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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2화 (92/139)



〈 9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2화

오크 지휘관은 무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크의 성격을 뒤집을 만큼 특별하지도 않았다.
수희가 오크 주술사를 암습하고 빠지자, 밀집 대형을 포기하고 각 오크의 판단에 따라 아리나란의 투석을 피하라고 지휘했다.
산발적으로 아리나란을 향해 쏘아내는 단창 투척을 자제시키고, 투척 능력이 뛰어난 오크들을 따로 편성해서 단창을 모아주었다.
그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고도를 낮추던 아리나란이 깜짝 놀라 다시 고도를 올렸다.

‘오크는 이길  있어 보이면 포기하지 않지.’

일행의 주력인 바리스 파티는 굳건히 승점을 이어가고 있지만, 엘프들은 아니었다.
첫 격돌에 부상을 입기도 했고, 오크들은 무시할만한 부상에도 나는 뒤로 빼고 미궁  거점으로 역소환했다.
조금만 더하면 엘프들을 몰아붙인 오크들이 바리스 파티를 포위할 수 있는 그림이 나왔다.

‘종속된 엘프와 사물로 시야를 확보하고, 실시간 개별 지시와 강제 역소환이 가능하다.’

한발만 더 나아가면 이길 것 같은 착각을 넘어, 이기고 있다는착각까지 오크에게 심었다.

“재구축.”

에드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마법을 시전했다.
원거리 공격을 막아냈던 흙기둥처럼 불규칙적으로 흙벽이 쏫아올랐다.
방벽을 온전하게 재건할 필요 없었다. 오크들이 원하는 포위를 방해하고 고립된 오크를 만들면 충분했다.

분노한 오크들에게 쉽게 무너졌지만, 흩날리는 흙먼지는 에드샤의 아군이었다. 시야를 잃은 오크의 품 안으로 에드샤의 암석으로 강화한 주먹이 박혀 들었다.
원래 에드샤는 마전사였다. 우리와 함께 싸우고 경험을 얻으면서 마법 능력이 크게 성장했다.
하지만, 마법으로 상황을 만든 후라면, 마법에 비해 적게 성장한 접근 능력으로도 마무리해낼 수 있다.

쿠오오오-.
광음. 하지만, 오만함이 빠지고 처절함이 묻었다.
오크 지휘관의 패배를 알리는 신호. 다음을 기약하며 퇴각을 명령하는 포효.

“하지만, 늦었어.”

오호호 거리는 수희의 외침이 들려왔다.
추적 격살은 수희의 특기였다. 저렇게 흥분한 것처럼 보여도 반격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냉정했다.

*
*
*

나는 아리나란을 내려오게 하고 주력 일행을 모았다. 수희 역시 복귀했다.

“이대로 휴식한다. 6시간 뒤에 출발할 거야.”

나는 바리스에게 다가갔다. 손가락등으로 바리스에게 묻은 오크의 피를 닦았다.

“바리스, 조금 더 기다려줘.”
“아, 아니, 아니에요.”

바리스가 밤을 기대하던 속마음을 들킨 것에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 쳤다.
나는 전투와는 다른 흥분을 다스리려는 양,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톡톡거리는 바리스를 두고 브리핑을 했다.

“한 번에 많은 오크를 처치한만큼, 오크들에게 빈틈이 생겼을 거야. 다른 오크 부족이 우리와 싸운 오크의 사냥터를 넘볼 수도 있고.
참고로 여기 오크들은 사냥감이 부족해서 굶주리기 전에는 다른 부족과 싸우지 않아.”
“지금 다른 오크 부족이 굶주렸을 가능성은요?”

나는 헤스티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오크가 굶주려서 다른 오크들과 싸우더라도 우리가 난입하면 싸움을 멈출 거야. 사냥이 우선이거든.”

결국, 정면 승부를 겨뤄야 한다는 사실에 헤스티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의 사냥터’ 층에서는 ‘엘프 전장’층처럼 다툼을 이용할 수 없음을 이해했다.
이미 대규모 전투에서 승리한 만큼 소규모 접전은 충분히 감당할  있다.

다만, 이제는 제 몫을 해내는 우든 엘프 드리아데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에 비해 다크 엘프 피리레는 담담했다.
가치관의 차이라기보다도 드리아데는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 교전을 이끄는 위치였고, 피리레는 후방에서 지원업무를 맡았기에 후회할 과오가 적었다.

짝-.
나는 손뼉을 쳐 브리핑에 집중시켰다.

“이 미궁층에는 구출 임무가 있어.”
“구출요? 탐색자가 잡혀있나요?”
“아니, 몬스터가….”

나는 습관적으로 미궁에서 보는 타종족을 몬스터라고 단정하곤 했다. 하지만, ‘오크의 사냥터’에서 나온 구출 대상을 굳이 몬스터라고 칭한다면 중립 몬스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몸이 있는 망령과 비슷한 느낌이야.”

일행의 시선이 나의 허리에 매달린 검을 향했다. 레리아나의 검을 얻었던 성에 있던 사람들은 몸이 있는 망령 같았다.
나는 부드럽게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레리아나가 괜찮다는 듯이 조용히 징 울렸다.

