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5화 (55/139)



〈 55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5화

적이 침입했다.
에드샤의 기파 감지를 속일 정도의 적.
하지만, 나는 속지 않았다. 적이 아니라 적이 일으킨 변화를 알아차렸다.

*

“적은 리크를 이용하는 건가.”

지하 5층의 주된 몬스터 리크.
오크 형태를 가졌지만, 전신이 점액으로 둘려 쌓여있는 놈들.
키벨레 종족과 상극인 몬스터, 에드샤는 극렬히 싫어하고, 리크도 더 위험한 바리스를 두고 에리를 우선해서 공격할만큼 키벨레 종족을 싫어했다.

그에 비해 에리의 반응은 똑같았다.
에리가 약할 때는 에리가 키벨레 종족 특성을 깨우치지 못해서 리크에 대한 적대감도 없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이제 에리는 강해졌다. 지하 11층까지 가면서 얻은 경험과 경험치는 결코 낮지 않았다. 인간 전사로서 능력은 물론, 키벨레 종족 특성까지 성장했다.
키벨레 종족으로서 감각도 성장해 혼혈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에드샤가 리크를 싫어하는 만큼, 에리는 리크를 싫어하지 않았다.

‘본능이나 특성으로 리크를 적대하는 것이 아니야.’

에드샤와 에리의 차이는 내게 종속되어있는가 아닌가였다. 역으로 추측하면, 에리는 내게 종속되었기에 리크를 혐오하지 않는 것이다.
더욱 비약하면, 에드샤에게는 리크와 악연이 심어져 있다.
기억이 없는데도 본능 수준으로 혐오할 만큼.

‘남은 기억의잔향일까. 아니면 미궁의 강제일까.’

이를 알아낼 기회였다.
적은 몬스터 리크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 *
* * *
* * *

남자는 거꾸로 된 저울대, 역천칭이 그려진 메달을 움켜쥐었다.
이력이 일어나 이치를 간섭하기 시작했다.

“이리 적당한 것이 있을 줄이야.”

그의 이력에 옭매어진 리크가 푸퍽거렸다.

“이놈들은 원래 강한 놈이지. 이 흙과 땅이 이 녀석들을 짓누르고 있을 뿐.”

리크가 변화를 일으켰다. 리크의 몸을 둘러싼 점액이 내부를 향하고, 점액에 둘러싸여 있던 녹아내리던 피륙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변화는  곳에서 일어나지않았다. 이미 리젠 되었던 수많은 리크가 흙을 막아낼 피륙을 가지기 시작했다.
리젠 되던 리크 역시 리젠이 이루어지자마자 처음의 형태를 버리고, 피륙으로 내부를 보호했다.
남자는 리버밸런스의 메달을 땅에 묻었다. 이어 몸을 숨겼다.

* * *
**
* * *

“에리, 일행을 불러와.”

나는 에드샤를 안은 채 말했다. 움직이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정보를 파악해야 했다.
변성된 리크의 목표는 확실했다.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모이고 있다. 몬스터의 원래 특징인 리젠된 주변을 벗어나서 군대처럼 움직이고 있다.

적의 목표를 알아냈지만, 집중을 풀지 않았다.
변화는 시작이 있는 법이다. 점 형태로 나타나는 변화일지라도, 거슬러 올라가면 시발점을 파악할 수 있다.

*

일행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다가왔다.
나의 진중한 표정을 보고 모두 긴장을 올렸다. 내가 에드샤를 껴안고 있는 모습에도 가벼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가자.”

적이 몰려온다고 해서, 마냥 수동적으로 방어만 할 생각 없었다.
에드샤를 놓고 바리스에게 맡겨두었던 레리아나의 검을 받았다. 나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다시 거두는 영향에 멍해졌던 에드샤도 다시금 긴장을 올렸다.

“상대는 리크지만, 리크가 아니야. 방심하지 마라. 변성되었으니까.”

일행을 이끌며 주의를 줬다.

“최소 키메라급이야. 특성도 변했을 테니까, 조심해.”

에드샤를 통해서 느꼈던 바를 말했다.
일행에게 리크는 너무 쉬운 몬스터였다. 에리의 대지 특성이 성장한 만큼, 같은 위력을 가해도 다른 층의 몬스터에 비해 큰 타격을 받았다.
작은 힘에도 크게 무너지는 적에 익숙해지면, 아무리 감정의 기복이 적은 에리라고 해도 방심하게 된다.
집중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습관화가 그만큼 무서웠다.

*

적의 모습이 보였다.

“방심할 염려는 없겠어.”

