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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화 (2/139)



〈 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화
바리스, 헤스티와 마주했다.

진중한 바리스.
아직 일 층의 바리스지만, 바리스는 미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훈련을 거듭했다.
여전사들은 근력을 단련할수록 덩치가 커지는 남자와 달리, 단련할수록 커지지 않고 근육 내부가 조밀해졌다. 또한, 골격의 균형이 잡히면서 체형이 아름다워졌다.
원래의 미모에, 용사의 자질과 여전사의 특성이 더해지니 건실한 매력을 품었다.

폭이 넓은 양손검으로 일행을 이끄는 여용사. 짐꾼의 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위험하지.티릭과는 달리.'

그렇다고 해서 끝낼 생각 없었다. 경험치 300, 티릭을 죽여 얻은  경험치면 사태를 풀어나갈 수 있다.

'카운터 스킬을 익힐 수 있지.'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는 경험과 선행 스킬이 필요했다.

카운터 스킬을 익히기 위한 경험은 적이 가하는 공격을 흘리는 것과 대상에게 치명타를 가하는 것.
이 조건은 티릭의 공격을 흘리고, 티릭에게 치명타를 가해 죽였으니 이미 충족되었다.
나머지 필요한 선행 스킬은 '힘 강화' 1레벨과 '민첩 강화' 3레벨.

나는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취득 힘 강화 스킬."
[ 경험치 20 소모, 힘 강화 1레벨 취득.]

"취득 민첩 강화 스킬."
경험치 20 소모, 민첩 강화 1레벨 취득.]
"취득 민첩 강화 스킬."
[ 경험치 30 소모, 민첩 강화 2레벨 취득.]
"취득 민첩 강화 스킬."
[ 경험치 40 소모, 민첩 강화 3레벨 취득.]

스킬창은 부르지도 않았다. 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운터' 스킬이 비활성화된 채 스킬창에 나타났을 것이다.

"카운터 스킬을 배운다."
경험치 100 소모, 카운터 스킬 취득.]

경험치는 귀중했다.
낭비할 없었다. 노력과 시간을 쏟아붓는다고해서 무한정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험이 있어야 했다. 일정 수준의 몬스터를 계속해서 잡으면, 얻는 경험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계속 잡으면 아예 경험치를 주지 않았다.
즉, 얻을  있는 한계가 있었다. 상위 스킬과 전직을 위해서 꼭 익혀야 하는 스킬이 있기에 낭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카운터 스킬이 필요했다.
일단, 저 바리스를 도망 못 치게 해야 했다. 침식의 물결은 용사가 죽을 때뿐만 아니라, 도망쳐서 돌아오지 않아도 미궁을 휩쓸었다.

나는 바리스를 노려보았다.

*

바리스의 단정한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다만 양손검으로 나를 노리지 않고 비스듬히 든 채 입을 열었다. 공격보다 방어를 생각한 자세였다.

"무슨 짓을, 아니 왜?"

황망한 얼굴, 바리스는 내가 티릭을 죽였음에도 바로 달려들지 않고 대화를 시도해왔다.
바리스에게 티릭은 헤스티만큼 깊은 동료가 아니었다. 하긴, 여기까지 오면서 보인 행동만 봐도 꺼림칙하게 여길 만했다.
그렇기에 살인을 바로 응징하기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의심해왔다.
하지만, 내게는 의문에 답할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입을살짝 열었다. 무슨 말을 할 것처럼 입술을 움직였다.

간격을 좁힐 시간을 벌기 위한 속임수.

하지만, 바리스는 건실했다. 속지 않았다.
비스듬히들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려 경계를 올렸다.
바리스가 입술을 깨물며, 단호하게 달려드는 내게 검을 마주쳐 왔다. 바리스는 티릭과 달리 방심하지 않았다.

'상관없어. 틈을 만들면 된다.'

