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7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네임드 엔피씨 에드샤는 이미 일행을 인지했다.
리크의 핵을 넣은 구덩이에 에드샤가 들어와 리크의 핵을 조사했다. 이를 [관리 대상 인지]를 쓴 돌을 통해 알아차렸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일행을 에드샤가 꺼리는 미궁층 안쪽으로 이끌었다.
에드샤가 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에리가 키벨레 종족 혼혈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다른 모험가처럼 공격할 것이다.
리크의 핵을 바쳤기에 치명상을 노리지 않더라도 바깥쪽으로 쫓아 보내는 공격을 할 것이다.
어떤 공격도 징후도 없었다.
반응이 없기에 확신했다.
에드샤는 근처에 있다. 에리가 자신과 연관 있는 존재임을 알아차렸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손을 들었다.
일행은 즉시 멈추었다.
"카이바린 교단···."
나는 중얼거렸다.
먼 곳에 있는 돌이 부서졌다. 육중한 힘에 의해 [관리 대상 인지]를 걸어두었던 돌이 파괴되었다.
에드샤는 우리 근처에 있을 테니 아니었다. 어버스나이트는 나와 협의할 필요가 있는 만큼 굳이 에드샤를 자극할 이유가 없었다.
상황은 카이바린 교단의 돌입을 가리켰다.
"이곳으로 들어왔군."
나는 구석의 바위로 걸어갔다. 바위를 긁어 흔적을 남겼다.
대충 보면 그냥 몬스터가 남긴 흔적이지만, 어버스나이트가 본다면 어떤 신호인지 알아차릴 것이다.
어버스나이트가 이곳에 도착했음을 확신할 수 있는 물증은 없다. 하지만, 이 신호를 본다면 격전지로 찾아올 것이다.
*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자’층은 바깥 부분과 안쪽으로 나누어진다.
안쪽의 바닥을 살폈다. 단단하게 다져진 흙바닥은 아니지만, 마냥 빠져드는 유사도 아니다.
격전을 예비하는 곳에서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일행은 나의 신호에 경계를 올렸다.
나는 먼 곳을 보았다가 가까운 곳을 보았다. 지형을 다시금 확인하고 시작했다.
카이바린의 지팡이, 코볼트 던전에서 마법사가 썼던 지팡이를 들어올렸다가 땅에 내리꽂았다.
푹하는 소리와 함께 1/3이 박혔다.
이는 표식이다. 어버스 나이트와 카이바린 교단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물.
일행은나의 움직임에 긴장을 끌어올렸다.
나는 에리를 손짓해서 불러들였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안았던 것처럼 꼭 안았다.
그 모습에 헤스티가 눈을 살짝 치켜뜨며 농담 한마디를 하려 했다. 긴장하더라도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니까.
하지만, 살짝 옆으로 내젓는 나의 고갯짓에 침묵하고, 다시 바깥쪽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모두를 배려하는 헤스티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은 바리스와 헤스티, 에리의 공격력이 중요한 순간이 아니었다.
일행을 관찰하고 있을 에드샤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가가 중요했다. 일행과 농담을 나누면서 공유하는 동질감은 파티의 단합을 올리지만, 에리에 향한 에드샤의 관찰을 흩트리는 방해로만 작용할 것이다.
‘키벨레 종족 엔피씨 에드샤, 일단 그녀의 반응을 이끌어야 한다.’
키벨레는 동족을 챙기는 종족이다. 그 동족애가 생물이 가지는 보편적인 종족애에서 비롯되었는지, 보살핌을 받아야 제대로 자라는 키벨레 종족 특성 때문에 생긴 건지 그 기원은 알 수 없다.
어린 키벨레 종족은 이 종족애에 기인한 보살핌이 없으면 인간 아이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에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바리스와 헤스티 같은 인간은 단순한 스킨쉽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에드샤는 이 동작의 의미를 알 것이다.
파고들듯 쓰다듬었다.
"으흐."
에리가 얕은 콧소리를 냈다. 헤스티가 힐끗 나와 에리를 훑었다. 헤스티라면 이성 간의 행위로 오해할지도 모르지만,
에드샤라면 알고 있을 행위, 사실 에드샤가 해야 했던 행위.
