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1화
사도 요르네스는 작은 상자와 같은 방에 들어갔다.
폐쇄된 장소,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불편한 공간. 나날이 세를 더해가 성을 방불케 하는 어버스나이트 신전의 개방감과 반대되는 공간.
마치 고해실과 같이, 자기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곳이기에 타인을 엿보고 간섭하기에 좋았다.
사도 요르네스는 신탁을 떠올렸다.
[ 판테온, 만신전을 접하는 사도는 그 영광을 신에게 돌리리라. 영광을 얻지 못하는 신은 종말을 피하지 못하리라.]
위기이자, 기회임을 알기에 감사를 드렸다.
미궁으로 파견한 사제 가랑트런트에게 채널링으로 연결하고 살펴보았다.
“그가 보고 듣는 것은 나의 길을 만드리라.”
사도의 권능 채널링, 한 번에 한 사제 밖에 연결하지 못하지만, 아깝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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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자네가따르는 신성은 누구시지?”
가랑트런트가 양손검을 들어 올렸다.
바리스가 묘한 흥분에 두 눈을 반짝이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바리스의 양손검 수련을 봐준다고 해도 다양한 관찰과 경험은 바리스에게 도움이 된다. 바리스도 슬슬 양손검의 한계를 느낄 때쯤인 만큼, 앞선 자를 향한 관찰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을 것이다.
“정보에 대한 대가는?”
“그래, 드러내길 좋아하시는 분은 아니신가 보군.”
“좋을 대로 생각해. 자네가 닿을 수 있는 진실이 아니니까.”
말로 신경전을 치르면서도 가랑트런트의 양손검에 정신을 집중했다.
가랑트런트는 이때까지의 적과 달랐다. 신성을 묻는 것 역시 나의 격이 올라갔음을 인지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 변화가 내가 새롭게 신성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추측했고, 짧은 대화로 후보가 되는 신성중에 드러내길 좋아하는 신성을 제외했다.
언어로 나눈 대결은 가랑트런트가 모략에 익숙하지 않은 덕분에 한발 앞서갔다. 나를 오해했다.
다만, 여기서 패배하면 의미가 없었다.
오해와 진실은 살아남은 자가 원하는 대로 바뀌곤 하니까.
*
나는 레리아나의 검을 집어넣고 보조 무기를 들어 올렸다.
두 개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레리아나에게서 고개를 갸우뚱하듯 흩날리는 핑크빛.
“죽일 놈이 아니거든.”
“감히.”
가랑트런트가 분노를 터트렸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랑트런트가 단지 한 발을내디뎠다.
한발을 내디뎠으나, 바로 나를 검의 거리 안에 넣었다.
묵직하면서도 빠른 돌진. 전사의 스킬도 오르고 올라 벽을 넘으면, 현실을 뒤집는다. 바바리안 베르칸이 썼던 돌진과 유사했다. 한 호흡에 적과 자신의 거리를 없애버렸다.
언젠가 산을 가르기 위해 내리긋는 검처럼, 수직으로 나를 노렸다.
“바리스, 직선의 한계다.”
가랑트런트보다 한 호흡 앞섰다. 내리긋는 양손검을 왼쪽으로 몸을 젖혀 회피하면서 단검을 빠르게 튕기듯이 휘둘렀다.
단검이 가랑트런트의 검의 옆면을 때렸다.
강력하게 양손검을 휘둘렀으나 내가 회피해 빈 공간을 갈랐다. 휘두르는 여력을 거두기 전에 내가 단검으로 옆면을 때려 양손검의 회수를 방해했다.
기술의 차이.
순수한 전투력만을 따지면, 가랑트런트는 나보다 강했다. 움직임도 나보다 느리지 않았다.
하지만, 기술이 완전히 내게 파악 당했다.
수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바리스와 자주 대련하는 수희가 원하는 움직임이니까.
가랑트런트가 억지로 검을 거두었다.
하지만, 검을 거두어 몸을 막기도 전에 나의 다른 단검이 가랑트런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끼링-
금속이 금속을 긁는 불쾌한 소리.
나는 단검으로 가랑트런트의 갑옷에 작은 원을 그렸다.
가랑트런트가 양손검을 짧게 당기기 전에 풀쩍 거리를 벌렸다.
가랑트런트는 다시 돌진하려고 했다.
“여기까지.”
