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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6화 (16/139)



〈 1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6화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간, 어버스나이트 교단의 기도실.

어버스나이트 교단은 혼돈을 따르기에 통일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사도 아래 사제들은 각자의 경향을 품었고 이를 드러내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기도실에서도 드러났다.
교단에서는 모두가 동의할  있는 모습의 대기도실을 만들지 않았다. 각 사제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알아서 꾸미도록 했다. 그것이 혼돈이라는 교리에도 맞았다.
혼돈을 추구하는 어버스나이트에게 통일성 요구는 모순이었다.
사제에 따라서 기도실의 모습이 다 달랐다. 적의 시체를 방부 처리해 장식하는 자부터, 침대를 가져다 두고 침실로 쓰는 자까지 있었다.

수희는 처음에 주어졌던 기도실 그대로 사용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 암흑 속으로 기도하는 자가 들어서며, 빛이 안쪽으로 비치니 변화가 시작된다. 이는  혼돈이다.

몇몇 사제는 처음에 주어졌던 기도실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수희는 이에 동감해 바꾸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비추지 않는 어둠이 좋았다.
수희는 습관처럼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수희의 손끝을 따라서 검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하늘거렸다. 긴 머리카락의 끝이 수희의 무릎을 간지럽혔다.

수희는 자신의 몸을 훑었다.

'사제이자 기사인 안드레나 수희라고 소개해도. 내 겉모습만 보고 믿지 못하겠지.'

기사 같지 않았다. 또, 누가 순수를 간직한 처녀라고 믿을까. 오히려, 고급 창녀라고 하면 납득할 차림새였다.

젖가슴 전체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윗부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창녀의 속옷을 연상시키는 상의 갑옷.
팬티, 그 이상이라고   없는 하의 갑옷. 거기에 손과 발은 제대로  건틀렛과 신발로 가려 이질감을 일으켰다.

무엇보다도 무릎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
싸우는 사람이라면 머리를 기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수희를 처음 본 이들은 수희를 기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버스나이트를 아는 사람은 수희의 차림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차림새가 어버스나이트의 신성을 받은 증거였다.

[방어구의 법칙]

어버스나이트의 여기사가 종종 받곤 하는 특성이었다.
법칙이라고 말하지만, 혼돈스러웠다. 맨피부를 드러낼수록 높은 방어력이 부여되었다.
성능은 신성으로 내려지는 특성답게 탁월했다.
얕게 입을수록, 작은 면적의 갑옷을 입을수록 방어력뿐만 아니라, 몸을 숨기는 은신력까지 올려주었다.

수희는 어버스나이트 교단으로 찾아왔던 아이들을 기억했다. 그 아이들의 등에 새겨진 글귀를 기억했다.

'혼돈이기에 순수를 갈구한다.'

그 신성한 어구는 수희의 특성에도 적용할 수 있었다.
맨살을 드러낼수록 방어력이 올라가는 것은 혼돈이지만, 은신력이 올라가는 것은 순수를 지키길 바라는 신성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신성한 어구를 적어 보낸 자는 어버스나이트에 대해 얼마나 아는 자일까?'

수희는 만남을 기대했다. 단순히 어딘가의 유적에서 글귀를 얻은 것이라면 수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신성의 개입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압하고 정보를 캐낼 것이다.

'혹, 대사제보다  어버스나이트 신성에 가까운 자라면···.'

수희는 다른 사제보다 권력이 약했다.
교단 내의 권력은 외부와의 투쟁 속에서 자리 잡는 법인데, 수희의 특성은 대규모 단체전보다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데 적합했다.
가진 특성도 유일하지 않아서 권위가 떨어졌다.

그리고, 권력의 차이는 얻을  있는 지식의 차이가 되었다.
지식의 차이는 다시 권력의 차이가 되었다.

'나를 신성에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인도해줄  있겠지. 어쩌면, 약점을 극복할 단서를 얻을  있을지도.'

수희는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만남을 기대했다.

* * *
* * *
* *

몬스터 리크.
성인 남성의 1.5배에 달하는 신장에, 어깨너비가 인간의 2배에 가깝다 보니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거기에 질량을 가늠할  없었다. 상대의 무게를 추측하고 속도를 측정하면 파괴력을 예상할 수 있지만, 신체를 덮는 점액은 가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소화액을 뒤집어쓴 듯한 모습은 거대 괴물의 위장에서 소화되다가 토해진 것 같았다. 흘러내리는 점액은 오크를 경험한 전사도 주저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전신의 점액질은 단순히 눈살을 찌푸릴 특성이 아니라 독성을 품었다.

"에리,조금 더 물러서."

나는 지시를 내렸다. 푸쉬 핑거를 이용해 지시하지 않고 말로 외치는 이유는 다른 이 역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헤스티가 먼저 빠지고, 바리스가 자리를 굳건히 해줘야 에리가 물러서는 모양새가 된다.

