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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0화 (60/139)



〈 6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0화

적이 나타났다.
검은 인형들, 수는 많지 않았다. 전처럼 전방을 완전히 뒤덮어 수로 압도했던 광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키벨레 종족이 일으켰던 거대한 어스 슬라임 마법은 분명 적에게 영향을 줬다. 어스 슬라임은 적이 대규모일 때 유용하지만, 소수의 강자에게 취약했다.

나타난 인형은 형태가 조금 달랐다. 여성형 몸매에 귀가 길었다.
뒤에 가려진 것까지 추측하면 대략 30여 개체.
이들은 돌진해 오지 않았다. 쉽사리 거리를 좁혀오지 않았다.

“활을 잘 쏠 것 같은 모습이군요.”

여성형 엘프 형태의 검은 인형. 바리스가 보호막을  준비를 하며 말했다.
나는 미궁 심층에서 엘프를 본 적 있지만, 일행은 본 적 없었다. 그래도 엘프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 들은  있는지, 바리스는 상대의 전술을 추측했다.

“이거 불안한데.”

투르반이 인상을 썼다.
평지에서 회전을 벌이는 것보다 수성이 쉬웠다. 이는 일행과 투르반의 리크에게도 적용되었다.
키벨레 마을이 마을 수준이라고 해도 키벨레 종족과 함께 하는 한, 성에서 수비하는 만큼 유리했다.
지금이야 마을 밖에 있지만, 전황이 급해지고 아군 간의 전투 방식에 익숙해지면 마을 안에서 키벨레의 어스 특성을 배경으로 함께 싸울 것이다.

다만, 전제가 있었다. 적이 공격해와야 했다.

“원거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키벨레가 어스 마법을 방어적으로 운용하면, 원거리 공격을 쉽게 막았다.
화살이나 창과 같은 투사 무기는 물론이고, 파이어의 계열 폭발하는 공격까지 흙으로 막고, 범위 확산하는 효과도 흙으로 감싸 효과를 감소시켰다.
키벨레 마을은 키벨레의 영역이었고,  영역에서 어스 방어 마법은 단단했다.

*

검은 엘프 인형이 움직였다.
처음에는 하나, 저들 무리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숫자를 늘려갔다.
총 일곱이 다가왔다.
헤스티가 나를 살짝 봤다.
내가 고개를 옆으로 젓자,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먼저 공격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없었다. 또한, 마법사는 적의 목표가 되기 쉬웠다.
한 집단에서 마법사를 제거하면 공격 패턴이 단순해지고, 패턴이 단순한 집단은 대처하기 쉬운 법이다.
헤스티가 유효한 타격을 주는 것과 별개로 마법사의 존재는 변수를 더했다.

선두에 선 검은 엘프 인형이 입을 열었다. 마치 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뒤따르던 검은 엘프 인형은 화음을 맞추는 것처럼 손을 내밀고 입을 열었다.

“어떤 주문일까요?”
“저주나 적 상태 변화 마법일 수 없어. 이 자리는 키벨레 종족의 영역이야. 범위 저주나 상태 변화 마법은 영역 장악에 크게 영향받아.
힘을 구현한 다음 쏘아내는 파이어 볼트나 아이스 스피어보다 쉽게 막혀.”

투르반이 투창을 들었다. 잡고 몸을 천천히 뒤로 당겼다.
힘과 정확도에 투자한 자세.

슝-.
전신의 탄력이 선으로 이어지고 한 점을 향해 쏘아졌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
투르반의 투창이 검은 인형의 가슴 중앙을 뚫고 등 쪽으로 삐져나왔다.
검은 엘프 인형은 회피도 방어 마법도 쓰지 않았다. 그저 노래를 부르는 모습 그대로, 창에 꿰뚫린 채로 흙바닥에, 대지에 쓰러졌다.