나는 단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레리아나의 검을 잡았다.
“너 나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닐 텐데, 나 역시 너를 죽이면 손해야.”
“크으, 더러운 놈이군.”
나의 수작에 놀아난 가랑트런트가 양손검을 땅에 박아넣었다.
“너 역시 대화 이전에 힘을 보일 생각이었잖아. 너는 실패했고 나는 성공했지.”
단검으로 가랑트런트의 갑옷 표면을 긁었지만,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의미가 없는 득점이었다.
하지만, 나도 가랑트런트도 상대의 목숨이 목적이 아니었다.
“흐르는 핏자국, 이쪽 편을 들어라. 같이 우든 엘프를 처리하면 대가를 나누어주지.”
“싫은데?”
가랑트런트가 인상을 쓰고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그를 도발하듯이 입을 열었다.
“네가 배신하도록 해. 네가 이때까지 한 짓을 뒤집어 함께 다크 엘프를 잡자고.”
“그럴 수는 없다.”
나는 미소지었다.
“신뢰의 가랑트런트니까?”
“네놈. 입이 가볍군.”
“너의 신뢰는 무겁지. 하지만, 신뢰는 대상에 따라 다른 무게를 가지지. 가장 무거운 신뢰에 비하면 몬스터와의 약속은 가볍지.”
나는 아예 난전에 드러난 바위 위에 앉았다.
“어버스나이트 사도는 타인을 믿지 않지. 하지만, 유일하게 한 사제만을 믿어. 가랑트런트.
너를 아니까. 네가 가진 혼돈 속의 순수가 신뢰인 걸을 아니까.”
가랑트런트가 흠칫거렸다.
“그대 마음에 품은 가장 무거운 신뢰. 그 신뢰를 스스로 버릴 때 자네는 혼돈의 힘을 잃겠지.
수희가 내게 안기고 힘을 잃은 것처럼.
그런 너를 어버스나이트 사도는 너무 잘 알아.”
나는 불쌍하다는 듯이 쯧쯧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가랑트런트는 신뢰를 지키기 위해 죽는다. 그는 어버스나이트 교단을 위해서라고 되뇌며 죽어간다.
‘그리고 사도는 가랑트런트의 신뢰를 배신하지.’
“자네의 신성은 천 개의 눈을 가진 자인가….”
침음처럼 흘리는 가랑트런트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천 개의 눈을 가진 신성을 행동하지 못하지, 지켜보기만 할 뿐.”
나는 행동하고 있으니, 그 신성이 아니라고 말했다.
“예전에 자네를 처리해야 했어.”
“하지만, 사도가 이용하자고 했겠지.”
“….”
회의를 훔쳐보지 않았어도 인물과 수희가얻어온 단편적인 파편으로 완성할 수 있는 정보였다.
“그리고, 지금도 이용하려고 하고.”
나는 침묵하는 가랑트런트에게 비웃듯이 말했다.
“사도에게 물어봐. ‘만신전’에 갈 것이냐고?”
“만신전?”
“그래, ‘판테온’. 이런이런, 신뢰하는 가랑트런트에게도 알리지 않았나 보군. 불쌍한 가랑트런트.”
“모욕은 집어치워라.”
나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까닥거렸다.
가볍게 대했지만, 나 역시 긴장했다.
어버스나이트가 예전 회차와 다르게 움직이는 이유를 탐색해야 했다. 그것도 사도가 유일하게 믿는 가랑트런트를 보낼 정도로 중요한 이유가 어버스나이트 교단에 생겼다.
내가 던진 ‘만신전’에 대한 언급은 일방적인 정보 제공이 아니다.
나 역시 낚시하는 거다.
‘만신전’이라는 정보가 ‘사도’가 가랑트런트에게 몬스터에 대한 신뢰를 버리라고 요구할 정도냐고 묻는 질문이다.
‘그 정도라면, 만신전에 대한 정보는 ’신탁‘급이다.’
사도의 대답 자체가 정보가 된다.
*
가랑트런트의 표정이 의문에서 경악으로 다시 의문으로 변했다.
“허락하셨네.”
담담한 척 내뱉는 가랑트런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도는 신성에게 만신전에 대한 신탁을 받았군.’
“그럼, 가지. 다크 엘프 수호자를 잡으러.”
“자네는 배신의 신성을 따르는 건가?”
“배신과 신뢰는 양면, 함께 하는 법이지.”
