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78화
다크나이트는 기병과 닮았다.
기병은 보병보다 우월했다. 훈련 기간과 비용 등의 변수와 집단전 전술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높이가 가지는 우위와 이동력, 시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높이의 문제.‘
전투에서 높이는 중요했다. 전투는 근육의 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무게, 무기의 무게를 파괴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무게는 높이가 높을수록 파괴력이 커졌다.
’다리를 노리기에는 랜스가 너무 길다.‘
사족보행 기사, 다크나이트의 크기는 이 불리함을 더욱 키웠다.
몸통만 5배, 키로 보면 3배에가까웠다.
다리를 무력화시키지 않으면 몸통이 닿지 않고, 접근하기 전에 몸통에서 시작되어 뻗어져 나오는 랜스 공격을 일방적으로 받아야만 했다.
수희가 투덜거릴 만했다.
예전 회차 때 수희는 켄타우로스 등을 상대할 때, 적의 상체로부터 이어지는 묵직한 랜스나 메이스의 공격을 속도로 피하고 발목과 무릎을 노렸다.
한 번만 피하면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다크나이트의 발목과 무릎은 금속, 스쳐 지나가는 공격으로 무력화시킬 수 없다. 돌진해서 한번 피한다고 해도 적의 전력 상실로 이어내지 못한다.
나는 수희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접근했다.
찔러오는 랜스를 검으로 쳐내지 않았다. 거리를 파악했다.
“다리의 형태에 주의해.”
다리의 형태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지는 법이다.
켄타우로스는 상체가 전면인 데다가 다리가 주행을 위한 형태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힐 수 없지만, 다크나이트는 상체가 거미 몸 중앙에 있고 거미 다리라서 거리를 변칙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접근전이 까다로워. 다크 엘프들이 우든 엘프들의 혼을 이용해 마법 저항을 올린 거, 적절해.‘
도의적인 면이 아니라 전술적으로 그러했다.
우든 엘프의 혼으로 일으킨 힘이 마법 저항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금속몸으로 원거리 투사 무기를 빗겨낼 수 있고, 원거리 마법에 저항을 갖추면 전투에서 적진으로 급하게 파고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거미 다리가 말다리보다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약점이 아니게 된다. 상체가 중앙에 있기에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만 남는다.
‘하지만, 일대일 결투가 아니야.’
“헤스티, 에드샤, 페로 범위 합격 마법을 준비해. 에리는 엄호를 부탁해. 바리스, 수희의 도움을 받아 랜스 공격을 받아내라.”
분명 보이는 랜스 공격이 전부가 아니기에 마법사들에게 준비시켰다.
“네, 반드시.”
바리스가 결연한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다크 엘프들은 모를 것이다.
다크 엘프의 악행이 바리스의, 일행의 전력을 얼마나 올리는지.
조화로운 바리스의 성격은 그녀가 한 발짝 성장할 때마다 그녀뿐만 아니라 일행의 심리적 중심이 되어 시너지를 이끌었다.
바리스가나의 뒤를 따랐다.
내가 확보한 공간이기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나의 옆으로, 다크나이트의 앞으로 이동하면서 나의 움직임을 따라 하려 했다.
단순한 흉내.
내게는 못 미쳤다. 나처럼 수많은 적을 경험한 토대가 없기에 다크나이트가 랜스를 내지르려고 하다가도 살짝 모자라 시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까다로움이 없었다.
다크나이트가 크게 어깨를 젖혔다. 공기를 찢으며 랜스를 내질렀다.
“흣.”
에리의 짧은 숨들이킴 소리. 바리스의 호흡이 아니었다.
바리스는 거칠게 움직이면서도 규칙적인 호흡을 유지했다. 틈을 보인 것이 아니라 다크나이트의 공격을 일부러 유도한것이다.
“해낸다.”
바리스가 양손을 내질렀다.
“이야, 바리스.”
수희가 바리스가 하려는 것을 깨달았다. 감탄을 터트리며 다크나이트를 향해 땅을 차고 튀어 나갔다.
바리스의 무장과 기본은 전형적인 양손검 전사였다. 양손검의 무게를 이용해 묵직하게 치고 무게와 폭을 이용해 수비까지 해내왔다.
기본 이상의 재능과 힘과 몸무게만 있다면 빠르게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는 클래스였다.
다만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몬스터의 무게와 힘이 전사의 칼 무게와 몸무게를 아득하게 넘어버렸다.
