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1화
긴장감이 일행을 감쌌다.
모두가 각자에게 지정된 방향을 우선으로 위험요소를 확인한 후, 빠르게 옆으로 훑어 환경을 확인했다.
일행이 모두 무사히 도착한 것까지 확인하자, 미리 정하고 훈련한 방식이 아닌 자신이 관심 있는 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지하 7층에서 계단을 찾아 지하 8층으로 내려온 일행은 관찰과 경계를 이어갔다.
나는 바리스의 얼굴을 살폈다. 바리스는 한계가 있는 천정에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7~8m에 가까운 높은 천장이긴 하지만, 막혀있다. 이는 조류형 몬스터의 공습이 없다는 뜻이었다.
아직 대공 대응 전술을 완성하지 못했기에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제대로 된 비행 몬스터는 9층 이후에서 나타나고 8층 이전에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을 해줄 수 있지만 안 했다.
내게 이 지식은 경험으로 얻은 결론이지만, 내가 바리스에게 가르치면 불변하는 진리로 받아들일 위험이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의 경험에 어긋나는 경험을 하게 돼도 당황하지 않는다. 8층에서 하피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리스가 내 말을 진리인 양 믿다가 깨어지면 당황할 수 있다.
그럴 위험을 가지느니 지금처럼 조심하다가 안심하는 것이 나았다.
"출발하기 전에도 말했지만, 다시 한번 말한다. 발 근처, 아래를 소홀히 하지 마라."
훈련은 실전에 영향을 끼친다. 최근 일행이 해왔던 훈련은 9층 비행 몬스터를 대비한 훈련이었다.
경로가 되는 8층에 대한 훈련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9층 대응이 어려웠다. 제대로 시간을 투자해 훈련해야 했다.
하지만, 9층 훈련으로 생긴 편견에 8층에서 당한다면 이만한 바보짓도 없다.
*
인간의 두 배에 달하는 키, 묵직한 상체와 인간과는 골격 구조가 다른 긴 팔과 커다란 몽둥이는 공격 거리를 인간에 세 배에 달하게 했다.
"페인트 트롤, 페트롤."
수희가 적을 판별하고 이름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페트롤의 기다란 팔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휘두르기를 가볍게 피하고 파고들었다.
"트롤인데, 가짜 트롤이다. 덩치와 힘, 근력은 비슷하지만, 재생력이 없어. 물론 가짜라고 해서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다."
진짜 트롤에 대해서도 아직 브리핑할 때가 아니었다. 이 가짜 트롤은 진짜와 섞였을 때 극히 위험해졌다.
트롤은 대비가 필요한 몬스터였다. 재생을 차단할 불을 피울 마법사나 장비가 필요했다.
문제는 진짜 트롤과 가짜 트롤이 함께 나온다는 것이다.
수희와 나는 아직 진짜 트롤이 나올 층이 아니기에 가짜 트롤이라고 확신하는 거지, 난전 중에는 분별하기 극히 까다로웠다.
결국, 가짜에도 진짜와 같이 마법사의 화염 마법이나 화염 장비를 소모하게 되고, 진작 진짜에 쓸 대처가 부족해졌다.
'이 층에서 쓰는 함정은 진짜 트롤과 가짜 트롤의 차이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아래쪽을 조심해."
바리스가 치고 들어갈 타이밍을, 에리와 헤스티가 보조할 타이밍을 살피는 중에 나는 다시 한번 경고했다.
페트롤의 휘두르기는 크고 강력했다. 단련된 전사라도 한 번에 뼈까지 아작날 위력에 신경을 곤두세워서 회피해야 했다.
모든 관찰력이 페트롤 한 마리의 골격과 근육, 몽둥이 끝을 향했다. 페트롤 하나가 다라면 옮은 대처였다. 몽둥이 휘두르기가 극단적으로 강한 대신 그것만 피하면 되기 때문이다.
변화가 있다고 해도, 연계되는 발차기는 골격과 근육을 살피면 일행은 몸이 가벼운 만큼 쉽게 피할 수 있다.
푸드크-
작은 소리. 커다랗게 움직이는 페트롤이 만들어내는 광음에 묻힐 정도로 작은 소리.
"수희 왼쪽 대각선 앞 한 마리. 바리스 오른쪽 옆 한 마리. 바리스 오른쪽 옆 에리가 막아라."
오나홀 몬스터, 메므모, 여성의 허리와 무릎까지 잘라놓은 모습에 딱딱한 껍질과 침으로 표면을 무장한 몬스터.
모험가들이 불을 피워도 될 정도 안전한 곳을 확보하고 휴식을 취할 때, 음담패설 대상이 되는몬스터지만, 미궁의 몬스터는 미궁의 몬스터였다.
8층 몬스터인 이상, 1, 2층의 모험가 정도는 한순간에 짓이겨버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네, 알았어요."
