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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00화 (100/139)



〈 10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00화

숲속의 탑을 수정해 숨은 방을 하나 추가했다.
내가 잠깐씩 머물 거라고 했더니, 헤스티가큼직한 침대부터 마련해서 중앙에 들여놓았다.

‘역시, 신성 영역 안에서는 잠식 저항이 소모되지 않아.’

“하아.”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쫓기듯 미궁 탐색을 해왔지만.’

내가 미궁을 탐색해야만 하는 이유, 미궁 아래에서 침식의 물결이 올라온다면 숲속의 탑으로 피하면 된다.

‘문제는 이 신성 영역도 안전하지 않다는 거지.’

탑의몬스터는 드랍 테이블 설정에 비례했다.
탑 1층의 리크는 미궁 지하 10층 이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으로 드랍 테이블을 설정해놓았기에 미궁 지하 10층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는 실력자에게 뚫릴 것이다.
탑 2층의 아리시는 미궁 지하 15층정도 난이도였다.
나와 일행이 방어에 가담하면 더욱 튼튼해지지만, 교단에서 사도급이 움직이면 결국은 뚫릴 것이다.

‘탑이 강해지는 방법은 탑에 들어온 침입자를 죽이거나,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해서 드랍 테이블에 설정하거나 내가 강해지는 것.’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하는 것과 내가 강해지는 것은 이때까지 해왔던 미궁 탐색을 이어가면 되었다.

탑에 들어온 침입자를 죽이는 것은 애매했다.
미궁 지하 10층을 넘지 못하는 수준의 침입자를 죽이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유인이 문제였다.
유인을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탑이 완전히 정복될 가능성도 커졌다.

‘1층 일반 리크는 공략 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망칠 수도 있게. 하지만, 계단을 지키는 수문장 리크에게는 도망 못 치도록.
2층으로 올라온 침입자는 반드시 죽인다.’

탑을 운영할 방침을 결정했다.

* *
* * *
* * *

숲속의 탑에 대한 소문은 우연히 숲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은 사람들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저택을 지키는 엘프들도 바빠졌다.
저택을 둘러싼 숲과 탑을둘러싼 숲은 이어져 있어 엘프들의 생활권으로 다가오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냥 죽여버릴 수 없기에 ‘이곳은 준영님의 숲’임을 알리고, 접근 금지 구역임을 알려야 했다.
물론, 숲속의 탑은 접근 금지 구역에서 미세하게 벗어났다.

*

여느 때와 같이 숲으로 들어온 인간들을 경계조가 발견하고, 로브를 둘러쓴 채 경고했다.
말로는 무례하게 받아치는 탐색자는 많아도무시하는 탐색자는 적었다.
엘프가 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탐색자들은 숲에서 은밀한 접근을  엘프가 먼저 말하기 전에 알아차리지 못했고, 이는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 내리기 충분했다.

하지만, 물러갔던 인간들이 다시 들어왔다. 5명이 20명으로 인원을 보충하고 경고했던 지점으로 다가왔다.
그에 저택의 외부 소통을 맡은 에리뿐만 아니라, 헤스티와의 마법 수련이 지겨웠는지, 네리미아도 따라왔다.

“피리레, 저길 봐요. 옷을 보니까, 귀족 같아요.”
“네네, 보고 있습니다.”

에리를 비롯한 드리아데, 피리레, 네리미아가 엘프들과 함께 숨은 가운데, 고급 장비를 입은 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후켄스 백작의 자녀 시란느다.  숲의 주인과 대화하고 싶다.”

움직임과 자세를  때, 무술 수련을  귀족이었다. 피부와 머릿결이 고운 것을보면 험하게 구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환경에서 경지를 올렸음을 알 수 있었다.

드리아데와 피리레, 네리미아의 시선이 에리를 향했다.
에리의 판단이 필요했다. 준영의 방침이 외부 세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백작의 자녀라고 해요.]
[후계자라고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서열이 낮은 딸인가 보군.]

에리는 저택의 준영과 의견을 나누었다.
준영이 직접 개입하지 않은 것은 에리의 지휘 능력 향상을 위해서였다. 다만, 조언을 구하는 원거리 통신은 허용했다.
준영이 미궁을 벗어나지 못해 귀족과 접해본 적 없지만, 귀족 출신 탐색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긴 불침번 시간 동안 나누었던 대화는 귀족을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에리, 너의 느낌대로 대응해도 좋아. 외부 세력과의 접선이 필요하지만, 무력 과시가 없다면 무시당할 수 있지.
일단 우리는 경고를 했고 상대가 경고를 무시하고 움직였으니,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
네가 어떤 판단을 하든지 간에 내가 보조해줄 수 있다.]
[예뻐요.]
[….]
[대화를 나눠볼게요.]
[…. 알았다.]

에리는 대응을 결정했다.
에리는 준영의 지배 구조를 이해하고 있었다. 다스리는 여성들의 이성 접촉을 독점함으로써 집단의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또한, 에리는 준영에 대해 경배를 넘어 숭배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준영의 여인이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는 걸 상상하니 에리의 기분도 나빠졌다.
외부와 접점을 유지해야 한다면 저 시란느 같은 여성이 나았다.
백작의 딸이면서, 가문 내에서 곱게 키워지지 않고 외부 무력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면 그만한 사연이 있을 테지만,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틈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에리는 지시를 내렸다.
대화를 결정했다면 저쪽 전력 이상을 보여주는 것이 나았다. 전력 노출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쪽의 전력은 네리미아와 엘프들이 전부가 아니니까, 네리미아와 엘프들을 전부로 착각하고 욕심을 품는 자는 철저히 패배할 것이다.