[카운터]
바리스의 공격 자세를 확인하자마자 스킬을 썼다.
카운터, 상대의 공격을 스킬의 도움을 받아 반격하는 스킬.
조건을 맞추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대신, 조건이 까다로웠다. 일대일에서만 가능하고 상대의 공격 궤도와 스킬을 완전하게 인지해야만 했다.
이동 속도또한, 시전 즉시 느려졌다.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면 스킬이 깨져버리기에, 상대할 때는 발로 돌멩이 하나 차서 맞추면 되었다. 스킬이 깨어져도 페널티는 유지되기 때문에 역으로 반격하기도 쉬웠다.

바리스의 검이 단검을 든 나의 왼팔을 노렸다.
예상한 궤도였다.
예상한 궤도이기에 입안이 썼다. 이 상황에서도 바리스는 배려를 담았다.

심장을 향한 검과 팔을 향한 검은 달랐다. 바리스는 검을 상대의 몸에 박아넣는 순간에도 치명상을 입히지 않을 수 있는 검로를 택했다.

‘정말.’

즐겁지 않았다. 생각한 그대로의, 배려가 담긴 공격을 하는 바리스에 입맛만 더러워졌다.
차라리 심장을 노려왔다면 반가웠을 것이다. 심장을 노린다고 해도 검로를 예상해냈겠지만.

카운터 스킬의 도움을 받은 나는 단검으로 원을 그리면서 그대로 쳐내고 역으로 찔러넣었다.

"어엇."

바리스는 카운터 스킬의 도움까지 받은 일격에 헛숨을 들이켰다.
마음이 굳건한 그녀라도 평정을 깨트릴 공격.

"크으-."
"바리스."

바리스의 신음에 헤스티가 바리스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헤스티는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헤스티는 이제 막 마법을 익힌 마법사였다. 아군과 딱 붙은 적을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제법.”

바리스는 티릭과는 달랐다. 내가 제대로 찔러넣었지만, 바리스는 치명상을 피해냈다.
티릭처럼 방심하지 않고, 재능과 노력의 결과를 발휘했다.

바리스는 뒤로 빠지면서 추가 타격을 피하려 했다.
다만, 나는  동작을 수백, 수천 번 봤다. 거기다가 카운터 스킬을 익히기 위해 민첩 강화 스킬을 3레벨이나 올렸다.

움직였다. 나의 움직임은 바리스가 본능적으로 파악하고 있을 나의 속도를 넘었다.
거기다가 카운터에 당해 속도가 떨어진 상태. 바리스가 뒤로 빠지는 것보다 내가 더 빨랐다.
나는 바리스의 등 뒤로 움직여 오른팔로 목을 감았다.

"윽."

 상황에서 바리스는 검을 역수로 잡아 등을 잡은 나를 노렸지만, 양손검은 초근접전에 한계가 있었다. 바리스는 아직 바로 검을 놓고 격투로 전환하는 노련함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든 단검이 바리스의 목에 닿았다.

"움직이지 마라. 구멍 나고 싶지 않으면."

붉은색이 새하얀 피부를 물들였다. 검날의 끝이 파고든 목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나도 바리스도 거죽의 상처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나 바리스,  중 하나가 크게 움직이면 치명적인 상처가 될 것이다.
바리스의 눈썹이 작게 떨렸다.

"준영씨, 왜 이러시나요? 우리가 섭섭하게 했나요?"

내게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바리스는 공방이 멈춘 틈을  말을 걸어왔다.

"섭섭하기만 했겠나?"
"그럴 리가, 우리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혹시, 우리 미궁에 들어오기 전에 만난 적 있나요?"

 말에 바리스가 반문해왔다. 바리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겠지.
하지만, 이해시킬 생각 없다.
어차피 진실을 말해도  알아들을 것이다. 그저 진실은 내 속에 품고 삭히는 수밖에 없다.

"닥치고 검을 떨어트려."

나는 바리스의 목을 조른 팔에 힘을 줬다.
그리고, 마법을 쓸 상황만을 노리는 헤스티를 노려보았다.

"헤스티, 배낭을 들고 와. 밧줄을 꺼내 바닥에 내려놔."

헤스티의 지팡이가 떨렸다.  시점의 헤스티는 난전에 익숙하지 못했다.

