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바리스가 돌아왔다. 표정만 봐도 우리에게 약탈당한 모험가들이 무사히 빠져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카이바린 교단을 공격한다구요?"
기지개를 켜 기분을 전환한 바리스가 물어왔다.
"초보자에게구할 수 있는 물품에는 한계가 있다. 계속 신출내기만 약탈할 순 없지.
너희 둘도 장비랑 스킬 수준을 올릴 때가 되었고."
"한 단계 위로 올라갈 때인가요···."
"힘든 전투가 되겠군요. 그래요. 차라리 강한 자를 상대하는 게···."
헤스티는 성장을 말하고 바리스는 어려움을 말했다.
어려움을 말했지만, 바리스의 눈빛은 오히려 살아났다. 구할 수 있는 장비는 둘째치고, 약자를 괴롭히는 것보다 강자를 상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이것을 봐라."
나는 배낭에 챙겨두었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단순한 문양이 그려진 목걸이로, 험한 전투에 떨어지지 않도록 두꺼운 줄이 달려 있었다.
"카이바린 교단의 목걸이잖아요. 그거···. 역으로 위치 추적해올 위험은 없어요?"
"어디서 엄한 사제가 과장하는 걸 들은 것 같은데."
헤스티가 내 말에 입을 삐쭉거렸다.
"그들이 추적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하지만, 할만한가는 다른 문제지.
그걸 말해준 이가 추적을 위해서 뭐가 얼마큼 드는지도 말해주던가?"
나는 고개를 흔드는 헤스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적을 발하려면, 힘과 의지와 매개체가 있어야 하지.
카이바린의 목걸이, 이건 매개체이긴 해. 하지만, 힘을 전달하고 의지를 부릴 인간이 없는 상태에서 이력을 부릴 수 있을 정도로 성력이 투자된 물건이 아니야."
바리스와 헤스티가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설명을 이었다.
"역으로 추적하는 권능은 고위급 권능이야. 미리 도난 방지를 해둔 고급품을 추적하는 데도 상당한 신성력이 들어가지.
준비된 물건이 그 정도인데, 이것처럼 대량으로 뿌리는 물건에는 수색하는 권능에 반응하는 루틴 자체가 아예 없어.
거기다가 외부의 힘을 차단하는 성질이 있는 미궁에서는 뭐, 말 다 했지.
신성 종류에 따라 쉽게 구현하는 교단도 있지만, 카이바린 교단은 아니야."
헤스티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럼, 뭘 하려고."
"미궁에서 매개물을 꼭 챙겨야 하는 경우가 있지."
"···."
"계단."
"설마···. 준영씨, 길잡이였어요?"
"확률이 높은 자를 길잡이라고 부르긴 하지. 하지만, 집중력이 높다면 스킬이없는 상태에서도 가능해."
미궁은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만, 이 계단은 항상 같은 곳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갔다가 다른 계단을 찾아 올라갈 때, 층수는 같지만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흔했다.
다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클래스가 있고 스킬이 있었다. 길잡이라고 불리고, 길잡이 스킬이라고 불렀다.
전사나 마법사, 힐러 같은 메인 클래스가 아닌, 함께 선택할 수 있는 서브 클래스라 전직을 하지 않더라도 가질 수 있었다.
나 역시 익힐 수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회차에서 익혔다.
다만, 기본만 익힐지, 상위 단계까지 익힐지는 합류하는 동료에 따라 결정했다.
기본 길잡이 스킬은 위아래로 한 층씩 이동하는 정도지만, 상위 단계로 가면 3, 4층씩, 건너뛸 수 있었다.
이는 미궁의 거리에 따른 부담감을 확연하게 줄여주었다.
특히, 하층으로 갈수록 장시간 체류에 따른 육체적, 심리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상위 스킬을 가진 길잡이가 꼭 필요했다.
길잡이 스킬을 익히는 선행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이미 가본 적 있는 곳의 물건을 가지고 집중해서 이동해 성공할 것, 두 번째는 가본 적 없는 곳의 물건을 가지고 성공할 것.
첫 번째 조건은 이미 달성했다. 약탈을 위해 층을 오가면서 시도했고 성공했다.
