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4화
[체력 강화] 스킬과 [정심 수양] 스킬을 익혔다.
‘선을 넘은 만큼, 뒤돌아볼 수 없게. 몸이 식어 뒤를 돌아봐도 나만 보이도록.’
막았던 뚝을 터트리듯이 쾌감으로 몰아칠 필요가 있었다. 들뜬 기분이 차분해진 뒤에도 기억을 되돌리면 다시 얼굴을 붉힐 정도로 물들일 것이다.
성적인 쾌감을 직접적으로 투사하는 스킬도 있지만, 감각을 비트는 계열이거나 마비계열이었다.
배우는 경험치도 낭비지만, 바리스와 헤스티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바리스와 헤스티에게는 성적인 효과를 발휘하면서도, 전투에 도움이 되는 스킬로 체력 강화와 정심 수양이 적절했다.
“흐읏, 흐으.”
내 아래에서 헤스티가 몸을 떨었다. 성감에 안타까워하면서, 하늘에 뜬 구름을 잡듯이 나에게 잡힌 팔의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헤스티를 먼저 공략했다. 바리스의 체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마법사 헤스티는 여유 체력을 남기고도 실신할 정도로 쾌락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바리스는 아니었다. 악으로 타락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환희하는 것이기에 바리스는 성감에 들떠 환희하면서도 이지를 유지했다.
“으으, 그만, 그만···.”
또 한 번의 사정을 받아들이고, 호흡을 가다듬기도 전에 내가 손을 뻗자, 헤스티가 손사래 쳤다.
내가 헤스티에게 기울였던 몸을 물러나며 바로 세우자, 헤스티는 ‘흐으’ 하는 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나는 눈을 감는 것을 보고 바리스에게 몸을 돌렸다.
바리스의 눈에 담긴 건 망설임보다 큰 기대.
나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리스의 어깨를 잡고 머리를 가까이했다. 바리스는 기꺼이 다가왔다.
열락의 시간.
나의 아래에서 흐느끼는 바리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아리나란이 다가왔다.
밥이 다 될 때까지 식탁에 앉아 얌전하게 기다린 아이처럼 칭찬을 바라는설렘을 품고 다가왔다.
아직 땀이 식지 않은 나의 등에 달라붙었다.
서늘했다. 헤스티에 이어 바리스를 탐한다고 오른 열기 때문인지, 아리나란의 몸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살짝 차갑게도 느껴지는 액체가 나의 피부를 덮었다.
아리나란의 몸 일부이자, 몸에서 흘러나온 피의 막이 풀잎 위의 작은 이슬을 큰 물방울이 끌어당겨서 하나가 되듯이 나의 땀을 가져갔다.
분명 식사는 아니었다. 아리나란의 식사는 좀 더 잔혹한 광경을 연출했다.
죽은 몬스터의 몸에 피막을 송곳처럼 만들어 찔러넣었다.
일반인이라면 질색할 광경이지만, 더한 것을 보아왔던 내게는 아리나란의 식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
아리나란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바리스에게 다가갔다.
“나, 나?”
바리스의 눈이 흔들렸다.
어색한 미소가 당황했음을 알렸다. 나의 땀을 다 먹은 아리나란이 바리스에게 다가갔기 때문이었다.
꽤 좋은 징조였다. 나는 나와 아리나란을 오가며 흔들리는 바리스의 눈을 미소로 응수했다.
아리나란이 땀 같은 체액을 흡수하고 싶다는 식욕만으로, 바리스에게 다가간다고 볼 수 없었다.
옆에는 헤스티가 이미 늘어져 있으니까.
아리나란이 바리스에게 헤스티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느꼈다는 의미였다.
머뭇거리던 바리스가 웃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받아들였다.
마주 안고 아이를 달래는 이모처럼 부드럽게 등을 토닥였다.
아리나란에게서 피막을 흘러나와 아직 옷을 입지 않은 바리스의 몸을 덮었지만, 혐오감은 한 치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애정이 고픈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껴안았다.
‘정말….’
감탄했다.
나는 가식이었다. 아리나란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수많은 회귀에 감정이 마모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나의 가식은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아내는 어린아이의 본능적인 직감마저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바리스는 아니었다. 수희는 물론 헤스티도 떨쳐내지 못한 거리낌 하나 없이 아리나란 그 자체를 보았다.
*
훈련과 토론의 시간을 보냈다. 일행의 불안정한 토대를 안정화시키고, 안정화된 토대에 다시 성장을 올렸다.
*
휴식의 시간.
변화가 생겼다.
나와 멀리 떨어지려고 하지 않기에, 바리스 헤스티와 사랑을 나눌 때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선잠 자듯 가만히 있던 아리나란이 작은 변화를 보였다.