바리스가 감을 잡았다는 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수희는 위쪽에서 거친 바람 소리를 내는 몽둥이와 무릎 아래로 파고드는 메므모를 동시에 인지하고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지하 8층까지의 경험은 충분했다.
바리스는 내가 했던 경고를 이해하고, 에리에게 내린 지시까지 이해했다. 에리가 아래쪽으로 파고드는 메므모를 처리해줄 것을 믿고 페트롤에게 강공을 쏟기 시작했다.
일행은 미궁 8층 페트롤, 메므모 층의 전술을 확인했다. 확인할 때까지가 위태로울 뿐 이미 경험한 전술에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
나는 나의 전투에 집중했다.
석궁 볼트를 발사할 수 있는 석궁구를 [종속체 부유력 부여]로 띄워 페트롤의 눈을 노렸다.
위를 보면 아래를 향한 경계가 흐트러지고 아래를 보면 위를 향한 경계가 흐트러진다.
지하 8층 페트롤 미궁층이 이용하는 전술 요소지만, 이는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
수희와 바리스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키가 큰 페트롤은 고개를 아래쪽으로 향해야만 했다. 페트롤은 더 위에서 벌처럼 날아다니는 석궁구를 제대로 노리지 못했다.
나는 전투의 맥을 잡고 이어갔다.
불안 요소는 아래쪽에서 파고드는 메므모였다. 수희와 바리스가 페트롤을 감당하는 동안, 메므모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한 놈을 처리하는 데 힘을 크게 들일 필요가 없었다. 우선은 빠르게 달려드는 모든 메므모를 기절시켜 무력화한 다음, 페트롤과 함께 처리하거나 메므모를 확인 사살하면 될 것이다.
나는 약간의 기운을 레리아나의 검에 흘려 넣었다. 가짜 트롤이라고 해도 재생력만 없을 뿐, 그 괴력과 질긴 가죽은 그대로이기에 힘을 아꼈다.
바닥을 타듯 아래쪽에서 검을 휘둘렀다. 메므모의 껍질의 결을 확인하고 꽉 다문 조개 입을 벌리는 도구를 밀어 넣듯이 노렸다.
푸가가각.
부드럽게 찔러넣었는데, 폭발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아-.”
나는 어이가 없어 전투 중임에도 가만히 검을 들어 올렸다. 레리아나의 검에게 물었다.
"너, 메므모를 설명할 때 다 듣고 있었던 거냐?"
레리아나의 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수줍은 듯 푸른 빛을 살짝 띄웠다가 숨겼다.
레리아나는 바리스나 헤스티, 에리는 용납해도 오나홀 몬스터 메므모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가 보다.
나는 껍질을 비틀어 집어넣고 기절시킬 정도의 힘만 가했는데, 레리아나의 검은 메므모의 속살 전체를 터트려 버렸다.
아무리 방어력이 떨어지는 속살이라고 해도 일부만 접촉했는데, 전체를 터트려버리는 것은 평범한 능력이 아니었다.
검을 찔러넣는 동작에 실린 기운, 단순히 물리력이 발휘될 정도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이를 이용해 확장된 범위를 파쇄하는 능력.
원래 특수 능력인 키메라를 절삭하는 능력과 비교할 만했다.
지하 8층 첫 사냥은 쉽게 끝났다.
두 가지 공격이 주된 전술인 미궁층이었는데, 메므모가 레리아나의 검이 박히는 순간 터져나가니 페트롤 하나만 상대하는 것과 같았다.
* * *
* * *
* * *
지하 5층으로 돌아가 휴식하고, 다시 지하 8층 공략을 이어갔다.
미치광이 켈베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봉두난발의 머리, 반쯤 돌아간 눈,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입.
누더기를 걸친 홉고블린은 일행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인간의 말을 했다.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어. 곧 죽음이 들이닥칠 거야. 대비해야, 대비해야 해.검붉은 피가 땅 위로 스며 오를 때면 이미 늦어."
주문이 아니었다. 일행을 향해 하는 말도 아니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해머를 들어 올렸다.
일행을 향해 내뻗은 손끝에서 붉은 화염이 솟구쳤다.
미리 경계하고 있던 전열의 수희와 바리스는 전면으로 방사되는 화염을 쉽사리 피해냈다.
"화염이 다가 아니야. 마법이 걸린 무기에 절대 맞으면 안 된다. 막지도 말고 피해야 해."
미궁 지하 8층을 반복하다 보면 랜덤으로 마주치게 되는 미치광이 켈베스.
인간의 말을 하며, 마법을 쓸 수 있는 홉고블린. 홉고블린이라도 한 놈만 나온 이상 상대하기 어렵지 않지만, 많은 모험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네임드 몬스터였다.