“헛.”

침입자들, 시란느 무리에게서 비명과 같은 침음이 터져 나왔다.
30명이 동시에 기척을 드러냈다.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은밀한 접근이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졌다. 이를 해냈다는 말은 수준 차이가 극심하다는 의미였다.
단순히 봐도 20명 대 30명의 전투가 아니라 기습으로 끝나는 전투가 될 것이다.

“저는 후켄스 백작의 자녀 시란느입니다.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무례를 범했습니다.”

무력 과시의 효과는 시란느의 대응에서도 나타났다.
자신을 소개하는 말에 사과를 잇는 대화는 시란느가 전력을 평가할 줄 모르는 애송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 이야기를 들어주지.”

에리가 얼굴을 드러냈다.
시란느보다 앳된 모습에당황이 엇비쳤지만, 모습으로 얕잡아보기에는 둘러싼 엘프들이 내비치는 살기가 무시무시했다.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적당한 자리가 있을까요?”
“좋아.  따라와라. 저 여검사 둘만 호위로 허락하지.”

에리가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뒤돌아 걸었다. 저택으로 향하지 않았다.
숲의 한 공터에, 휴식을 위해서 우든 엘프들이 나무 사이에 지붕을 잇고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놓은 곳이 있었다.

“하아.”

시란느는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지만, 눈을 반짝였다.

* * *
* * *
* * *

시란느가 우든 엘프가 타온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예상 밖으로 뛰어난 차에 놀랐는지 눈썹이 휘어졌다. 그래도 흘러나오려는 탄성을 숨기고 입을 열었다.

“후켄스 백작님께서 우려하고 계십니다.”
“백작이라….”

나는 덤덤하게 되새겼다.
시란느의 눈에 실망이 엇비쳤다.

세금을 피해 도망 나온 난민이나 그들의 촌장, 혹은 소유지가 없는 땅에 가문을 세우려는 야망을 품은 자라면 백작의 개입 가능성에 흔들릴지 모르지만, 미궁과 탑은 병력의 수가 아니라 강자의 무력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대규모 병력 파견은 미궁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대규모 병력이 파견되면, 미궁을 오가는 탐색자들이 압박받을 수밖에 없고, 미궁으로 들어오는 탐색자가 줄어들면, 미궁은 몬스터를 밖으로 내뱉어 보복할 것이다.

‘미궁 안으로 탐색자가 들어오고 죽고 해야 미궁이 성장하니까.’

이는 탑을 소유하면서 확신하게 된 사실이다.

“답답하겠군. 우려할 뿐, 병력을 투사하지 못할 테니.”
“백작가는 역량이 있는 가문입니다.”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나? 먼저 병력을 투사했다가는 다른 모든 귀족의 원망을 받을 텐데.”
“….”

시란느의 압박이 소용없음을 내비쳤다.
미궁에서 몬스터를 밖으로 내보냈을 때, 후켄스 백작가만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귀족들은 원인이 된 후켄스 백작가를 원망하고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귀족들이 연합하면 미궁에게는 몰라도 백작가에게는 보상받을 수 있을 테니.

“그대가 움직인 것을 이해한다. 숲속의 탑이 활성화되면 그만큼 백작의 영지가 줄어들겠지.”

숲속의 탑과 가장 가까운 귀족가는 후켄스 백작가였다.
백작은 만에 하나 숲속의 탑이 미궁처럼 성장한다면 영지 일부의 소유를 포기해야 했다.
무법지대가 되어야 탐색자들이 꺼리지 않고 오갈 테니.

“나의 부대를 보았겠지. 그들을 제압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부대가 필요할 것 같나?”
“백작가 기사단이 움직여야 하겠지요.”
“그 기사단이   주변에서 주둔하며 전투를 치르면 미궁을 출입하는 탐색자들이 꺼리겠지.”

권력을 위해서면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귀족이 교섭을 앞세우는 이유다.

“주둔을 인정하신다면, 숲의 점유를 인정하고, 주둔지 사용료를 내겠습니다. 물론 주둔의 목적은 숲의 장악이 아니라, ‘숲속의 탑’ 공략입니다. 숲 아랫마을과 거래할 때도 제값을 치르겠습니다.”

숲 아랫마을은 사실상 준영이 지배했다. 외부 몬스터와 도적에 대한 보호를 이루어낸순간, 촌장은 세금을 거두어바쳤다.
거기에 네리미아를 위해서 수로를 확보했고, 이는 저수 용량 확보로 이어져 풍성한 수확을 약속했다.
숲 아랫마을로 유민들이 모일 뿐만 아니라, 자리 잡은 농민들은 세금을 더 내더라도 자리를 보장받고 싶어 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다만, 우리가 정한 숲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시란느를 물끄러미 보았다.
욕망을 가진 자는 이용하기가 쉽다. 특히, 닥친 상황이 억압되어 꼬였다면 더욱.

“이후의 교섭은 자네를 통하도록 하지.”
“원하는 바입니다.”

아름다운 백작가의 자녀가 무장하고 병사들과 움직인다는 것.
후계자 싸움에서 이미 패배했거나 처음부터 배척당했다는 의미였다.
병사들과 떠돌아다닌 여성을 권력자가 아내로 삼을  없으니, 결혼으로 외부의 권력을 끌어오는 것 자체가 차단되었다.
그러나, 시란느의 눈은 포기한 자의 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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