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1화
근거가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에리가 나의 종속체이기에 에리가 보고 느끼는 것을 나도 알 수 있다.
에드리가 에리에게 가르친 내용과 에드샤에게 가르친 내용은 달랐다.
당연히 달라야 했다. 에리는 마법진이 처음이고, 에드샤는 배우는 도중이기에 같은 진도일 수 없었다.
하지만, 에드샤의 교육은 한 가지에 치우쳤다. 마법진의 발동된 힘의 타겟에 자신을 포함시키고,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육체 능력 향상 등의 버프를 주는 마법진을 이용할 때와 기본 구조는 같았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쓰지 못하는 방법이다. 실전에서 버프를 받는 이유는 적과 싸우기 위함이다.
실전에서, 대부분의 정신력은 전투에 집중된다. 버프 유지에 소모되는 집중력이 적을수록 좋은 버프가 된다.
에드샤가 마지막으로 반복 숙련하는 내용은 정신력 전부를 버프를 받는데 집중하는 방법이다.
실전용이 아니다. 실전에서 쓴다면 전장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은둔’하기 위한 마법진이다. 미궁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자’가 되기 위한 마법진이다.
*
‘일행을 둘로 나눈다.’
지금도 검은 나무와 나무가 엉켜 열매를 피워냈다. 열매는 유령처럼 검은 엘프 인형으로 변해 마을로 다가왔다.
어색한 첫걸음은 두 걸음째 성인의 걸음이 되고, 마을에 닿기 전에 엘프 전사의 몸놀림이 되었다.
검은 엘프 인형을 막아야 했다. 키벨레 종족의 마법진의 힘으로 마을 내부까지 검은 영역이 침입하지 않았지만, 물리력은 달랐다.
키벨레 종족을 이끄는 세디메샤는 에드리와 투르반의 리크 무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투르반 무리의 전멸을 대가로 바치는 계산법이었다.
‘끝까지 돕고 지키려 한 투르반, 그가 믿었던 키벨레 종족의 선택이 키벨레 종족만의 탈출임을 마지막 순간에서야 알았겠지.
그와 그를 따르던 리크들은 검은 영역에 먹히면서, 키벨레를 저주할 것이다.’
그 원한은 미궁 몬스터가 되어서도 흩어지지 않아 키벨레를 적대하는 점액질 리크가 되었다.
투르반은 위대한 자다.
죽어가며 부르짖은 저주만으로, 탈출하는 키벨레의 끝을 마법진도 없이 잡아 쫓을 정도로.
“바리스, 헤스티, 수희, 아리나란은 여기서 방어해줘. 마법을 제한하지 말고 써. 바리스의 전술적 판단에 따라 힘을 예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줘.
바리스, 아리나란을 부탁해.”
“네, 해내겠어요.”
바리스는 지켜내는 전투에 탁월하며, 헤스티는 이미 맥을 파악해 전체 마법을 쓸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수희는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바리스와 헤스티의 빈틈을 메꾸고 강점을 더 할 것이다.
이번 전장은 아리나란의 힘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도 나와 바리스를 따르는 아리나란은바리스를 보호하는데, 피막을 사용할 것이다.
“에리. 페로. 가자. 우리는 내부로 간다.”
“안돼. 외부인을 금지로 들일 수 없어.”
에드리가 일행을 막아서려고 했다.
“적은 우리가 아니라, 밖에 있다. 그리고 이미 우리도 이 방어전에 목숨을 걸었어. 우리는 너희의 마법진을 지켜볼 권리가 있어.
또, 적의 잠입부대가 없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지? 너희의 마법진이 중요하다면 그것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아니. 그래도.”
“가자. 에리, 페로.”
나는 에드리의 반박을 무시하고 내부로 달려갔다. 에드리에게 한 말은 에드리를 설득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투르반이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전체 전장을 지휘하는 투르반이 허가했다.
에드리는 자신이 맡은 부분을 완수해야 하는 하급자였다.
