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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4화 (34/139)



〈 3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4화

미궁 지하 9층 '강림당한 마물'층.
풍경이 불규칙했다. 숲지형이지만, 어느 곳은 나무가 많고 어느 곳은 듬성듬성했다.
다만, 중심부만큼은 나무하나 없이 검은 흙으로 중심을 향해 경사를 가진 반구의 안쪽 형태를 가졌다.
커다란 그릇 안쪽을 떠올리게 했다.
한 무리의 인간들이 주위를 훑어보며 쭈삣거렸다.

"클, 언제봐도 기분 나쁜 곳이야."

정돈되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긴 수염에 화려한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미궁 안이 다 그렇지요. 뭐. 그래도 볼만한 것들이 설치니까 좋은데요. 특히 그 푹 박히는 손맛이 작살입니다요.“

옆에 있던 부랑자와 같은 차림을  남자가 실실거렸다.

"그래도 방심하지 마라."
"염려하시지 마시라니까요. 헤크론님 덕분에 이 깊은 곳까지 왔는데, 본전을 뽑아야죠."
"그래, 그래."

마법사 헤크론은 옆에서 용병들을 통제하는 바루를 속으로 비웃었다.
그가 이끌어온 바루 용병단은 제대로 된 용병단이 아니었다. 그나마 리더라고 딴놈보다 나은 바루도 연신 다크림의 몸매와 절규하며 죽어가는 모습에 입맛을 다셨다.

미궁 9층까지 데리고 올 용병을 구하기 어려웠다.

'8층 수준만 되어도 눈치채고 피한단 말이야.'

지하 8층은 정보 없이 생존할 만큼 만만하지 않았고, 이를 공략할 수준의 용병은 카이바린과 함께했던 용병의 복귀율이 낮다는 걸 가볍게 보지 않았다.
카이바린 교단의 신성한 어구를 모르지만, 결과를 보고 위험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6층 공략 가능한 용병들을 구해와 버프를 맛보여주고 9층까지 이끌고 왔다.
바루 용병단, 도적 떼라고 불릴 이들이라고 의심이 없지는 않아서, 중간에 사냥해서 수준을 올려주고 보상품까지 두둑하게 챙겨줬다.
은근하고 끈질기게 보살폈다. 9층에 도착할 지금은 성장시켜준 은혜에 헤크론의 말이라면 불 속에라도 뛰어들 것처럼 굴 정도였다.

물론  속에 뛰어들게  생각없었다. '연속 사망'으로 신성을 올릴 귀중한 자원이었다.
이들을 키우는데 신성을 투자한 버프를 쓴 만큼 더 값진 영광을 얻을 것이다.

'클클. 죽을 자리인지도 모르는 녀석들.'

늙은 마법사 헤크론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법진을 지키는 다크림을 향해 달려드는 용병들을 주시했다.
헤크론의 버프 마법을 받은 용병들이 다크림의 공격을 받아내었다. 헤크론의 아이스 스피어가 다크림을 노렸다.

*
*
*

"어후, 저 야들야들한 거 봐."

용병들은 흥에 취한  헤크론이 부여한 버프에 취해 중얼거렸다. 다크림의 빈틈을 노리면서 눈에 들어오는 가녀린 몸에 입맛을 다셨다.
헤크론의 버프는 일상적인 버프와 달랐다. 카이바린의 신성까지 투자했다.
아무리 주력은 헤크론의 마법이라고 해도 지하 6층 용병을 9층에서 보조로 쓸  있도록 하는 버프가 평범할  없었다.
추가 신력을 소모한 버프 앞에서 용병들을 열매로 키워낼 씨앗이자 도살하기 위해 살찌우는 어린 양이 되었다.

"어휴, 몸 좀 풀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용병이 못 참겠다는 듯이 몸을 떨었다.

"아서라, 이년들, 작고 가늘어도 두 다리로 쪼면 허리가 부러진다. 왜 죽은 년 먹으려고?"
"저년들, 죽는 거 보셨잖습니까. 핏덩이로 녹아 흘러가 버리는 데 그건 힘들지요."
"그럼?"
"크크, 다 방법이 있지요. 딱 죽지 않을 정도만 칼집 내고 뼈를 다 부스러트리고 덮치면 지가 어쩌겠습니까?"
"미친 새끼."

두 용병은 두 눈을 번득거리다가 헤크론과 눈이 마주치자 크게 고개 숙이고 전장으로 달려갔다.
헤크론은 자신의 마법 공격에 맞춰 치고빠지기를 반복하는 용병들을 향해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

'일곱 년까지 채워졌구나.'

거대한 그릇을 떠올리게 하는 미궁층 중앙부, 중앙부의 중앙에는 사람 키의  배가 넘는 마법진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다.
마법진은 알 수 없는 문자와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마법진 원 내에 비어있는 여백에는 여덟 개의 작은 원이 그려져 있었다.
맞은 편과 대칭을 이루고 서로의 간격이 같은 여덟 개의 원 중에, 한 개의 원만 비어있고 일곱 개의 원에는 다크림이 하나씩 섰다.