두 번째만 남았다.
'두 번째를 시도하기에, 카이바린의 목걸이가 적당하지.'
특징이 명확하기에 집중하기 쉬웠다. 거기다가전회차에 가본 곳이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바리스와 헤스티, 둘을 쳐다보았다.
"지하 2층에서 3층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이 목걸이에 집중할 거야.
계단으로 이동할 때, 이동하려는 층과 연관된 물건을 들고 가면, 해당 층으로 갈 확률이 올라가.
이는 이 목걸이도 마찬가지. 카이바린의 목걸이인 만큼, 그들이 장악한 구역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
"코볼트 던전인가요···."
"그래, 너도 그 애송이가 말하는 것을 들었지."
바리스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이 목걸이를 빼앗긴 카이바린의 애송이는 코볼트가 나오는 구역, 코볼트 던전으로 향하는 중이었어."
불확실성이 장악하는 미궁에도 고정된 패턴을 보이는 구역이있었다.
변수가 확연하게 적기 때문에 생존율이 높은 곳, 사람들은 그런 구역을 따로 구분해 던전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일반 파티는 그런 곳에서 사냥할 수 없었다. 힘이 있는 단체에서 자신들의 사냥터로 지정하고 장악해 출입을 통제했다.
3층의 코볼트 던전이 그러했다. 카이바린 교단에서 자신들의 사냥터로 선언했다.
"이제부터."
나는 바리스의 눈을 똑바로 봤다.
"숨을 끊는 마무리는 내가 하지. 둘은 적당히 움직여도 좋아."
나는 등을 돌렸다. 뒤를 걱정하지 않았다.
자살할 생각이 없다면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자살할 생각이 들지 않도록만 하면 된다. 조금만 더 둘의 멘탈을 관리하면 된다.
'코볼트 던전에서 벌어질 일은 둘의 멘탈에 도움이 된다. 좋은 변명거리가 될 테니까.'
나는 코볼트 던전에서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
* * * * * * * * *
* * * * * * * * *
3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리스와 헤스티 둘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검과 지팡이를 움켜잡았다.
둘은 2층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3층에서 안정적으로 사냥할 수준은 아니었다.
고정된 패턴인 코볼트 층이면 무난하게 사냥하겠지만, 상성이 좋지 않은 몬스터가 주력인 층이 나오면 위험했다.
다만, 그것은 내가 없을 때의 이야기였다.
"3층에 도착해서 사람을 만나면 내가 대응한다. 아니면 일반 탐험 방식으로 진행하고. 알겠지?"
"넵."
"네. 알겠어요."
둘은 내가 길잡이 스킬에 실패해서 일반적인 탐험이 되길 바랄 것이다.
손에 인간의 피를 묻히는 것을 싫어하니까.
하지만, 나의 집중력과 미궁 이해력이면 실패할 가능성이 더 작다.
길잡이 스킬과 연관된 스킬로 [미궁 이해]가 있었다.
[미궁 이해]가 있으면 길잡이 스킬의 성공률이 올라가고, 길잡이 스킬의 성공이 쌓이면, [미궁 이해]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된다.
현재 나의 [미궁 이해] 레벨은 1단계.
길잡이 스킬의 선행 조건-이미 가본 곳으로 이동 성공-을 만족시킬 때 활성화되었고, 경험치를 투자해 익혔다.
[미궁 이해] 1레벨이지만, 발휘되는 효과는 그 이상이었다.
같은 [찌르기] 스킬이라도 경험 많은 전사가 더 큰 위력을 내듯, [미궁 이해]도 마찬가지였다.
미궁 안에서 온갖 것을 경험한 나이기에,나의 [미궁 이해] 스킬은 실제 이해와 맞물려 더 높은 효과를 냈다.
* * * * * * * * *
비릿한 냄새. 지린내와 썩은 냄새가 섞인 냄새.
3층에 도착했다. 코볼트에게서 나는 특이한 냄새에 [길잡이 스킬]이 성공했음을 알아차렸다.
