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7화
모험가를 약탈하기 시작한 지도 3주일이 지났다. 1층과 2층을 오가면서 바리스와 헤스티는 많은 성장을, 특히 안정성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약탈하러 가는 순간만큼은 무심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 * *
"모두 움직이지 마세요."
헤스티가 지팡이를 들어 올려 모험가들을 겨누었다. 헤스티의 지팡이위에서 불덩이가 타오르며 허공에 머물렀다.
생기를 잃어버린 눈빛, 하지만, 목소리는 차가우면서도 선명했다.
헤스티도 깨달았다. 경험으로 알아버렸다. 나약하게 보여봤자 반항만 심해질 뿐이고, 결국 상대의 상처만 더 커졌다.
내 앞에는 한 전사가 쓰러져있었다. 나와 격돌해 몇 합을 나누기도 전에 쓰러진 전사는 중얼거렸다.
"흐르는 핏자국···."
'흐르는 핏자국'은 나, 바리스, 헤스티를 함께 부르는 말이었다. 미궁 밖에서 다른 모험가와 교류를 나누지 않는데도 파티명이 정해지고 알려졌다.
우리는 지하 2층에서 모험을 하고, 식량과 필수품이 떨어지면 지하 1층으로 내려가 모험가들을 약탈했다.
끝까지 반항하면 죽였지만, 적당히 항복하면 큰 상처만 입히고 풀어줬다.
이 짓을 수십 차례 반복하니, '흐르는 핏자국'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 그럼 저 여자가 포 뜨는 마녀···."
전사는 그를 직접 쓰러트린 나보다 바리스가 더 두렵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옆구리에 난 상처를 막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그래, '포 뜨는 마녀'와 '흐르는 핏자국'이다. 이제 우리 현상금은 얼마지?"
"닥치시지. 강도 새끼에게 말해줄 것 같은가."
"이봐, 우린 알려진 것처럼 피만 볼 뿐 죽이지 않아. 하지만, 그건 고분고분할 때 일이지.
뭐, 굳이 저항하겠다면 말리지 않아."
나는 비릿하게, 오히려 반항을 기대한다는 미소를 지으며 피 묻은 단검의 검면을 슬쩍 비췄다.
"···. 10골드다.“
두려워하면서도 고통 때문에 거칠게 말했던 전사의 태도가 바로 싹싹해졌다.
"현상금이 좀 애매한데, 한 파티의 장비값으로도 빠듯해."
"강도짓은 했지만 죽이지 않았으니까."
전사는 원하는 바를 대답에 담아 나의 눈치를 봤다. 살해당할 수 있음을 깨닫고 죽이지 않는다는 말을 강조해왔다.
"어디서 걸었지?"
"카이바린 교단."
"아, 전에 사냥했던 애송이, 카이바린 교단이라고 떠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나."
내가 한발 물러서자, 전사는 천천히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포기한 표정으로 짐을 뒤지는 바리스를 쳐다보았다.
바리스의 손놀림은 거침없었다. 검으로 다른 전사의 목을 겨눈 채 한 손으로 숨겨두고 있던 약 같은 것을 찾아내 거두었다.
이미 전사 둘, 도적 하나는 쓰러진 채 피를 흘렸다. 근접진이 무너지자, 지팡이를 내려놓고 항복한 여마법사만 남았다.
"그럼, 저년만 처리하고 가지."
내가 단검을 건들거리며 여마법사에게 다가가자, 바리스가 나섰다.
"내가 하겠어."
"흑, 포 뜨는 마녀···."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여마법사에게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일반인들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입속으로 중얼거린 소리였지만, 나도 바리스도 들었다.
여자 마법사에게 다가가는 바리스에게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중얼거렸던 여마법사의 얼굴이 공포로 완전히 질려버렸다.
'흐르는 핏자국'은 우리 일행을 가리키는 별명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바리스는 그녀를 가리키는 별명을 얻었다.
'포 뜨는 마녀.'라 불리었다. 바리스의 선의로 행한 행동이 악명을 낳았다.
여마법사의 혼잣말을 들은 바리스의 얼굴에는 어떤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그 속은 서글픔으로 가득 찼으리라.
일행은 나의 주장대로 약탈하고 탐험가들을 상처입혀 보냈다.
약탈 초반에, 바리스는 제압한 미궁 탐험가들에게 깊게 상처입히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손을 더했다.
바리스가 머뭇거리며 만든 얕은 상처에 치명적인 상처를 더했다. 여유가 없게끔, 딴생각을 할 수 없게 더 깊게 쑤셔 넣었다.
운이 나쁘면 미궁 밖으로 나가기 전에 죽을 것처럼 보이도록.
그러자, 바리스는 깨달았다. 자신이 약하게 손을 쓰면 모험가들이 더 위험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리스는 내 생각대로 움직였다.
