
엘프들은 지휘관으로 적합했다. 감각이 뛰어나 한 부대를 맡긴다고 해도 상황을 그대로 인지해, 종속된 만큼 내게 바로 상황을 알릴 수 있다.
하지만, 병사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전술 능력을 키우는 건 미지수였다. 이종족이라고 느끼기 이전에 몬스터로 여기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바리스도 안돼.’
바리스는 탐색자 리더로 최상급이지만, 전쟁 지휘관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모두를 살리는데 전력을 다할 수 있지만, 손실을 각오하고 뛰어들지 못했다.
방어전만 치룰 예정이라면 상관없지만, 점령전까지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네, 말씀하세요.”
“켐프텐 주둔지를 가져왔으면 해.”
“켐프텐 주둔지라면, 아….”
후켄스 백작의 영지가 아니었다. 안토니오 후작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곳.
미궁의 경계를 받을까 봐 이전에는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던 곳이다.
영구 주둔지로 운용하기에는 위험한 곳이지만, 안토니오 후작가에서 후켄스 백작가를 먹기 위해 수작 부리기에는 좋은 요지였다.
후작가 영지와 백작가 영지와 숲속의 탑을 잇는 길이 ‘Y’자 형태를 이루었고 가장 중앙이 켐프텐 주둔지였다.
후작가와 백작가 사이에 영지전이 일어난다면 주도를 우회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후켄스 백작의 외교력을 보겠어.”
“흐음….”
시란느는 확언하지 못했다. 후작가에서 백작가를 노려, 양쪽으로 병력을 보내는 양동을 펼치기 좋은 곳은 반대로 백작가가 후작가를 노리는 경로가 될 수 있다.
“어렵지 않을 거야. 오히려 도발을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백작가에서 먼저 후작가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 병력을 투사할 명분이 되니까.”
“…. 그럴 겁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지. 선물은 충분하지?”
“물론입니다.”
선물은 시란느와 시란느 호위대의 구출만이 아니었다. 마그레의 장비와 가치가 있는 전리품은 엘프들이 수거했지만, 죽은 병사들의 물건은 시란느의 호위대가 거두었다.
기사단의 정식 장비는 아니라고 해도, 목숨을 건 임무를 수행하러 오면서 허접스럽게 장비하고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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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탐색과 숲속의 탑 운영을 이어가며 소식을 기다렸다.
전술 훈련 역시 수행했다.
노예병으로 삼은 포로의 수는 30명, 엘프 총 50명 중에 여유 인원을 빼고 지휘관으로 동원하는 수 역시 30명으로 맞췄다.
피리레 팀과 드리아데 팀으로 나누어서 야전에 투입해 가상 전투를 벌였다.
축소된 모형판이 아니라, 실제 지형에 투입했다.
내가 양쪽 팀을 모두 지휘하면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승패가 갈라지기에 지휘는 피리레와 드리아데가 했다.
대신 나는 중간에서 각 팀 엘프들의 교신을 맡았다.
피리레가 피리레 팀 엘프들에게 내리는 지시를 멀리 떨어진 엘프들에게 전해주고, 엘프들이 팀리더를 맡은 피리레에게 전하는 보고를 대신 전했다.
실질적인 접전은 벌이지 않고, 미리 만들어놓은 등급표에 따라 접전 결과를 냈다.
각 부대를 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누고 같은 급이면 동수의 피해를, 아래 등급과 만나면 적은 피해를 입고 큰 피해를 주는 식의 규칙을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접전을 벌이느냐가 중요했고, 모형판이 아니라 실제 지형에서 각자 포로를 데리고 이동해야 했기에, 엘프가 아니라 노예병의 이동 속도가 부대의 이동 속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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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모의전은 드리아데가 승리했다.
의욕이 과했던 피리레는 노예병의 체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이전에 부대를 이끌어본 드리아데는 이 틈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나는 고개 숙인 드리아데의 턱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붉게 물든 얼굴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천천히 올리자, 부끄러워하며 두 눈을 감았다.
부끄러워하며 숨기려고 하지만, 입술 끝이 살살 흔들리며 기뻐하는 것을 숨기지 못했다.
모의전이라고 해도 승리는 능력의 증명이었고, 증명된 지휘능력은 전체를 통제하는 나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향상시킬만한 능력이었고, 그런 만큼 칭찬이 당연했다.
보상을 물어보면, 엘프들은 나와 어울리기를 원했다.
아직 아이를 가진 이가 없지만, 나와의 관계를 거듭할수록 가능성을 느낀다고 했다.
눈을 감은 채, 고개가 들어 올려진 드리아데에게 머리를 가까이했다.
촉촉한 입술에 닿자, 살짝 떠는 움찔거림이 그대로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내미는 혀가 느껴졌다. 장난스럽게 살짝 이로 누르자, 놀라 혀를 숨기면서도 몸은 더욱 내게 안겨 왔다.
드리아데의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대로 꼭 껴안고 혀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묵직하게 누르듯이 드리아데를 품에 넣어 고정하고 드리아데의 입을 탐했다.
드리아데는 꾹꾹 눌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미궁에 속해있을 때, 드리아데는 하급 지휘관이었다. 개인의 역량과 부릴 수 있는 지휘의 범위가 좁아 드리아데는 우든 엘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 상황이 드리아데에게 죄책감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섹스할 때만큼은 드리아데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보다, 그저 받아만 들여도 되는 수동적이고 압박받는 상황을 선호했다.
“흐읏, 흑 흑 흐으.”
드리아데가 울먹이며 떨었다.
두 팔로 잡고 다리로 누르는 것 이상으로, 몸 전체로 꽉 누르면서 그녀의 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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