분위기가 바닥과 벽을 벽돌로 이룬 1, 2층과 달랐다. 바닥에도 벽에도 흙으로 이루어진 층이 있어 인공적인 느낌이 적었다. 예전에 어떤 폭발이나 뒤틀림이 있었는지, 깊게 파인 흔적 뒤에 보이는 벽돌을 보고 미궁임을 느낄 정도였다.
바리스와 헤스티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미리 각자에게 정해둔 경계 방향을 살폈다.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이 내가 전에 말했던 '환경이 다르면 나오는 몬스터도 다르다.'는 말을 기억하는 듯했다.
새로운 몬스터는항상 두려울 수밖에 없다. 모험가의 사망률은 몬스터를 처음으로 접해 패턴을 모를 때와, 자주 접하다 보니 무의식중에 방심할 때 가장 높다.
나는 코를 킁킁거렸다. 코볼트는 냄새가 강력한 편이었다.
특별한 스킬이 없어도 방금 코볼트가 있었는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었다.
기억대로 미궁 속의 코볼트 던전은 관리되고 있다는 뜻이다.
카이바린 교단의 인간들은 보이지 않았다.
미궁 계단이 고정되어 있다면 사냥터를 장악한 그들이 도착하는 곳에서 지키고 있겠지만, 도착 층의 랜덤한 위치에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에 미리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순찰 파티를 두었다.
돌아다니면서 리젠 되는 코볼트를 처리하거나 우연히 흘러들어온 탐험가를 다른 층으로 내보냈다.
재수가 없었으면, 순찰 파티에게 내려오는 것을 목격당하고 전투가 일어났을 텐데 이를 피했다.
고요 속에서 바리스, 헤스티와 나는 적이 없음을 알리는 수신호를 나누었다.
"다행히 순찰하는 이들에게 걸리지 않았군요."
"흠."
나는 난전이 일어나지 않아 안도하는 헤스티의 말에 한가지 추측을 떠올렸다.
'아니, 운이좋아서 걸리지 않은 것이 아니야. 순찰하는 인원까지 빼냈을 가능성이 존재해.'
카이바린 교단이 하려는 일은 많은 인원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인원 모두를 통제해야만 하는일이었다.
마지막 순간 모든 인원을 모아야 한다면 순찰조를 여럿 돌릴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이점, 바닥에 여러 인간이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나는 몸을 숙여 흔적을 제대로 살폈다. 바리스와 헤스티도 주변을 경계하면서 나를 따라 바닥을 살폈다.
단순한 벽돌 바닥이 아니라 벽돌 바닥 위에 흙이 덮인 층이기에 바리스와 헤스티도 쉽게 흔적을 찾았다.
"많은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군요."
"그래, 상태를 보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어."
"그런데, 이 흔적은···. 맨발 자국에 뭔가 끌린 자국? 그런데 발자국이 작아요."
헤스티가 모를만하기도 했다. 미궁에 어린 노예를 데리고 오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
"족쇄에 달린 사슬이 만든 자국이다. 노예나 수감자의 발목에 채우는."
이게 어떤 상황일지 고민하는 둘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맞췄군.'
타이밍이 틀렸으면, 숨어있거나 해야 해서 귀찮아졌을텐데, 바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움직였다. 흔적의 방향을 보면 카이바린 교단이 몰려 있는 위치를 추측할 수 있었다.
발걸음을 가볍게 해 소음을 줄였다.
바리스도 나를 따라 조용히 움직였다. 헤스티는 은신에 자신이 없는지, 아예 거리를 조금 띄웠다.
*
30분 정도 이동했을 때, 묵직한 소음이 들렸다.
나는 바닥에 귀를 댔다.
장비를 장착한 인간의 발소리, 숫자는 셋.
한참 동안 귀 기울여 규칙성을 파악했다.
짧은 거리를 왕복하고 있다.
층 전체를 탐험할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접근을 막기 위해 경비하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헤스티, 상대가 지원을 불러서 다 몰려오면 위험하니까, 도망치는 걸 견제해줘. 바리스는 헤스티를 보호하고."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습할 의도가 없는 것처럼 들리도록, 걸음걸이를 바꿨다. 은밀한 탐색이 아니라, 몬스터를 사냥하러 가는 일반적인 발걸음으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