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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8화 (58/139)



〈 58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8화

무기질의 검은 색이 달려들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검은색으로 보지만, 내게는 무존재이기에 색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잔상을 흘리며 움직였다.

나는 신호를 보냈다.

‘에리는 어스 계열 마법을 쓰지  것. 헤스티, 페로는 중력 마법을 쓰지  것.’

일행이 양동이 아니길 바란다는 말.
투르반의 말을 기억했다.
그의 의심을 줄이고 기대를 채워줄 필요가 있다. 그는 곁과 속이 같은 이였다. 내가 그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면,  역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해. 강하지만,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될 정도가 적당해.’

검은 것들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바리스와 수희가 장기전을 치르는 호흡 정도로 위력을 조절했다.
레리아나의 검이 검은 것과 부딪혔다. 가뭄이 닥친 대지에 금이 가듯, 레리아나의 검에 닿은 검은 것들이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이것들 인형 같아요.”

바리스가 옆에서 보조하며, 진형을 맞추며 말했다.
이족 보행이지만 인간과 달랐다. 팔다리가 길었다. 특히 나의 검을 팔 끝 손날로 막는 것으로 보면 손을 냉병기로 봐야 했다.

“그럴지도 모르겠어.”

나는 공방을 이어냈다. 찔러오는 손날을 위로 쳐내고 한발 앞으로 나아가며 검은 것의 허리에 검을 휘둘렀다.
검은 인형을 덮고 있던 검은 것이 나의 검로에 따라 깨어지고 갈라졌다.

‘안쪽까지 갈랐는데.’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과 눈으로 확인했다. 인간이라면 옆구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깊이까지 검이 지나가며 잘랐다.
바리스가 인간이 아니고 이종족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  적은 옆구리 상처에 전체가 영향받지 않았다.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검은 인형.
미궁 깊은 곳에서 만났던 마리오네트를 떠올리게 했다. 마리오네트는 강한 적이지만, 마리오네트가 나오는 층까지 갈 정도의 실력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전사 계열도 기운의 영역을 세우고, 영역 내의 이력을 감지하고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몬스터와의 연계 공격이 까다롭지 마리오네트 자체는 감당할 만했다.

“투르반 이놈 약점이 뭐지? 완전히 침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나도 모른다.”

투르반이 나의 외침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일행이 의심을 피하고자 먼저 전투를 시작했지만, 투르반도 거의 바로 움직였다.
그도 한번 정한 진형을 바꾸는 데는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만큼, 우리 일행의 진형이 적을 향해 고정되자, 우리가 배신하더라도 반응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전투를 시작했다.

리크들이 얕게 일자로 펼쳐 적을 상대하기시작했다.
횡으로 길게 늘어선 진형, 각 리크의 개인기가 뛰어난 만큼, 모든 전사가 적과 닿는 효율적인 진영이지만,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적이 있으면 위태로운 진형이었다.

투르반이 쓰러트린 적을 다른 리크가 도끼를 이용해, 관절 부위 단위로 토막 냈다.
바로 집단 전술로 이어냈다. 강한 리크가 적을 쓰러트리면 그나마 기량이 떨어지는 리크가 달라붙어 토막을 냈다.

“헤스티, 불저항을 측정하자.”
“네, 파이어 볼트.”

나는 잔상을 남기는 검은 인형의 다리에 상처를 냈다. 중심을 흩트렸다.
내가 빠르게 빠진 빈자리에 헤스티가 파이어 볼트를 날렸다. 위력으로 압도할 목적이 아니기에 빠르고 가볍게 쓸 수 있는 파이어 볼트로 충분했다.
물론, 같은 파이어 볼트라도 극초반의 파이어 볼트와 위력이 달랐다.

파이어 볼트를 맞은 검은 인형이 꿈틀거렸다.

“불에도 저항하는군요.”
“아니, 나쁘지 않아. 저 리크들의 도끼질과 같은 개념으로 운용해봐.”