그만큼 모습이 달랐다. 리크 원래의 모습을 기억하고, 여전히 적개심을 내비치는 에드샤가 아니라면 전혀 새로운 몬스터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땅을 꺼려하지 않아요.”

에리가 조용히 말했다. 리크의 가장 큰 페널티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리크는 굳은 땅의 은둔처의 흙이 약점이었다. 하지만 보이는 변성된 리크는 땅을 그저 몸을 지탱하는 바닥으로 여길 뿐이다.

에드샤가 내게 신호를 보내왔다. 손바닥을 쫙 펴서 앞으로 내밀고 위아래로 흔드는 모양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샤의 기운이 활성화되었다. 신체를 한 바퀴 타고 돈 흐름은 바로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일행을 따라 달리는 도중임에도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힘을 펼쳤다.

[어스퀘이크]
대지의 힘이 전면으로 투사되었다. 땅이 파도처럼 울컥거리며 리크를 향해 쏟아졌다.

“칫.”

에드샤가 입술 끝을 깨물었다. 처음부터 탐색의 의미로  공격이라고 해도, 변성된 리크는 수월하게 대처해냈다.
그저 몸을 움츠려 무게 중심을 낮게 하는 행동만으로 자세를 유지해냈다.

나는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추가 공격을 하려던 에드샤를 제지했다. 본능에 따라 싸우는 건 낭비밖에 되지 않는다.

“에리, 적은?”
“어스 속성이 먹혀들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도 역상성은 아니에요. 물리적으로 보이는 만큼이에요.”

나보다 일행을 위해서 한 질문이자, 답이었다. 어스 속성에 대한 몬스터의 반발력과 반응은 에리가 정확하게 느낀다.

“좋아, 에리 준비했던 걸 펼쳐봐.”

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지하 5층에서 에리와 에드샤가 함께 있을 때만 쓸  있는 기술.
상대의 전략은 특별히 강한 놈이 한점씩 한점씩 일행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 5층 내의 모든 리크에게 영향을 끼쳐 양으로 일행을 압박하는 것.
그에 대응하는 전술.

“캐슬”
“캐슬”

스킬이 아니었다. 지금 하고자 하는 바를 확정하려는 의지의 표현.
에리의 외침을 에드샤가 따라 했다. 이전의 에리와 에드샤의 관계와 완전히 달랐다. 에리가 이끌고 지정한 곳으로 에드샤가 힘을 이끌었다.
에드샤가 이끌어낸 힘을 에리가 다시 보조해, 정확하고 정교하게 조율했다.

흙과 바위가 모여 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허리에 맨 레리아나의 검이 지잉-하고 울었다.
나는 살짝 검신에 손을 댔다가 뗐다.
나타난 구조물은 성이었다. 그것도 레오나드의 성을 닮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에리가 본 성은 레오나드의 성이 유일했다.

흙과 바위로 된 성을 에드샤가 유지시켰다. 몸을 성안으로 숨기고, 전력을 성의 유지에 투자했다.

나는 이때까지 에드샤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고민해왔다.
일행이 10층 가까이 가기 전만 해도 에드샤는 무력과 마법력으로 일행의 한 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에드샤는 얽매인존재였다. 일행이 격렬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는 동안, 에드샤는 시곗바늘처럼, 리젠되는 예전의 리크만 잡았다.
힘의 크기보다 다양한 전투 경험이 문제였다. 우리 일행을 연구하고 노리는 적은, 에드샤의 고정된 전투 방식을 약점으로 잡고 파고들 것이다.

‘전투 방식이 문제라면 판을 뒤집는다. 차라리, 힘의 제어를 에리에게 맡긴다.’

에드샤는 자신의 온몸을 흙으로 감싸서 흙 속에 격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에드샤에게  속 깊은 곳은 들어가 몸을 회복할 만큼 안정된 공간이었다.
거기에다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으니 오히려 출력이 올라갔다.

에드샤는 흙속에서 에리의 조율만 받아들였다.

*

변성된 리크들이 지하 5층 전체에서 모여들었다.
원래부터 십 단위를 넘고 어느새  단위를 넘었다. 하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성은 더 많은 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게 해주는 건축물이자,  강한 적을 상대할  있게 해주는 건축물이었다.
에리와 에드샤의 ‘캐슬’은 상대해야  리크의 수를 조절했다. 성벽과 바닥이 움직이는 성은 일행이 쉽게 감당할  있는 수로 적을 나누었다.

*

나는  구조 변경을 에리에게 지시하면서도 리크 무리의 진형을 살폈다.

‘모습을 드러내지 그래.’

