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 (10/29)

[11부]

"오라버니...헉...조금만...천천히...헉"

"......"

"잠깐만...후...휴~..."

"뭘...헉...벌써...지쳐...조금만...헉...더..."

"그래도...오라버니...아이고...나...진짜...죽을거 같아...요...헉헉..."

일종의 카타르시스 라고나 할까? 실컷 울고 났더니,

정신이 맑아 오는것이 개운함 마져 느끼게 한다.

부모님이 돌아 가셨을 때도, 이 정도로 울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울음을 먼저 멈춘건 나였다.

난 손가락을 빗삼아 소영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넘기고 있었고,

얼굴을 맞대다 시피하고 안겨있던 소영이도 울음을 멈췄는지,

쌔근거리듯 따뜻한 입김만이 목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다 울었어?"

"네..."

"술 냄새 많이 나지?"

"아뇨...훗...나도 취한 것처럼 좋은데요..."

나는 고개를 조금 뒤로 빼선 그녀의 두 눈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있던 그녀도, 살며시 눈을 뜨곤, 연한 미소를 머금은채,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

"왜...아무말 안하세요?"

"흐음~"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며,

코로 한숨을 뱉어내듯 소리를 내면서 그녀 눈동자에 투영된 나를 보고 있었다.

"응? 왜요?"

난 대답 대신, 그녀의 이마와 코 그리고 입에 가볍게 뽀뽀를 해주었다.

"쪽.쪽.쪽"

"으응? 잉!"

대답이 없자 눈을 감고는 다시 가슴에 얼굴을 기댄다.

"아냐~ 여기봐봐! 우리 소영이 얼굴 좀 보게..."

"싫어요...말도 안하면서..."

"말하면 술냄새 날까봐...그런건데..."

고개를 조금 빼듯 들고는,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 본다.

"괜찮다고 했잖아요?"

"으...음"

나는 다시 입을 닫고는, 물끄러미 그녀의 얼굴만 쳐다 보았다.

"진짜!...그럼...이래도...이래도?"

소영은 별안간 내 겨드랑이며, 옆구리를 마구 간지럽힌다.

"으...응...푸아~~ 에이 진짜...아아...간지러워...그만...그만하라니까..."

"큭큭큭...거봐요...말해도 된다니까...큭큭"

"알았어...알았어...이제 그만...하하...참내..."

"보기만 해도 예뻐요?"

"어...이렇게 예쁜 소영이하고 같이 있다는게...여전히 믿기지 않거든..."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를 하며, 소영이 역시 내 얼굴 여기저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아기 같이 작은 콧소리를 내더니,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는 다시 품으로 안긴다.

"아...참! 지금 몇 시지?"

"지금요? 잠깐만요..."

시간을 보려고 소영이 일어나려는데, 사실 좀 더 이대로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라도 계획을 실천 해야겠기에 아쉬워도 참기로 했다.

"약속 있으세요?"

"어!"

"무슨 새해 벽두 부터?"

"후후! 그런게 있어!"

"어~~? 6시~~ 6시 42분인데요?"

"그래? 그럼 빨리 일어나자!"

"어디...가시게요?"

난 알려주지 않은채, 서둘러 옷을 입고는, 소영의 손을 잡고 무조건 뛰쳐 나오듯 한 것이었다.

새해 첫 해를 함께 보자고 계획했던 나는, 기차를 타고 오면서 해운대와 광안리 근처를 열심히 찾아 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두 군데를 후보로 놓고 나름대로 이것저것을 따져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두 후보는 다름아닌 광안리 쪽의 이기대 자연생태공원이라는 곳과, 해운대 쪽의 동백공원이라는 곳이었다.

두군데 모두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는터라, 어디가 더 나은지는 알지 못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결국 해운대쪽의 동백공원으로 정한 것이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이기대공원보다 위쪽에 있기도 했고,

크기도 작아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야 소영도 내 계획을 알아 차린 모양이었다.

"하여간...오라버니는...?"

"왜?"

"일출 보러 오신거죠? 큭큭...미리 얘기하면 어디 덧나요?"