“도와줘도 별다른 보상이 없다고 알려져 있어.”

하지만, 우리 일행에게는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마음가짐이 그대로 능력이 되는 용사 바리스가 있다. 외부에서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바리스의 용사 특성은 선행으로 성장을 가속시킨다.

“흐음….”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회차에서 바리스는 이전 층 ‘인어의 눈물’에서 희생되는 동료를 보고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마음에 상처가 맺힌 상태에서는 ‘망령’을 구하는 행동을 해봤자 스스로 가식으로 느낄 뿐이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오크들에게서 구출해서 ‘계단’까지 가면 돼.”
“계단? 우리가 이동하는 계단과 같은가?”

페로가 내게 물었다. 늙은 몸으로 변한 후로 씁쓸한 미소만을 지은 채 듣기만 했던 페로도 자신의 특기와 관련되자 입을 열었다.

“같아. 하지만, 다르게 작용하지. 구출한 이들과 함께 이동해도계단 너머에 도착하는 것은 탐색자들 뿐이야.”
“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걸까요?”
“그냥 사라지는 것일 수도….”

나의 답에 헤스티는 의문을 표현하고, 페로는 비관적인 추측을 내놓았다.
나는 나의 추측을 말하지 않았다.
미궁 지하 15층에서 계단으로 도착하는 구출자를 발견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탐색자는 미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지 못한다.

‘이전에 내가 했던 추측과 이어질  있다.’

‘엘프 전장’ 미궁층에서 했던 추측.

엘프 전장에서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 둘 다를 배신하면 쉽게 이득을 얻는다.
하지만, 미궁에서 쉬운 편법이 있다면 함정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어렵게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를 구했다. 구했다고 표현해도 된다. 그들에게 다시 종족을 번성할 수 있다는 희망은 구원과 다르지 않다.

‘그 보상은 다른 층과 연계될 거라고 추측했지.’

더 깊은 심층에서, 만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들이 다른 반응을 보일 거라고추측했다.
미궁에서 ‘계단’은 다른 미궁층과 연결된다.
함께 계단으로 돌입한 탐색자는 알 수 없어도, 구출된 망령은 다른 미궁층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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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피리레와 함께 요새에 남을까요?”
“아니, 드리아데. 너와 피리레도 함께 간다. 요새 경계는 다른 엘프들을 시킬 거야.”
“네, 주인님.”

‘오크 사냥터’층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창병 오크의 수는 유의미하게 줄였지만, 오크 지휘관과 병력 일부는 후퇴했다.
우리는 주력 일행이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만큼, 휴식처가 중요했다. 또한, 엘프들이 남아서 작업을 계속하면 단순한 재건이 아니라 마법으로 요새의 방어력이 올라갈 것이다.

수희를 필두로 출발했다.
에리가 긴장을 풀라는 듯이 피리레와 드리아데의 어깨를 툭툭 쳤다.

“괜찮아.”

에리가 조용히 다독거렸다. 사실 엘프는 함께 이동하는 것보다 전투가 시작된 후에 소환하는 것이 편했다.
함께 이동하고 전투하면서 일행과 호흡을 맞추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쉬게 하고 필요할 때 소환해 단편적인 화력으로 이용하는 것이 유리했다.
이미 탐색을 끝내 경험치를 몰아줄 수 있는 층이 아니면 더욱 그랬다.

그렇기에 피리레와 드리아데가 긴장했다.
단편적인 전투와 경험치를 양보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전장에서만 참가하는 것과 타인을 돌볼 여력이 없는 미지의 탐색을 함께하는 것.
개인의 성장부터 종족의 번영까지 달라지는 갈림길이었다.

함께 나서는  탐색은 피리레와 드리아데에게 계속 후보로만 함께할 것인지, 주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판가름 나는 시험 무대인 셈이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피리레와 드리아데를 도와주려는 에리처럼, 수희 역시 둘의 역량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날카롭게 살폈다.
부드럽게 도와주는 방식이든, 냉정하게 평가하는 방식이든 일행을 위한 행동이었다. 다른 이유로 데리고 간다고 말해, 의욕을 깎을 필요 없었다.

*
*
*

“계단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페로가 가리킨 방향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일행은 주변 지역을 유심히 살폈다.
평상시보다 더 주의를 기울였다. 일행만 계단을 향해 도망칠 때와 짐이 되는 구출자와 함께 할 때 고려해야  사항이 달랐다. 더 느리고 은폐도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해야 했다.

*

“길이에요.”

드리아데가 속삭이듯이 조용히 말했다.

“그래, 제대로 봤어. 인간의 길이 아니지만, 길이야.”

인간과 몬스터는 풀을 밟아 죽여 길을 만들지만, 엘프는 풀을 살린 채 길을 만든다.

“그럼, 구출 대상은 엘프일 수도 있겠군요.”

드리아데가 눈이 부신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우든 엘프에게 동족 구출은 환희할만한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는 오크의 사냥터이지만, 누적된 정보는 소규모의 엘프가 사는 곳을 오크가 쳐들어와 장악했다고 알려왔다.

길을 따라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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