에드리에게는 자신이 맡은 임무, 투르반을 이용해 외부의 적을 막아 시간을 버는 임무가 우선이었다.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고 우리 일행을 막았다가, 우리 일행이 상급자 세디메샤가 처리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문제가 되어버리면, 에드리의 오판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에드리가 자신의 임무를 포기했기에 전체가 실패해버린다.
*
이미 에리를 통해 지리를 파악했기에 멈추지 않고 달렸다.
“페로, 너의 탈출 권능을 확장하는 거다.”
페로는 카이바린 교단과의 인연이 끊어지면서 안정된 탈출 능력을 잃었다.
다만, 그가 쌓아왔던 노력과 성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맵 내의 올라가는 계단을 찾고, 그 계단으로 순간이동 하는 능력은 임의의 생존 가능한 장소로 순간이동 하는 능력으로 변했다.
하지만, 경험했던 감각과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페로는 이곳에 도착해서 탈출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패를 말했지만, 동시에 페로의 초월적 감각은 살아있다는 의미였다.
초월적 감각이 죽었다면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잃은 건 힘이지. 방법이 아니야. 틀렸나?”
“그렇긴 하지만.”
페로는 그의 잃어버린 젊음처럼 늙은 목소리로 자신없어 했다.
“살려고 발버둥 칠 거잖아. 강해질 거잖아. 그렇지 않나? 힘을 이어봐. 기회를 만들 테니.”
“···.”
* * *
아리나란을 데리고 오지 않기를 잘했다.
키벨레 마을의 심처는 와이번 둥지의 제단을 떠올리게 했다.
회귀를 반복하면서 마법사를 한 적 많았다. 그때 얻은 지식이 기반이 되었다, 제단과 제물에 익숙했다.
이는 전체를 이해하는 토대가 되었다.
‘그리고 에드리가 에리에게 가르쳐줬던 지식.’
개관에 불과할지라도, 토대가 쌓인 내게는 달랐다. 다른 종족의 마법과 마법진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기에 ‘열쇠’가 되었다.
흙과 벽으로 이루어진 그림, 키벨레의 심처는 하나 큰 구조물이자 마법진이었다.
수십의 키벨레가 둥근 원형의 안쪽 요지마다 자리 잡고 그녀들의 힘을 구조물에 투사했다.
구조물의 중앙에서, 마법진의 중앙에서 전체를 관장하던 자가 물었다.
“에드리는 어떻게 된 거지?”
“그녀를 걱정하는 건가. 아, 아니, 그녀의 임무를 걱정하는 건가? 그녀는 지금도 검은 인형을 막고 있지.”
“그래···.”
심처로 달려온 나를 보고 오다가 충돌했을 에드리에 대해 묻는 거보면, 세디메샤도 동족에 지극한 키벨레는 키벨레였다.
“위선 부리지 마라. 세디메샤, 고뇌하며 후회할 존재야. 처음부터 그녀는 버릴 말이 아니었나?
침식에 얽매여 죽어도 죽지 못하는 길을 알고도 밀어 넣지 않았나?”
“아니다. 그녀가 선택한 길이야. 동족을 위해 숭고한 선택을 했다.”
나는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그녀는 수준이 낮아 세계의 비밀을 엿볼 격이 아니야.
넌 그저 그녀에게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고 말로 설명했겠지.
너 정도 되어야 엿보고 갸름할 수 있는 미래를 그녀에게 체감시킬 수 없으니.”
“그녀를 모욕하지 마라.”
“너를 모욕하지 말라고 말해야지.”
나는 천천히 흙과 벽으로 된 마법진이자 구조물인 것을 훑었다.
“바람이 불 것이다. 시간을 담은 바람은 기껏 새운 벽을 깎아 모래로 만들 것이다. 모래는 길을 감추고 오갈 사람을 감추고, 끝내 세월을 감출 것이다.”
나는 이들의 목표점, ‘굳은 땅의 은둔처’를 말했다.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은 고작 그것이다. 동족 하나를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떨구고, 타종족을 배반하고 그들의 원한을 뒤집어써서 이루는 것이 고작 그것이다.”