"어떻게 알았어?"

"오늘 같은 날, 더군다나 이 시간에 이런데 오면, 뻔한 거 아녜요?"

"맞어...하하...새해 첫 일출 만큼은 소영이하고 보고 싶었거든...

나의...어...몇 번째 계획이었더라?...음...하여간에...하하"

"고마워요...오라버니..."

소영은 내 팔짱을 꼭 끼곤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걷고 있다.

겨울 새벽의 싸늘한 바닷 바람도 춥다고 느껴지질 않는다.

이름 만큼이나 동백나무가 가득하고, 오른쪽에는 광안대교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갈 무렵,

몇 몇 사람들이 서둘러 뛰듯 하며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 사람들 왜 저렇게 뛸까요? 운동하나?"

"잠깐만...지금이...7시 15분?"

"해가 몇 시에 뜨는데요?"

"글쎄 그건 확인 안 했네...근데 어째..."

"그럼 어떻하죠?"

"어떡하긴 뛰어!"

그렇게 우린 뛰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손을 꼭 잡은체...

하지만 지난밤의 그 난리통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데다,

급하게 서두르다 보니 그만 물 한통도 준비를 못한 것이었다. 

"헉...이제 거의 다 온거 같은데?...헉...헉...그럼 걸어가자...휴~우"

사실 거리로 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였다.

숨을 헐떡이며 언덕을 오르니 둥그렇게 생긴 건물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기...저게 누리마루예요?"

"그런가 보네...소영이도 처음 봐?"

"네...저쪽 호텔쪽에서는 안보이거든요....이쪽으로 올라오긴 저도 첨이예요"

겨우 숨을 고르며 누리마루하우스를 지나 등대에 다다랐을 무렵, 이미 동쪽 하늘은 빠알갛게 물들어 있었다.

"와~~! 오라버니...저것 봐요...정말 예쁘다..."

살아오면서 일출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보았었다.

하지만 오늘...태양이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가슴마저 두근거리며, 소영의 손을 꽉 쥐게 된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임을 알리려는듯 옇은 해무까지 끼어,

다양한 하늘색과 함게 묘한 신비감 마저 들게 한다.

소영은 내 팔짱을 끼고는 안기듯 기대 있었고, 외투를 입었슴에도,

그녀의 가슴이 내 팔에 와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

잠깐사이 순식간에 해무를 헤치며, 새해의 첫 태양이 고개를 들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와~우!!!"

소영의 짧은 감탄을 들으며,난 소원을 빌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할 수 있게 해주세요~~'

다시 눈을 뜨고 소영을 바라 보았을때,

그녀역시 소원을 비는지 지긋이 눈을 감고 있더니만, 이내 미소를 가득 머금고는 살포시 눈을 떠 나를 바라본다.

"사랑해...소영아!"

"저도 오라버니 사랑해요~"

태양은 이제 저 멀리 수평선으로 부터 우리가 있는 이 곳까지, 해운대의 바다 위에 노오란색으로 물들인 길을 내어준다.

"와~~ 좋~~다!"

소영은 두 팔을 벌려 들고는 추임새를 하듯 감탄을 하고는,

곧바로 돌아서서 내 목에 두 팔을 감으며 다가온다.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있슴에도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 거리며 빛난다.

"사랑해요~"

내가 미쳐 답을 하기도 전에, 더구나 일출을 보기 위해 둘러선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 하지 않은체,

차가운 공기에 식어버린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는가 싶더니, 따스한 그녀의 혀가 곧바로 들어온다.

난 그녀의 허리를 둘러 살며시 안고는, 그녀의 혀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우리가 달콤한 입맞춤을 마치고 다시 바다로 시선을 향했을때는, 이미 태양은 저 높이 올라와 있었고,

주변의 어둠은 모두 사라진 후였다.

"뭘 하시는데, 그렇게 혼자 웃으세요?"

"어? 아니...이것 봐봐~ 잘 나왔지?"

"와우~~ 예쁘다..."

일출을 지켜보며 틈틈히 찍은 사진중에 은지에게 보낼 사진을 고르고 있었다.