미숙한 육체를 돕는 행위.
'그동안 자랐어.'
에리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짧은 기간에 에리는 성장했다. 단순히 삐쩍 말랐던 팔에 살이 붙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키부터 시작해서 골반과 등, 어깨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
바리스와 헤스티가 놀랄 정도였다. 둘은 그저 그동안 얼마나 굶주렸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안쓰러워했다.
나는 어미 새가 아기 새를 보듬듯 몸 안쪽으로 에리를 이끌었다. 내 가슴에 에리의 뒷머리가 닿고 배에 에리의 등허리가 닿았다.
손바닥에서만 이루어졌던 이때까지와는 다른 접촉.
그만큼 더 중요한 행위였다. 은신처에서 보았던 키벨레 종족에 관한 책에서는 이런 접촉이 성장잠재력을 올려준다고 했다.
'과연.'
바리스가 소리도 없이 검 끝을 올렸다. 예비 자세에서 준비 자세로 전환했다.
바리스의 검 끝은 한 존재를 향했다.
소리 없는 대치.
바리스와 헤스티는 엔피씨 에드샤의 등장에도 전투 준비를 하지 않는 나를 살피며 긴장했다.
나는 나타난 에드샤를 살폈다.
'그때보다 부드러워 보이는데. 아.'
나는 쓰게 웃었다. 차이를 깨달았다.
예전 회귀 때와 다른 것이 당연했다. 동족의 뼈를 모욕당하고 광폭화한 표정과 동족에 친밀한 모습을 보이는 자를 대하는 표정이 같을 수가 없었다.
외형부터 달랐다. 손과 발, 몸의 중심을 암석으로 무장하고 나왔던 옛날과 달리 나신이었다.
2m에 가까운 키는 인간이 아님을 확신시키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은 무력충돌이 아니라 다른 경계심을 일으킬 만했다.
나는 손짓했다.
헤스티가 바리스와 함께 지시에 따라 조금씩 뒤로 물러나다가 끝내 한마디 했다.
"현혹당한 거 아니죠?"
"휴···. 키벨레는 유혹하는 마족이 아니야."
헤스티의 염려는 당연했다. 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일행보다 뛰어나지만 유일한 남자였다.
나의 정신 저항력을 모르니 대화를 해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듯 말하고 한마디 정보를 더했다.
"인간과 교배는 가능하다만은."
내 말에 에리와 닮은 에드샤의 표정이 떨렸다. 내게 안긴 에리를, 에리가 생겨난 방식을 설명해주는 말이니까.
"인간, 그녀를 놔주세요."
"보다시피 억압하고 있지 않다."
내 말에 에리가 내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에리는 동족을 느끼는 감각이 떨어졌다. 눈앞의 에드샤도, 5층의 몬스터 리크도 에리가 키벨레 종족의 혼혈임을 느끼는데 본인인 에리는 느끼지 못했다.
외부를 느끼기 전에 내부가 막힌 탓이었다.
거기에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에 나의 심상이 먼저 맺혔으니 그야말로 에드샤를 타종족 보듯 했다.
에드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분노한 것은 아니다. 일종의 자책감.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니 경계하지 말아요."
에드샤가 서 있던 땅을 중심으로 기운이 퍼져나갔다. 흙을 통해 의지를 투사해 자신의 영역으로 일구어내기 시작했다.
에드샤의 의도를 파악했다.
에리가 자신의 기운을 못 느끼니 자신의 영역으로 에리를 감싸 기운의 밀도를 높이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고위 마법사끼리의 전초전인 영역 싸움과 같은 방식.
공격으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가만히 받아들이는 건 너무 순진한 반응이다.
"여기까지."
나는 에드샤의 영역 접근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말했다.
“거부하는 키벨레에게 억지로 힘을 밀어 넣으면 위험할 텐데?”
에드샤가 머뭇거렸다.
이건 일종의 궤변이다. 일단 에드샤의 힘이 에리에게 적용되기 시작하면 종족적인 동감으로 부드럽게 수용될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에리가 인간과의 혼혈이라는 점이 에드샤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에리의 오른손을 감싸 쥐었다.
