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7화
나는 일행을 두 파티로 나누어서 진행했다. 리버밸런스 사도급인 신도와 검은 날개 소녀를 상대하는 나와 수희 그리고 바리스, 헤스티, 아리나란.
나머지 에리, 에드샤, 페로는 탈출로 확보를 위해 전장 밖으로 보냈다.
밖으로 보낸 에리가 의지를 전해왔다.
[ 계단을 찾았어요. ]
[ 잘했다. ]
나는 공간을 격하고 멀리 떨어진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내게 종속된 에리였기에, 어렵지 않았다.
이제 컨트롤러 클래스 하위 스킬은 숨 쉬는 것만큼 쉽고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
[ 이리로 오실 건가요? ]
[ 아니, 아직 지지 않았어. 그보다 에리, 에드샤와 페로를 이끌고 해야 할 일이 있다.]
[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
[ 계단으로부터 여기까지 길을 만들어라. ]
[ 길을요? ]
[ 정확하게 말하면 탈출로이자 영역이다. 내가 마법사의 영역에 관해 말해준 것 기억하지?
키벨레 종족의 어스 마법은 영역 확보가 토대가 돼. 너와 에드샤가 길을 만들어놓으면 내가 그 위에서 힘을 발휘하기가 쉬워져. 적은 힘들어지고. ]
[ 네, 알겠어요. ]
전투를 이어가면서도 에리에게 의지를 보냈다.
압축되는 이력을 느꼈다. 나는 리버밸런스 신도를 노려보았다.
신도가 손을 내밀었다.
“모두 종언을 맞이할 것이다. 한낱 먼지로 돌아가고 나서는 회한조차 토해내지 못할 것이다.”
손바닥 앞 공간이 세로로 찢어졌다. 마치 껍질을 터트리는 과육처럼 기이한 핏덩어리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꿈틀거리는 덩어리가 줄을 이어 떨어졌다.
“키메라.”
바리스가 삿된 기운에 검을 다시 잡았다. 튀어나온 키메라 수십은 검은 날개 소녀를 피해 움직였다.
헤스티를 향해 세 발로, 혹은 두 손으로 뛰어나갔다.
“칫. 수작질을.”
수희가 혀를 찼다. 헤스티의 즉시 발사 가능한 파이어 볼이 리버밸런스 신도의 블링크 마법을 억제하고 있었다.
튀어나온 키메라가 헤스티의 시야를 가리고 드잡이질을 시작하면 헤스티가 견제하지 못한다. 신도가 자유로워질수록 수희는 위험해진다.
수희는 리버밸런스 신도 뒤에서 견제하기를 멈추고 헤스티와 바리스를 지원하려 했다.
‘공세를 늦추지 않을 거다. 차라리 판을 만든다.’
“헤스티 흔들리니까 조심해라.”
나는 손을 들어 올려, 수희가 공세를 멈추고 후방 지원으로 빠지려는 것을 막는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힘을 부렸다.
땅이 흔들렸다.
나는 이미 내게 종속한 바닥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헤스티가 서 있던 바닥을 통째로 기둥으로 세웠다. 마치 촛대처럼.
헤스티는 촛대 위의 초처럼 의연하게 섰다.
바닥 흙과 돌을 모두 내가 장악했기에 부릴 수 있는 지형 변경.
작은 속임수까지 넣었다. 촛대는 지지하는 대가 부서지면 무너진다. 하지만 헤스티가 밟은 기둥 윗면은 아니었다. 부유력을 가지기에 아래가 부서져도 기둥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리버밸런스 신도는 모른다. 리버밸런스 신도가 소환한 키메라는 모른다.
기둥이 약점처럼 보이니 기둥을 우선 공격할 테고 기둥을 향한 공격은 아래의 바리스가 막을 수 있다.
쉽게 막을 수 있는 곳을 약점처럼 보이게 해 적을 속였다.
“저 키메라, 강해 보이지만.”
바리스의 검이 빛났다.
마음을 힘으로 투영해내는 용사의 힘은 바리스를 한 단계 위로 이끌었다. 원래 역사의 레리아나의 검 절삭력을 넘어섰다.
키메라는헤스티를 보호하는 바리스를 뚫지 못할 것이다. 바리스가 한쪽을 상대하는 동안 다른 쪽이 헤스티를 노리는 위험은 내가 전장 지형을 변경시켜 차단했다.
*
들고 있던 레리아나의 검이 지잉 울었다.
나는 쥐고 있던 손 새끼손가락 끝으로 어린 고양이 간지럽히듯 손잡이 끝을 긁었다.
“울지 마.”
레리아나는 키메라를 미워했다.
원래 역사의 레리아나는 키메라에게 죽고 검에 맺혔었다. 현재의 레리아나는 원한 대신 희망을 품었지만, 원한 자체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
“레리아나 나를 봐.”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바리스와 키메라의 전투를 보는 레리아나의 주시는 원한의 상대를 타인에게 빼앗겨 버린 복수자의 시선과 닮았다.
