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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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와 길용은 지겹지도 않은지 만날 때마다 하는 레파토리가 이 이야기인데 마치 녹음해서 듣는 것 같이 똑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진경과 상희는 그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이 이야기가 시작 되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말씨도, 토씨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도 둘은 그게 또 재미있는지 항상 반복하고 있어도 둘은 다음에 또 만나도 그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우정이고 친구인 모양이다.

같은 소리를 항상 해도 만나면 즐거운 사이.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늘 만나도 또 새롭게 반가운 사이.

나이가 들면서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사이로 남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진태와 길용은 그런 사이였다.

길용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진태의 얼굴을 째려보았다.

“이 자식! 이제 좀 제정신을 차렸나 보군! 그런데 이 형님을 보고 형님하지 않은 것 보니 아직 제정신이 안 돌아 온 것 같기도 하고.....”

“웃기지 마라. 짜샤! 넌, 내입에서 형님 소리는 영원히 들을 수 없을 거다.”

“야! 내가 너보다 생일이 무려 네 달이나 빠른 것 몰라? 네 달이면 해병 기수가 몇 기수나 차이가.....”

그때 길용의 전화기가 울렸다.

그러자 길용이 얼굴이 굳어졌다.

“여보쇼! 응, 그래? 에이! 그 새끼 좀 더 기다렸다 움직이지.....하여간 알았다. 바로 갈 테니 김형사는 놓치지 않게 바로 따라붙고 오형사랑 꼭 같이 움직여!”

길용은 일어나며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내려놓더니 얼른 움직였다.

“야, 아무래도 저녁은 못 먹겠다. 무려 여섯 달을 작업한 놈이 이제야 엉덩이 떼는 모양이다. 형님 먹은 커피 값 좀 내라.”

“오냐, 형님이 동생 먹은 커피 값도 못 내겠냐? 어여 가 봐라. 몸조심하고. 알겠냐, 동생?”

“이 새끼가 아주 심하게 돌아온 것 같네!”

커피 광인 길용이 제 입에 맞는 모양인지 마저 마시더니 진태를 끝까지 동생으로 불렀지만 진태가 커피 값가지고 길용을 동생에게 베푸는 형님 같은 포스로 말했다.

그걸 길용은 투덜거리며 할 수 없다는 듯 일어나 가 버렸다.

둘은 요즘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이런 유치한 말장난을 자주 했다.

진태는 길용이 가버리자 잠시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진태는 집에 퇴근해 있다가 길용의 전화를 받고 나왔기 때문에 갑자기 빈 시간을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을 했다.

자연을 아지트로 불러 다시 불장난을 할까 싶기도 했다.

자연을 생각하면 항상 발기가 된다.

진태는 나이 먹어도 이런 열정이 남아 있는 것이 쓴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런 것도 좋다. 아마 진태는 자연에게 아주 심하게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계산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런데 진태 옆을 지나는 중년 여자가 진태가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놀라 약간 옆으로 비켜 지나간다는 것이 장식을 위해 화분이 놓인 작은 협탁에 다리를 부딪쳤다.

“악! 아, 아파!”

“어?! 괜찮으세요?”

“사람 지나가는데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해요? 아 ,아파!”

중년여자는 주름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밑으로 드러난 스타킹을 신은 종아리가 아주 날씬해서 눈에 확 들어왔다.

“어디 봅시다.”

“어딜 만져요, 아우~! 넘 아파!”

“뭘 만졌다고 그래요? 만지지도 않았구만. 엄살은.....”

“뭐라고요? 엄살요? 이거 보세요, 다리가 벌써 부어오르잖아요?”

“이거 엄살은 아닌 것 같으니 일단 병원에 가 봅시다.”

여자는 진태와 동년배나 아래위로 한두 살 정도 차이가 날 정도로 보였다.

진태는 여자를 부축해서 움직였는데 처음에는 여자가 질색을 했지만 나중에는 정말 아파서 발 걸음을 못 뗄 정도가 되자 진태에게 기댔다.

진태가 나가며 여자와 길용과 진태가 먹은 커피 값을 대충 만 원짜리 두 장을 던지듯이 주고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 어딜 만져요? 이제 보니 응큼한 남자네!”

“아! 만지기는 뭘 만졌다고 그래요? 그럼, 부축하려면 어디를 잡으라는 겁니까? 그러면 혼자 걸어가시든가.”

“걸음을 못 걸으니 부축만 하세요, 괜히 여자 몸 만지지 말고요.”

“나, 원 참! 부축하려니 잡아야 부축을 하지요. 그러면 그쪽에서 날 잡던가요.”