검은 인형의 온전한 부분은 파이어 볼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칼질한 곳에 추가된 파이어 볼트는 확연히 손상이 확대시켰다.
리크들이 쓰러트린 검은 인형을 도끼질로마무리하는 것처럼, 헤스티가 파이어 볼트로 마무리를 하면 된다.
헤스티 역시 성장했다. 파이어 볼트 정도는 함께 싸우는 전사가 지칠 때까지 끊임없이 쓸 수 있다.

검은 인형이 전사들에게 까다로운 이유는 상처를 입혀도 전력 저하로 이어지지 않는 것.
하지만, 헤스티가 파이어 볼트로 지원하면 상처를 치명상으로 이어낼 수 있다.

효과가 전선에서 바로 드러났다.
일행은 몰려드는 검은 인형에 밀리지 않았다. 검은 인형의 수가 많았지만,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대처해냈다.
옆의 리크들과 비교하면 더욱 확연했다. 투르반과 네이투의 무력이 뛰어나도 검은 인형 한 마리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너희들 강하구나.”
“다양한 상황에 익숙할 뿐이야. 자네도 온 힘을  것이 아니잖아.”
“클, 눈도 좋고.”

물론 나도 힘을 다하지 않았다.

“좋아, 그럼 함께 뚫고 나가볼까? 이들이 다가 아닐 것 같으니.”
“동감이야. 헤스티 리크들을 지원해줘, 에리, 헤스티를 부탁해.”

일행 내의 헤스티 역할을 페로가 대신했다. 페로는 윈드 계열 마법으로 파이어 볼트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점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적을 공격할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리크 사이에서 쓰면, 리크들이 경계할 것이다.
도와주는 마법을 경계한다고 집중력을 소모하면 아니함만 못했다.

일행은 리크와 함께 전진했다.

*
*
*

“저것들이···.”

수희가 인상을 썼다. 눈앞에서 장애물이 사라질수록, 전술적인 판단으로 높은 지대를 확보할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적의 수가 늘어갔다.
적의 주력이 키벨레 마을을 향하고 있어 망정이지, 일행을 향했다면 전투력 이전에 포위당할 숫자였다.

바리스와 수희가 내게 신호를 보내 물어왔다.
둘은 1대1 능력도, 다수 상대 능력도 뛰어났다. 이를 뒷받침하는 전투력 유지 능력도 상당했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의 효율적인 전투는 적을 모아 범위 마법으로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의 화려함과 위험은 적의 주력을 일행을 향하게 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투르반의 반응이 극단적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 사는 키벨레 종족을 모르지만, 투르반은 키벨레 종족을 알고 있다.
아직 그가 여력을 끌어낼 정도의 상황이 아니다.

바리스의시선이 키벨레 마을 쪽을 향했다.

“아. 땅이.”

에리가 신음처럼 짧은 침음을 흘렸다.

땅이 흔들렸다. 에드샤가 적응 훈련의 일환으로 일행에게 썼던 어스퀘이크가 기억났다.
하지만, 그 수준이 완전히 달랐다.
지표면을 긁는 현상의 차이가 아니라, 근원부터 다른 진동.

“에리는 관찰에 집중해라. 헤스티 보호는 내가 맡는다.”
“네, 넵.”

눈에 보이게 집중이 흐트러진 에리가 대답하고 이동했다. 리크를 돕기 위해 진형 바깥쪽으로 나온 헤스티를 지키다가, 아군 진영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바리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곁눈질로 살폈지만,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 대지와의 접촉면을 늘린 것이다.

키벨레 마을 밖에서부터 대지가 솟아올랐다.
거대했다. 언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거력의 진동이 멀리 떨어진 일행에게까지 닿았다.

“키벨레 종족의 이력···.”

일행은 에리와 에드샤가 골렘을 일으키고 운용하는 것을 보았다. 원리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성과 언덕의 차이였다. 힘 자체가 수십 배에 달하면, 알고 있던 힘이라도 이해 불가의 경지가 되어버린다.

“저게 종족 단체 마법.”

헤스티도 압박감에 흔들렸다.
헤스티도 페로와의 합격 마법을 연습하고 실전에 써먹었다. 하지만 타인 두 명이 시전하는 마법과 한 종족이 모여 쓰는 마법은, 규모에서 개념부터 달랐다.