나를 제외한 일행이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였다.
어쭙잖은 모험가는 휘두르는 팔에 정신이 팔려 점액질에 당하고, 점액질에 겁먹은 모험가는 계속 몰리다가 오크와 비할만한 완력에 당한다.

"준영씨, 이거, 에리에게 어그로 끌리는 것 맞죠?"

하지만, 바리스는 평범한 모험가가 아니었다.
팔 휘두르기와 흩날리는 점액질. 두 가지의 복합적인 공격 흐름을 파악하는 정도를 넘어, 몬스터의 성향을 알아내고 물어왔다.

"그래."

바리스와 에리가 같은 거리에 있으면 더 위험한 바리스에게 시선이 돌아갈 만하건만, 리크는 에리를 공격해왔다.
몬스터 리크와 키벨레 종족은 상극. 키벨레 종족 특성을 품은 에리에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유를 확신할  없는 현상을 근거로 대응을 바꿀 수 없다. 이유가 바뀌는 순간 틀린 대응이 되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내가 답한 순간 이용할 수 있는 사실이 되었다.
바리스가 예리하게 거리를 조율해냈다. 에리를 기준으로 조금 앞선 라인을 축으로 삼고 상대하기 시작했다.
성향상 에리가 계속 거슬리는데, 실질 위협은 바리스가 커서 감정이 향하는 대로 공격할 수 없는, 몬스터가 짜증 낼 만한 상황.

"좋아."

나는 바리스를 칭찬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섰다.

"잘 봐둬."

파편을 터트리는 몬스터를 공략하는 법은 여러 가지였다.
아예 파편에 당하지 않는 방어력을 갖추거나, 공격에 공기 압력을 담는 것, 예를 들어 권풍을 일으키며 내지르는 정권이나 큰 면적을 타격하는 해머질.
하지만  다 바리스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바리스는 방패를 쓰지 않고 양손검으로 방어하는 전사였고, 아무리 양손검이 검 중에 두껍다고 해도 면을 타격하지 않고 선으로 베어내는 무기였다.

도적처럼 날붙이를 쓰는 클래스가 파편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격돌하지 않고 비껴베기.
바리스는 무거운 양손검을 쓰는 데다가 힘에서 밀리지 않아, 이때까지 충돌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운 코볼트나 고블린을 상대로 충돌을 유도하는 전법을 써왔다.
하지만, 이곳은 미궁. 양손검보다 무거운 육체를 휘두르고 터무니없는 힘을 부리는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었다. 한가지 태세만 고집하다가는 상성을 만나는 순간 어이없이 무너진다.

나는 검을 다시 잡았다. 가벼운 숏소드지만, 마치 무거운 양손검인 것처럼 잡았다.

"아."

바리스가 탄성을 흘렸다. 나의 평상시와는 다른 자세에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임을 알아차렸다.

"점액은 베어내면 흩날린다. 하지만, 휘두르는 도중은."

나는 리크의 공격에정면으로 부딪힐 듯이 달려들었다.

"검을 앞서지 못해. 뒤따를 뿐이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리크의 옆구리를 베어냈다.

"아."

바리스가 다시 한번 탄성을 흘렸다. 손이 먼저 지나가고, 뒤따르는 검날이 점액과 안쪽 근육을 베어냈다.
속도마저 유지한  베면서 지나갔기에 검날에 충격받은 점액은 내가 지나간 공간에 뿌려졌다.

"저도."

바리스가 결의를 다지며 전진했다.
나는 한발 물러서서 전투를 살폈다.
리크 한두 마리를 상대할 예정이 아니었다. 난전이 예상되는 만큼, 단순 사냥 속도보다 일행의 감각을 올리는 것이 우선이다.

*

사냥을 진행하면서 리크의 핵을 모았다.
20개 정도 모을 때마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핵을 내려놓았다. 이는 이전 회귀 때도 써먹은, 에드샤에게 핵을 주고 보상으로 은 광석을 얻는 방법이다.
은은 무기와 도구 제작에도 사용되고 마법 촉매로도 사용되기에 비쌌다. 하지만, 미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일행에게는 그저 무거운 전리품이었다.

그렇기에 수거하러 다시 올 필요 없었다. 은덩이는 버려도 상관없었다.  유인은 은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에드샤에게서 얻어낼 이익은 은덩이로 환산할 수준이 아니었다.

'단순한 공양이 아니지.'

다만 한 가지를 추가했다. 널찍한 돌을 구해 그 위에 핵을 올렸다. 그 돌에 [관리 대상 인지]을 걸었다.
에드샤든, 어버스나이트든, 카이바린 교단이든지 간에 그 핵을 누군가가 건드린다면 나는즉시 알  있다.
이 정보는 중요했다. 위치 파악은 전체 전황을 조율하는 열쇠가  것이다.

* * *
* *
* * *

인간의 키만큼 긴 강철의 대에, 투구보다 큰 강철구, 그 표면에 박힌 뾰족한 가시.
커다란 모닝스타에는 전에 죽인 몬스터의 살점이 남아있었다.