"이 사진들 저한테도 보내주세요~"

사진엔 일출광경 뿐 아니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찍은 우리 둘의 사진도 여럿 있었다.

"이건 어때? 예쁘지? 음...귀엽기도 하고..."

"뭐예요? 그건 별론데...그거 말고 이게 더 낫지 않나?"

난 햇빛에 눈이 부셔 윙크를 하듯 한쪽 눈을 감고는 나머지 눈도 찌푸리듯 한 상태로,

미소를 띠고 있는 소영의 사진이 귀엽고 예쁘기만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찡그렸다며 별로라고 하고는, 카메라를 향해 구도가 잘 잡힌 사진만 들여다 보며 싱글벙글 한다.

"난 이게 좋은데...자연스럽잖아...그래서 더 예뻐보이고?"

"아녜요! 오라버니? 그건 별로라니깐요...이게 더 나아요!"

"헤헤이...이 사람! 그건 억지로 웃는거 처럼 쫌 부자연스럽잖아?"

"오라버니! 아무리 그래도 찡그린게 예뻐요? 이게 더 예쁘지?"

우린 함께 식사를 하다 말고는, 사진 때문에 머리를 맞댄채 티격태격 하고 있었다.

"음~~~"

소영의 침대에서 눈을 뜬 건, 햇쌀이 거실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을 때였다.

"이제, 좀 개운하세요?"

"어?...어...그러네...아...으...으..."

누운채 기지개를 켜고는 침대에서 일어나니, 소영은 집안을 정리 하고 있었다.

"얼마나 잔거야?...나 혼자 잤어?"

"아~뇨. 저도 같이 잠들었다가...조금 전에 일어났어요!"

"깨우지?"

"너무 편안하게 주무시길래 안 깨웠어요!"

식사를 마치자 마자, 새해 첫 섹스를 멋지게 해야겠다고 다짐 해 놓구선,

설겆이를 하는 소영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는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헛 둘!...확실히 몸이 가벼워진게...잘 자긴 했나봐~"

난 체조를 하듯 팔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으...음...우리 이쁜 소영이..."

책이며 노트등을 양손에 든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녀에게 다가가자 마자 덥석 끌어 안았다.

"오라버니! 잠깐만! 잠깐만! 나 요거만 마저 치우구요..."

"싫어~~"

"아니! 정말 다 치웠어요~ 요것만..."

내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막아 버렸다.

아주 잠깐 버둥거리나 싶더니, 힘을 뺀채 안겨온다.

그대로 선채 입맞춤을 하던 그녀가, 내 등을 두어번 두드리더니, 이내 물러선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께요..."

"그래? 그럼...내가 먼저..."

술냄새를 씻어내려 새치기까지 하고는, 양치를 하고 돌아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응가라도 하나보다 생각될 만큼 한참이 지나서야 욕실에서 나온 소영은,

왕눈이가 그려진 잠옷을 입고 나타났다.

뒷꿈치를 든채로 야릇한 미소를 짓더니, 한 손은 허리에 다른 손으론 머리를 비틀어 잡아 올리듯 한채로,

모델 마냥 사뿐사뿐 걸어 침대 앞으로 다가온다.

난 그런 소영의 행동에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된다.

"뭐~하는 거야?"

"짜 잔!"

두 손으로 잠옷 밑단을 벌려 잡는가 싶더니,

한바퀴 턴을 하듯 하더니만, 잠옷 자락을 들어 허리까지 올리는 그녀다.

"어때요? 섹시해요?"

난 침대에서 상체를 벌떡 일으킨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오라버니? 어떠냐니까?"

그리곤 잠옷을 위로 벗어던지며,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보인다.

"어..."

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소영은 내가 선물한 속옷을 입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다. 난 어제 소영이의 선물을 고민하다, 결국 속옷 매장으로 행했었고,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줄 깜짝 선물이라며, 골라 달라고 했던 바로 그 속옷세트였다.

사실 색상과 대충 사이즈만을 얘기 하곤,

점원이 골라준 몇 가지 중에서, 너무 화려한 장식이 있거나 현란한 색상의 것들은 모두 마다하고,

그 중에서 순수해 보이는 흰색을 골랐던 것이다.

