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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1화 (91/139)



〈 91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1화

암석과 나무를 이용한 가설 요새, 그 중앙에서 나무를 태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한솥 가득한 스튜를 국자로 휘휘 적던 헤스티는 다가온 나를 향해 미소지었다.

“바로 드실 거죠?”
“그래.”
“흐흐, 아직 고기 상태가 좋아요.”

미궁 밖 저택과 연계되면서 식생활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에리가 저택 아래의 마을에 서는 장에 종종 들렸고, 사람들이 파는 고기를  왔다. 또한, 우든 엘프들은 육식을 즐기지 않았지만, 숲의 짐승을 사냥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음식은 미궁 안으로 가지고온 순간부터 변성이 시작되지만, 이미 일행의 독저항은미궁 벽 사이에 자라난 이끼를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헤스티의 표정이 예상외로 밝았다.
나는 나의 그릇에 고기를 가득 담는 헤스티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밝히기는.”
“히히. 고기 많이 드세요.”

헤스티가 들킨 속셈에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대에 눈을 반짝였다.
에드샤가 내게 안긴 일은 질투가 일어날 만한 일인 동시에, 내가 일행에게 보여줬던 패턴을 깨는 일이었다.
이때까지 전황이 결정되기 전에는 그녀들을 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패턴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혹시나 하며 설레여 하는 것이다.

“오늘 밤은 바리스와 함께해야겠어.”

헤스티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닌 척하면서도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바리스의 귀가 빨개졌다.
이미 사소한 질투는 성생활을 돋구는 양념 이상이 되지 못했다.
헤스티의 얼굴에는 오히려 더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자신에게도 차례가 올 것임을 예상하는 것이다.

*
*
*

“다 죽여버려요.”

헤스티가 앙칼지게 외쳤다.
바리스가 미간을 모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전투의 전조가 발견되었다.
긴장을 당길 시간이지, 풀 시간이 아니었다. 오늘  바리스와의 시간이 미뤄질 테니, 헤스티와의 시간은  뒤로 미뤄질 것이다.
물론 헤스티의 감정 표현은 스트레스 해소 수준이지, 작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헤스티, 미안.”

에드샤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헤스티를 놀렸다. 지난밤 에드샤는 내게 안겼고, 전투의 전조를 발견한 것 역시 에드샤였다.
미궁 16층은 ‘인어의 눈물’층보다 아래층이지만, 발아래 대지가 있는 층이었다.
거기에다가 눈에 띄는 요새 때문에 정보 차단이 불가능했기에, 마음 놓고 연기를 피울 정도로 위치를 드러냈다.
덕분에 에드샤의 대지력을 이용한 탐색도 거침없었다. 감각이 뛰어난 자에게 들킬까 봐 기교를 부릴 이유가 없었다.

‘오크들은 극소수의 강자로 이루는 암살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이미 일행은 당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을 이루어냈다.

*

크와오오-.
멀리서부터 오크의포효가 들려왔다.
오크의 포효는 단순한 각 개체와 집단의 전의고양이 아니었다. 강력한 능력을 부여하는 버프였다.
예전에 한 마법사가 소음을 차단하는 마법을 오크 무리에게 써서 효과를 보았다.
다만, 오크 주술사에게 쉽게 깨어졌다. 주술사가 없어도 강한 전사가 내지르는 기합이 마법 자체를 뭉개고 흩트렸다.

암살이 두렵지 않은 이유였다.
포효를 통한 전의고양을 스스로 제거한 오크는 미궁 지하 16층 이전의 은밀을 중요시하는 몬스터보다 못했다.

크와아- 와아- 와아.
포효가 포효를 부르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자신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외침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이는 실제로 버프를 중첩시켜오크들의 능력을 강화했다.
불끈거리는 근육과 거대한 무기를 가지고 모습을 드러냈다.
개체가 하나하나가 강력한 오크가 집단을 이루는 압도적인 광경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움츠러들게 만들만 했다.

“시작이군요.”

