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0화
수희가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자'로 찾아왔다.
미소 띤 얼굴. 조금 더 짙어진 신성.
말하지 않아도, 어버스나이트에서 그녀의 업적을 인정했음이 느껴졌다.
"미안해. 중력 관련 스크롤은 구하지 못했어. 그래도, 윈드스피어 스크롤은 구했어.“
수희가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받았다.
경매장에서 중력 마법 관련 스크롤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중력 마법은 극히유용한 마법이었다. 교단에서 레이드 등으로 구한다고 해도 매물로 내놓지 않았다.
데미지 자체가 더 세고 화려한 윈드 스피어가 더 흔했다.
미궁에서 잘 나오기도 하지만, 단일 타겟 명중 후에 효과가 발휘하는마법과 광역으로 일정 영역에 힘을 미칠 수 있는 마법은 그 가치가 달랐다.
"역시 중력 스크롤은 직접 구할 수밖에 없겠군. 고마워. 수희. 수고했어."
가치를 알기에 구해오지 못한 수희를 타박하지 않았다.
어버스나이트 내에서 보유하는 물품도 있을 테지만, 그 물품은 지하 6층 보상방에서 얻은 보석 가지곤 교환하지 않을 것이다.
경매장에 눈먼 물건이 있을까 했지만 역시 없었다.
"중력 스크롤이나, 윈드 스피어 마법···. 9층을 준비하는 거야?"
나는 수희의 질문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수희도 8층까지는 혼자 다닐 수 있지만, 9층은 쉽지 않았다.
9층부터는 비행 몬스터가 존재했다. 까마귀와 비슷한 몬스터나 드물게는 하피나 가고일이 나오는 미궁층이 걸릴 수 있다.
대처를 생각 안 하고 진행했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미궁에서 낭패는 단순한 부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희는 내가 가진 단검 투척술보다 나은 쌍검술과 연동되는 투척술을 가지고 있지만, 9층에서는 보조 기술 이상의 대처가 필요했다.
9층에서 중력 마법은 극단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아직 중력 마법을 디스펠하는 몬스터가 나올 층이 아니었다.
특히, 궁전의 홀 크기를 넘지않는 한정된 공간이 걸리면, 중력 마법은 날아다니는 몬스터의 장점을 모두 없앨 수 있었다.
전사의 사정거리 안팎을 오가며 농락하는 비행 몬스터도 중력 마법에 당하면 그 이전 층의 몬스터보다 쉬워져 버렸다.
”의뢰를 알아봐 줄까? 중력 마법과 교환할만한 의뢰가 있을 거야. 헤스티가 익힐 윈드 스피어 하나만 믿고 9층을 넘보는 건 무리잖아."
수희가 멀리서 헤스티, 에드샤가 한 팀으로, 바리스와 에리가 한 팀으로 먹고 훈련하는 모습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농담하지 말고.”
나는 살짝 수희를 비웃었다. 중력 마법을 보상으로 건 의뢰가 쉬울 리 없다.
그전에어버스나이트에게 붙잡혀 고문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윈드 스피어는 보조야. 함께 가면 알 수 있을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내 말에 수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수희에게 지하 9층 너머는 버거웠다. 사람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는 막힌 곳 너머에 쉽고 명료한 해결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곤 한다.
수희는 9층 너머에서 9층에서 혼자 돌아다닐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욕심 많은 여왕님, 그럼 우릴 충실하게 따라다녀요."
"훗."
수희가 나의 농담에, 말하는 별명에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웃었다. 이번 회차에서 수희와의 관계는 여왕과 시종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왕이라는 단어는 끌리는지 부정하지 않았다.
수희는 야하디야한 비키니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마치 연극처럼 치렁치렁한 드레스의 양쪽을 잡아 인사하는 여귀족의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네, 왕이시여. 저를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회차의 수희는 여왕과 시종의 관계를 떠올리지 못했다. 내 말에 왕과 여왕의 관계를 떠올리곤 농담하고 키득거렸다.
*
'8층, 9층.'
수희에게 말한 9층에서 마주칠 수 있는 비행 몬스터에 대한 대비는 허풍이 아니었다.
