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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0화 (20/139)



〈 2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0화

에드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중요한 변수가 사라졌다.
생존에 관련된 변수. 준영과 어버스나이트 수희가 함께 에드샤를 기습하면, 도망치지 못하고 잡힐 가능성이 사라졌다.
준영과 수희의 대화가 끝나고, 수희가 떠났다. 기습을 위해서 은신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듯이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멀어졌다.

에드샤의 경계를 알아차린 듯, 준영도 다가오다가 멈췄다.
대신, 헤스티를 합류시키고 수신호 등으로 지휘를 했다.

“아, 이건 뭐야.”

마법사 페로와 나머지 전사들과 싸우는 전투 상황임에도 탄성을 터트렸다.

준영이 지휘를 시작하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휘는 중요했다. 작은 판단이 생사를 가르기에,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검에는 망설임이 묻어나는 법이다.
더욱이 협공이 되면, 득점을 위한 한 수가 아군의 위기를 불러버린다. 그래서, 훈련이 중요하고 감각이 중요했다.
에드샤가 용사 바리스에 감탄한 이유였다. 바리스는 함께 싸우는 감각이 탁월했다. 오랜 시간 혼자 살아온 에드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에리는 어설펐다. 준영의 지휘를 받기 전까지는.
아예 다른 사람 같았다. 전체적인 움직임이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정면만 보고 앞뒤로만 움직이던 생물이, 하늘을 보고 옆으로도 움직이는 듯한 변화.

'뭐야, 저 인간들한테 배워서 그런 거야?'

에드샤가 에리의 몸을 가지고, 에리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이루지 못할 전투 흐름의 조율.
에드샤의무력을 평가하는 시야는 좁지 않았다. 현재의 모습을 보고 미래를 갸름할 능력이 있었다.

‘저 에리가 나만큼 성장한 후에는.’

에드샤는 전율했다. 에리의 육체가 자신만큼 강해졌을 때, 저런 식으로 전투 흐름을  수 있다면 어느 수준까지 이룰지 궁금해졌다.

'내가 키워서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겠지.'

에드샤는 준영 일행을 새롭게 보았다.
에리를 빼돌릴 생각만 했지만, 이들과 함께할 때 에리는 더 강해질 것이다.
힘은 생존이고 자유였다. 5층을 통제하는 에드샤 역시, 뼈저리게 느끼는 규칙이었다.

*

에드샤는 준영이 [컨트롤러] 클래스의 [푸싱 핑거]로 에리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다만, 다소 어긋나긴 했지만, 에드샤의 예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푸싱 핑거로 지시받은 에리는 빠르고 정확하게 배워갔다.

전수 방법뿐만 아니라 경험의 깊이 역시 달랐다.
준영과 에드샤의 전투 경험은 단순히 횟수로 비교할  없었다.
같은 지형에 비슷한 전투만을 경험한 에드샤와 달리 준영은 다양한 전투를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패배해 목숨을 잃어가며 얻은 전투 경험은 에드샤가 결코 얻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준영이 내리는 지시를따르는, 에리의 성장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 * *
* * *
* * *

나는 찬찬히 미소를 지으며 전투를 칭찬했다.

"놓쳐버렸어요."
"괜찮아. 이미 목적은 달성했어."

나는 힘없이 다가오는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리를 위로하는 나를 세 명의 여자는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에드샤는 나의 자리가 자신의 자리였음을 아는 씁쓸함과 미세한 승복으로, 바리스는 리더가 믿음을 보이는 모습에 포근해 하는 미소로, 헤스티는 승리와 생존의 기쁨,  아래에 숨기고 있는 아주 작은 질투로.

*

함께 이동했다.

‘굳은 땅의 은둔자.’

키벨레 종족인 에드샤를 가리키는 별칭이다. 하지만, '굳은 땅'이라는 단어와 달리 이곳의 지질은 굳어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굳은 땅에서 온 은둔자라고 추측했다. 여기가 굳은 땅인 것이 아니라 출신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바리스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 5층으로 입장하면서 바닥을 발로 비벼 바닥의 특성을 확인했었다. 흙땅이 얼마나 굳건한지 얼마나 미끄러지는지 확인했었다.
바닥의 표면만 보면 입구 쪽과 미궁층 안쪽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미 확인했음에도 바리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단순하게 조심할 뿐만 아니라 헤스티에게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내게도 바리스는 신호를 보내왔다. 에드샤가 근처에 있기에 말로 하지 않고, 눈빛과 손짓으로 특별한 이상이 없는지 물었다.
나는 불안해하는 바리스에게 입을 열었다.