“그러면 제가 잡을게요. 그런데 어디를 가요?”

“지금 시간이 늦어서 작은 병원은 전부 문 닫았을 것이니까 큰 병원으로 가려고 제 차로 가는 겁니다. 잡아먹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쪽이 식인종이에요? 잡아먹는다고 하게....”

“모르죠, 세상이 워낙 험하니까요. 아무나 믿지 마시라고 하는 말입니다.”

여자는 나이가 들었지만 진태에게는 이상하게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말하는 것도 통통 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여자가 말하는 것이 쫑알거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가 보았다.

진태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여자의 종아리뼈는 금이 가 있었다.

이른바 촛대 뼈에 금이 간 것이다.

아프기는 되게 아플 것 같았다.

병원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은 것을 보더니 응급의가 ‘엄청 아프셨을 텐데...’라며 부드러운 손길로 깁스를 해 주었다.

젊은 여자인데 피곤에 쩔어 응급실 근무를 하는 것을 보니 진경이 또래여서 안타까워 보였다.

진태가 동년배인 여자의 이름을 슬쩍 보니 주선애로 되어 있었다.

나이는 진태와 동갑인 52살.

집은 동래 럭키 아파트.

동래럭키 아파트는 항상 부산의 집값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부산에서 두 번째로 비싼 아파트로 나오는 곳이었다.

첫째로 비싸게 나오는 아파트는 대신동의 삼익 아파트.

두 아파트가 지은 지가 오래 되어 지내기가 불편한 곳으로 진태는 알고 있었다.

왜 지은 지 오래 된 아파트 특유의 관리비 많이 나오는 것 있지 않은가?

중앙난방에 경비원 두는 곳 말이다.

경비원 월급에 뭐다, 뭐다 하면 관리비가 장난이 아니게 나오는 곳이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 같으면 그런대로 사는 사람인 것 같았다.

진태가 선애와 응급의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호자를 부르세요, 제가 남편 분에게 전화해 드려요?’라고 묻자 여자는 ‘사별했고 아들 하나 있는데 선 보러가서 연락하기가 그러네요.’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진통제와 항염제를 타고 집으로 가는 진태의 차 안에서 진태가 선애의 깁스를 한 발에 손가락으로 꾹꾹 질러 보았다.

“다 굳었어요?”

“아, 아! 만지지 마세요. 어딜 그렇게 세게 눌러요?”

“다 굳었구만, 뭐! 엄살은!”

“엄살 아니에요. 얼마나 아팠다고요.”

여자의 눈가에 눈물이 약간 나고 있었다.

아까 아팠던 것이 생각나 연상 작용이 되는 것 같았다.

“아이고~! 나이 들면 다 애가 된다더니.....그거 조금 아프다고 울기는.....”

“이 남자가! 자꾸 약 올릴 거예요!”

“내가 달달한 사탕 사 줄 테니 울지 마요.”

“내가 애에요?!”

“애 같으니 하는 말이죠. 울지 말아요. 또 아파요?”

“내가 아파서 울어요!? 당신 같이 무례한 남자 때문에 우는 거지요.”

“무례하면 나 같은 건가요? 그래도 내가 목발 사 줬잖아요? 그걸로 짚고 다니면 돼요, 뭘 그걸로 그래요? 참! 식사는 했어요?”

“지금 이 상황에 밥이 목에 넘어 가겠어요?”

“골다공증이 있을 것 같다고 그러잖아요. 나이 먹으면 골다공증 올 수 있어요. 그러니 생선이나 멸치 같은 것을 칼슘 많은 것으로다가 많이 먹어야죠. 오! 마침 저기 초밥집 있네!”

진태는 여자에게 저기가 어떠냐고 물어 보지도 않고 초밥집 앞 주차장에 차를 주차를 했다.

진태의 차가 미국인 체형에 맞춘 차여서 그런지 실내공간은 넉넉했다.

여자가 앉아 있으니 넓은 응접실에 작은 아이 혼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여자의 체형은 작은 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슴은 컸다.

정희와 거의 같은 시컵에서 디컵정도는 되어 보였다.

진태가 정희를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할 정도의 몸매를 하고 있었다.

진태가 정희에게 반할 때도 정희의 체격에 비해 큰 가슴이 결정적이었다.

지금이야 정희와 그 오랜 세월을 살면서 면역이 되어서인지 아무렇지 않았지만 항상 진태의 로망은 가슴 큰 여자였다.

그런 면으로 보면 주선애는 진태의 이상형에 딱 맞는 여자였다.

선애의 키는 진태가 175cm였으니 진태의 귀 정도로 오는, 여자치고는 큰 키였다.