나처럼 깊게 상처를 내지 않는 대신, 자신의 평가를 희생했다.
뼈와 근육 안쪽을 건드리지 않고, 피부와 근육 바깥면을 긁듯 베어냈다.
피가 더 매섭게 뿜어져 나왔고 바리스에게 당하는 자들은 더 크게 울부짖었다. 더 잔인한 상처를 남겼다.
거기에다가 바리스는 도망가는 모험가들을 선의로 조심스럽게 따라가곤 했다. 도망치는 자들이 몬스터와 마주칠까 봐 염려해서였다.
하지만, 그 역시 나쁘게 비춰졌다. 작은 곤충을 상처입히고 즐기는 나쁜 아이처럼, 바리스는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즐긴다고 소문이 났다.
이미 막힌 벽을 등졌으면서도 여마법사는 주저앉아 발로 바닥을 밀었다.
"마녀, 제발, 제발, 싫어, 제발 살려줘."
"죽이지 않아."
벌벌 떨며 애원하는 여마법사의 말에 바리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사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감았다.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닫혔다.
잠시만 참으면 된다고, 괜히 자극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공황에 빠진 상태에서는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 법이다.
"아. 아. 아악-"
바리스의 보조용 단검이 천천히 움직였다. 한 손으로 여마법사의 팔을 잡고 피부를 벗겨내듯 얇게 칼질하기 시작했다.
비명만 지르는 저 여자는 바리스가 혹시나 상처가 덧날까 싶어서 단검을 불로 소독하는 것을 모를 것이다.
혹시나 장애로 남을까 봐 다른 단검으로 몬스터의 시체를 가지고 연습하는 것도 모를것이다.
상처를 내는 순간에는 피가 더 많이 나오지만 쉽게 지혈될 상처였다.
"크흑, 흑, 흑, 이 악마."
헤스티가 마법을 취소하고 두 눈을 감았다.
쓰러질 것처럼 지팡이를 바닥에 디뎠다. 미궁 통로로 여자의 비명이 길게 이어졌다.
* * * * * * * * *
"와, 이거."
빼앗은 약탈품을 정리하던 헤스티가 탄성을 터트렸다.
"아까 그 여자 마법사, 잘 사는 집 얘인가 봐요. 소지품도 고급이지만, 스킬 스크롤이라니."
바리스가 침울해 보였지만, 아니, 침울해 보였기에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것인지 헤스티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사기에는 애매한 스킬인데. 뭐, 미궁 밖에서의 이야기지만요."
"[사이킥 쇼크]인가."
"네, 마력 소모도 적고 조준이 쉬워서 가볍게 쓸 수 있지만, 데미지가 약해요."
"그래서, 가성비가 떨어지지. 차라리 아껴서 데미지가 높은 스펠을 사는 게 나을 정도로."
헤스티가 눈을 가늘게 떴다.
"마법에 대해서도 아시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회차 때, 마법사로 진행한 적도 꽤 있었다.
특히, 헤스티가 초반에 죽어버리면 거의 마법사로 전직했었다.
일반적으로 마법사가 전사보다 귀했다. 재능을 빼놓고 들어가는 돈부터 달랐다.
전사 계열은, 특수한 스킬을 제외한 기본 스킬은 자동으로 익혀지는 경우가많았다. 방패 막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막기 스킬이 생기는 식이었다.
하지만, 마법사는 대부분의 스킬을 스킬 스크롤 등을 구해서 익혀야 했다.
'헤스티도 골드에 크게 얽매이지 않았어.'
사치를 부리거나 '사이킥 쇼크'를 익히는 등의 여유를 부리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스킬을 돈이 없어 못 익힌 적은 없었다.
'그때는 바리스에게 빌린다고 대충 생각했지만.'
나는 쓴 물이 올라오는 느낌을 애써 지웠다.
헤스티와 연애할 때, 나는 헤스티에 대해, 가족에 대해 깊게 묻지 않았다. 나 이외의 일을 말해봤자, 떠날 시간을 앞당길 뿐임을 그때 이미 예감했던 것이다.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낸 바리스가 다가왔다.
몬스터를 상대하고 난 후의 바리스는 개인 정비보다 함께 마정석을 캐는 등의, 전체의 일을 우선했다.
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고 난 뒤는 달랐다. 전리품보다 자신의 검을 닦는 데 열중하곤 했다.
나도 헤스티도 그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것 같아 방해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현상금이 걸렸군요."
바리스가 처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카이바린 교단에서 걸었다는군."
"으, 거기 유명한 곳이잖아요. 사냥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
내 말에 헤스티가 말을 더하며 눈치를 살폈다.