'까마귀, 하피, 가고일···. 그리고 와이번.'
상대해야만 하고 넘어야만 할 벽이었다. 그리고, 나의 클래스 [컨트롤러]는 벽을 넘을 방법을 제시했다.
레리아나의 검을 얻고 검에 얽매인 레리아나와 교류하자, [미궁 이해]의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미궁 이해]는 컨트롤러 클래스와 이어져, 새로운 컨트롤러 클래스 전용 스킬을 등장시켰다.
[독립 영역 운용]과 [종속체 부유력 부여]
[종속체 부유력 부여]는 무기고에서 구한 석궁구 사용에도 유용했다.
석궁구는 둥근 구 형태로, 끈 하나 연결해서 등에 메고 다니다가 싸울 때 주변으로 던진 후, [그랩 핸드]로 이동시키고, [푸쉬 핑거]로 격발하는 방식으로 이용했다.
성에서 빠져나올 때는 쓰지 못했지만, 성벽에서 몰려오는 키메라를 상대할 때는 짭짤하게 써먹었다.
이동할 때보다 고정된 위치에서 싸울 때 유용했다.
하지만, [종속체 부유력 부여]가 생긴 이상, 이동성이 약한 단점이 사라졌다.
호박등을 둥둥 띄우고 나타나는 몬스터, 잭 오 랜턴과 비슷하게 호박등 대신 석궁구를 주변에 띄우고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
* * *
* * *
바리스가 몸을 잔뜩 움츠렸다가, 당겨졌던 활대가 팅기듯 몸을 폈다. 몸을 펴는 힘이 허리와 등을 지나 팔로 이어지고, 검 끝에 힘이 축적되었다.
카캉-
검과 돌이 부딪혀 나오는 소리는 폭발음 같았다.
"어려워요."
바리스가 하소연했다. 일행은 9층과 그 이후를 위해 적응훈련을 시작했다.
윈드 스피어를 익힌 헤스티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종속체 부유력 부여]에 집중했다.
내가 종속시킨 사물을 공중으로 띄울 수 있게 되었다.
이 [부유력 부여]가 생기기 전에도 띄울 수 있긴 했다. [그랩 핸드]로 지속적으로 힘을 가하면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심력이 소모되었다. 심력이 소모되어 비게 되면 기운 운용이 힘들어지니 기운을 소모하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부유력 부여]는 한번 발동만 시키면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심력이 거의 없었다.
[그랩 핸드]와도 조합이 좋아 적은 힘으로 띄운 부유체를 조종할 수 있다.
스킬을 이용하기에 구현은 문제가 없었다. 다만, 실전에 활용하는 것이 별개의 문제였다.
몇 개의 큰 돌을 부유력을 이용해 띄우고 바리스에게 올라가 싸우게 했다. 몇 개는 발판으로 몇 개는 적으로 설정해 가격하라고 지시했다.
감각이 뛰어난 바리스였지만,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이때까지는 3차원의 높이가 있는 전투를 하더라도 한정된 공간 내의 전투였다. 몬스터의 키와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공간만 인지하면 되었다.
하지만, 바리스가 돌을 타고 부유하는 순간, 발아래와 머리 위까지 전투를 위해 인지해야만 하는 공간이 되었다.
양손검을 휘두르고 휘두른 힘을 수납하는 바리스의 뒤를 커다란 돌덩어리가 덮쳤다.
"크윽."
급하게 자세를틀며 검으로 막았지만, 돌진하는 힘을 그대로 받고 말았다.
"흐."
그대로 밀려나 받쳐주던 바위에서 떨어졌다. 3m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몸을 비틀었다. 가볍게 낙법했다.
낙법하지 않았더라도 큰 상처는 없었을 것이다. 몸무게가 가벼웠고, 질기고 튼튼한 가죽옷은 금속 갑옷의 무게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성장한 바리스의 육체는 3m 높이에서 떨어진 충격량은 무난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아흐, 정말.”
아쉬운지, 벌떡 일어나 제자리에서 검을 휘둘렀다.