나는 가랑트런트의 질문을 선문답으로 응했다.
그는 나를 보고 배신을 획책하는 ‘긴 혀’ 신성의 사제로 보겠지만, 가랑트런트의 반대면은 어버스나이트 교단 사도다.
다크 엘프 수호자는 우리 일행은 가랑트런트가 처리해줄 거라고 믿고 있다. 우든 엘프 수호자를 상대하고 있다.
‘비록 몬스터와의 신뢰라고 해도, 믿음을 깨트리는 일이지.’
물론이 정도로 가랑트런트의 능력이 깨어지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 감소보다 사도가 가랑트런트에게 손해를 강요했다는 거다.’
그것도 세부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은 채.
신뢰를바탕으로 하는 자기희생은 이해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가랑트런트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희생에 몰입하지 못한다.
*
*
*
영역과 영역의 싸움.
우든 엘프 수호자와 다크 엘프 수호자가 거리를 두고 서로를 노려보았다.
육체는 움직이지 않으나, 영역과 영역이 맞닿는 경계는 그렇지않았다.
마치 굶기고 작은 우리 안에 집어넣은 두 육식동물처럼 서로가 서로를 공격했다. 대지에서 금속이 뻗어져 나와 식물 줄기를 자르고, 식물 덩굴이 금속에 엉겨붙어 덮으려 했다.
“자네 짓인가? 다크 엘프 수호자는 조금씩 약해졌어. 숲으로 들어왔기에 그런 줄 알았지만.”
살짝 늘어진 목소리, 가랑트런트는 그래도 의무를 다하려는 군인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방심하지말라고. 또 다른 힘이 오고 있으니까.”
지금 올라오고 있는 다크나이트가 포함된 전투가 끝나야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가랑트런트가 무심하게 넘기는 정보가 한 가지 추측에 근거를 더했다.
다크 엘프 수호자가 약해진 이유.
수호자의 몸에 품은 힘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면, 외부에서 오는 힘이 약해진 것이다.
‘우리가 다크 엘프의 성을 무너트렸지.’
많은다크 엘프 전투원들과 전투 보조원들이 죽었다. 그 시점에 다크 엘프 수호자가 약해졌다.
언어는 근원을 품는다.
수호자라는 단어는 보호할 대상이 존재해야 성립하는 단어다.
‘엘프의 수가 줄어들면 수호자의 힘이 약해진다.’
나는 추론을 이어갔다.
*
헤스티가 우든 엘프의 수호자를 훔쳐보며 다크 엘프 수호자를 경계했다.
“우든 엘프 수호자는 남자이군요. 엘프는 여성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야기 속의 엘프는 아이를 낳지 않아. 나무에서 태어나지.”
나의 말에 아리나란이 귀를 쫑끗거렸다. 그녀는 자신에게 닥쳤던 비극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명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녀가 변하기 전에는 바바리안 소녀였던 흔적일까.
“저, 그럼, 저 거대한 나무는 암나무인가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이 붉어진 헤스티가 질문했다.
“그래, 비슷한 벽화를 본 기억이 나. 엘프의 위대한 나무는 과육으로 여성형 몸을 만들 수 있지. 거기다가 수호자를 이용해 수정하는 거야.”
“으응, 그렇군요.”
발개진 얼굴을 보니 우든 엘프 수호자가 그냥 자위하고 씨를 뿌린다고 생각한 듯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헤스티의 순수함에 감탄했다. 벽화에 그려진 전설은 헤스티의 가벼운 음란보다 비극에 가까웠다.
위대한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과육 처녀’를 만든다.
몸이 열매와 같은 반생명체는 세상의 다른 괴이하고 강한 것들에게 노려진다.
“위대한 나무는 엘프들의 어미이고, 수호자들은 엘프들의 아비지.”
그래서, 엘프들은 한 자매이다.
아비는 자녀의 수만큼 강해진다.
다만, 비극이 있다. 자녀는 어미의 젖을 먹고 자란다.
너무 많은 자녀는 어미를 시들게 한다.
‘저 커다란 나무가 시드는 이유는 다크 엘프가 매연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야.’
엘프가 너무 많아서다.
수호자가 아내를 위해 전쟁을 계속하는 이유이고, 우든 엘프 수호자가 내가 엘프들을 종속시켜 가지고 가는 것을, 열매를 따가는 것을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