헤스티는 짐꾼 역할도 겸한 이후로 도도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낮게 추락하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인지, 바리스에게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전보다 다른 이의 얼굴을 자주 살폈다.
"그래, 강열하는 신성, 카이바리를 믿는 교단이지. 버프를 주는 곳으로 유명해."
카이바린 교단은 강한 전투를 표방하는 신성, '카이바리'를 믿었다.
신성 카이바리는 초중반의 모험가에게 인기가 많았다.
전투력이 향상되는 버프를 얻을 수 있었다. 조건은 성소에서 세례를 받고 의식을 치르는 것뿐이었다.
그곳에서 나누어주는 목걸이를 장착한 채, 전투에 나서서 신성한 행위를 하면 힘이 향상되고 피로가 사라졌다.
조금의 차이로 목숨을 잃곤 하는 초중반 근접전사들에게는 달콤한 버프였다.
'문제는 그 신성한 행위이지.'
"연속 사냥을 하면 힘이 오르고 피로가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나는 헤스티의 말에 냉소를 지었다.
그들은 그들이 대가로 받아가는 신성한 행위는 '연속 사냥.'이라고 말하곤 했다.
어렵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 말 그대로라면 말이다.
미궁 안에서는 보통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나오기에 일단 전투에 들어가면 '연속 사냥'이 되었다.
전투에서 두 마리를 죽이는 순간 신성한 행위가 성립되기에 버프를 받고 나머지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나쁜 소식인 것만은 아니야. 카이바린 교단에서 현상금을 건 이상 다른 곳에서 현상금을 걸 가능성이 적어."
어차피, 악연을 쌓을 거라면 카이바린 교단과 척지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이는 얻어걸린 것이 아니었다.
의도한 바였다.
"네, 다른 단체에서는 카이바린 교단을 안 좋게 보더군요. 같이 행동하지 않을 것 같아요.
인기가 많다고 질투하는 걸까요?"
나는 헤스티의 말에 비웃음을 보였다.
카이바리 신성을 따르는 '카이바린' 교단에서 현상금을 건 이상, '은밀한 사냥꾼'이나 '헤매는 밤', '무거운 저울추', '설원의 대장간'에서는 현상금을 걸지 않을 것이다.
카이바리 신성은 다른 신성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사람들은 교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인기가 있기때문에 싫어한다고 말하곤 했다.
'카이바린 교단이 먼저 현상금을 건 이유는 우리의 행위가 카이바리의 '신성한 행위'에 위반되기 때문이지.
다른 신성들 역시 카이바리의 신성한 행위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이고.'
'카이바리 신성'의 교리는 '연속 사냥'으로 알려졌지만, 진실은 달랐다.
'연속 사냥'이 아니라, '연속 사망'이었다.
즉, 사냥에 성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례받은 신도가 죽어도 '신성한 행위'는 이어졌다.
그래서, 후반에는 절실한 신도를 보기 드물었다.
이끌었던 무리마저 전멸시켜 신성을 얻곤 하기 때문이다.
카이바린 교단은 우리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상처만 입히고 죽이지 않았으니까.'
카이바린의 애송이와 마주쳤을 때, 그들 모두를죽였다면, 이렇게 빨리 현상금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애송이의 죽음도 '신성한 행위'인 연속 사망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이지도 않고 상처만 입혔으니 대가는 대가대로 얻지 못하고, 회복할 때까지 성력만 묶여버렸다.
거기다가 카이바린 교단이 포섭하는 주된 대상이 초반 전사이다 보니 우리가 약탈하는 대상과 겹쳤다.
제대로 방해하는 셈이었다.
"이제 조금 사릴 거지요? 아무래도 교단이니까요···."
헤스티가 기대를 담아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래도 아예 그만두자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역으로 친다."
"네? 그게 무슨···."
나누던 대화를 단절하는 양 바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바깥쪽으로 돌렸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대화였지만, 바리스의 신경 일부는 우리에게 약탈당하고 도망치는 모험가를 향했다.
"지금쯤은 못 알아차릴 정도로 멀어졌을 거야. 가봐."
바리스가 처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가 일정 거리를 띄울 시간- 추적해도 들키지 않을 시간 동안 멍하게 있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바리스의 마음은 마모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단련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있었다.
혹 도망치는 이에게 들켜서 악명이 더해진다고 해도, 고통스러운 오해에 명예가 사라진다고 해도, 도망치는 이의 목숨을 생각하는 바리스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가졌다.
조용한 바리스의 발걸음.
그녀를 지켜보던 헤스티도 어깨를 늘어트렸다. 분위기를 좋게하기 위해 과장하던 느낌이 사라졌다.
'헤스티, 바리스 걱정은 줄여도 될 거야.'
카이바린 교단은 둘의 마음을 씻어줄 것이다.
'뭐, 몸은 더 힘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