“너는 몰라. 격이 낮은 너는 몰라.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들은 세상을 집어삼킬 것들이다.”
“나는 그들을 몰라. 하지만, 키벨레의 운명을 안다.”
“거짓말.”
“저 에리가 그 증명이다. 에리는 키벨레와 인간의 혼혈. 너희들은 에리를 보자마자 조사했을 텐데 에리의 어미가 누군지, 그래 어미를 찾았나.”
“···. 찾지 못했어.”
“에리는 팅겨나간 운명의 아이다. 너희가 탈출할 때 버리고 간 에드리의 아이다.
에드리는 너희들에게 버려져 세상에 모멸당하다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인간 세계에 밀어 넣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런 미래가 존재할 리 없어. 네가 미래에서 왔을 리가 없어. 미래가 과거를 ···. 바꿀수 있을 리가 없어.”
짝짝짝-. 나는 손뼉을 쳤다.
“역시, 그들의 힘을 엿볼 정도의 격을 가진 자인가. 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음을 인지했나.”
세디메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의 적은 미궁이다. 세계를 파편화해서 자기 몸에다가 가져다 붙이는 놈.
저 불쌍한 검은 엘프 인형도 어딘가의 세계에서 미궁에 먹혀 미궁이 확장하는데, 이용될 뿐이지.
공간은 물론 시간까지. 그리고 인과마저도.”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의 탈출 시도는 성공해. 여기를 벗어나지. 하지만 도착하는 곳 또한 미궁이야. 마지막 하나의 키벨레도. 죽어도 영혼의 안식을 얻지 못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져 인형 놀이를 계속하지.”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너를 구할 수 없어. 너의 종족을 구할 수 없어. 내가 장악한 것은 단 한 명의 ‘인과’. 에드샤의 인과.”
“뭐가. 뭐가 다른 거냐. 미궁에 먹혀 인형 놀이를 반복하는 거랑, 너에게 장악당하는 거랑.”
“발버둥 칠 수 있지. 이딴 미궁을 깨버리기 위해.”
“···.”
“바스러지고 사라져라. 세디메샤. 고뇌하며 후회하는운명을 극복해 바스러지고 사라져라.
미궁의 인형이 아닌 스스로 발버둥 치는 에드샤를 위해서.”
“···.”
에드샤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마법진의 한쪽 구석에서 탈출 효과에 매달리기 위해 힘을 부리던 에드샤는 자신의 이름에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
애달픈 눈으로 에드샤를 보던 세디메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는가.”
“그 전에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뭐지?”
“투르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애원해라. 너의 종족 아이를 위해 희생해달라고.”
“···. 무슨 의미가 있나.”
“그의 영혼이 절망하지 않는다.”
이곳의 투르반은 구할 수 없다. 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 회귀 때, 미궁 심층에서 적이 ‘고뇌하며, 후회하는 세디메샤’를 소환하는 것을 보았다.
투르반이 여기서 절망하지 않고 투혼을 불태운다면, 자신이 마지막까지 속아 죽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의 발버둥을 위한 투쟁임을 깨닫는다면,
‘이용당했지만, 불굴의 투르반’을 소환할 수 있을 것이다.
“알았다.”
세디메샤는 걸음을 옮겼다. 구조물의 중앙에서 에드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말없이 이끌었다.
나는 에리의 등을 살짝 밀었다.
에리는 천천히 다가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에드샤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세디메샤가 심처 밖을 향해 걸었다. 투르반에게 애원하기 위함일 것이다.
나는 페로와 에리와 에드샤를 이끌었다.
나와 세디메샤의 이야기를 듣고, 세디메샤의 결정에 동의한 키벨레들이 발동중인 마법진을 살폈다.
내가 장악한 에드샤의 인과와 페로의 탈출 권능과 키벨레 종족 전체의 마법진의 힘이면, 미궁 지하 5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길잡이가 되어 일행을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