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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 반격 (105/139)

〈 105화 〉 반격

* * *

화려하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전에 마법사를 노출할 생각 없다. 전사로도 가능하니까.

40명의 엘프.

일렬로 늘어선 채 빠른 걸음.

훈련과 실전으로 단련된 자신감이 엘프들의 걸음마다 묻어나오고 존재감을 이끌었다.

사람은 크고 무거운 것뿐만 아니라 같은 형태의 다수가 동시에 펼치는 동작에도 압도당한다.

“적은 정규군이지만, 정규군이 아니지.”

괜히 귀족들이 문장을 중시하고, 기사단이 복장을 통일하는 것이 아니다.

통일된 외형은 아군이 전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확신을 제공하고 결과로 이어낸다.

적은 훈련받아 통일된 움직임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정체를 숨기기 위해 복장과 무기를 용병처럼 자유롭게 갖췄다.

마치 창­ 하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40의 엘프가 동시에 뽑아내는 검은 적을 움츠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순간적인 압도는 동시에 튀어 나가 함께 적과 마주해야 할 집단전에서 큰 차이를 만들었다.

적의 선임급 병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동시에 달리기 시작하는 엘프들의 기세를 묻혔다.

같은 압력을 받더라도 압력을 이겨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각 병사마다 달랐다.

용병처럼 꾸민 복장과 정체를 숨기기 위해 통일성을 유지하지 않고 벌였던 전투가 독이 되었다.

관성은 기사들조차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병사들에게는 기습과 같았다.

아무리 개방 지형이라서 시야가 열려있고 엘프들이 돌진이 아닌 빠른 걸음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병사들은 눈앞의 적과 그 주변만을 보고 반응하는 것이 전부였다.

선임급 병사가 명령에 따라 유도한다고 해도 제대로 진형을 변경하지 못했다.

엘프가 휘두른 검이 병사의 가슴을 갈랐다.

그대로 병사를 밟고 지나가며 대형을 유지했다.

일렬로 늘어선 엘프들의 간격이 넓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같은 전력을 갖춘 집단도 급히 뒤돌아 싸워야 한다면 큰 피해를 당한다.

거기에 엘프와의 역량 차이가 더해졌다.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 * *

“엘프들이라니,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이거, 후작님한테 한 소리 듣겠는걸.”

부관의 보고에 부기사단장 마그레는 턱을 긁었다.

“대응이 필요합니다.”

부관이 말했다.

뭔가 반대가 된듯한 대화. 부관이 여러 대책을 말하면 지휘관이 그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일반적인 상황과 다른 대화가 오갔다.

부관이 지휘관에게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 부기사단장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뭘 선택할까?”

재미없어졌다는 듯이 늘어지는 마그레의 말투에 부관의 표정이 완전히 굳었다.

부대 지휘관이라면 병력 보존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후작의 명령을 수행하는 장기말이라면 후작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시킨 것부터 해야겠지. 전리품을 바로 부수는 건 취향이 아닌데. 부관.”

“네, 대장님.”

“흐, 그래. 네가 병사들을 지휘해서 저들을 막아라.”

“대장님께서는…. 네, 넷 알겠습니다.”

부관은 마그레의 의도를 파악하려다가, 돌아오는 음침한 눈빛에 말을 얼버무렸다.

부관이 병사 전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시란느만 죽이면 병사들을 잃어도 예상외의 사태로 우겨버릴 수 있다.

시란느 호위대 중 몇몇이 도망쳐 진실을 알릴 테니 귀찮아질 테지만, 이종족의 등장이라는 이슈로 묻을 수 있을 것이다.

*

마그레가 검을 휘둘렀다.

수에 밀리면서도 병사들을 막아내던 호위대 병사가 피를 내뿜으며 쓰러졌다.

군대와 군대의 전투에서는 정확하고 빠른 지휘가 중요했다.

그래서, 일부 지휘관은 후방이 아니라, 선두 진형에서 함께하면서 직접 지휘해 승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인 전술이 아니었다.

지휘를 빠르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고 해도, 난전 상황에서 날아온 눈먼 화살에 맞아 죽으면 그 부대는 그대로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다만, 지휘관이 어디에서든 날아오는 화살을 쳐낼 수 있고, 난전에서 펼쳐지는 변수를 모두 무마할 강자라면, 단점이 사라졌다.

“귀찮게 하는군.”

검을 털어 묻은 피를 떨쳐내고는 급히 움직이는 시란느와 시란느의 호위대를 보았다.

이때까지 호위대 전부를 죽일 생각이었기에 앞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시란느만을 노릴 생각이기에 넓게 인지를 확보할 이유가 사라졌다.

“흠?”

호위대 하나에 대한 인지는 거두었지만,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범위의 인지는 거두지 않았다.

“위다.”

곡사로 날아오는 화살이 있을 수 있기에 공중도 경계 범위 안이었다.

반사적으로 검을 잡고 자세를 잡았지만, 휘두르지 않았다.

그대로 뒤로 뛰어 피했다.

“투석기?”

날아오는 것은 거대한 바위. 정통으로 맞으면 마그레도 핏덩어리가 되어버릴 무게와 운동량을 가졌다.

