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77화
드리아데가 숨을 몰아쉬었다.
받은 정신적 충격은 호흡을 가다듬는다고 해서, 하루 이틀 지난다고 해서 극복될 충격이 아니었다.
이성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아니 이성이 돌아와 죽은 이를 현실적으로 느끼는 순간 충격이 더 심해질 여지마저 있었다.
“쯧.”
나는 혀를 찼다.
이제야 드리아데가 다크 엘프에게 우든 엘프를 투영하기 시작했다.
키벨레 종족의 종족 단체 마법을 응용한 나와 에리와 에드샤의 마법을 보고 나서야, 다크 엘프가 당하듯이 우든 엘프가 당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득을 더 키워야겠지.”
충격받은 드리아데를 종속화할 수 있지만, 종속화하지 않았다.
이제 판돈은 사제급 엘프 노예 하나 수준을 넘었다. 우든 엘프 전체나 우든 엘프 수호자를 간섭할 노름돈이 마련되었다.
종속화하면 다루기는 편해지겠지만, 우든 엘프 종족에게 별개의 이득을 얻기 까다로워질 것이다.
우든 엘프의 수호자가 드리아데의 이상을 알아차릴 테니까.
*
나의 흑심과 별개로 일행은 다크 엘프의 내성을 보았다.
바리스가 고운 이마를 찡그렸다.
“저기.”
“알아차렸나?”
바리스의 시선은 골렘이 일으킨 붕괴에 닿지 않았다. 죽어가고 죽은 다크 엘프가 아니라 내성을 향했다.
살아남기 위해 사냥한 동물을 동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성벽에는 전투인원과 전투를 돕는 보조 인원밖에 없었다. 민간인이라고 불릴 만한 다크 엘프는 외성과 내성 사이의 집에 숨어 있다.
적이지만, 몬스터지만 인정해줄 만한 조치.
하지만, 저 집 너머 내성을 느끼는 순간, 인정이 혐오로 변한다.
“저기 저기, 너머에 있는 거 살아있어요?”
늘 굳건하던 바리스가 말을 더듬었다.
레리아나도 느꼈는지 징-하며 검신을 떨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심스럽게 레리아나의 검을 쓰다듬었다. 레리아나 그녀와 비슷한 경우이기에 힘들어하지 않도록 자상하게.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아. 맺혀있는 거다.”
헤스티가 영문을 몰라 바리스의 얼굴을 살폈다. 바리스의 뛰어난 감각은 바리스를 놀라운 성장으로 이끌지만 느끼지 않아도 될 것을 느끼게 한다.
레리아나가 아직 인간이었던레오나드 성에서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할 때 그랬고, 이번도 마찬가지다.
다크 엘프는 우든 엘프의 숲에까지 침입해 식량을 조달하는 아이들을 노렸다.
그래도, 숲과 교감이라는 그들만의 가치를 지키는 우든 엘프들은 다크 엘프들이 아이들을 노리는 이유는 그저 장기적인 식량 채취 방해라고 생각했다.
‘보급 차단을 노리는 것이 아니야. 노리는 것은 우든 엘프 아이들 그 자체.’
정신적 가치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다크 엘프, 그들은 차가운 금속이 주는 매혹에 빠졌다.
어린 개체를 제물로 삼아 제련한 금속은 단순한 금속 이상이 된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크 엘프를 적대하고 우든 엘프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저 비극을 바리스가 못 견딜 테니까.’
어버스나이트 가랑트런트가 다크 엘프에 합류한다고 해도 군대를 둘로 나누는 것은 다크 엘프에게 모험이다.
가랑트런트를 믿을 수 없으니 더욱 위험했다.
하지만, 방어전에서 압도적인 위력을 가진 것이 있다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끔찍하군요.”
바리스가 양손검을 다시 잡았다.
*
*
*
‘가랑트런트 네가 틀렸다.’
나는 이 자리에 없는 가랑트런트에게 단언했다.
가랑트런트는 우리 일행을 몰랐다. 어쩌면 이번 일로 우리를 파악할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 그가 일을 벌이는 방식을 안다.
가랑트런트는 일행과 협력을 준비했을 것이다.
순서에 따르지 않으면 다크 엘프 중앙부나 우든 엘프의 중앙부 점령은 가랑트런트라도 쉽지 않았다.
최소한 전력을 걸어야 했다. 전력을 건다는 의미는 더 약한 자의 방해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라고 가랑트런트는 판단했을 것이다.
진영 선택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와 가랑트런트가 같은 진형이든 다른 진형이든 협력이 가능했다.
‘인간은 모략에 능하니까.’
