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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9화 (39/139)



〈 3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9화

미궁 외부에 위치한 남쪽 경매장 밖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몇몇 교단 신도들은 오가는 사람들의 소리와 흥정하는 소리가 경매장의 격을 낮춘다고, 더 깊고 은밀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하지만 ‘상인의 요새’ 교단 수장은 이를 일축했다.

단정한 복장의 카이바린 교단 전속 경매인 역시 이에 동감했다.

‘이 활기야말로 우리 교단의 증명이지.’

전속 경매인은 소란 속에서 느껴지는 ‘상인의 요새’의 힘을 음미하면서 장부를 정리하고 속에서 정보를 추려냈다.

‘판매품이 줄고, 매입품이 늘었어. 매입이 늘었지만, 사치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카이바린 교단이 밀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고급 무기와 고급 소모품의 매입 증가는 쉬운 적이 아니라는 것, 사치품이 줄어든 것도 같은 의미로 고위층이 위기임을 뜻했다.

‘누구지? 어버스나이트 교단인가.’

경매인은 꿰뚫어 보지 못했다. 그가 하찮게 보고 굳이 정보 관리를 안 했던 페로와 연관된 일임을 알지 못했다.

페로가 합류한 지 보름이 지난 지금, 준영 일행의 사제 사냥은 밖으로 드러날 정도로 카이바린 교단을 흔들었다.

* * *
* * *

‘할만해.’

카이바린 교단의 소규모 파티를 사냥하기 시작하자, 교단은 일행을 노렸다.
지하 6층 수준의 장비가 아닌 자들이 6층을 돌아다녔고, 그것도 내게 당하자 미끼 파티까지 운용하기 시작했다.
6명으로 이루어진 유인조가 먼저 움직이고,  뒤를 20명에 가까운 인원이 거리를 띄운  따라다녔다.
미궁 내에서는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고, 그때마다 전령이 왔다갔다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거리를 둔 파티의 운영은 원거리 통신 스킬이 있다는 의미였다.

다만, 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상황을 [종속]시켜둔 바위 등을 통해 인지할 수 있었다.
조급한 마음만 품지 않으면 피할 수 있는 함정이었다.

*

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했다.

먼저 수희의 적응 훈련,
수희의 여러 적을 상대하는 탱킹 능력 회복을 위해 바리스, 에리와 함께 수희를 공격했다.
동시에 미궁 곳곳에 뿌려둔 [종속물]에 대한 [인지]를 유지했다.
단순하게 뿌려둔 40여 개 종속물의 파괴 여부를 파악하는 건 쉬웠다. 하지만, 종속물 옆으로 지나가는 자의 장비를 살피는 단계를 넘어 무력 수준을 가늠하는 건 쉽지 않았다.

스킬적인 요소를 떠나 고도의 분산 집중력이 요구되었다. 예전 회귀에서 고위 전사와 고위 마법사를 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잠깐.”

나는 검을 휘둘러 수희의 검을 쳐내고 뒤로 빠졌다.
빠지면서 ‘엄숙, 경계’의 신호를 보냈다.
바로 바리스가 바깥으로 빠지면서 사방을 살폈고, 에리와 수희 역시 숨을 가다듬으면서 주변을 경계했다.
미궁 지하 5층 우리의 거점에서 일어난 문제가 아니었다. 분산 집중하고 있던 종속물에 이상이 생겼다.

연결이 끊어졌다. 종속물이 단순하게 파괴되는 것이 아닌, 스킬이 와해되었다.

‘사제 이상의 힘이야.’

경험치를 투자해 얻는 스킬은 강력했다. 놀라운 감각과 끊임없는 노력으로도 얻기 힘든기술을, 법칙을 관통해 쓸 수 있게 해줬다.
예를 들어 마법을 보면, 공기 중에 존재하지만 너무나도 작아 눈으로  수 없는 불의 인자를 조합하고 증폭해 화염을 이끌어냈다.

스킬에는 급이 있었다.
비슷한 숙련도라면 파이어 볼트는 워러 스플래쉬에 무력화되지만, 파이어 볼은 워러 스플래쉬에 무효화되지 않았다.
대상에 일어난 효과와는 별개였다. 파이어 볼에 의해 불붙은 나무는 워러 스플래쉬로 끌 수 있지만, 파이어 볼 주문 자체에는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일반적인 상성을 무시해낼 정도로 급이 중요했다.

컨트롤러 클래스의 스킬은 내가 경험해본 스킬의 최상위였다.
같은 숙련도라면, [디스펠] 마법으로 깨질  없으며 일반적인 충격, 파이어 볼이나 전사의 참격으로 와해되지 않았다.
[종속]된 대상이 불타거나 부서질뿐이었다. 고위 스킬인 [디스컨넥트인터벤션], 간섭 절단 정도 되어야 정화해낼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스컨넥트 인터벤션]도 엄밀한 의미에서 와해가 아니었다. 역방향이긴 하지만 스킬의 구조를 이용한 것이었다.

‘결국, 스킬의 와해가 일어난 건, 나와 시전자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흥분과 경외.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미궁층에 뿌려놓은 종속물을 와해시킨 것은 나와 격이 다른 존재다. 사제가 아니라 사도다.

신탁이라는 이름의 신의 물결을 느끼는 자.
인간이지만 신성과 잇는 통로가 되는 자.
카이바린 신성이 아무리 신성 중에 격이 낮다고 해도 페로가 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공간을 초월해 법칙을 부릴 수 있는 존재다.

‘컨트롤러 클래스···. 이건 뭐지?’