다가와 공격하는 인간들을 보고도 마법진에 집중하는 다크림 매지션을 보면 심상찮지 않았다.
중앙 마법진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다크림을 죽이면, 한낱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끈끈한 핏덩어리로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핏덩이는 그릇 모양의 바닥을 타고 마법진으로 흘러내려 가 마법진에 흡수되었다.
미궁에 대한, 마법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가 봐도 마법진이 힘을 모으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예 건드리지 않고 기다려도, 여덟 개의 작은 원에 서는 다크림 매지션을 모두 죽여도 같은 현상만 일어났다.
핏덩이로 변해 마법진으로 흡수될 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다른 미궁층에서 죽은 몬스터가 리젠 되듯이 어디선가 다크림 매지션이 나타나 빈자리를 채웠다.

*

"저거 저거 마지막 년인데."

용병들이 웅성거리면서 바루에게 눈짓을 보냈다.
마법진의 여덟 개의 원을 차지하던 일곱의 다크림 매지션 중에서 마지막 하나만 남았다.
미궁 밖으로 나가 비싼 여자를  만큼 재물을 얻었지만, 미궁 밖에서 구하기 힘든, 미궁 안에서만 구할  있는 게 있었다.
창녀가 흔해빠진 미궁 밖에서도 섹스하면서 죽여도 되는 창녀는 드물었다. 음지에 음지로 가야 구할 수 있고, 외모는 아예 기대할 수 없었다.

타락한 용병들은 안달했다.
적 몬스터뿐만 아니라 동료도  쓰러지고, 자신 역시 죽을 뻔한 극한에서 피오르는 광기를 폭발하고 싶어 했다.
바루가 슬금슬금 헤크론에게 다가갔다. 그가 용병 중에 가장 이성적인 '척'할 수 있을 뿐, 이성적인 자가 아니었다.

"헤크론님."

은근한 목소리로 늙은 마법사를 불렀다.

"어차피 이긴 전투 아니겠습니까? 헤크론님의 은혜가 하늘 같습니다. 이왕이면 저희가 즐길 시간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클, 그래. 알겠네."

바루와 용병들이 아이처럼 웃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얼굴이 붉어지도록 흥분했다.

헤크론의 마법 압박은 완벽했기에 아직 다크림 매지션이 남아있는데도 용병들은 서로 의견을 조율했다.
먼저 즐기는 자는 다크림을 죽이면 안 되었다. 마지막으로 즐기는 자만이 숨을 끊는 쾌감을 누릴 수 있기에 누가 마지막으로 하느냐를 정하기 위해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용병의 체액으로 더러워지기 전의 몸보다 살해의 쾌감을 원했다.

바루가  손을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광기를 머금으며 입술을 핥았다.
한발 한발 다크림 매지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앗.”

그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그의 뒤쪽에서 차가운 얼음의 창이 그를 지나갔다. 그를 공격하는 얼음 창이 아니었으나 경악했다.

"무, 무슨."
"꺼-. 꺼억."

마지막 남은 다크림 매지션이 가슴을 관통한 얼음 창에 인간과 거의 유사한 꺼억거림과 경련을 일으켰다.
인간 여성처럼 죽더니 핏덩어리로 변해서 마법진에 흡수되었다.
바루는 획가닥 돌아버렸다. 성욕 앞에서 현실을 잃었다.

"이, 이 시발 무슨 짓이야."

바루는 광기와 분노로 가득  포효를 터트렸다.

"아, 손이 미끄러졌군."

바루의 눈 속에 타오르던 분노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미소짓는 헤크론을 마주하자마자 사그러들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전장을 정리할까요?"
"그래, 정리할 시점이야. 정리할 시점이지."

바루의 벌벌 떠는 두 다리를 보며 헤크론은 조용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아, 얘기했던가, 나는 나를 욕한 자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네. 미리 경고했을 때, 자네가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 기억나내만."

지팡이 위에 얼음의 냉기가 맺혔다.

"제발, 사, 살려주세요. 제발 용서를, 용서해주세요."

바로 무릎을 꿇어도 헤크론의 지팡이 위의 얼음이 더 커지자, 바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용병들은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났다.
이미 용병단 중에 몇은 목숨을 잃었다. 적에게 목숨을 잃으나 마법사의 성격을 건드려 죽으나 자기만 아니면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용병들은 급하게 변하는 상황에 헤크론이 먼저 상황을 이끌었음을 기억하지 못했다.

"꺼, 꺼억."

얼음 창이 바루의 가슴을 꿰뚫었다. 바루의 고개가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얼음 창이 지팡이 위에 맺혔다.

"자네는 말할 때, 침이 너무 튀어."

 하나의 창이 한 남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제야 용병들은 헤크론이 품은 마음을 깨달았다.

"난 왜 자네들이 색을 탐하는지 모르겠어.  홀로 모든 것을 끝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는데."
"제, 제발 살려."

한 명씩, 한 명씩 살해당했다. 정신 차리고 무기를 치켜드는 자도 있었지만, 이때까지 전투를 도왔던 헤크론의 버프가 무거운 추가 되어 움직임을 저지했다.

마법진은 여전히 은은한 빛을 냈다. 하지만 뜨거운 숨을 내뱉는 것은 헤크론뿐이었다.
자신에게 쏟아질 '연속 사망'의 영광을 기대하며 숨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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