이 리크들을 변성시킨 자는 리크를 통제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리크들은 일행의 대처에 예민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지휘관이 전황을 파악하고 내린 지시에 따르는 모습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몬스터 리크  개체의 움직임이 모여 전체의 움직임이 될 뿐이었다.

‘아직, 수로 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일행이 처치하는 도중에도 멀리서부터 변성된 리크가 모여들었다. 죽이는 수보다 모이는 수가 훨씬 많았다.
하긴, 천에 가까운 수라면, 일행을 처치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 이쪽도 나쁘지 않아.”

일행 중에 가장 약한 아리나란 외에는 예전 리크를 아무리 잡아도 경험치를 얻을 수 없었다. 쉬운 몬스터를 반복 사냥하면, 얻는 경험치는 줄어들다가 종국에는 하나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변성된 리크는 달랐다.
내가 유의미한 경험치를 얻을 정도이니, 일행 전부 특히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드는 에리는 굉장한 경험치를 얻고 있을 것이다.

*
*
*

점점 밀렸다.
바닥을 일으켜 세워 성벽으로 만들어 떨어트리고, 새로운 성벽을 만들어 밀어내며 떨구어도 압도적인 숫자에 밀리기 시작했다.

“에리.”
“네.”
“시작하자.”
“네. 시작해요.”

점점 표정과 표현이 다양해지는 에리는 나의 말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리크에 대한 적개심이 아니었다. 그보다 자신의 성장을, 힘을 표현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에 가까웠다.

“캐슬, 일어나.”

에리가 자신을 투영한 성에 의지를 투영했다.
에드샤와 에리가 있던 아성이 머리가 되었고, 성벽이 팔이 되었다. 성벽 위의 망루는 어깨 위의 망루가 되었다.

에드샤와 에리의 힘만으로는 절대 일으킬 수 없는 이적이었다.
나는 내게 종속된 존재를 하늘로 띄울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무게를 띄울 수 있었다.
이는 내게 종속된 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에리는 두려워했다. 공중으로 오르면,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명백한 약점. 약점을 알게 되었기에 이를 직시해야 했다. 그저 고개 돌려서는 후에 치명적인 사망 원인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에리, 에드샤와 함께 연구했다. 높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에리는 힘들어하면서도 연구에 동참했다. 한 발로 설 수 있는 높이로 흙으로 된 기둥을 쌓고, 어느 정도 높이까지 가능한지 조사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를 얻었다. 아래를 받치는 기둥이 두꺼울수록 높이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둥이 에리 몸통 두께의 다섯 배가 넘고, 그 정도의 접촉면이 유지되면 그 기둥 아래에 공간이 비어있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ㄷ’ 형태로흙으로 된 구조물을 크고 두껍게 만들면, ‘ㄷ’ 끝에서 바로 아래가 허공이라도 에리와 에드샤는 변함없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았다.

문제는 ‘ㄷ’ 가로획을 버텨줄 힘이었다. 무게를 버틸 힘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종속시킨 바위를 띄울 수 있었다. 아주 작은 힘으로 큰 무게를 띄울 수 있었다.

‘캐슬’은 골렘이 되었다.

성벽은 들어 올린 팔이 되었다. 나는 띄운 수백 개의 부유석에 무게를 분산하고, 붙잡았다.
성벽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팔을 내미는 동작에 에리의 대지 통제력이 들어갔다. 하지만, 부유석으로 받쳐진 무게를 단지 앞으로 내미는 것이기에 에리의 대지력만으로 충분했다.

골렘의 몸이  성벽을 때리거나 올라타려 했지만, 직각에 가까운 벽이었다.
행여나 아성 근처까지 올라온 자도 일행의 공격에 하염없이 낙하했다.
혼란에 빠진 리크들.
리크들 머리 위에 그림자가 생겼다.

콰가콰콰강-.
산사태가 일어나는 소리가 났다. 산사태와 다르지 않았다.
변성된 리크가 손가락 끝에 눌린 작은 벌레처럼 터져나갔다. 원래의 리크보다 뛰어난 힘도, 지하 5층 전체에서 끌어모은 숫자도 필요 없었다.

바리스, 수희의 공격을 제한하던 독이 담긴 점액질은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흙과 바위에 파묻힌 고깃덩어리와  안에 가득하던 점액은 그대로 땅에 묻혔다.

내게 에리가  역할을 하는 부유석을 내려달라고 의지를 전해왔다.
즉시 종속시켜두었던 부유석을 내리자, 땅으로 내리찍어 리크들을 박살 낸 돌과 흙이 달라붙었다.

골렘이 다시 팔을 얻었다. 다시 들어 올렸다.
더 이상 리크 숫자는 장점이 되지 못했다. 골렘의 팔에 짓이겨지고 터져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