경외감. 사도에 대한 경외가 아니었다. 어차피 사도는 상대해본 적 있고, 상대해야만 하는 인간이었다.
높은 곳에 있는 자였으나 인간의 길 위에  있는 자였다.

‘하지만, 컨트롤러클래스는’

컨트롤러 클래스는 미궁의 본질과 이어진 끄나풀.

떠오르는 예감에 몸서리쳤다.
스킬은 아무리 강력해도 파생되어 나온 출력일 뿐이었다. 원인으로 타고 올라갈 수 없게 격리되어 있다.
하지만, 컨트롤러 클래스는 뭔가 달랐다.
나는 다시 한번 이번 회차가 버릴 수 없는 기회임을 확신했다.

*

나는 수희에게 손짓했다.

“수희야, 어버스나이트 교단에 갔다 와야겠어.”

수희가 두 눈을 부릅떴다. 나는 어버스나이트를 상하게 했으니 보복당할까 봐, 수희는 다른 감정적인 이유로 다른 어버스나이트에게 현재 모습을 숨겼다.

하지만, 사도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사건의 무게가 달랐다. 수희와 관련된 일은 웃으면서 유감을 표하는 정도로 넘어가게 할 일이었다.
신성의 경쟁은 미궁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대 아래, 사도의 세계 역시 수라장이었다.
특히, 신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도의 무게감은 모든 사제를 합친 것보다 무거웠다.

지금 수준의 나는 사도를 움직이기에 부족했다.
하지만 내가 일으킨 눈사태는 달랐다.
단순히 사제 수를 줄이는 것을 넘었다. 교단의 균형을 흔들었다. 어버스나이트 교단과 다른 교단이 카이바린 교단 아래에 발과 무릎을 밀어 넣을 여지를 만들었다.
사도가 직접 움직여 원인을 제거해야겠다고 판단할 정도로.

미궁 지하 3층 코볼트 던전 층에 사제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교단 간의 이권 싸움이 일어났다.
사도의 미궁 진입은 이와 격이 달랐다. 이전의 사도가 유지했던 미궁 밖, 힘의 균형에 틈이 생길 것이다.
사도와 사도의 관계는 성긴 거미줄과 같았다. 견제와 연합으로 정체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끊어질지모르는 실이다.

“뭐? 나…. 난 어떡하라고.”
“넌 괜찮아. 나와의 연락책으로 유용하니까.”

수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수희의 무게였다. 수희가 어버스나이트 교단에 돌아가 당한 일을 성토해도, 작당해도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어버스나이트 교단은 수희의 존재보다 나의 정보를 더 중하게 여길것이다. 수희는 결국 다시 내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녀가 교단에서 신성을 다시 얻지 못하는 이상, 그녀가 성장할 수 있는 곳은 나의 아래이며 신성을 되찾을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도 나의 아래뿐이다.

“큭.”
“시간이 없어.”

정말로 시간이 없었다. 사도가 미궁층에서 움직일 때마다 사물에 부여한 [종속]이 하나씩 와해되고 있다.
이번 출전으로 모든 층의 종속물이 와해되지 않겠지만, 와해를 알아차리고 위치를 알아내는 만큼, 전부가 사라지면 위치를 특정할 수 없게 된다.

* * *
* * *

어버스나이트 교단의 웅장한 본단의 건물.
교단의 성세를 증명하듯 당당한 건물은 수희에게 자랑스러움과 욕망을 일깨웠다.

하지만, 이제 과거가 되어버렸다.
수희는 고개를 숙였다. 건물의 창에서 사람이 있다고 해도 수희를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움츠렸다.
부끄러워 걸친 로브를 여몄다.
이전에 교단 내를 돌아다닐 때, 속옷과 다름없는 비키니 갑옷만 입은  오갔지만 이만큼 부끄럽지 않았다.
양질의 갑옷과 갑옷 전체를 가리는 로브를 걸쳤음에도 마치 알몸을 내놓은 듯 수치스러웠다.

힘이란 그러했다.
힘이 머문 반나신은 긍지였지만, 살 하나 드러내지 않은 몸은 힘이 없기에 수치였다.

“여기서 기다리게.”

사도가 머무는 건물의 출입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들어가려는 수희를 교단 사제인 중년 남자 가랑트런트가 무심히 손을 내밀어 막아섰다.

“크흑.”

수희는 한걸음 물러섰다. 물러서면서 신음을 토해냈다.
한때는 같은 어버스나이트로서 가랑트런트와 말싸움하기도 했다. 교단의 중진이라고 해도 수희는 그 자리까지 올라갈 욕심이 있었고 노력했다.

수희보다 가랑트런트의 눈이 떨렸다.

“크···. 흠···. 미안하네.”

가랑트런트는 경쟁자에게 무례한 자였다. 사도 요르네스를 진심으로 따르며 어버스나이트 교단을 위해 헌신하지만, 자신의 위치와 자신의 방향과 어긋나는 이에게는 단호했다.

공격이 아닌 그저 기세의 터트림, 이전이었으면 확 받아쳤을 수희가 감당하지 못하고 비틀거리자 먼저 고개를 숙이고 사과해왔다.

 사과가 수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수희를 경쟁자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씨앗이 아닌 교단을 위하다가 힘을 소모한 아랫사람으로 본다는 의미였다.
부하에겐 선망을 받고 신도에게 존중을 받는 가랑트런트는 믿음직한 상관이었다. 하지만, 수희에게는 현실을 되새기게 하는 고문에 불과했다.

“빠른 대응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황이 변하고 있으니까요.”

수희는 로브로 얼굴까지 덮은 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과를 받지않고 그저 준영이 시킨 임무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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