네이투가 자신의 투창을 투르반에게 넘기려고 내밀었다. 네이투보다 투르반의 투창이 더 강하다는, 전략 물자의 최대효과를 위해서였지만, 투르반이 손을 내저었다.

대지에 닿은 검은 엘프 인형은부패되어 터져나가는 나뭇조각 같았다. 차가운 몸매 선을 만들었던 몸은 버석버석해지고 상처 부위에서 터져 나오는 것은 생명의 증거가 아니라 진액을 닮았다.

엘프 인형의 시체가 흙을 가렸다. 가려진 흙을 기이한  같은 것이 덮었다.
덩굴 같았다. 뿌리를 닮은 것도있었다. 마치 하나의 씨앗에서 커다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변성된 뿌리가 퍼져나갔다.
엘프 인형 몸의 수십 배, 수백 배의 공간을 뿌리가 파헤치고 덮었다.

“무슨 저렇게 지독한.”
“엘프의 영역 마법을 응용한 거다. 엘프의 마법은 기본적으로 보조야. 원래 있던 꽃과 나무에 활기를 더하듯 마법을 전개해.
그래서 한계가 있어. 돕고 북돋는 방식이라 원 대상의 한계 이상 힘을 내지 못하지. 희생을 요구하지도, 희생을 받아들이지 않아.
하지만, 저 엘프 인형은 희생했다.”

선두의 여섯 엘프 인형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쓰러져 썩고 터져버린 엘프 인형에는 시선 하나 주지 않고, 걸어왔다.

“흑, 죽어서 펼치는 마법이라니.”

헤스티의 말에 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을 안까지 물러나자. 평지 회전은 불가능해. 적의 영역 안에서 싸울  없어.
키벨레가 마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

나의 말을 일행은 이견 없이 받아들였다. 당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전투 후까지 참을 것이다.
이때까지 전투가 끝나면 했던 판단을 설명해주었고, 설명하기 이른 내용도 결과로 옳음을 증명해왔다.

하지만, 투르반 무리는 달랐다.
투르반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비쳤다. 투르반은 여기서 우직하게 싸울 생각인 듯했다.
아마, 원래 역사에서도 여기서 싸웠다가 큰 피해를 입은 다음에야 물러났을 것이다.
지금처럼 곤란한 기색도,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원래 역사와 달라진다.’

리크무리는 함께 이동하고 싶어 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것은 수치지만, 전장을 조금 더 뒤로 물리는 것은 전술적 선택일 뿐이었다.
리크들도 우리 일행의 보조를 받으면 더 잘 싸울 수 있는데, 굳이 여기서 버티겠다는 주장은 고집밖에 되지 않았다.

“투르반 도와주게. 우리만 가면 경계한다고 여력을 낭비할 거야. 우리에게도 키벨레에게도 좋지 않아.”

나는 투르반이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를 줄였다.

*

일행은 투르반과 함께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안쪽을 향한 면이 뚫려있는 특이한 형태의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외곽 지역의 건물은 이미 비워졌기에 아무런 방해 없이 올라갔다.

‘키벨레 종족이 움직인다.’

나는 에리가 키벨레에게 대접받는 것을 보고 급하게 일행에게로 데리고 오지 않았다.
에리가 어린 나이의 에드샤와 함께 마법진에 대해 배우는 것을 훔쳐 익히면서, 내부 분위기를 살폈다.
다른 키벨레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얼핏 스쳐 지나가는 키벨레도 싱긋 웃으면서 에리와 에드샤의모습을 눈에 담고는 빠르게 지나갈 뿐이다.

*

검은 엘프 인형이 마을을 향하자, 에드샤와 에리를 가르치던 에드리가 가르침을 멈췄다.

“에리, 에드샤 여기까지 하자. 에리 나중에 제대로 배울 시간이  거야. 에드샤, 가르쳐 준 부분 이해할  있지.”

에리를 보는 에드리의 눈이 슬펐다.