칼의 무게와 부피는 회피를 어렵게 하는 장애가 되어버렸다. 중반까지 충분했던 검을 이용한 방어는 검 내구도만 박살을 내는 기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심층까지 가면 양손검 전사가마법사보다 더 드물었다.
단검 전사나 한손검 방패 전사는 검에 검기를 덮으면서 공격력을 강화하는 순간도 양손검 전사보다 빨랐다.
바리스의 양손검이 랜스를 향해 휘둘러졌다. 다만 일반적인 최단 거리를 가르는 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렸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쓰곤 하는 궤적이었다. 강한 찌르기를 하는 적을 상대로 레리아나의검을 써서 보였던 궤적.
강 대 강 충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휘말아 당겨 밀어내는 오의가 있다.
카-앙-
랜스와바리스의 양손검이 부딪혔다.
바리스는 내가 베풀었던 양손검에 대한 가르침과 노력, 그리고 압도적인 관찰력으로 심층에서나 볼만한 양손검 기술을 이루어냈다.
수희가 탄성을 터트릴 만했다. 수희의 쌍검, 단검과 일반 장검으로도 해내기 어려운 기교를 압도적인 적을 상대로 해냈다.
수희도 그저 탄성으로 끝내지 않았다.
수희 역시 우월감의 이면인 열등감과 끊임없이 싸워왔다. 충돌의 경직을 틈타 다리 앞까지 달라붙었다.
다크나이트의 거미 다리는 말 다리와 달랐다. 아니, 기마병의 말 다리도 보병의 머리를 내리찍는 흉기였다.
다크나이트의 다리는 그 외형만 봐도 공격수단으로 보였다.
하지만, 검도 날에 베이지, 검면에 베이지 않는다.
거미 다리는 다크나이트가랜스를 찌르는 동작을 위해 힘을 실었고, 바리스가 휘감아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몸 중심을 잡아야 했다.
날파리 같은 수희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흥. 날 무시하지마.”
수희의 쌍검 중 긴 것이 다크나이트 앞발 무릎에 파고들었다. 철갑이라고 해도 관절부는 통이 아니라 판이 겹쳐진형태였다. 그 판 사이를 검이 파고들었다.
수희는 뒤를 향해 굴렀다.
구르기 직전에 검을 발로 차, 더 쑤셔 넣으면서 반발력을 얻어냈다. 무릎에 검이 박힌 채로도 반격한 다크나이트에 질색하면서도 거리를 벌렸다.
“에리, 내게 예비 검을.”
에리가 예비 검을 수희에게 던졌다. 수희에게 예비 단검이 있지만, 금속인 적을 상대하기에는 장검이 더 유리했다.
*
나는 일행의 분발에 미소지었다.
하지만, 결판을 내는 것은 나다.
“레리아나 나를 받아들여.”
나의 속삭임에 검신이 파르르 떨렸다.
다크나이트는 금속으로 몸이 이루어졌다.
판금 갑옷을 입은 인간과 달리 갑옷 안 역시 금속이었다. 가죽이 두꺼운 몬스터도 그 안에는 살이 있으며, 암석과 같은 딱지를 가지는 몬스터도 움직임 때문에 결이 있다.
몬스터에 익숙해진 나는 결을 파고들어 검에 부하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 금속 개체가 나온 이상 검기를 항상 두르고 있어야 한다.
레리아나의 검에 핑크빛이 서렸다.
살짝 민망했다. 적을 속이고 농락하는 데 망설임 없는 나도 레리아나의 새신부 같은 반응은 버거웠다.
하지만, 결과가 달랐다.
무표정하게 나의 기운으로 레리아나의 검을 장악하고 이용할 때와 레리아나가 두근거리며 핑크빛 기운을 뿜어내고, 함께 어울릴 때 검의 위력은 신도급과 사제급만큼, 아니 사제급과 사도급만큼 차이가 났다.
‘어린 우든 엘프를 이용해 마법 저항력을 완성했다고 해도. 접근전을 강행하는 이유지.’
핑크빛은 통한다.
*
나는 바리스와 수희가 만들어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파고들었다.
접근해내고, 다크나이트 앞발 무릎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뛰어올라 랜스를 든 팔을 노려 레리아나의 검을 휘둘렀다.
핑크빛 선이 그려졌다. 팔 아래에서 오른쪽 어깨 갑옷까지 선이 연결되었다.
끄긱-끽-.
불쾌한 소음이 터졌다. 금속과 금속의 흔한 소음이 아니었다.
맺힌 혼과 가두어진 혼의 충돌.