요새의 방벽 위에서 바리스가 평온하게 말했다.
이미 일행의 주력은 오크의 기세를 감당할 수 있다.
수준이 떨어지는 엘프들은 내게 종속되어 있다. 그녀들의 처음을 가져갔던 내가 [푸쉬 핑거]나 [그랩 핸드]와 같은 종속 스킬로 도와주면 쉽게 버틸 수 있다.

“오크들은 요새를 쉽게 생각할 테지만.”

헤스티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지어진 만큼 시간에 대한 내구성은 낮았다. 오래 쓸 구조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든 엘프와다크 엘프가 나무와 암석에 강화 마법을 건만큼, 마법이 유지되는 시간 동안만큼은 건실한 구조물이 된다.

* * *

오크 주술사가 해골이 주렁주렁 매달린 토템을 들어 올렸다.

“혼이 우리에게 임한다.”

반투명한 영이 점점 커지더니 오크 전사들을 둘러쌌다.
다른 오크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오크가 포효했다.

“용맹한 전사들아, 사냥의 시간이다.”

진격이 시작되었다. 묵직한 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힘과 투기를 담고 적을 향했다.

*

우리는 방벽에서 지켜보았다. 장창을 든 오크가 진형을 갖춰 서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창이 길군요.”
“그래, 긴 창을 든 순간, 저들은 아리나란을 저격할 수 없어.”

우리에게 대처법이 완성된 이유다.

“주인님은 같이 안 가?”
“그래, 조심하고. 갔다 와서 놀자.”
“응.”

함께 날아올라 머메이드 챔피언에게 돌진했던 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아리나란이 아쉬워했지만, 손을 가만히 가져다 대어 위로했다.
한쪽에서는 에리가 아리나란의인형화된 아리시의 방패를 챙겼다. 아리나란의 보살핌에 생존 본능이 살아난 만큼 단순한 방어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오크들이 단창을 들었다면, 바리스가 함께 올라가 방어를 도와야 했겠지만.’

장창은 그 길이만큼 투창이 어렵다. 던질 힘이 있더라도 길이가 길면 더 정교하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예비로 든 단창과 투척 도끼 등은 아리나란의 회피 감각과 아리시의 방패로 감당할 수 있다.

투기로 가득  소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리나란이 오크들에게 포착되었으나 투쟁의 방향을 변경하지 않았다.
그대로 요새를 향한 돌진이 시작되었다.

“하아.”

바리스가 조금은 편해진 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격전에 들어갈 때보다 아리나란이 오크들의 상공으로 올라갈 때가 위험하다고 봤다.
아리나란은 전투 감각은 뛰어나지만, 여러 방식으로 동시에 밀려드는 상황에 무심한 편이었다.
이미 날아오른 후에 고공에서피하며 공격할 때보다, 날아오르면서 피하는 상황이 집중력이 흩어질 위험이 있었다.

아리나란이 오크들의 머리 위에 머물렀다.
 손을 머리를 넘어 등 뒤로 넘겼다. 목에서부터 이어진 피막 안으로 두 손이 파고들었다.
나는 아리나란의 피막 안으로 다크 엘프들이 강화마법을 건 바위를 [종속체 배치]로 이동시켰다.

아리나란이 두손으로 강화된 바위를 피막에서 꺼내 아래로 던졌다. 엘프들을 소환할 때처럼 앞쪽이 아니라, 뒤쪽 피막에서 바위를 꺼냈다.
강력한 투척을 위한 자세이기도 했지만, 아리나란의 감성을 배려했다.
아리나란은 자신의 배앞으로 피막을 형성해 소환하는 에드샤나 에리, 엘프들을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바위나 무기 같은 소모품은 다른 방향의 피막을 이용하는 것이 나았다.