"바리스를 죽이고너를 상대해줄까? 너 정도는 기습하지 않아도 죽일 수 있는데? 그걸 원해?"

헤스티는 앙칼졌다. 하지만, 그것은 목숨이 걸리지 않은 일상생활에서의 이야기였다.
동료의 목숨, 그것도 바리스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바리스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파이어 볼트] 마법을 시전하면 바리스는 확실히 죽겠지만, 나 역시 타격을 입을 것이다.
하지만, 헤스티는 둘이 같이 사는 법만을 바라보기에 혼자서 사는 법을 보지 못했다.

"아···."

헤스티의 얼굴에 분노가가득하다가,  끝에 눈물이 고이더니 흘러내렸다.
'바리스 미안해.'라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결국, 자신의 무능함에 눈물짓다가  말대로 움직였다.

*

헤스티가 배낭을 가져오고 밧줄을 꺼냈다.
나는 바리스의 목을찌른 단검을 살짝살짝 움직였다. 고통과 비끗하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유지해 반격을 원천차단했다.

나는 압박당한 바리스를 이끌었다.

"헤스티의 양 손목을 모아서 묶어. 묶으면서 수작 부리지 마라. 그냥 다 죽기 싫으면."

헤스티의 눈이 바리스의 목 상처에 닿았다. 떨리는 눈으로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바리스가 울먹이는 헤스티의 손목을 묶었다.

나는 다시 바리스를 끌어당겼다. 마치 뒤에서 껴안은 연인처럼 귓가에 속삭였다.

"너의 겨드랑이에 단검을 찔러넣을 거야. 왜 그러는지 알지?"

잔뜩 긴장한 어깨로 바리스는 파르르 떨다가 입을 열었다.

"반항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리고, 그렇게 복잡하게 일 처리 하는 이유는?"
"당장은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좋아, 똑똑해."

나는 목에 살짝 찔러넣었던 단검을 뺐다.
마법사인 헤스티는 몰라도 용사인 바리스는 밧줄만으로 움직임을 제한할  없다.

천천히 움직였다. 오른손으로는 바리스의 목을 조른 채, 왼손의 단검으로 바리스의 팔 안쪽을 툭툭 쳤다.
이를 악물더니 고통의 예감에 움츠리던 어깨에 힘을 빼고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나는 바리스의 겨드랑이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윽-."

바리스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리스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그러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일단은 따르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나는 오른쪽 겨드랑이뿐만 아니라 왼쪽 겨드랑이에도 상처를 냈다.
그리고 헤스티를 묶은 밧줄로 바리스도 묶었다. 양 손목은 물론이고, 양쪽 겨드랑이에 밧줄이 파고들도록 묶었다.

밧줄이 겨드랑이로 파고들 때, 바리스가 움찔거렸다.

"흥, 내가 용사의 재생력도 모를  알았나?"

전사라고 부르지 않고 용사라고 불렀다. 바리스는 탐험을 시작할  자신을 전사라고 소개했다.
일부러 한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초반의 용사는 전사와 다르지 않아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용사의 특성은 탈출의 열쇠가  수 있다.

나는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며, 비열하게 웃었다.
겨드랑이 상처는 팔을  붙이고 있으면 지혈이 된다. 거기에 용사의 재생력이면 빠르게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밧줄로 상처를 계속 자극하면 회복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바리스보다 용사에 대해 잘 아는 모습은 이 둘을 머뭇거리게 할 것이다. 과감하게 반격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또한, 헤스티의 저항을 막는 효과도 있다.
바리스의 양 손목과 겨드랑이, 헤스티의  손목을 한 개의 밧줄로 연결했기에 헤스티가 격렬하게 움직이면 바리스의 겨드랑이 상처가 자극되어버린다.

*

바리스의 양손검과 헤스티의 지팡이를 빼앗고, 티릭의 장비와 가방을 뒤졌다.
바리스와 헤스티의 배낭을 뒤져 회복약초와 응급 용품을 꺼냈다.
그런 다음, 단검 날을 세우고, 바리스에게 다가갔다.