“저 마을 안에는 마법진까지 그려져 있을 거다.”

나는 추측을 말해줬다. 그만한 시간과 노력과 재물이 들어간 것이라고 헤스티에게 환기시켰다.
투자의 차이를 단순한 재능 차이로 인식해 절망하지 않도록,재능을 비교하려면 같은 투자를 들인 다음에 비교하라고 충고했다.

대지가 울컥거렸다.

“마치, 슬라임 같아요.”
“훗, 그래, 슬라임 같군. 하는 짓도 비슷할 거다. 크기만 다르고.”

바리스의 말에 웃으면서 말을 더했다.
대지 슬라임. 키벨레 수백이 마법진을 그리고, 이끈 이력으로 대지를 움직였다. 다만 골렘처럼 일어서지는 못했다. 대지와 멀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산처럼 큰, 암석과 흙, 모래로 이루어진 슬라임이 거체를 움직였다. 끝없이 밀려들던 검은 인형을 덮쳤다.

압도적인 질량과 부피는 폭력이다.
폭력은 검은 인형  개체의 능력을 무마시켰다. 그대로 집어삼켰다.
암석과 모래로 만들어진 슬라임의 몸이 검은 인형을 먹고, 내부에서 돌과 돌이 인형을 갈기갈기 찢었다.
모래가 찢어진 인형 조각을 다시는 달라붙지 못하게 흩트렸다. 거대한 중량이 움직이면서 일어난 충격량이, 인형 조각을 암석 조각과 구분할  없게 만들었다.

완전히 쓸려나갔다.

“아니, 벌써 써버리다니. 아직 여유가 있을 텐데.”

내 옆에 투르반이 섰다. 검은 인형은 더 이상 일행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애초에 일행이 싸웠던 검은 인형은 키벨레 마을을 향해 몰려가던 것들이 흘러넘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알겠군.”

나의 단정에 투르반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가 이리로  이유,  길에 수상한 우리와 동행한 이유. 키벨레 종족이 마법을 쓰는 것을 막으려고 한 거군.”
“그래, 적의 다음 수가 보인다면, 그 수에 대처하기 어렵다면, 누군가가 판을 뒤집어주길 바라는 법이지.”

헤스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나는 헤스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적은  검은 인형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야. 다음 공격이 있다는 거지. 저 대지 슬라임을 구현할 힘을 아꼈다가 써야  정도로 강력한.”

투르반이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그래, 상황을 이해하고 있군. 내가 인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인간들은 이렇지 않던데.
그럼 떠날 건가? 솔직히 말해주지. 상황은 절망적이야. 나와 일부의 키벨레 전사들, 그리고 자네가 난전을 벌여 방금 저 검은 인형들을 막았다면, 희망이 있었어.
하지만, 키벨레 놈들 저렇게 성급할 줄이야. 끝나버렸어. 다음 공격을 막을 수 없어.”

나는 웃으면서 고개 저었다.

“아니, 자네의 시도는 틀리지 않았어. 함께 하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허어.”

투르반이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키벨레 마을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 * *
* * *

‘바꿔주지.’

지금이 변곡점이다.
원래의 미궁 5층 굳은 땅의 은둔처를 기억했다. 키벨레 종족은 에드샤만이 남고, 리크는 저주받아 모두 점액질로 덮였다.

지금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펼쳐질 미래였다.
키벨레는 에드샤만 남는 상황이, 리크는 리크로 존재하지 못하고 점액질로 뒤덮인 몬스터가 되어버릴 것이다.

‘굳은 땅이라···,’

미궁 5층은 굳은 땅이 아니었다. 지금 이곳도 굳은 땅이 아니었다.
미궁층의 명칭에 의미가 있다면, 변화가있었음을 내포한다.

적의 다음 수를 추측할 수 있다.
키벨레 종족은 굳은 땅에서 제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땅을 움직이기 버거우므로.
미궁층 명칭과 조합하면, 원래 살던 곳이 굳은 땅으로 변해버려 은둔처를 찾아 떠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투르반이 말한 적의 다음 수, 다음 공격은 ‘굳은 땅’과 연관되어있음을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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