그리고 또한, 체념이 담겨있다. 자신은 그저 어리고 경험없는 귀족 소녀일 뿐이라는 체념, 귀족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함에 대한 자괴감.
“나랑 함께 가자.”
잠자리에서 귓가에 속삭이듯 간지럽혔다.
나는 기운을 전개했다. 검에 자신의 기운을 담는 경지는 이미 도달했다.
검이 나의 몸 일부인 것처럼 흐름을 이어냈다. 레리아나의 온몸을, 검신 전체를 완전히 나의 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이끌었다. 첫 무도회장에 나온 귀족 아가씨를 춤으로 인도하는 귀족처럼.
다만 나는 귀족이 아니었다. 가진 전부를 끌어내고 가져가 버리는 무례한이었다.
검에 나와 레리아나의 흐름이 엉겨진 채 흘렀다.
이미 여체를 농락하는 데 익숙해진 나는 나의 흐름에 레리아나의 힘을 더해 원래 나의 힘을 초월해냈다.
나는 레리아나의 검을 리버밸런스 신도가 내밀은 손을 향해 휘둘렀다.
천둥이 울렸다.
밀려났다. 입술 끝으로 한줄기 피를 흘렸다.
뒤로 밀려나면서 만들어진 고랑 끝에서 꿇었던 무릎을 폈다.
피를 털어내듯 가볍게 휘둘렀다. 리버밸런스 신도의 힘과 그대로 격돌했음에도 레리아나의 검은 온전했다.
아니, 더욱 강해졌다. 충격 속에서 레리아나는 더욱 깊게 나를 받아들이고 외적을 밀어냈다.
*
신도와 나의 격돌.
충격량을 상쇄하기 위해 집중한 순간의 신도에게,
검은 날개 소녀가 파고들었다.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끼에 거리는 소리가 파문처럼 퍼졌다. 나를 밀어낸 리버밸런스 신도에게 날카로운 손끝을 찔러넣었다.
푸극-.
금속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 거죽을 뚫고 근육을 밀어내며 뼈마저잘라내는 소리.
검은 날개 소녀의 가는 팔근육이 뚜렷해졌다. 리버밸런스 신도의 가슴 속에 파고든 손을 비틀어 심장을 쥐려고 했다.
리버밸런스 신도의 손이 움직였다.
가슴 속에 파고든 검은 날개 소녀의 팔을 무시하고 소녀의 머리를 손가락을 활짝 펼쳐 꽉 잡았다.
끼에- 끼리에-.
고통에 비트는 소리.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고 흘리는 소리.
하지만, 리버밸런스 신도의 손가락 끝은 더욱 깊숙이파고들었다. 손가락 끝이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베여나온 피가 손가락을 적시고 머리카락을 적시고 흘러내렸다.
“이 제물을 이용해 나를 견제하려 했겠지만.”
리버밸런스 신도가 검은 날개 소녀를 들어 올렸다. 머리를 부여잡은 손을 올리자, 신도의 가슴에 박혔던 팔도 빠져서 늘어졌다.
“무지는 위험하지, 젊은이.”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 것과 죽은 것의 경계에 선 것을 태우는 냄새. 본능적인 혐오를 일으키는 연기가 리버밸런스 신도의 손가락 끝, 검은 날개 소녀 머리 구멍에서부터 뭉클거렸다.
“네 말이 맞아.”
나는 전력을 끌어냈다. 레리아나의 검 끝에 담았다.
알지 못하는 것은 이용하는 법이 아니다. 검은 날개 소녀는 길고 오랜 시간과, 수많은 악의로 농축되었다. 그 전부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잘라내면 된다. 알 수 있는 부분이 보일 때까지.
“네놈이 착각하는 것 같은데.”
검을 휘둘렀다.
“이 소녀가 필요한 건 너지. 내가 아니야.”
리버밸런스 신도에게 붙잡힌 소녀의 등에 금을 그었다. 검은 날개를 가르고 새하얀 등마저 갈랐다.
바리스는 이 소녀가 끝을 원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했지만, 바리스는 망설일 것이다.
생명을,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의심스러운 존재를 끝낼 수 있는 순간이 와도 바리스는 전력을 투사하지 못할 것이다.
가슴 속 한구석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구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끝을 갈구하는 마음을 안다.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악의로 이루어진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에게 망설임은 고통을 연장하는 또 다른 가해일 뿐임을 안다.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았다.
레리아나가 나를 도왔다. 그녀의 특능이 소녀의 내부를 격발했다. 여성형 존재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레리아나의 특성은 이 절망하는 존재에게도 발휘되었다.
“네놈 네놈, 이 찢어 죽일.”
신도가 격노했다.
소녀에게 얽힌 악의와 세월이 만들어낸 절망은 강하고 질겼다. 내가 전력을 쏟은 참격에도 존재가 끊어지지 않았다.
두 날개와 쇠사슬은 그 힘을 읽고 견뎌왔던 세월의 역류에 마모되어 사라졌다.
남은 건 가죽과 살덩어리. 의식이 인지되지 않는 잔념의 뭉치.
덜렁거렸다.