정희는 그보다 작은 진태의 턱 정도 밖에 오지 않았다.

낮은 단화를 신고 있어도 그 정도이니 정희처럼 굽이 높은 신을 신으면 거의 진태와 비슷할 것이다.

“술은 안 돼요.”

“당신 때문에 화가 나서 한잔 먹어야겠어요. 일루 주세요.”

마주 앉자 진태가 선애를 생각해 방은 불편할 것 같아서 탁자에 앉았다.

그러고 식사를 시켰는데 여자가 술을 달라고 해서 한잔 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진태가 말리는 소리였다.

“왜 나 때문에 화가 났어요?”

“그러게 조심해서 일어났으면 다칠 이유도 돈들일 필요도 없었잖아요?”

“덕분에 나같이 멋진 중년을 만났지 않습니까?”

“누가요? 거기가요? 어디에 멋진 중년이 있어요?”

“여기요, 나 제법 광체가 나는 것 같지 않아요?”

“하! 광체가 눈이 멀었어요? 그쪽 같이 느물거리는 남자가 광체가 나게요?”

“윤진태, 내 이름입니다, 선애씨. 그쪽이 아니라요.”

“! 내 이름은 어떻게.....”

“아까 진료차트를 잠깐 봤어요. 그러니 제가 선애씨 집 근처로 차를 몰았죠. 내가 차를 몰고 가고 있어도 아무 말 없기에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갑장(동갑 나이)이데?”

마지막엔 진태가 반말을 하고 있었다.

“어쭈! 이젠 반말을!”

“뭐 어때. 우리 말 트고 지내자, 선애야. 이리 알게 된 것도 인연이잖니?”

“아무리 그래도 처음 만났는데......”

“처음이라도 아주 강렬하게 만났잖니? 나, 제법 살지만 어디 가서 말 편하게 하는 인연은 없었어. 그건 선애 너도 마찬가지 아니니? 우리 나이쯤 되면 친구들도 점점 하나씩 없어지기도 하고 아들이며 딸들도 전부 지 짝 찾아가기 바빠서 우리들은 이제 안중에도 없잖아. 그렇게 애를 써서 키웠는데 괫~ 심하게도 말이야.”

진태는 자연의 말투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아마 자연의 말이 인상 깊었나 보다.

“진태 넌 마누라가 있잖아.”

선애도 말을 편하게 놓고 있었다.

진태의 말에는 선애도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생각이어서 공감이 가기도 했기에 더욱 진태가 편하게 느껴졌는가 보았다.

그리고 진태가 몰고 다니는 차도 어느 정도 부의 상징이고 생활이 안정이 되어 있는 중년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어서 편하게 생각이 드는 것도 있었다.

“.......내 마누라......바람이 나서 이혼했어. 지금 마누라는 나이가 38살이야.”

“어머머! 그럼 나이 차이가......”

“14살 차이지. 그러다 보니 세대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지.”

“뭘 그렇게 젊은 나이의 여자를 얻었니?”

“나, 한창때의 기력이 다시 살아났는지 그때 외로울 때 그 여자가 마침 옆에 있었어. 우리는 불같이 사랑을 나누었고 그 때문에 같이 살게 된 거야.”

“오마나! 다 늦어 기력이 살아났니?”

“다 늦어서라기보다 전 마누라가 까탈스러운 성격이어서 밑에 손가락도 넣지 마라, 뒤로도 하지 마라, 마치 짐승 같아서 싫다. 그런 소리를 했거든? 막혔던 것이 풀리는 것 같으니까 마치 한창 때의 기력이 되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 같더라니까? 그런데 살아 보니까 또 사이좋게 살게 되더라고. 또 애교스러운 성격이어서 잘 하기도 해. 그런데 갑장인 널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너도 애교스럽기도 하고 화통하기도 해서 말이 통할 것 같아서 말이야.”

“진태 넌, 애교가 많은 여자 좋아하는 구나?”

“그런 편이야. 넌 애인 있니? 아까 사별했다는 것 들으니까 애인은 있겠더라?”

“그걸 또 들었니? 난 아들 키우느라 한 눈 팔 사이도 없었어. 자유시장에서 한복지 포목점에 한복도 지어 팔고 있어서 하루 종일 가게에 붙어 있는데다가 아들을 판, 검사 만들고 말겠다는 집념 때문에 더욱 한 눈 팔 겨를이 없었어. 죽은 남편에게 그렇게 약속했거든? 그러느라 이제껏 애인이라고는, 알고 지내는 남자조차 없어. 그런데 너는 재주도 좋아? 젊은 여자랑 같이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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