더구나 자세히 보라는 점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걸 펼쳐서 볼 자신이 없었던 난, 서둘러 나와버린 것이었다.

부분 망사와 레이스로 되어 있는 브래지어는,가슴을 조금 더 크게 보여주는 것 같고,.

팬티가 비쳐보이는 가터벨트는 흰색 망사 스타킹과 함께 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섹시하다.

앞에서는 몰랐는데, 뒤로 돌아 보여 주는데, 팬티가 T팬티다.

힙업된 엉덩이는 더 도드라져 보이고, 긴 다리는 더 길게만 느껴진다.

더구나 골짜기를 가르고 있는 팬티의 흰색 끈과,

살짝 내려져 있는 벨트의 망사단이 엉덩이를 더 탄력있고 섹시하게 보이게 한다.

섹시함을 강조하니 어쩌니 하며, 점원이 추천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예상했던것 보다 훨씬 섹시하고 아름답다.

슬립까지 사가라고 했던걸, 안 사온게 조금은 아쉽지만, 

지금의 이 모습 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남는다. 

"별론가? 나도 첨 입어보는 거라 쫌 어색하긴 하다..."

"아니...아니야...너무 예뻐...아니...끝내줘..."

"훗...진짜?...나 섹시해 보여요?"

"완전 섹시해!!!"

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소영의 흰 피부와 어울리며, 순백의 순수함과 섹시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 처럼,

한마디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순간, 저 위에 흰색 웨딩 드레스를 입기만 하면, 영락없는 새신부 같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근데 내 사이즈를 어떻게 알았어요? 완전 딱 맞는거 같아요..."

"......"

소영은 본인도 신기한지 이리저리 둘러보고 만지며,

어린아이 처럼 마냥 좋아하고 있었다.

"정말 맘에 들어?"

"그럼요...언제 한번 사서 입어 봐야겠다고 생각은 했었는데...뭐...굳이...보여줄 사람도 없고...훗!"

"그럼 다행이다! 난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 했었는데..."

"내가 입어도, 괜찮구나? 히히"

"이리와~~"

난 침대 가장가지로 가서는 두 팔을 벌렸다.

새옷 특유의 냄새가 나긴 했지만, 금방 소영의 향기에 묻혀버리고 만다.

"우리 이거 그냥 입고 해 볼까요?"

"그러고 싶어?"

"네...느낌이 어떨지 궁금해서...오라버닌?"

"나도 궁금하긴 해! 근데...너무 흥분해서 금방 해버리면 어떡하지?"

"큭큭...그래도 할 수 없죠...뭐..."

우리는 새해 첫 날, 그것도 따스한 햇빛까지 받으며, 침대와 쇼파를 오가며 달콤한 섹스를 나누었다.

시각적인 새로움, 그리고 스타킹과 레이스가 주는 묘한 감촉으로 인해,

서두르지 않았슴에도 불구하고,예상보다 훨씬 빨리 사정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티팬티라는 것이, 굳이 벗기지 않고 삽입을 해도 걸리적 거리지도 않는게,

의외로 괜찮은 물건이란 생각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로가 마음을 열고, 사랑을 확인한 것이 더 중요 했으리라 여겨진다.

"너무 빨리했지? 미안...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괜찮아요~ 저는 좋았는데요 뭐...근데...이거 응근히 자극적이죠? 오라버니!

저도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래? 느낌이 달라?"

"스타킹 때문에 다리느낌도 이상하고, 팬티도...큭큭...더는 말 못하겠다..."

한쪽 다리를 올린채 옆으로 누워 가슴을 베고 있는채로 , 내 젖꼭지를 부드럽게 비틀며 얘기한다.

"소영이가 다리 움직일 때마다 지금도 이상해...참나...거...희한할세~~"

"이렇게 하면...느낌이 이상해요?"

"어...어...오~예..."

소영이 올려놓은 한 쪽 다리로 내 다리를 비비자, 망사 스타킹이 주는 야릇한 느낌이 전달된다.