끊어지지 않고 단지 이어져 있을 뿐인 잔재.
“제물을 잃은 제사장은 이제 무엇을 바치려나?”
“네놈, 네놈을 바칠 것이다.”
나는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쉽지 않을걸. 영역을 장악한 마법사는 강력하지. 이는 마법사에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야.”
리버밸런스 신도가 너덜거리는 소녀를 옆으로 집어 던졌다. 아직 존재가 끊어지지 않았기에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꿈틀거렸다.
하지만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제 전력으로 나를 칠 리버밸런스 신도에게 집중했다.
신도도 역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부만 남은 소녀는 더 이상 부여한 힘 이상의 결과를 이끌어주는 매개물이 아니었다.
다만, 바리스의 보호 아래에 있던 아리나란만이 시선을 주었다.
어린아이가 자신과 비슷한 아이에 눈을 반짝이는 것처럼 자신의 피막과 닮은 날개를 가졌던 소녀였던 것을 눈으로 쫓았다.
살금살금 움직였다.
*
나는 발을 굴렀다.
“어스퀘이크.”
스킬을 쓰지 않았다. 스킬이 아니었다. 에리와 에드샤가 주변에 없기도 하지만, 그녀들에게는 따로 맡긴 일이 있는 만큼 힘을 끌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효과를 냈다.
내가 종속시킨 흙과 돌과 바닥이 일부는 부유하고 일부는 아래로 또 나머지는 두 방향이 거대란 진동을 만들도록 힘을 가했다.
어스퀘이크는 약한 마법이었다. 동급의 적에게 통하지 않고 약한 다수의 자세를 흩트리는데 적당한 마법이었다.
리버밸런스의 신도는커녕 다른 하위 신성의 사제도 약간의 집중으로 방어해낼 수 있는 마법이었다.
막기 위해서는 약간의 집중이 필요할 뿐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집중이 필요했다.
리버밸런스 신도는 살을 주고 뼈를 취했었다. 그는 한 번에 검은 날개 소녀를 잡기 위해, 일부러 가슴에 공격을 맞고 소녀의 머리를 잡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내준 살을 즉시 회복할 수 없다. 집중해야 한다.
‘거기에 이적 하나를 캔슬당했지.’
소녀의 머리를 잡고 어떤 수작을 부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소녀에게 치명상을 입힘으로써 수작이 무의미해졌다.
이적을 캔슬하는 반발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특히 그 이적의 격이 높을수록 반발이 컸다.
리버밸런스 신도의 경지면, 어스퀘이크 효과를 버티기 위한 집중은 한 호흡이면 된다. 하지만, 검은 날개 소녀에게 내어준 가슴 속의 회복과 이적 캔슬 여파의 회복.
거기에 나와의 접근전까지.
한 호흡은 질식 직전의 호흡만큼 귀중해진다.
나는 레리아나의 검에 힘을 실었다. 검은 날개 소녀를 공격할 때처럼 전력을 한 번에 담지 않았다.
오히려 장기전을 기약했다.
리버밸런스 신도에게 달려들었다. 흔들리는 바닥이 신도와 나를 흔들었다. 흔들림은 신도에게 방해였지만, 내게는 조력이었다.
흔들림이 내딛는 내 몸에 힘을 더했다.
“미비한 짓을.”
리버밸런스 신도가 몸을 띄웠다. 지상의 흔들림으로부터 이격되었다.
“멍청한 건 너다.”
나의 검을 리버밸런스 신도가 회피했다. 신발 바닥과 땅과 마찰시키지 않고 마력을 이용해 이동했다.
마력을 소모했다.
신도가 손을 내밀었다. 회피에 이어 반격을 시도했다.
내 몸이 신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내 발아래의 바닥이 아래로 쑥 꺼졌기 때문이다.
옆에서 나타나 신도를 다시 공격했다.
나는 리버밸런스 신도를 속이기 위해 속임수를 깔았다.
어스퀘이크라고 외치면서도, 어스 마법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컨트롤러 클래스 스킬로 종속시킨 땅을 움직였다.
내가 어스 마법을 이용한 수작을 부릴 거라고 추측하지 않도록.
어스 마법을 쓰지 않는 자가 돌과 흙을 이용해 마법진을 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에리와 에드샤가 오고 있다.’
에리와 에드샤의 어스 마법은 적이 장악한 영역에서는약했다. 마법진이 이미 완성되어있는 곳에서는 확연하게 약했다.
이 사실은 역도 성립했다.
장악한 영역 안에서는 탁월한 위력을 발휘한다.
에드샤가 리버밸런스 신도와 전력으로 싸우는 도중이라면 쓸 수 없는 기책이었다. 에드샤의 힘을 보면 상위 수단을 당연히 경계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약하지 않다. 리버밸런스 신도가 나와 격돌을 반복하는 도중에 나의 수작을 알아차릴 여유를, 보이지 않는 일행과 연계한 수작을 떠올릴 정도의 여유를 삭제할 능력이 있다.
나는 끊임없이 리버밸런스 신도와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