바리스와 헤스티와의 행위에 끼어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헤스티를 먼저 괴롭힐 때, 아리나란은 바리스에게 다가가 몸을 밀착했다.
어미 품이 빈 걸 확인하자마자 파고드는 아이 같았다.
바리스는 거부하지 않고 미소지었다.
‘전력도 전력이지만, 바리스에게도 도움이 된다.’
살아있는 것과의 접촉은 소외감을 없애는 법이다. 아리나란 덕분에 헤스티를 먼저 안아서 생기는 바리스의 감정이 소외감으로 발전될 여지가 없어졌다.
또한, 바리스와 아리나란의 유대는 전력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 * *
* * *
아리나란과 에리를 이끌고 지하 5층을 점검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에드샤도 따라왔다.
점액을 둘러싼 오크를닮은 몬스터, 지하 5층에서 리젠 되는 리크가 가끔 보였다.
일행이 없을 때도 에드샤가 보는 족족처치했지만, 미궁의 몬스터는 계속 생성되기에 근절되지 않았다.
에리를 보조를 받은 아리나란이 쉽게 처리해냈다. 에리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아리나란의 전투 경험을 위해 둘을 내세웠다.
‘이로써, 굳은 땅의 은둔자 지역 전체를 밝힐 수 있게 되었어.’
지상과 지하는 에리와 에드샤 덕분에 진작에 파악했지만, 공중으로 가야 접근하기 수월한 곳이 있었다.
에드샤와 함께 땅을 파고 들어가서 아래로부터 접근하하면 가능하긴 했지만, 노력에 비해 결과가 적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과가 없는 작업이 아니지. 아리나란 덕분에 효율적인 작업이 가능해졌고.’
[인과 감지]와 [인과 장악] 때문에 가치가 달라졌다.
어버스나이트 교단은 둘째치고, 카이바린 교단과 리버밸런스 교단의 현황을 파악해야 했다.
두 교단은 원한을 넘어 신성력을 유지하기 위한 위신을 위해, 앞으로도 방해가 될 것이 뻔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하 5층을 돌아다니면서 맵을 밝혔다.
지역을 확보할 때마다 인지되는 에드샤의 ‘인과’ 농도가 올라갔다.
[인과 장악]은 실행이 되지 않았다. 격이 높다는 감각과 함께, 조건을 충족되지 않음이 인지될 뿐이었다.
그에 비해 [인과 감지]는 모든 것에 사용 가능했다.
바리스나 헤스티는 물론 바닥의 돌과 페로와 아리나란까지 감지를 시도할 수 있었다,
바리스와 헤스티와는 이미 인연이 있음으로 인지되었고, 바닥의 흔한 돌멩이에는 인과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에드샤만이 달랐다. 에드샤와의 인과가 에드샤에게 할당된 공간을 알고, 지하5층 사물을 종속화할 때마다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짙어졌다.
*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현상이었다.
바르하르 신성이 내게 남겼던 속삭임, 그의 속삭임 속에 담겨있었던 행적을 떠올렸다.
에드샤가 안내했던, 지금은 우리의 숙소가 되어버린 건물들을 떠올렸다. 예전에 누군가가 살았을 것 같은 건물들.
‘신에서 신성으로 격하되고, 두 다리로 디딜 땅을 미궁에 먹히면서도···.’
바르하르 신성에게 일어났던 일이었다.
그에게 일어났던 일이 키벨레 종족에게 일어났다면, 격이 낮은 에드샤가 옛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몰랐다.
컨트롤러 클래스의 ‘인과 감지’
여기서 감지되는 인과는 상위 스킬인 ‘인과 장악’과 연관되는 인과였다. 즉 내가 장악해 이용할 수 있는인과였다.
에드샤만이 ‘앞으로’ 인과 장악이 가능했다.
이는 인과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변경 가능하다는 의미이고, 어쩌면 나 이외의 누군가 혹은 어떤 존재에게 이미 변경한 적 있는 인과일 수도 있다.
바르하르 신성이 서 있던 땅은 미궁에 먹혔다.
‘이 굳은 땅의 은둔처도 원래는 아니었지만, 미궁에 먹힌 것···.’
의심은 커져만 갔다. 미궁층 중에 몇몇 곳은 특정적인 몬스터가 리젠 되곤 했다.
어쩌면 단순한 미로에 비슷한 몬스터가 리젠 되는 층이 아닌 곳은 모두 다른 세계에서 기인했으나, 미궁에 먹혀버린 것이 아닐까.
나는 입술 끝을 비틀었다.
나의 클래스는 컨트롤러. 인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했다.
‘가장 크게 관련된 곳은 리버밸런스 교단이야.’
와이번 둥지에서도, 레리아나의 검을 얻은 무기고에서도 리버밸런스와 연관되었다.
‘그들을 이용한다.’
*
나는 리버밸런스의 능력을 되새겼다.