"이 흙바닥 아래 단층이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불안한 거다. 기뻐해도 좋아.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도, 불안하다는 건 감각이 확장되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마법이 발현되지 않은 상황이니, 헤스티가 마법적 이력을 감지 못하는 게 당연해."

바리스를 칭찬하는 데에 이어 헤스티의 상황을 설명했다.
헤스티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은 그녀가 마법적 위험감지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변호였지만, 그녀의 한계를, 현재 수준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찼다.

"굳은 땅을 뒤집는 것보다는 모래를 움직이는 것이 쉽지. 하지만 같은 범위 내에 힘을 부렸을 때, 위력은 어느 쪽이 더 강할까? 당연히 굳은 땅일 때 위력이 더 세.
이곳 아래 단층은 굳은 땅과 모래가 엇갈리게 섞여 있어. 그 구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는 작은 힘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지.
저 에드샤보다 강한 자가 이곳으로 쉽사리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야. 흙을 통제하는 키벨레가 흙더미에 깔릴  없으니 불안정한 상태, 그 자체가 적에게만 작동하는 덫인 셈이지."

바리스는 더 긴장했다. 키벨레 에드샤의 안내로 5층 중앙지역으로 들어온이상. 에드샤의 손아귀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함께 걷는 에리와의 거리를 좁혔다. 에리가 에드샤를 통제하는 열쇠임을 아는 것이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손바닥을 아래로 손짓해 주변 관찰 지시를 내렸다.
확실히 바리스는 정치력이 약했다. 과도한 에리에 대한 집중은 역으로 에드샤의 경계를 살 것이다.

*

"마치 유적 같아요. 흠. 유적, 실제로 가본 적 없고, 말로만 들어봤지만요."

 시간 이상 걸었을까, 너머로 흙과 모래 언덕이 아닌 인공물이 나타났다.
한쪽 벽이 뚫린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문이 없는 대신 벽이 뚫린 건물은 모래바람이 부는 것도 아닌데 풍화된 흔적이 더해져 세월을 견뎌낸 것처럼보였다.

"유적이라···."

유적이라고 함은 문명의 흔적이 세월을 거쳐 마모된 것이다.
분명 눈앞의 광경은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의심스러웠다. 유적이 아니라 유적처럼 보이게 만든 무대 세트가 아닐까.
네임드 엔피씨를 죽여도 어느새 유사한 개체가 같은 행동을 보이는 미궁에서 역사성은 존재하는 걸까.

에드샤가 한 건물을 가리켰다. 외곽 쪽에 위치하면서 마을 안쪽으로 개방된 건물.
실재했던 마을이라면 마을의 손님이 머무는 곳이겠지.

"으그그."

감상이야 어떻든 간에 헤스티는 앓는 소리를 내며 무거운 짐을 건물바닥에 내려놓았다. 생존을 위해서는 실리를 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데이크와 함께 왔던 전사들의 물건은 고급이었고 이는 상당한 기간의 보급품이 될 수 있다.
3층 코볼트 던전에서는 큰 승리를 해놓고 휴대 가능한 것만 들고 왔지만, 5층은 상황이 달랐다. 안전하게 보관이 가능한 만큼 모든 전리품을 이용할 수 있다.
즉, 거점이 생겼다.

"불피워도 될까요?"

질문하는 헤스티의 얼굴에 흥분이 감돌았다.
나는 에드샤의 얼굴을 슬쩍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휴대식량에 열을 가해 먹을 뿐이지만, 그저 입안에 넣고 침에 불려먹던 상황에 비하면 파티 같았다.

"잠깐."

나도 챙겨두었던 독초 하나를 꺼냈다. 미약한 독성분이 있지만, 다들 독저항이 있는 만큼 향초로 작용할 것이다.
바리스는 물론 에리도 살짝 흥분을 비췄다. 일행의 모습에 에드샤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의아한 시선을 보내왔다.

