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73화
수희가 빠르게 다크 엘프의 뒤를 장악했다. 수희가 없더라도 캐스팅 시간이 짧은 견제를 준비한 헤스티와 페로가 있기에 도망은 불가능했다.
나는 다리에 검상을 입은 어린 엘프를 두고 의식을 잃은 어린 엘프에게 다가갔다.
상처 입은 엘프가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움찔거렸다.
하지만, 안심하라는 듯이 손짓하고 의식을 잃은 어린 엘프를 들어 올려, 검상을 입은 엘프 옆에 눕히자 눈에 띄게 표정이 편해졌다.
바리스와 다크 엘프의 검이 다시 한번 부딪혔다.
압도적인 승기. 하지만 급하게 몰지 않았다. 전사 엘프의 접근을 예측하고 내가 지시했다.
우든 엘프의 아군이 되기 위해서는 섬세한 수작질이 필요했다.
약하게 보여도 안 되지만, 압도적으로 강해도 안 되었다. 이용할 만큼 강하지만, 적의 주력과 맞부딪히면 버티지 못하고 소모될 정도가 뒤끝이 깔끔했다.
“온다.”
엘프 전사의 접근, 연극이 들킬 위험이줄어들었다. 수작은 길면 길어질수록 들킬 위험도 커지는 법이었다.
“드리아데님.”
“피멜리, 마드리.”
엘프 전사는 망설이지 않았다. 접근하자마자 난입해왔다.
나는 접근할 때는 어린 엘프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앞을 막았다가, 서로 이름을 부르는 시점에서 뒤로 쭉 빠졌다.
“피멜리, 상처는.”
“얕아요.걸을 수 없지만요. 마드리는···.”
달려온 드리아데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피멜리에게 안겨있던 마드리의 호흡을 듣고, 손목을 잡아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이야, 정신을 잃은 것뿐이야.”
그제야 고개를 돌려 일행을 보았다. 일행과 싸우는 다크 엘프를 보았다. 이미 다크 엘프의 팔과 다리에는 피가 배어 나왔다. 바리스가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을 뿐이었다.
“죽일 거요? 아니면 포로로? 뭘 선택하든 돕지.”
“원하는 건?”
“광석 조금, 귀한 거로.”
드리아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을 드러냈기에 오히려 경계가 낮아졌다.
욕심도 우든 엘프와는 충돌하지 않는 욕심이었다. 우든 엘프는 광석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인간은 믿을 수 없지만, 욕심을 파악한 인간은 예측할 수 있기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일 거야.”
“우린 물러서지.”
내 말에 바리스가 빠졌다. 다만 교전에서 빠졌을 뿐, 포위를 풀지 않았다.
바로 드리아데가 다크 엘프에게 치고 들어갔다.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냈다.
바리스와 에리가 호기심을 숨기고 드리아데와 다크 엘프의 공방을 살폈다.
드리아데와 다크 엘프의 전투 기본은 속도가 뒷받침되는 화려함. 보지 못했던 패턴의 공방은 바리스와 에리의 무술 이해를 넓힐 것이다.
순식간에 전세가 기울었다.
‘우리를 경계하는군.’
드리아데는 다크 엘프에게 살기를 드러내면서도 바리스가 낸 상처를 노리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다른 곳을 공격했다. 일행에게 진 빚을 늘리기 싫은 것이다.
또한, 순수 무술만 썼다. 숲속이기에 마법을 쓰면 더 빨리 끝날 텐데 검으로 끝냈다.
드리아데가 다크 엘프의 숨을 끊었다.
피멜리가 그 모습을 보았다. 드리아데도 동족과 유사한 개체를 죽이는 모습을 가리지 않았고 피멜리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무미건조했다.
“흠.”
같은 어린 엘프인 마드리에게 보인 반응과는 너무 달라 바리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바리스가 느끼는 불쾌감이 이해가 되었다.
인간은 가식의 동물이었다. 지독하고 지독한 현실 때문에 서로에게는 물론 남의 아이에게 잔혹한 짓을 저지르면서, 자신의 아이에게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종족이었다.
강도인 아비도 자기 아이에게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이었다.