“에드샤 마을 중앙 아래 알지? 금지된 곳.”
“응, 알아.”
“어서 거기로 가.”
“근데, 에리는?”
“내가 그의 보호자에게 데리고 갈 거야.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그럼, 언제 다시 보는 거야?”
“···. 미안, 약속할 수 없네. 하지만, 노력해볼게.”

에드샤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어서 가.”
“치, 알았어. 에리 언니, 다음에 봐.”

손을 흔드는 에드샤를 뒤로 두고 에드리는 에리를 데리고 나왔다.

*

“에리.”

바리스가 달려나갔다. 괜찮았냐는 듯 어깨를 툭툭 쳤다.
헤스티는 물론, 수희와 페로와도 눈길을 교환해 무사함을 알렸다.
아리나란만이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아리나란은 짧은 시간 보이지 않았다는 것만  뿐, 위험한 순간의 짧은 이별이 영원한 이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지 못했다.

차가운 에드리의 얼굴, 에드샤와 에리를 대할 때나 에리를 배웅하기 전의 아련한 표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에드리는 일행과 투르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가오는 적에 시선을 두었다.

[어스 웨이브]
대지의 힘이 전방으로 뻗어 나가다가 부채꼴로  펼쳐졌다. 다가오던 검은 엘프 인형 모두를 노리고 대지가 뒤집히며 넘실거렸다.

나는 인상을 썼다.
내가 빠지자는 말에 투르반이 동감했던 이유, 투르반이 검은 엘프의 접근을 알면서도 허용했던 이유.
검은 인형의 파괴는 검은 영역의 확정과 연결되어 있었다.

첫 번째 검은 엘프 인형이 쓰러진 자리에 검은 나무가 자라났다. 검은 나무는 영역을확정했다.
검은 엘프 인형을 처치하는 것 자체가 영역을 퍼트리는 매개라는 의미였다.
마법적으로 우월하고 여력이 있는 키벨레 종족이라면, 투창으로 검은 엘프 인형을 처치하는 것과는 다르게 영역 확장을 막아낼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검은 엘프 인형이 쓰러졌다. 첫 번째 검은 엘프 인형이 그러했던 것처럼 썩어가듯 터져나가며 몸속으로부터 나무를 키워냈다.
어스 웨이브는 마법으로 발동되었으나 물리적 충격만이 가해졌다. 30여 개의 투창을 동시에 날린 것과 같은 효과를 냈으나, 그뿐이었다.
거기에 한 명이 쓰러질 때와 달랐다. 엘프 인형의 몸에서 터져 나온 썩은 나무는 마치 짝짓기하는 뱀처럼 서로 이어지고, 이어진 부분에서 새로운 덩굴이 터져 나왔다.
둘이 모여 셋을 만들고, 여섯이 모여 열을 만들었다. 확실하게 사방을 장악해나갔다.

“에드리, 세디메샤는? 왜 그녀가 나서지 않는 거지?”

투르반이 전투를 앞두고도 따지고 들었다. 에드리는 세디메샤보다 급이 낮았다.
세디메샤의 고급 마법이 아니라 에드리의 [어스 웨이브]로 저렇게 터트릴 거라면, 아예 거리가 있을  투르반이 터트렸을 것이다. 적의 영역을 이루는 근원은 멀면 멀수록 버티기 유리했다.

“힘을 비축하고 계시다. 다음을 위해서.”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에드리가 말한 ‘다음’이 투르반이 생각하는 ‘다음’과 같은지는  수 없지만.

“굳어버렸군. 굳은 땅이라. 이걸 말하는 거였나.”

땅을 흔들어도 뿌리 깊은 숲은 무너지지 않는다. 키벨레 종족은 흙과 모래가 있는 땅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무뿌리로 얽힌 숲이면.

에드샤의 마을은 검은 숲속 마을이 되어버렸다. 나무뿌리와 덩굴로 이어진 굳은 땅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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