화톳불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유로운 화식은 미소를 일으켰다. 에드샤도 한편에 앉아 함께 먹었다.
이때까지는 본능에 따라 배가 고프면 소형 몬스터를 사냥해 뜯어먹었다고 했다.
부드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여전히 에드샤와 에리가  붙지 않도록 바리스가 끼어있는 형태였지만, 분위기는 조금씩 느긋해졌다.

"그럼, 언제부터 혼자였던 거냐?"
"기억이 가물가물해. 어릴 적에는 다른 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혼자였어."
"어릴 때라면 몇 년 전이에요?"

나와 에드샤의 대화에 헤스티도 궁금한지 물어왔다.

"으흠···. 그냥 내가 작을 때."

계절이 없으니 연도를 측정할 수 없었다. 에드샤의 나이를 모르니 때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키벨레 종족의 어린개체가 보호받는 시기가 긴 만큼 수명도  것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특별히 강한 개체는 종족의 평균 수명을 뛰어넘었다.

에드샤의 대답에 다들 생각에 잠겼다. 일단, 에드샤의 말을 믿는다면 에드샤가 에리의 직접적인 어미는 아닌 셈이었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나는 물론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는 바리스와 헤스티도 의아해했다.
인간의 감성으로는 모성애가 아니라, 단순한 종족애만으로 에리를 위해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에드샤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더 깊은 이야기와 역사가 있거나, 아니면, 그렇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무대이거나···.'

뇌리에 낭만적인 생각과 염세적인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원래 키벨레 종족은 다른 대륙, 다른 세계에서 종족을 이루며 살았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이 미궁으로 전이되었다.
그 흔적이 유적이 되고, 에드샤의 친척 중 하나가 인간에게 끌려가 에리의 부모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아니면, 이게  만들어졌다는 것.
유적도, 에리도, 에드샤도···, 에리를 향한 에드샤의 반응도.
모두 어떤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추측.

'중요하지 않아.'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생각은 내가 어떻게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굴레에 절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회식을 즐기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 회차 때 눈으로 본 정보 외의, 살아있는 에드샤를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았다.

*

"그럼, 다녀올게요."

헤스티가 불안해하면서도 당차게 말했다.
카이바린 놈들이 남기고 간 짐이 많았다. 여러 번 왕복해서 들고 와야 할 양이었다.

"조심하고 혹 적을 발견하면 생존을 우선으로 해서 이리로 와."

바리스와 헤스티는 고개를 끄덕이고 작업을 위해 떠났다.

*

나는 에리를 이끌고 마모된 마을을 살폈다. 당연하다는 듯 에드샤도 뒤따라왔다.
대략적인 수색 후에, 기억 속에 남아있는 곳을 찾아 걸었다.

"흠···."

나는 막힌 흙벽을 향해 한숨을 토해냈다.
예전 회차에서 보았던 키벨레 종족에 관한 책을 찾아보려고 왔다. 하지만 책이 있던 곳은 흙벽으로 막혀있다.

"여기 원래 벽이었나?"
"그래, 그런데 왜?"
"아니다."

에드샤가 특별히 숨기는 것이 아니라면 원래 막혀있는 곳인 듯했다. 그런데 숨길 이유가 없었다.
에드샤는 에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다. 책이 있다면 당연히 책을 이용했을 것이다.
숨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나는 이미 그런 곳을 경험해보았다.
미궁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일 중에 하나, 그 층의 보스가 죽으면 보상방이 열리는 것.
책이 있던 방은 원래부터 열린 곳이 아니라 에드샤를 죽인 보상으로 열리는 방이라는 뜻이다.

'에드샤가 살아있다면 에드샤와 연관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고, 에드샤가 죽으면 보상으로 주어지는 책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누군가가 이 미궁을 설계했다면,  미궁층의 용도가 아닐까?

나는 습관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거시적인 것보다 눈앞에 닥친 현실에 집중했다.
에리가 있는 이상, 에드샤를 통제할 수 있고, 에드샤를 통제할 수 있으면 굳은 땅의 은신처는 우리의 거점이 된다.
이미 보았던 책을 다시 보기 위해 거점을 포기하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다.
그래서 다음 행동으로 넘어갔다. 조사를 끝냈으니 에리와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천천히 무장을 풀었다. 옷차림을 가볍게 하고 손짓해 에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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