‘이것도 미궁과 미궁 전체를 아우르는 규칙, 의지, 시스템이 연관된 것일까?’
조금 즐거워졌다.
잔인한 상황과 잔혹한 관계가 즐거워진 것이 아니다. 감상의 공유가 즐거워졌다.
이때까지, 닥치는 현상을 분석해 느낀 이질감으로 미궁 시스템을 추측하는 건 나만이 해왔다.
바리스를 포함한 일행은 이를 그저 불가사의로 느낄 뿐 분석할 역량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리스의 질문이 달라지기 시작했지.’
바리스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최근 훈련 때나 휴식 때 내게 묻는 질문이 지엽적인 전투보다 세계에 대한 의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인식 확장을 위한 토대가 될 질문이었다.
바리스가 내가 내린 결론에 도달했을 때 바리스의 변화가 기대되었다. 어떤 변화든 내게 힘이 될 것이다.
“손을 빌려줄게요. 환자에게는 바른 자세가 중요하니까요.”
헤스티가 경계하지 말라는 듯이 미소지으며 다가갔다. 하지만, 드리아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 없어.”
드리아데는 어린 엘프들이 메고 왔던 가방 안의 나뭇가지와 덩굴을 꺼냈다. 정신을 잃은 피멜리를 묶고 등에 멨다.
이어 다리에 상처 입은 마드리를 겨드랑이와 무릎에 팔을 넣어 드는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일반인에게는 피로가 쌓이는 자세지만, 전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휴우.”
헤스티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어린 엘프들의 가방을 들어 올렸다.
드리아데는 그런 헤스티와 쓰러진 다크 엘프의 몸에서 몇 가지 물건을 챙기는 수희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에 드리아데의 뒤를 따랐다.
*
낮은 휘파람 소리. 일반인 아니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전사도 못들을 소리.
나와 바리스, 에드샤는 들었다.
말없이 내게 눈을 돌려 대응 여부를 물어왔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우든 엘프들의 신호 체계를 알아차렸다고 알려서 좋을 것 없었다.
두 명의 우든 엘프가 접근해왔다. 드리아데가 접근해올 때보다 멀리서부터 느껴진 것을 보면 드리아데보다 수준이 낮은 전사였다.
“이런, 아이들이···.”
“적은 어떻게 됐습니까?”
“처치했다.”
우든 엘프 둘은 피멜리와 마드리를 넘겨받았다.
“나는 다크 엘프 지역에 광석을 훔치러 갈 거야.”
“그럼, 지원을 구성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경계에 치중해. 반격으로 넘어올 수도 있으니.”
수희의 심퉁거리는 표정이 보였다.
안하무인 하는 불쾌감에 인상을 쓰면서도 나의 지시가 없으니 얼굴로 표현할 뿐이었다.
수희의 불쾌감은 당연했다. 오히려 일행과 다크 엘프를 동귀어진시키려는 거냐고 따져도 될 정도였다.
다크 엘프 지역에 들어갔다가 포위당하면 자신만 빠져나오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나는 수희를 향해 미소지었다.
수희가 내 미소에 못 말리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드리아데에게 키스를 날리는 몸짓을 했다. 드리아데가 어떤 나쁜 짓을 당할까 하는 기대와 악어의 눈물과 같은 동정을 드리아데에게 보냈다.
나는 드리아데를 동정하지 않는다.
‘얕은 지혜를 가진 놈들이 얕은 함정에 당하지.’
자신의 힘과 아군이 될 수 있는 자의 전력을 오판하면, 죽음으로 돌아오는 곳이 전장이었다.
드리아데에게 독립작전권이 있더라도, 동족에게 인정받는 강자일지라도 우든 엘프 수호자에게 일행의 방문을 알려야 했다.
드리아데가 혼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지원군을 부르지 않은 잔꾀는 아무런 제약 없이 그녀에 대해 수작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경멸하는 인간의 도움은 본진에서 보관하고 있는 광석이 아니라, 적진에서 바로 주워서 갚으면 된다는 생각이 함정을 함정으로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드리아데는 광석을 보상으로 요구한 것 자체가 진행 방향을 고정하기 위한 수작임을 몰랐다.