리버밸런스의 능력은 강대했다. 무기고 레오나드의 성에서 밀려들던 키메라를 생각하면 단순한 무력이 전부가 아니었다.
수많은 영주민을 키메라로 만든 능력은 단순한 주문이 아니라 이력이 작용한 기적, 이적이라고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강한 힘은 강한 만큼, 영향이 큰 법이야.’
영향은 파장을 일으키고, 파장은 감지할 수 있다.
나는 사물을 종속시킬 수 있다. 거점으로 삼은 지하 5층 은둔처 내라면, 어느 곳에서 어떤 징조가 시작하든지 간에 알아차릴 수 있다.
“흐흐….”
나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함께 수색을 하다가 멈춰서 사색에 빠진 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던 아리나란도, 에리도 고개를 갸웃뚱거렸다.
이번에는 이쪽이 준비된 상태로 맞이할 것이다.
*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바리스에게 아리나란을 맡겼다. 레리아나의 검까지 바리스에게 맡기자 검신이 치잉하고 울렸지만, 복수를 위해라고 속삭이고 검신을 부드럽게 스다듬자 조용해졌다.
에리와 에드샤만 데리고 움직였다.
장소는 예전 회차에 보상방이 열렸던 곳. 이번 회차에는 흙벽으로 막혀있는 곳.
중앙에 에리를 두고 맞은 편에 에드샤를 두었다.
에드샤는 이때까지 나의 지시를 잘따랐다. 이는 기본적으로 내가 에드샤가 따를만한 합당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여기서 한발 더 나갈 필요가 있다.
은둔처를 전장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전투의 궤를 넘는 힘을 상대로.
수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적은 우리 일행을 처치해야 승리하기에, 익숙한 전장에서 도망만 다녀도 적은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없다. 반격을 해내야 한다. 반격을 위해서는 전장을 아는 수준을 넘어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나는 엄숙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에리의 가죽옷을 벗겨 옆으로 치웠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에리는 신중한 나의 모습에 조용히 따랐다.
살짝 얼굴을 붉히긴 했다. 원래부터 나의 마사지를 받으며 안락을 취해왔던 에리이기에 이번 의식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묘한 춤을 추었다.
맞은편 에드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나의 춤은 성인식을 축하하는 춤이었다. 키벨레 종족에 대해서 쓰여져 있던 책에 있던 내용이었다.
물론 정확하지 않았다. 책에는 그림 몇장으로 설명되어있던 걸 기억해내고 중간 동작은 무술의 묘를 넣어 이어냈다.
나의 격과 무의 이해가 가볍지 않았다. 정확한 형을 모르더라도 의지를 품은 동작으로, 유사한 감각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
에리의 성장에 대한 축하이자, 에드샤를 향한 압박이었다.
내가 에리를 이렇게 제대로 성장시켰다고, 에리가 모셔할 자인 나를 부정할 거냐고.
“······.”
에드샤는 아무런 말도 토해내지 못했다.
부정은 에리의 성장에 대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와 에리는 엄청난 성장을 했다. 에리의 성장만으로도 에드샤가 예상한 한계를 넘었는데, 나는 이제 홀로 에드샤를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나는 춤을 추며 에드샤의 등뒤로 움직였다.
천천히 에드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전에 에드샤와 접촉한 적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에리가 중심이었다. 에리를 보살피는 두 보호자의 손이 서로 닿고 서로를 인식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명백하게 에드샤를 향해 접촉했다.
에리가 움직였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하지만 기대를 품고 에드샤의 손을 잡았다.
함께 가자는 듯이.
나의 손이 에드샤의 어깨를 훝었다. 몸 자체를 움직여 에드샤의 등 가까이 접근했다.
부드럽게 뒤에서 껴안았다.
아직은 에드샤를 내게 종속시킬 수 없었다.
내게 굴복하지도 않았고, 에드샤가 자기자신을 잃을위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기운이 에드샤에 파고들었을 때, 에드샤는 거부하지않았다.
수긍해왔다. 어떤 면에서는 강한 수컷의 보호 아래에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내주는 것과 비슷했다.
일단 이정도면 충분했다.
지금은 에드샤의 육체를 성적으로 탐하는 것이 아니니까.
에드샤의 감각,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처를 감각하고 통제해내는 그녀의 이능이 필요했다.
에드샤에 닿은 기운이 에드샤가 느낀 감각을 전해왔다.
그녀가 은둔처를 인지하는 감각을 받아들였다. 흙과 모레로 이루어진 넓은 공간을 느껴냈다.
[인과 감지]
그녀가 품은 인과 속에 내가 간섭할 수 있는 양이 크게 늘어났음을 알았다.
*
그리고, 멀리 불쾌감을 느꼈다.
나는 미소지었다. 적이 침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