높이가 더해진 무게는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다. 거기에 키메라화된 아리나란의 힘까지 더해졌다.
명중률의 문제가 있지만, 오크들은 밀집 공격을 위해 뭉쳤다.
오크들은 광음을 일으키며 공중에서 내리꽂히는 바위를 무시했다. 재수가 없는 오크가 맞게 되겠지만, 집단 밀집 공격은 그런 피해를 무시하고 펼치면서 위력을 발휘하는 공격이었다.
무엇보다도 바위의 부피를 볼 때, 단발로 끝날 공격이었다.

“흐음 흐음 흐-.”

장난칠 때 부르는 아리나란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개미를 가지고 노는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공중에 뜬 아리나란이 피막에서 계속해서 바위를 꺼내 아래로 던졌다. 오크들이 피해를 입기 시작하자, 미리 준비해둔 다크엘프들이 강화한 바위가 아닌 미궁 5층의 흔한 바위를 소환해 던졌다.
[종속체 배치]가 수량의 한계를 없앴다.

“오크 주술사의 주술은 마법 저항을 올릴 뿐이지, 물리적인 보호막이 아니야.”

아리나란의 투석을 막을 수 없다.

“결정해라. 오크 지휘관.”

오크들이 내뿜는 집단 투기와 주술사의 주술로 에드샤의 대지 마법 발현을 억제하고, 헤스티와 페로의 마법 데미지를 감소시켜도 떨어지는 투석은 막을  없다.

 오크의 개인기면 투석을 보고 피할 수 있다.

‘다만, 밀집 창병 전술은 끝이지.’

동시에 오크 주술사의 주술도 약해진다. 집단으로 투기를 발휘하기에 주술이 마법을 막을 정도로 강한 것이다.

*

“무모하긴.”

어쩌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미 진격을 시작한 밀집 창병이 진형을 포기하는 순간,  큰 혼란에 빠질수도 있으니.

“준비.”

하지만, 방해받은 돌격으로는 방벽과 방벽을 앞세운 일행을 동시에 날려버릴 수 없다.
방벽과 방벽을 앞세운 일행을 날려버리지 못하면, 방벽 안쪽은 에드샤의 영역, 우리의 영역이다.
주술사가 집단 투기를 이용해 강화한 마법 저항이 발휘되지 못한다.

전장을 폭음이 찢었다.
요새 방벽을 구성하던 나무와 돌이 부서지고 흩날렸다. 돌진하는 힘을 담은 장창은 폭발 마법에 버금가는 화력을 냈다.
하지만, 아리나란이 만든 혼란이 한계를 결정지었다.

무너진 방벽 사이로 바리스가 천천히 걸어나갔다. 바리스의 그림자에 수희가 스며들었다.
뒤따르는 에리가 에드샤와 헤스티, 페로와 함께 했다.

포효를 터트리며 오크가 달려들었다. 등에 매고 있던 도끼에 거력을 담고 휘둘렀다.

“하앗.”

바리스의 양손검이 도끼의 궤도가 완성되기 전에 선을 그었다.
협공하려던 오크는 헤스티의 마법에 한 호흡 늦어졌고, 바리스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난전으로 이끌어내자 소수 접전에 익숙한일행이 전장을 이끌어갔다. 응급 치료등을 위한 엘프를 제외한 40여명의 엘프 역시 전투에 돌입했다.

엘프들은 부서진 방벽 사이를 누비며 어지럽게 움직였다.
목적은 하나였다. 오크들과 정면에서 전력으로 격돌하지 않으면서 바리스 파티가 포위되지 않게 하는 것.
피리레나 드리아데의 역량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종속체를 통해 시야를 확보해 전장 전체를 조율하는 내가 있다.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지휘는 속도에서 약간 앞서지만, 전체적인 역량이 떨어지는 엘프로 오크를 저지하고, 바리스 파티로 유인했다.

“히잇. 잡았다.”

바위가 떨어지는 오크의 진영 속에서 수희가 소리질렀다.
잘린 목 부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크 주술사의 머리를 싱긋 미소지으며 들어올렸다.

패배 후, 사냥감이 되어 쫒길 가능성은 사라졌다.
우리가 사냥꾼이 될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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