난 소영의 볼과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소영아~"

"네?"

소영은 고개를 들어 눈가에 미소를 지은채 바라본다.

"고마워~~ 날 사랑해줘서...후후"

"제가 더 고마워요! 제가 다시 살아 갈 수 있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셔서...사랑해요~"

사랑을 고백하고 나서일까?

그녀와 섹스를 하는 도중에도, 몇 번씩이나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인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래서인지 무엇을 하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빠! 이 사진 대박인데? 여기가 어디야?"

"오늘 부산에서 찍은거야!"

"진짜 짱인데? 근데 이런날도 출장갔어?"

"아~니!"

뭐라할까 잠시 망설이게 된다.

"잠깐 바람쐬러 왔어~"

"그래? 잘했네...근데 혼자?"

"어?...어....그럼..."

"아빠?"

"어?"

"아니다...후후...다음에..."

"뭔 얘길 하려다 마냐? 궁금하게 스리..."

"아니에요...멋진 여행 하시고 또 식사 잘 챙겨 드시고, 감기도 조심하세요!"

"알았다 인석아! 너도? 화이팅!"

"아빠도 화이팅! 사랑해요~~그리고 해피 뉴 이어~"

"울 딸도 해피 뉴 이어~ 우리딸 사랑해!!!"

해운대쪽에 맛있는 고기집이 있다고 해서 나왔다가,

자리에 앉자마자 은지의 전화를 받았다.

오전에 보낸 일출 사진을 보고는, 일어나자 마자 한 모양이었다.

"따님? 은지라고 했던가?"

"어! 어떻게 기억을 하냐?"

"아직 젊잖아요...큭큭!"

"난 사람 이름 기억은 못하겠던데...젊었을 때도..."

"은지는 이름도 이쁘잖아요. 그리고 참 대단한 아이 같아요, 저 같았으면..."

"항상 미안하지 뭐...괜찮기야 하겠어? 괜찮은척 하는 거겠지!"

"그래도요. 아는 사람도 없는 곳인데...얼마나 대견해요?..."

새해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더구나 소영과 있어서 인지,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보여지는 사물들은 모두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다.

"근데...우리 처음 만났을때...송도엔 왜 왔었어?"

"네?...아...송도..."

"혹시 죽으려고 왔었던건 아니지? 이건 농담이고...후후"

"글쎄요...그런 생각도 들긴 들었었어요..."

"뭐~~ 진짜?"

이전만큼 소영의 표정이 굳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이젠 모든 것을 내려 놓은양, 미소도 잃지 않은채 이야기를 한다.

"기억하시죠? 제가 사랑했던 사람 있었다고..."

"어!"

"그사람...미국에서 공부하다 만났거든요. 저랑은 한 살 차이였고,

제가 회사 다니다 유학을 가서 좀 늦은 편이었거든요.

"회사 다니다 유학을 갔어?"

"네...졸업 하던해 가을에 만났는데...아마...한국에 돌아와서 몇 달? 정도 있다가 함께 지낸거 같아요"

"반대가 심했다며?"

"네...그래서 더 함께 살기로 했었어요. 살다 보면 이해해 주실거라고 믿은거죠 뭐..."

"소영이네 쪽은?"

소영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원래 아빠 혼자셨거든요. 엄마는 저는 얼굴도 잘 몰라요...일찍 돌아 가셨다고만 들어서..."

"그랬구나...혼자 키우시느라 힘드셨겠다"

"훗...저만 바라보고 사신거죠...유학도 보내주시고...근데 제가 귀국하자 마자 살림 부터 차렸으니..."

"음..."

소영은 감정을 추스르려는 듯 잠시 말을 멈추고는, 건배를 하고 술 한잔을 들이킨다.

"근데...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 사람 주변만 맴돌았어요. 아빠는 그냥 혼자 둔채로..."

"..."

"부산에 내려온 것도 사실은 그사람 근처에 있으려구..."

"그사람은 결혼 안했어?"

"했어요! 저와 헤어지고 나자마자 바로..."

"근데도 맴돌았다고?"