둘은 나를 바짝 경계했다.
경계만을 할  수작을 부리지 못했다. 역시, 배신을 처음 당하는 거라 반응이 어설펐다.

"몸 만지려고 하는 거 아니니까, 가만있어."

바리스가 내 말에 얼마나 안심할지 모르겠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이유는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바리스는 던전 탐색 처음부터 끝까지 처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표를 내지 않았다.
훈련이나 치료 등에서 맨살이 맞닿는  대범하게 넘겼다.
하지만, 강제적인 정조의 위험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몰랐다.

나는 무심하게 보이도록 손을 내밀어 바리스의 허리에 가져다 댔다.
허리띠 주머니에 손을 넣어, 회복약초 '민튼'을 꺼냈다. 그때, 기척을 느꼈다.

"쯧."

혀를 찼다. 나의 혀 차는 소리에 헤스티가 움찔거렸다.
약초 '민튼'. 상쾌한 향이 나는 이 약초는 물약처럼 체력을 즉시 회복시키지는 못하지만, 계속 씹으면 체력이 조금씩 회복된다.
내가 이 둘에게 우선해서 수거해야 할 물품이었다.

"내놔."

확실히, 지금의 헤스티는  나온 신출내기 모험가였다. 가방이나 밧줄을 챙길  수작을 부렸으면 들킬 가능성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미리 움직이지 않고 내가 민튼을 수거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시도하니 그대로 들켰다.

"뭘, 뭘요?"

당황해 흔들리는 눈빛이 애틋했다.하지만과감하게 움직였다.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려 헤스티의 뺨을 때렸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헤스티의 얼굴이 돌아갔다.
바리스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왼손의 단검이 여전히 헤스티의 아랫배를 노리는 것을 보고는 움직이지 못했다.

"크···. 읏."

붉어진 뺨, 젖혀진 어깨. 눈물이 가득한 눈망울.
넘어질 정도의 힘이었지만, 헤스티는 뺨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버티고 서서 그저 눈초리를 올린  나를 노려보았다.
화가 나기는커녕 야릇한 매력을 느낄 정도였지만, 다른 감정이 내게 스며들었다.

'정말,  둘은···.'

약하게 때리지 않았다. 각오가 없으면 버틸  없는 힘을 줬다.
그런 나의 타격에 헤스티는 쓰러지지 않았다.
저항심만으로 쓰러지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넘어지면, 함께 묶은 밧줄 때문에 바리스의 상처가 자극되기 때문에 버틴 것이다.
헤스티는 약했다. 바리스의 보호가 있어야 제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내면까지 약하지 않았다.
홀로 서는 시기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무도하게 손을 뻗었다.
헤스티의 가녀린 목선을 지나 옷깃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부드러운 감촉을 무시하고 옷을 풀어헤치며 더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큿."

포근한 체온에 이어 까칠한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헤스티가 가슴 사이에 숨긴 '민튼'을 꺼냈다.

길게 보고 탈출까지 생각해 부린 수작은 아닐 것이다. 그저 바리스의 아픔을 줄여주고자, 내가 약초를 거두는 것을 보고 일을 벌였을 것이다.

"휴."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뚝뚝하게 민튼을 갈무리한 다음, 헤스티의 풀어헤친 옷자락을 쫙 당겨 바로 입히고, 익숙한 동작으로 활동하기 편하도록 옷차림을 정리해주었다.

"아."

헤스티가 얇게 탄성을 흘렸다.
나는 헤스티의 탄성에 깨달았다.

'실수했나. 마저 벗기고 뺨을  때렸어야 했나.'

바리스와 헤스티를 압박하기 위해서는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로 잡아줄 필요가 없었다. 드러난 맨살은 나약하게 만들어 저항을 줄일 테니까.
하지만,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이었다.
반복된 회귀, 많은 전투만큼 다친 적도 많았다. 헤스티가 다쳤을 때 그녀를 치료한 다음, 움직이기 힘든 그녀를 대신해 옷차림을 챙겨주곤 했다.
어색한 침묵. 나는  속에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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