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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9화 (19/139)



〈 1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9화

일격에 고양잇과 동물의 머리를 부술 수 있는 곰이 잔혹할까, 곰의 상처를 야금야금 넓히는 작고 빠른 맹수가 비겁할까.
생존에 감정적인 평가는 필요 없는 법이다.
마치 사냥 같았다. 나는 수희와 함께 데이크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상처를 늘리고 출혈을 강요했다.
이미 치명상을 입은 곰은 앙칼진 고양이와 음침한 늑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 *
* * *

패자는 전리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쓰러트린 데이크를 두고 말을 건넸다.

"데이크의 머리랑 무기 모닝스타는 양보하지. 물론, 카이바린 지팡이도 가져가고."
"뭘 양보하는 척이야. 어차피 처분 못 할거잖아."

감당하기 힘든 적을 앞두고 오래된 부부처럼 호흡을 맞췄던 수희가 두 개의 검을 등에 메더니  팔로 팔짱을 꼈다.

"그건 아니야. 들고 가기 귀찮다면 내가 처분하지."

카이바린 추적자를 상대하는 것 말고도 수희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수희의 욕망을 알고 있는 만큼 약하게 나갈 이유가 없었다.
아직 싸우고 있는 에드샤와 에리를 턱짓했다.

"당장 안 팔아도 보관할 장소를 확보했으니까."
"칫."

에드샤를 포섭한 만큼  미궁층은 안전했다. 안전이 확보된 미궁층은 아지트로  수 있다.
이때까지 들고다닐 수 없는 식량과 장비는 버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창고지기까지 구했으니 무게와 분량의 제한이 없어졌다.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

바리스가 나와 수희가 흥정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손으로는 '에리, 돕는다, 지시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바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를 요청한 바리스의 내심을 추측할 수 있었다. 에리를 도우러 가고 싶지만, 수희의 정체를 알  없는 만큼, 수희의 돌발행동을 대비해야 한다.
정보가 적으면 더 많은 정보가 있는 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맞다. 다만 판단하는 자가 믿을 수 있는 자이여야만 한다.
바리스는 나의 허락에 안심하고 달려나갔다.

"좋은 파티네."

이런 수면 아래에서 흐르는 믿음을 읽은 걸까, 수희는 약간은 씁쓸한 어투로 말했다.

"파티원이 좋을 뿐이야."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보면 회귀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수희는 항상 혼자 다녔다.

'쓸쓸한가.'

예전 회차 때의 나와도 마음을 터놓는 관계가 아니었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람을 죽이고 나서 감정에 빠지는 건 좋지 않았다. 미궁에서는 더욱이.

카이바린의 마법사 지팡이를 들어서 휙 던졌다.

"보름 뒤 여기로 와. 같이 싸운 값으로는 그놈 머리로 충분할 테지. 지팡이값은 따로 계산해줘야겠어. 같이 한번 싸운 걸로 지팡이까지 넘기는  손해야."

수희가 짝다리를 짚고 상체를 살짝 비틀었다. 받은 지팡이를 애무하듯 쓰다듬었다.
절로 요염함이 흘러넘쳤지만, 내겐 익숙한 자극일뿐이었다.

"그럼, 뭘 원해?"
"큰  원하지 않아. 7층 헤스토의 무기고에서 탱킹을 좀 해줘. 준비물로 거기서 나오는 단검 하나 구해다 주고."

수희는 이미 7층 헤스토의 무기고에서 나온 단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회차에서는 이를 말한 적 없으니 아는 척하면  된다.
자신에 대해 자세하게 알수록 경계심을 올릴 테니까.
그리고, 수희가 가지고 있는 단검, 예전 회차 때, 수희는 단검에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였었다.
미궁을 돌아다니는 인간 중에 비극을 경험하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

그냥 길잡이 스킬을 쓸 수 있을 물건이면 되는 만큼, 굳이 유품 같은 물건을 요구해 선을 넘을 필요가 없다.

"7층? 와, 보름 내에 무기고에 갈 전력이 되겠다는 거야?"
"유능한 탱커와 함께라면 불가능하지 않지."
"으흠···."