밖으로 보이는 ‘엘프의 전장’층의 컨셉은 모험가가 한쪽 진영을 편들어 싸우는 것이다. 두 모험가의 팀이 다른 편을 든다면 모험가 팀끼리 싸워야 장엄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배우가 아니었다. 맡겨진 역할이 아니라,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강자들은 ‘엘프의 전장’층에서 서로 협조를 하곤 했다. 같은 진영을 선택하는 경우는 물론 적 진영인 경우에도.
인간은 강력한 도움을 줄수록 강력한 보상을 받았다.
정해진 규칙이었다. 그리고 정해진 규칙은 틈을 노리는 모략에 대응하지 못했다.
우든 엘프 진형을 따르는 모험가가 보상을 얻으면, 우든 엘프 진형은 보상을 지불한만큼 약해졌다.
이는 다크 엘프를 따르는 자에게 손해가 아니었다.
아예, 우든 엘프 진형을 따르는 모험가가 보상을 받은 다음, 다크 엘프를 따르는 자와 함께 우든 엘프를 공격하는 것이 정식 공략처럼 되었다.
그러니, 가랑트런트는 엘프 전장으로 난입하면서 미리 우리와 협의할 필요가 없었다.
*
‘하지만, 그 이면의 이면. 미궁층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착각하기 쉽지만, 미궁은 연결되어 있다.’
우든 엘프도 다크 엘프도 인간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 내린다. 미궁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쉽게 넘어간 사실이었다.
‘엘프의 전장’층보다 아래층에서 만나는 엘프들은 우든 엘프이든지 다크 엘프이든지 인간에게 적대적이었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아래층과 ‘엘프의 전장’이 별개가 아닐 가능성이 존재해.‘
이미 에드샤와 에리의 이야기만 봐도 이야기는 미궁 한 층을 벗어났다.
‘엘프의 전장은 단순히 협력 보상을 얻고 끝나는 곳이 아니다.’
미궁은 집요하고 괴이했다. 모험가가 쉽게, 편법 비슷하게 수작을 부려서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다른 함정이 숨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가랑트런트 네가 틀렸어.’
일반적인 탐색자의 방식에 따라, 우리 일행은 다크 엘프를 잡고, 가랑트런트는 우든 엘프를 잡다가 보상을 얻은 후 합류해서 한쪽 진영을 공략하는 것.
편할지 몰라도 함정에 빠지는 공략법이다. 미궁층이 다른 미궁층과 연관됨을 알지 못하기에 범하는 오류다.
*
*
*
처음에는 나와 바리스밖에 느끼지 못했다.
이내 일행 모두가 느낄 정도로 다크 엘프 내성에서의 변화가 뚜렷해졌다. 내성의 문이 열리고 비극을 담은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거 껍질이 금속이군요.”
“아, 튼튼한 건 싫은데.”
아리나란이 중얼거렸다.
나는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약간 흥분한 아리나란을 다독거렸다.
나와의 에리와 에드샤의 연계를 안 아리나란은 감각적으로 자신도 응용할 수 있음을 알았다.
아리나란은 공중에서 자세가 자유로웠다.
하피나 와이번처럼 접근전을 고집할 필요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공중에서 날고 있는 아리나란에게 돌멩이를 전송시켜주면 아리나란은 공중에서 계속 머물면서 투척할 수 있다.
하지만, 엘프 전장에서는 써먹지 못했다.
다크 엘프도 우든 엘프만큼 대공 능력이 있었고, 공중에서의 투척은 지형을 엄폐물로 이용하는 엘프와는 상성이 나빴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것에도 상성이 나빠 보였다.
검은 금속체.
상체는 인간형에 가까웠지만, 네 개의 다리를 가졌다.
다만, 개나 말 같은 다리가 아니라 거미 다리 같았다. 질주 능력보다는 방향전환과 다양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구조.
무엇보다도 크기가 컸다. 인간의다섯 배가 넘는 몸통은 가슴에 인간이 들어가 있다고 해도 믿을 크기였다.
인간형인 상체는 랜스를 장비했다.
“랜스의 끝에 구멍이 있군요. 블로우건일지도 몰라요.”
바리스가 아리나란을 의식해 추측을 말했다. 아리나란은 다양한 상황에 대한 적응과 응용이 떨어졌다.
적의 대공 능력을 와해하기 전까지는 아리나란을 투입할 생각 없었다.
저 길쭉한 무기가 블로우건, 입으로 투사체를 발사하는 방식의 무기인가 아닌가가 중요했다.
랜스와 원거리 무기 블로우건은 대응법이 완전히 달랐다.
미궁 탐색에서, 일행은 물론 탐색자들은 구멍이 뚫리고 긴 원통형 막대기를 알아보고 조심했다.
코볼트가 쓰는 블로우건을 보아왔고, 미궁에는 그 상위 단계의 투사 무기가 존재했다.