물론, 당할 리 없었다. 자유 낙하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지만, 마그레가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낙하였다.

콰앙­

거대한 소음과 진동이 마그레와 시란느 사이에서 울렸다.

“저 엘프들과 관련된 공격인가?”

낙석이 만든 크레이터 너머, 시란느에게 물었다.

“당신, 당신은 안토니오 후작가 부기사단장 마그레인가?”

시란느는 마그레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을 질문으로 되돌렸다. 시란느 역시 엘프들이 투석기까지 동원한 것, 시란느가 맞을지도 모르는데 날릴 정도로 정확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놀랐지만, 그녀를 죽이려는 마그레의 정체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설명해도 될까?”

부드러운 목소리.

마그레의 시선도 시란느의 시선도 크레이터를 만들 정도로 크고 무거운 바위를 향했다.

바위 자체의 무게만큼 충격량이 컸는지, 금 간 바위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둥근 보석이 깨어지는 것처럼 바위가 갈라졌다.

쭉 뻗은 팔과 다리, 몸에 달라붙는 옷. 세련된 디자인은 실전을 위한 옷임에도 미모를 가리지 않았다.

“나는 저 숲속에서 나온 이와 함께 하지. 에드샤라고 불러도 좋아.”

시란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고 웃었다.

시란느와 안면이 있는 에리는 키벨레 종족의 특성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족으로서 에드샤와 닮았다.

“너를 죽이기 위한 공격이지.”

시란느와 마그레의 중간에서, 에드샤는 마그레를 막아섰다.

*

*

*

‘에드샤면, 시란느를 보호할 수 있다.’

시란느를 기습한 무리에 강자가 끼어있다.

시란느보다 훨씬 강하기에, 우리 일행이 시란느와 합류하기 전에 시란느를 죽일 수 있는 강자.

‘처음부터 시란느를 노렸다면 지켜내기 어려웠겠지만.’

그는 시란느뿐만 아니라 호위대 전부를 전멸시키려고 욕심을 냈다.

엘프들을 동원하는 동시, 하늘을 날 수 있는 아리나란에게 에드샤가 만든 바위를 들고 날아올라 떨어트리라고 지시했다.

‘에드샤가 돌과 흙을 뭉쳐서 만든 바위는 내게 종속되어있지.’

땅에 떨어지자마자 종속된 바위가 품은 영역으로 에드샤를 [종속체 배치]로 보냈다.

“네놈들.”

마그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멀리서 다가가는 나를 보았다.

나의 등 뒤로 붉은 화염이 피어올랐다. 헤스티의 작품이다.

헤스티의 지원이면,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엘프들을 이끌고 적 부대를 무력화시킬 것이다.

마법사를 제거할 수 있는 강자가 없으면, 화염 마법사는 군대에 극단적인 상성을 발휘한다.

나는 에리와 바리스와 함께 섰다.

수희는 숨었다. 마그레가 기습적으로 도망치려고 해도 수희에게 막힐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시란느의 보호가 아니다.

‘더 큰 영향력.’

시란느는 이를 위한 통로이자 수단.

시란느를 제거하기 위해 동원한 정규군과 강자를 제대로 확보하면, 후작가를 압박할 수단이 된다.

살아있을 필요 없다. 사체도 증거가 된다.

‘시란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후작가 영지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을 점령할 것이다.

후켄스 백작과 안토니오 후작과 연관되면서 우리 역시 정보를 모았다.

안토니오 후작의 야망은 후켄스 백작가에 한정되지 않았다.

미궁 쪽을 향해서도 뻗어 나왔다. 세밀하고 얄팍하게, 미궁 주변의 교단과 권력자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이때까지 밝혀진 미궁에서 허용하는 거리와 병력에 맞게.

그 요지는 숲속의 탑과 멀지 않았다.

‘야망이 있는 자가 땅을 야금야금 빼앗기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처음에는 소수의 강자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막힌다면 규모를 키울 것이다. 그의 인맥까지 동원할 것이다.

‘미궁에서 반응할 정도의 병력은 얼마일까.’

몬스터 웨이브.

미궁 주변으로 병력이 배치되어 미궁으로 들어오는 탐색자가 줄어들자 미궁은 밖으로 몬스터를 토해냈다.

기존 권력자는 이를 방지하려 하고, 혹자는 이를 방지하는 규칙을 이용하려고 한다.

‘몬스터 웨이브 그 자체는 미궁에게 이익일까?’

탐색자가 다시 들어오게 한 결과는 미궁에게 이득이다.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 그 자체는 어떨까.

‘소모뿐일 가능성이 커.’

미궁은 다른 세계의 운명과 혼을 집어삼켰다.

하지만, 미궁에서 튀어나와 죽은 몬스터는, 아니 몬스터는 미궁과 연결되어있다고 해도 그 몬스터에게 죽은 미궁 밖 인간의 운명도 미궁이 집어삼킬까.

‘아니야. 그랬다면, 주기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켰겠지.’

나는 레리아나의 검을 다시 잡았다.

그 끝으로 부기사단장 마그레를 가리켰다.

‘시란느 호위대 습격’, 두 번째 페이즈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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