어떻게 그런 지식까지 아는지, 수상하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수희는 8층 이상에도 먹히는 탱커고 그런 탱커와 함께하면 7층이라도 6층의 난이도가 된다.
거기다가 ‘무기고’는 탱커의 능력이 중요한 곳이었다. 랜덤으로 등장한다고 알려진 보스 몬스터만 아니라면 교단에서 장악하고 그들의 사냥터로 삼았을 것이다.

"근데, 길잡이 능력도 있나 봐? 출처가 확실한 물건을 원하는 것을 보면."

숨길만 한 사실도 아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미궁을 돌아다니면서 길잡이가 없다고 말하면 그게 더 수상했다.
그리고 한 번밖에 같이 싸워보지 않았지만, 미궁에 대해 잘 아는 내가 미숙한 바리스, 헤스티, 에리를 이끌고 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너도 길잡이인 건 마찬가지잖아."

수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던전에서 혼자 작전을 수행하려면 길잡이 능력이 필수였다.

"뭐, 그렇지. 그럼, 저놈이나 같이 칠까?"

괜히 페로를 상대하는 에드샤를 턱짓하며 화제를 전환하는 말에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페로는 에드샤가 제대로 상대하고 있다. 바리스까지 갔으니 안정성은  올라갔다.
하지만, 이는 에드샤가 감당할 수 있는 바리스가 갔기 때문이다.

'여러 집단이 모였을 때, 우선 가장 강한 자를 사냥한다.  사냥이 끝나면  번째로 강한 자를 사냥한다.'

나와 수희까지 다가가면, 에드샤는 일행이 그녀를 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아니지만, 수희는 가능하면 그렇게 움직일 것이다.
수희는 업적을 원했고, 엔피씨 에드샤의 사냥 성공은 업적이 될 수 있다. 에드샤 급 엔피씨 부활에는시간이 걸리는 만큼, 5층은 일시적으로 리크밖에 나오지 않는 안정적인 사냥터가 되고, 탐사되지 않은 구역을 알아낼 기회가 될 것이다.

"나 없이 괜찮겠어? 내가 있으면, 마법사에 이어 에드샤까지 처리 가능한데."

이런 나의 추측을 확인이나 하듯 수희가 입맛을 다셔왔다.

"아니, 필요 없어. 우리는 에드샤와 싸우지 않을 거야."

키벨레 종족은 몬스터 취급을 받지만, 몬스터만큼 인간을 적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리의 뼈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덤볐던 에드샤라면 에리와 함께 하는  안전했다.

"빨리 가주는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와, 나 상처받았어."

나는 순진한 소녀인 척하는 수희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아, 그리고 동맹이라고 생각한다면, 은신하고 돌아와 우리를 감시하지 말라고."
"칫."

수희가 삐진 표정을 지으며 뒤돌았다. 어깨를 늘어트리며 처연한  연기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속마음은 이룬 성과에 춤을 추고 싶을 텐데.
수희는 은신으로 돌아와 우리를 감시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버스나이트 수희도 카이바린 지팡이를 처리하려면 시간이 걸렸다.
다시 보기로 약속한 때까지 보름, 일부러 기간을 빠듯하게 잡았다. 보름은 지팡이 처리 업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에는 빡빡한 시간이었다.

* * *
* * *
* * *

에드샤는 전황을 분석했다.

‘나는 강해.’

순수 무력이 낮지 않은 데다가, 무력에 흙과 암석을 통제하는 능력이 곁들어지니 평범한 전력으로는그녀를 상대할수 없다.
카이바린 추적자 중에서 에드샤를 수월하게 상대할  있는 자는 데이크뿐이었다.

'데이크라는 자를 나 혼자 상대했다면 졌을 거야, 상성이 좋지 않으니까.'

데이크의 보호막을 형성하고 돌진하는 능력은 상대가 마전사든 마법사든 접근전을 강제할 수 있고, 순수한 접근전이라면 에드샤는 데이크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준영이라는 자의 지시를 따랐다.'

데이크의 돌진을 보았을 때,에드샤 역시 이를 알아차렸고 준영의 지휘가 정확했음을 알았다.
그래서, 에드샤는 에리와 자신에게 마법사를 상대하라고 지시했을  거부하지 않았다.
에드샤는 돌입과 이탈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싸우는 타입이지, 전선을 형성해 죽을 때까지 덤비지 않았다.
강자가 쳐들어오면 접근해서 이득을 보고, 대지 계열 능력을 이용해 빠지고 다시 들어가는 전법을 썼다.
하지만, 에리와 함께하는 순간부터 혼자 전장을 이탈한다는 선택지를 지웠다.