레리아나와 다크나이트에 가두어진 우든 엘프의 혼이 충돌했다.
핑크빛 검신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먼지를 태우듯 검신에 묻은 비극의 잔재를 태웠다.
나는 다시 움직였다.
다크나이트가 랜스를 들지 않은 왼손의 휘두름을 피했다. 그 뒤를 이어 바리스가 다크나이트의 다리를 노렸다.
“마법 저항이 흔들렸어요.”
“그래, 상체가 핵심이야.”
바리스는 나만큼 제물과 매개물에 대해 몰랐다. 그래서, 우든 엘프의 혼이 흔들린 것을 마법 저항이 흔들렸다고 말했다.
틀리지 않았다. 혼과 마법 저항이 연관되어 있으니 그저 표현의 차이일 뿐이다.
“다시 간다.”
나는 달라붙어 공격하고 회피했다.
내게는 근접전이지만, 다크나이트에게는 초근접전인 거리를, 랜스의 길이 안쪽을 누볐다.
끈질기게 달라붙자 다크나이트는 쉽게 떨구어내지 못했다.
나의 접전이 일행에게 생로를 키웠다. 나에게 집중하는 만큼, 일행을 향한 공격의 집중이 약해졌다.
거미 다리를 이용한 공격이나 랜스를 들지 않은 손의 공격을 일행은 어떻게든 피해냈다.
바리스와 수희는 회피를 우선했다. 그렇다고 해도 나에게 배우고 나와 함께 싸워왔다.
이때까지의 경험과 배움으로 내가 유효타를 먹일 때마다 추가타를 야금야금 얻어냈다.
검기로 활성화시킨 레리아나의 검이 다크나이트의 상체에 상처를 줄 때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
“저것을 없애주세요. 저 그럼···, 진심으로, 진심으로 노예가 될게요.”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드리아데가 넋두리하듯이 말했다.
“넌 정말 염치가 없구나.”
드리아데가 토해놓는 말에 수희가 쏘아붙였다.
“이것이 얼마나 강한 놈인지.”
잠시 멈춘 수희에게 랜스가 찔러 들어갔다. 바리스가급히 뛰어들어 랜스를 쳐 방향을 비틀었다.
“직접 손도 못 대는 년이 나불거리기는. 이놈은 너희 종족 전부가 노예가 되어야 해.”
수희가 피하면서 내뱉었다.
“아···. 죄송, 죄송해요.”
나는 수희가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공세를 올렸다.
“제대로봤다.”
“응, 검을 맞대보니까 알겠어.”
나는 수희의 안목을 칭찬했다.
수희도 나처럼 눈앞의 한 수가 아니 그 너머를 보았다. 괜히 전투 호흡을 나누어 드리아데의 넋두리에 반응한 것이 아니었다.
전술로만 보면 드리아데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크나이트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만, 확장해서 전략으로 보면 달랐다.
*
‘이놈을 폭주시켜야 한다.’
나는 물론이고 바리스와 수희도 강해졌다. 다크나이트와의 접전을 이어낼 정도였다.
다만 이건 다크나이트의 제물을 유지하면서 부리는 힘이었다.
우든 엘프 제물을 소모시키며 끌어낸 힘이 아니었다.
전투 틈틈이 보낸 신호를 일행은 모두 숙지했다. 도망칠 준비를 하고 도망칠 틈을 만들기 위한 마법을 헤스티, 에드샤, 페로가 준비했다.
우든 엘프를 제물로 바친 힘이 고작 마법 저항일 수 없었다. 마법 저항은 제물로 이루어낸 힘이 모여있기에 나타난 부가적인 효과일 뿐이었다.
‘제물로 만든 힘은 안정성이 없지. 단계별로 출력을 올리는 건 불가능해. 쓰지 않거나, 완전히 타 없어질 것을 각오하고 터트리거나.’
제물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없으면 직관하기 어려운 사실.
나는 또다시 바리스와 수희가 만든 틈을 이용해, 레리아나의 검으로 긁었다.
“힘을 아끼는 자를 상대하는 법은 간단해. 아끼면 죽는다는 것을 실감시키면 되지.”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된다.
*
파악-.
일순 다크나이트가 전 방향으로 기파를 터트렸다.
끼릭-끼-리 끼-리.
기계로 만든 성대에서 불쾌한 소리가 울렸다.
기계의 포효와 함께 다크나이트의 금속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기지개를 켰다.
제2 페이즈이자, 다크 엘프와의 전투를 엘프들의 전쟁으로 잇기 위한 모략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