켈베스의 마법과 무력은 8층에 어울리는 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의 특징을 모르면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무기 [켈베스의 절망]은 타격당한 자를 랜덤으로 미궁 어느 곳으로 공간 이동시켰다.
나 역시 당했었다. 지하 3층으로 떨어져 쉽게 수습하고 일행과 합류한 적도 있었고, 수준보다 훨씬 깊은 층에 떨어져 순식간에 죽은 적도 있었다.
'이상한 곳에 떨어진 적도 있었지.'
이상하다고밖에 표현하지 못할 곳이었다. 한 발짝만 움직여도 모든 것이 변하는 곳.
굳은 땅에다가 세 방향이 막힌 벽이었는데, 한걸음 옮기는 순간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 안의, 기이하게 부유하는 돌다리 위에 있다가, 다시 움직이면 물속으로 변해 숨이 막혀왔다.
붉은 뱀처럼 생긴 커다란 몬스터가, 샐러맨더가, 박쥐와 물고기를 섞어놓은 듯한 몬스터가 쫓아왔다.
환상이 아니었다. 환상이라면 나의 인지를 아득하게 초월하는 환상이니 환상 아닌 것과 같았다.
뱀에 물려 중독되고 샐러맨더에 화상을 입고 물에 질식해 죽었었다.
순간이동 그것도 미궁층을 넘나드는 힘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었다. 단적으로 저 '켈베스의 절망'은 무려 '전설급' 아이템이었다. 레리아나의 검과는 단계가 다른 아이템이었다.
다만 저층에서 나오기 때문인지 원래 '켈베스의 절망' 특성 때문인지 신성에게 공양해도 반대급부가 적었다.
흔한 미궁 저층 보상템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한때는 저 아이템의 응용을 연구했었다. 켈베스를 죽이고 '켈베스의 절망'을 빼앗아 써보았다.
나를 포함한 일행 중 누구도 켈베스의 절망에 담긴 힘을 일으키지 못했다.
타격 시 타격 대상을 랜덤한 위치로 순간이동 시켜버리는 이능은 절망한 자만이 발휘할 수 있었다.
어쨌든 살려고 꿈틀거리는 마음은 절망에 빠진상태가 아니었다. 아무리 적에게 둘러싸여 전멸하기 직전이라도 '켈베스의 절망'을 휘두르는 순간만큼은, 닥친 위기를 순간이동으로 벗어날 거라는 희망을 품어버렸다.
나는 미치광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결론 내렸다. 미치광이가 될 정도로 절망에 빠진 이가 아니면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죽이지 마. 체력을 빼놓고 흙으로 덮어버려."
직접 숨을 끊지 않으면 켈베스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는 나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바리스가 죽어버리면 아래에서 올라오는 침식의 물결에 내가 죽는 것과 비슷하게, 그는 어떤 물결이 올라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지하 8층에 머물렀다. 언제 그를 찾아도 그가 있거나 그가 죽은 흔적만 있을 뿐 떠난 흔적은 없었다.
다른 점은 나는 미궁 탐험을 반복했지만, 그는 지나가는 탐험가를 습격하고 타격 무기를 모았다.
무언가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타격 무기를 모으기만 했다.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그는 이미 '전설'급 무기가 있으면서도 해머나 몽둥이 같은 타격용 무기를 모으고 그가 머무는 형편없는 움막에 쌓아두었다.
그의 컬렉션은 올 때마다 달랐다. 하지만, 특별한 무기는 없었다. 8층의 모험가를 습격해 모으는 만큼, 6층~9층을 탐험하는 모험가 장비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켈베스가 흙덩이에 묻혀 정신을 잃은 동안 그의 컬렉션을 살폈다. 눈에 익힌 형식의 해머를 골라 챙겼다.
일행은 타격 무기를 쓰지 않기에 무기로 쓰려는 것이 아니었다. 길잡이 스킬을 쓰기 위해서였다.
지하 7층 무기고로 가기 위해 수희에게 단검을 부탁했던 것처럼, 랜덤으로 도착하는 지하 9층 중에 원하는 곳으로 가려면 관련된 무기가 필요했다.
나는 오크제 해머와 다른 두 개의 해머를 챙겼다.
굳이 죽이지 않았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모험가를 습격해 해머를 수집할 것이다.
켈베스가 수집해놓은 해머는 원하는 미궁층으로 갈 이정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순간이동의 비밀을 이번 회차에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뭐, 그걸 빼도 살려두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이번 회차는 진행이 좋았다.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깊은 곳에서 켈베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면 연동시킬 수도 있다.
또한, 더 깊은 층에서 미궁 8층 수준 모험가의 시체와 가방을 발견하곤 했다. 드문 일이지만 켈베스의 망치에 당한 자가 순간이동당하고 죽어서 남기는 짐은,빡빡하게 돌아가는 심층에서 도움이 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