*

에드샤는 에리를 살짝 뒤에 두고 마법사 페로와 전사를 노려보았다.
혼자라면 일단 쳐서 상대의 전력을 평가하겠지만, 에리와 함께 한 이상 탐색이 더 중요해졌다.

"에리, 잠깐.“

결연한 표정으로 적을 향해 전진하려는 에리를 향해 손을 뻗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잘 봐둬. 언젠가 너도 쓸 수 있을 테니까."

[어스퀘이크]
에드샤는 기운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이 함께 싸워야 한다면 가르치는 기회로 삼는 것이 나았다.
기운을 바로 전면으로 내뻗지 않고 아래로 흐르게 한 후 대지에 닿아 풍성해지는 순간 의지를투영했다.

"어스퀘이크는 범위가 넓어. 비슷한 수준의 적에게는 통하지 않고, 한 단계 낮은 적에게도 안 통해."

마법사 페로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 서 있던 땅이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숫자만 믿는 자들에게는 유용하지."

에리가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배워두면 준영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속을 모르는 에드샤는 마냥 흐뭇한 미소를 날렸다.
다만, 에드샤 역시 에리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어스퀘이크를 에드샤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에드샤 혼자라면 에드샤보다 두 단계 이상 낮은 적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상관없었다.
어느 정도 이상 수준이 되어야 에드샤가 치고 빠지는 것을 방해할 수 있지. 저 정도 수준이면 단순한 배경이었다.

'에리가 상대할만한 놈들을 골라냈어.'

약한 놈들은 비틀거렸다.
어스퀘이크를 수준 측정용으로 쓴 에드샤는 적 분류를 끝냈다. 약한 놈이라도 에리가 상대하고 죽이면 에리의 성장에 도움이  것이다.

*

에드샤는 유일하게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은 놈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저 마법사.’

마법사 페로만이 마력을 활성화시켜 자신의 발아래를 넘보는 에드샤의 기운을 배제해냈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물론, 방심하지도 않았다.
에드샤는 부드럽게 움직였다. 움직임은 부드러우면서도 가파르게 빨라졌다.

얼굴에 자신 있는 미소가 그려졌다.
상대인 페로와 에리의 전투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지만 미궁 한 층을 장악하는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에드샤는 전력을 끌어올리고 극도로 집중력을 올렸다.
다만, 힘의 배분이 일반적인 사냥과 달랐다. 공격보다 감각에, 감각으로 인지하는 순간 즉각 개입할 수 있는 힘의 예비에 중점을 뒀다.
에드샤와 마법사 페로의 전투는 죽이지 않으면 죽는 준영과 데이크의 전투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

에드샤는 시야를 넓고 예민하게 운용하고 있었기에 데이크가 쓰러졌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준영의 예상대로 준영과 수희가 다가오지 않는지 유의했다. 그 둘이 함께 공격하면 에드샤는 이길 수 없었다.

그 둘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 뿐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바리스가 다가왔다.

"에리, 함께 싸워."

바리스가 에리와 함께 전사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에드샤는 안심했다. 바리스는 수희와 준영보다 급이 떨어졌다.
하지만,

'아···.'

에드샤는 들리지 않는 탄성을 흘렸다.
바리스의 참전이 격렬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하지만, 바리스가 함께 하는 순간, 에리는 완전하게 안전해졌다.

'이들은 에리를···.'

보호자의 감성으로 어떻게 보호할까 궁리하고 지켜보고 있었기에 더 확실하게 알았다.
에드샤는 어느 정도 에리의 부상을 각오하고 있었다.마법사 페로를 상대하고 있는 만큼 얕은 상처를  공격까지 반응하면 움직임이 너무 난잡해졌다.
에드샤의 움직임이 난잡해지면, 역으로 에리가 위험해졌다.

하지만, 바리스의 움직임은 에리와 에리가 상대하는 적과 전투 흐름을 완전히 포용했다.
바리스는 에드샤보다 약했다. 하지만, 에리와 함께 하는 전투법은 하루 이틀 에드샤가 고민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준이 아니었다.
 시간, 위하는 마음으로 함께했기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보호받고 있다는 증거···. 준영이라는 인간에게 안긴 것과는 또 다른 증거.'

에리를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점점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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