빠르게 자랐다고 해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있었다. 에리의 손이 내 손안에 쏙 들어왔다.
나는 에리의 손을 감싸고 손등을 밖으로 내밀었다.
에드샤가 천천히 걸어왔다.
바리스와 헤스티는 몬스터 같지 않은 에드샤의 반응을 수상해 하면서도, 내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고 반응하지 않고 경계만 높였다.
에드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나의, 아니 나보다 에리의 거부 반응을 조심하면서 부드럽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나의 손등에 에드샤의 손가락 끝이 닿았다.
시원한 촉감, 인간과의 촉감과 비슷하면서도 차가운 대리석이 닿는 느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드샤의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내 손 안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손등에 이슬이 맺혀 방울이 되어 흘러내리듯 내 손의 피부를 타고 내가 쥔 에리의 손으로 흘러 들어갔다.
“으음···.”
에리가 의아해하는 숨을 토해냈다.
내가 키벨레 종족의 책을 읽었다고 해도 인간이기에, 에리에게 영향 주는 흐름은 거칠었다. 하지만, 에드샤는 키벨레 종족, 본능적인 수준으로 부드럽고 순응하기 쉬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내 손으로 에리의 손을 감싼 것이 의미가 있다.
에리는 내 손의 체온에, 내게 붙잡혀있다는 장악감에 나와 에드샤의 기운을 완벽하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나로 인해 변질된 흐름으로 느낀다.
에드샤라고 느끼지 못한다.
에드샤가 아닌 내가 또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돕는 것처럼 느낀다. 내게 더 종속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는 에드샤에게도 비슷하게 작용될 것이다.
이제 에드샤에게 나는 동족의 혼혈을 장악하고 있는 외부인이 아니었다. 기운의 흐름을 섞어본 인연자가 될 것이다.
지금 당장의 기운의 세기나 세밀한 운용은 에드샤가 더 높을지 모른다.
하지만, 더 높은 곳에 도달한 적 있는 나의 경험과 감각이 에드샤의 아래에 있으면서도 역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게 했다.
이는 에드샤에게 나를 적으로 여기지 않게 만들 것이다.
멀리서부터 소음이 들렸다.
그리고 적이 있을 때, 나를 보호할 대상으로 착각하게 만들 것이다.
소음이 점점 커졌다.
나와 에드샤는 물론 바리스와 헤스티도 알아차릴 만큼 소음이 가까워졌다.
에드샤가 소음의 방향을 향해 적개심을 내비쳤다.
에리를 안고 있는나를보호하는 모양새로.
에드샤는 에리와 나를 보호해야만 하는 자와 아닌 자로 구분하지않았다.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 * *
* * *
* * *
미궁 특유의은은한 조명 아래, 희고 깨끗한 살결을 검고 긴 머리카락이 하늘거리며감싸 흘렀다.
어버스나이트 교단의 어버스나이트 안드레드 수희는 은신한 상태에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수희는 그녀가 추적해온 남자 준영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다.
분명 무력은 그녀보다 떨어졌다. 그런데도 네임드 엔피씨 에드샤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접점을 만들어냈다.
그것도 카이바린 마법사의 지팡이를 이용하지 않고 방치해 놓은 채.
수희는 그녀를 이 자리까지 안내한 암호를 생각했다. 입구에서부터 간헐적으로 남아있던 어버스나이트의 암호는 외부인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카이바린의 추적자도 그 흔적을 보았지만, 암호라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다만, 틀리진 않았지만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그렇기에 의심스러웠다. 분명, 교단의 교육자에게 직접 암호를 배운 것이 아니었다.
전선에 투입된 어버스나이트에게 속성으로 배운 것이 아닐까 의심되었다.
'누구지 저자와 관련된 어버스나이트는?'
수희는 입술을 핥았다. 진실에 대한 호기심도 호기심이지만 권력의 향기를 맡았다.
알아낸 사실은 힘이 될 것이다. 알아낸 사실은 저자와 연관된 어버스나이트를 압박할 수단이 될 수도, 도움을 주고 반대급부를 받을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수희는 암호법을 가르쳐준 자가 예전 회차의 자신임을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