이때까지 쓰던 검술과 맥이 다른 움직임.
떠오른 바위 위에 타면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때까지 바리스는 공격적으로 움직이라는 나의 조언 아래 공격성을 강화했다. 이 지시로 가지고 있던 이전의 단점을 거의 극복해냈다.
다만 공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더 강한 힘을 쏟아붓기 위해 하체와 발을 힘차게 굴렸고, 전진하며 내지르는 진각을 기초로 썼다.
공중에서 바위 위에 타니 이 기초부터 부정당했다. 땅에서라면 쉽게 쳐낼 바위 공격을 흘리지 못하고 중심이 밀려 밖으로 떨어졌다.
바리스가 검을 휘둘러보다가 수희를 힐끗 바라봤다.
수희는 싱긋 웃으면서 눈을 마주했다.
바리스가 훈련하기 전에 수희가 먼저 떠오른 바위 위로 올라가 훈련을 했다. 수희는 훈련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모습을 보였다.
수희는 쌍검이었다. 원을 그리며 내지른 힘을 수납하는 데는 이미 도통했다. 화려하게 원을 그리면서 적으로 설정한 바위를 쳐내는 모습은 훈련이 아니라 시범이었다.
수희는 우월한 걸 좋아했다. 그리고 이 훈련은 한쪽 특성만 파 빠르게 성장한 바리스와 여러 상황을 경험하고 고민한 수희의 차이를 확연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수희는 모른다. 바리스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 바리스는 수희의 시범을 녹여내어 빠르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낼 것이다.
공중에서의 훈련은 공중으로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공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야와 관점을 경험함으로써 대공 전투력이 확연하게 오를 것이다.
9층의 비행 몬스터를 상대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날 것이다.
*
'에리는 좀 아쉬워.'
바리스와 헤스티는 내게 종속되어 있지 않지만, 에리는 내게 종속되었다.
이는 종속시켜 떠오르게 할 수 있는 바위처럼 [부유력 부여]가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높이 오를수록 안색이창백해져 갔다.
에리는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훈련을 중지했다. 에드샤는 에리를 껴안고 자신의 기운으로 에리의 전신을 감쌌다.
'에리의 장점은 키벨레 종족 혼혈이라는 것, 단점 역시 키벨레 종족 혼혈이라는 거다.'
에리가 단순히 높이에 거부감 느낄 리 없었다. 성벽 위에서 성 아래로 5m가 넘는 높이도 쉽게 뛰어내리고 탱커인 만큼 가볍게 충격을 받아냈다.
높이가 아니라, 키벨레 종족 특성이 대지와 격리되는 것을 못 견뎠다.
'나도 에드샤도 에리에게 감사해야겠는걸.'
나는 키벨레 종족 상대법을 알게 되었다. 땅과 격리시키면 된다. 중력 마법이나 염력 등의 수단을 간구해서 대지에서 발을 떼게 만들면 된다.
에리를 통해 확인하기 전에도 이론적으로는 추측할 수 있는 개념이지만, 실제로 적용 가능한지, 얼마나 격리해야 효과가 나타나는지 제대로 파악했다.
에드샤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중요성은 나와 비교할 수 없었다.
내가 키벨레 종족을 적으로 상대하는 순간은 언제일지 몰랐다.
하지만, 에드샤에게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위험이었다.
에드샤를 토벌하러 온 고위 마법사가 기습적으로 중력 마법을 썼을 때, 어떤 타격을 받는지 파악하고 전투에 임하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다.
*
에리는 결국 별도의 훈련을 했다.
[스톤 니들] 마법을 에드샤에게 배우고 훈련했다. 땅에서 뾰쪽한 돌을 솟아오르게 하고 이를 공중으로 쏘아내는 대지 계열 마법이었다.
에드샤가 보이는 시범을 보니 화려했다. 한순간에 수백 수천 개의 뾰쪽한 돌이 위를 향해 쏘아졌다.
한점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화망을 구성하는 것을 보면 용법을 추측할 수 있었다. 조류형 몬스터가 날아다니다가 급강하해서 낚아채려는순간에 써서 카운터를 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