거친 가죽조끼에 불규칙적으로 박아넣은 금속징이 남자의 괴팍함을 추측하게 했다. 금속징에는 몬스터 리크의 점액이 말라붙어 있는데도 드러난 근육에는 오래된 흉터만 있을  리크의 접전 흔적이 없었다.
남자의 팔뚝과 어깨가 부풀어 올랐다. 육중한 모닝스타가 위로  올랐다.

"으랏차."

원래의 무게에, 강인한 근육이 당기는 힘이 더해져 구덩이를 내리찍었다. 안 그래도 거리를 띄우고 있던 카이바린 전사들이 황급히 물러섰다.

퍼앙-
둥글게 파낸 구덩이가 거력에 그 형태를 잃었다. 구덩이 안, 널찍한  위에 올려져 있던 리크의  역시, 돌과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땅마저 울리는 충격에 몇몇 전사들이 비틀거렸다. 그 전사들의 호위를 받던 일당의 유일한 마법사 페로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날리는 흙먼지에 로브의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렸다.

'제기랄, 먼지.'

가려진 입술로 중얼거렸다.
페로는 같은 교단의 사제였지만, 저 데이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큰 덩치에, 징을 박은 가죽옷을 입고 모닝스타를 휘두른 남자. 데이크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데이크님. 굳이 네임드 몬스터 에드샤를 자극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흥."

말을 끝내기도 전에 콧방귀가 먼저 들려왔다.

"페로. 하아, 너는 5층짜리 네임드를 두려워하나? 넌 간이 작아도 너무 작아. 어떤 몬스터인지 특성도 알려져있잖아. 크게 한 방 먹이면 숨어버린다고."

폐로는 해줄 대답이 있었다. 자신은 데이크 같은 탱딜러가 아니라고, 5층의 몬스터라도 제대로 맞으면 죽는다고.
물론, 에드샤의 치고 빠지는 작전에 당하지는 않겠지만, 신경을 바짝 세워야 하니 고초는 말도 못  게 뻔했다.
자신의 안전을 둘째치고 성공만 바라봐도 하면 안 될 행동이었다. 치고 빠지는 몬스터는 한 번에 잡아야지 요란하게 접근하면 안 되는 법이다.

그래도, 페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로브의 소매를 휘휘 저여 날리는 흙먼지를 밀어냈다.
그 모습에 데이크는 오히려 비웃음을 더했다.

"쯧쯧, 그러니까, 특성도 전투랑 관련 없는 자기 같은 것만 얻었지."
"그 덕분에 데이크님을 도와드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크, 그래. 그럼 신성 추적을 다시 써봐.  지팡이를 훔쳐  놈이 어느 방향으로 숨었는지 찾아봐."

페로는 억지로 굳어지는 얼굴을 펴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자주  수 있는 스킬이 아닙니다. 마력과 집중력뿐만 아니라 신성도 크게 소모되는 스킬입니다."
"역시, 허약해. 허약하고 쓸모없어. 결국, 오차는 내가 직접 바로 잡아야 하는군."

페로는 대꾸하지 않고 그냥 입술을 닫았다. 교단 안에서는 말려줄 사람이라도 있지, 밖에서 데이크가 지랄하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카이바린 교단에서는 코볼트 던전을 담당하던 마법사 자로크의 지팡이를 회수하는 임무를 데이크와 페로에게 맡겼다.
교단 최상위 전력을 내비칠 수 없는 이상, 이론상으로는 다할 나위 없는 조합이었다.
데이크는 탁월한 근접전 능력을 갖췄고, 페로는 몇 가지 마법과 성물 추적과 탐색을   있었다.

'멍청한 자로크.'

페로는 마법사 자로크를 욕했다.
카이바린 교단 내의 마법사와 전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같은 마법사인 자로크의 실수를 책임지고 수습하겠다고 주장했지만, 전사들에게 막혔다.
마법사 위주로 갔다가는 또 당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교단의 최고위급이자, 결정권자인 사도는 전사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결국, 데이크를 메인으로, 페로를 보조로 하는 파티가 만들어졌다.
페로에게는 좋지 않은 그림이었다. 제대로 마무리된다고 해도 마법사의 과오를 전사가 해결했다는 그림이 나왔다.
최악은 전투는 이기고 지팡이를 못 찾는 경우였다. 데이크가 페로가 미숙해서 실패했다고 주장하면 변명이 먹힐 가능성이 컸다.

교단의 마법사들은 페로의 어려움을 알아도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페로가 교단의 마법사 권력 중추에 속했다면, 데이크의 보조로 뽑히지 않았을 것이다.

옹호는커녕 견제가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이번 일이 실패하고 다시 마법사 위주의 파티를 만들어진다면, 페로가 질책받지 않고 다시 결성되는 파티에 들어가기만 하면, 페로는 경험자가 되어 조언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내게 이익이 될까?'

데이크의 대책 없는 움직임에 짜증이 나는 페로도 패배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식과 냉정이 있는 만큼 데이크가 가진 무력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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