*
“그래, 구하려는 광석이 뭐냐?”
“덴티둠입니다. 깊은 땅속의 열기가 새싹의 이슬을 만나 피어나는 광석이지요.”
대지와 나무 두 가지 속성이 혼재하는 곳에서 변성된 광석이었다. 접전 지역에서발견되는 광석이지만, 접전 지역에 없었다.
다크 엘프들은 귀하게 여겨 후방으로 뺐고, 우든 엘프는 단지 다크 엘프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통제했다.
‘드리아데에게 죄책감을 심는다. 자신이 나쁜 짓을 했기에 벌을 받는다고 느끼게 하려면.’
드리아데는 일행에게 간단하게 보상할 수 있다. 어린 엘프들을 데리고 갔던 우든 엘프들에게 덴티둠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면 된다. 덴티둠은 다크 엘프에게는 전략물자지만, 우든 엘프에게는 전략물자가 아니었다.
“위험할 텐데 괜찮겠어?”
“인간은 이득을 위해 위험을 각오하는 종족이지요. 위험을 생각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넘어왔다. 드리아데가 먼저 일행을 속였다는 사실은 바리스의 마음을 보호할 것이다.
바리스는 절대선을 추구하지 않았다. 함께 하는 자를 보호하고자는 마음에 가까웠다.
동정을 품은 대상을 학살하는 것을 괴로워하지만, 일행을 위험에 빠트리려고 한 자를 괴롭히는 것을 말리지 않는다.
*
*
*
바닥에 흙이 밟히기 시작했다. 우회하긴 했지만, 암석 지대와 가까워졌다.
드리아데의 긴장이 살짝 올라간 어깨에 그대로 나타났다.
“말씀하신 곳이 저곳이군요. 딱 덴티둠이 있을 만한 지형입니다.”
“그, 그래.”
내가 가리킨 곳은 적 방향으로 깊었다. 드리아데는 우든 엘프인 만큼, 암석 지대에 들어선 이상 지형에 대한 우위를 내세울 수 없다.
내가 가리킨 곳은 실제로 덴티둠이 있을 만한 지형이었다. 다크 엘프에게 들킬까 봐 에드샤의 광역 지하 탐색 스킬은 쓰지 않았지만, 에드샤의 광맥에 대한 지식과 감각은 스킬을 쓰지 않아도 유효했다.
그리고 지형의전략적 가치 분석과 판단에 있어서 드리아데는 나를 따를 수 없다. 드리아데가 아무리 전투 경험이 많아봤자 비슷한 지형에서 비슷한 전력의 전투였다.
극단적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수없이 죽을 상황까지 몰리고 또한 죽은 나와 분석력을 견줄 수 없다.
나는 드리아데가 가자고 할 지점을 그녀가 말하기 전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곳과 가까운 곳을 찍었다.
내 말에 드리아데가 반대하려고 해도 아예 딴 곳을 가리키지 않는 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생각될 애매한 위치였다.
드리아데는 얇고 가벼운 검을 다시 잡았다. 같은 엘프를 상대하기에 유리한 검이 그녀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했다.
크고 무거운 몬스터를 상대하기 부족해 보이는 드리아데의 검처럼 드리아데는 한 가지 사실을 몰랐다.
내가 찍은 위치는 그녀가 가려고 했던 위치와 달리 퇴로를 비틀 수 있다.
적에게 밀려 포위되기 직전에 숲 방향이 아니라 아예 바깥쪽으로 드리아데를 유도-납치할 수 있다.
‘엘프의 전장’ 미궁층은 다크 엘프나 우든 엘프 둘 중 한쪽에 잘 보이면 공략할 수 있다. 다만, 신뢰를 쌓는 일이기에 오래 걸렸다.
그렇기에 나는 편법을 쓸 것이다. 내게는 나를 믿게 만드는 수단이 있다.
어린 엘프들이나 드리아데의 부하 엘프는 신도급이기에 [강제 종속화]가 통할 테지만, 드리아데는 신도급에서 벗어나기에 [강제 종속화]를 쓸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약간의 노력이 더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