흔하지 않은 연금술에 의한 격발이 아니더라도 몬스터들은 마법에 의한 투사체 발사 무기를 쓰곤 했다.
다만, 탐색자들은 얻더라도 활용하지 못했다.
직접 쓰는 마법이나 연금술 등을 이용한 방법은 가격이 너무 비싸고 다른 무기에 비해 격발까지 오래 걸려 실용화되지 못했다.
일행은 바리스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블로우건이 아니더라도 작살을 발사하는 무기 등의 회피 훈련은 충분히 해왔다.
“접근한다.”
직사 사격은 엄폐물로 감당할 수 있다. 성벽이 파괴되고 흩날린 잔해가 많은 만큼 직선상에서 벗어나기 쉬웠다.
*
거리를 좁혔다. 마법의 유효 사거리까지 접근했다.
“마법을 먼저 날려볼까?”
“아니, 마법 저항이 강해.”
헤스티의제안에 바리스가 반대했다. 일반적인 적이라면 적의 마법 저항은 바리스보다 헤스티가 정확하고 빠르게 파악했다.
하지만, 눈앞의 대형 사족보행 금속체는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바리스가 감각으로 비극을 인지하고, 그 비극이 마법 저항을 올리는 데 쓰였음을 깨달았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사족보행 기사의 분위기가 변했다.
담고 있던 힘을 활성화시켰다. 품고 있던 기이한 분위기가 선명해졌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감각이 떨어진 드리아데마저 느낄 정도로.
“사라진 아이들, 다크 엘프들이 우리들의 아이를 납치한 건···.”
끔찍한 상상에 드리아데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혼이 맺힌 금속, 레리아나 역시 검에 맺힌 영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레리아나의 검은 나의 개입에 극한의 비극에서 빗겨났다. 레리아나의 재능이 여한과 미련에 닿아 검에 맺힌 것에 가까웠다.
“아아. 아아.”
내가 골렘으로 성벽을 무너트리면서 죽인 자는 그래도 전투 병력과 전투를 지원하는 이들이다.
또한, 단순히 죽였을 뿐, 죽음 이후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크 엘프에게 납치된 아이들은 전투 병력이 아니었다. 전투 지원도 아니고 생활 지원이었다.
거기에 죽음 그 이후를 건드렸다.
드리아데는 사족보행 기사에게서 우든 엘프를 느꼈다. 제물이 된 아이들을 느꼈다.
“지독해요. 너무해요.”
헤스티가 울먹이는 드리아데를 부축했다.
양손검을 꽉 잡은 바리스가 적의를 거대한 사족보행 금속체에게 보냈다.
인간의 다섯 배가 넘는 크기지만 바리스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비극으로 강화된 존재, 바리스와 함께 하는 내가 다크 엘프를 편 들 수 없는 이유였다. 오히려 적으로 만나야 바리스의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
[미사일 디펜스]
바리스가 투사체 방어를 시전했다. 용사 전용 보호막 [어라운드 디펜스]의 상위 스킬, 투사체 방어에 특화된 보호막을 일으켰다.
이어 몸을 드러냈다.
전투 교리에 어긋난 행동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행동을 지지했다.
사족보행 금속체의 고개가 바리스를 향했다. 나는 일행에게 손짓으로 기사와 바리스와의 직선에서 물러나도록 지시했다.
“다크나이트….”
드리아데가 중얼거렸다.
우든 엘프의 문헌에서 본 것인지, 다크 엘프가 만든 기사이기에 다크나이트라고 이름 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크나이트라고 불린 사족 보행 금속체가 어깨 파트를 뒤로 젖혔다.
이어 앞으로 몸을 내질렀다.
바리스가 다크나이트를 보았다.
극단적인 집중력. 짧은 찰나임에도 다크나이트의 공격을 파악했다.
바리스가 검을 들어 올리고 몸통을 뒤로 젖혔다.
[스트롱거 웨폰]
즉시 스킬을 발동시켰다. 바리스의 양손검이 새하얀 빛으로 휩싸였다.
카앙-. 금속과 금속이 부딪혀 폭발하는 광음이 터졌다.
바리스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다만, 단지 뒤로 밀려났을 뿐이었다. 미사일 디펜스를 뚫고 들어온 다크나이트의 발사체를 꺾어냈다.
산산이 부서진 파편만이 꺾인 방향으로 튀었다.
“잘했어.”
투사체를 강화시킨 검으로 쳐내는 위태로운 기술. 힘과 속도가 모두 부족한데도 바리스는 해냈다.
비극에 저항하는 용사의 특성이 발휘되었다.
나는 바리스를 칭찬하고 파고들었다.
적은 힘을 압축해 공격을 쏘아냈다. 압축이 있다면 늘어난 부분이 있는 법이다.
첫 번째 공격보다 이어진 공격은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크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낸 내성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