"네~~"

별안간 소영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래서?"

"언젠간 돌아올거 같았거든요,저한테! 거의 스토커 수준으로 맴돈거 같아요"

"......"

"올 초엔 그 사람 큰애가 학교에 들어갔어요!"

"그정도로? 그건 집착 아닌가?"

"집착이죠...저도 알아요...근데 그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죽을 거 같은 거예요.

저한텐 첫사랑이기도 했구, 너무너무 잘해 줬었거든요...그 사람이..."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찹찹해진다.

"그럼 만난적도 있어?"

"만났다기 보다는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근데 몰라본건지? 그냥 지나쳐 버리더라구요"

"그럼 송도 왔을때가 그때야?"

"아뇨..."

송도 얘기가 나오자 입술을 다물고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입꼬리가 아래로 쳐지나 싶더니, 이내 눈물을 쏟아낸다.

"흐흡...흡..."

"에휴...이리와~"

난 기분이 좀 애매했지만, 그녀를 울게 두고 싶진 않았다.

곧바로 곁으로 가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흑...그게 아니라...몇 년 동안을 그 남자 주변만 맴돌고 있었는데...흑...아빠가...흑흑"

또다시 지레짐작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졌고, 이어질 말이 무었일지 알거 같았다.

소영은 한동안 눈물만 흘리고 있었고, 굽던 고기는 그녀의 아픈 기억 만큼이나 새까맣게 타버리고 있었다.

"하아...죄송해요...흠...울지 말아야 되는데..."

"괜찮아...아버님이 돌아 가셨구나? 그 때?"

"후우...네...그 날이 아빠 보내드린 다음날 이었어요"

"흐...음"

"돌아가셨다는 연락 받고 올라갔는데...4년동안이나 혼자 투병하시다 가셨다고...흑"

"휴~~우..."

난 나오려는 눈물을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고,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소영은 다시 울음을 쏟아냈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야, 다소 진정이 됐다.

"제가 아주 나쁜딸 인건죠! 나만 바라보고 사셨는데...아빠가 아픈줄도 몰랐고,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럼 임종도 못 뵜어?"

"네...흑...이미 돌아 가셨더라구요...흠...저를 그렇게 찾으셨다는데...흑...흠...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게 지난 설이었어요..."

다시금 목이 메이는 모양이었다.

난 물을 건네고는 잠시 기다렸다.

"전혀 눈치도 못 챘어? 그 긴 시간동안?"

"그 전엔 전혀 몰랐어요. 최근 1년사이에 많이 마르셨길래...왜 식사 안 챙겨 드시냐고...흠...핀잔만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크게 호흡을 하며, 눈물을 닦아 내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그래서 너무너무 죄스럽고, 바보같고 해서 장례식때 아빠에게 약속을 드렸어요"

"..."

"남자고 뭐고 다시는 사랑 같은거 안 할 거라고, 남에게는 절대로 의지 안할 거라고..."

"그랬구나..."

"아빠 보내드리고 내려 왔는데...내가 왜 살아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구요."

"..."

"그래서 나도 그냥 따라 죽자 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침 일찍 태종대를 갔었는데...

그날따라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어두워 질때까지 기다려 보잔 생각으로 무작정 걷다보니까 송도더라구요"

"그런 생각까지 하긴 했구나..."

삶의 희망이나 목표, 또는 대상이 사라진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근데 죽는것도 쉽지 않은가 봐요...거기서도 눈치만 보면서 자꾸만 망설이게 되더라구요.

그때 별안간 오라버니가 나타나신 거예요..."

"근데 그 와중에 내가 눈에 들어오긴 했어?"

"오고 말것도 없었어요. 혼자 물으시곤 대답도 안했는데 그냥 옆에 앉으셨으니까..."

"아...그랬다고 했지 참!"

"그러시더니 혼자서 푸념을 하시는데...

가만히 보니까 꼭 우리 아빠 같으신거예요. 은지 얘기 하시면서는 울기도 하셨고..."

"그랬어 내가?...그리고 내가 아빠랑 닮았어?"

"외모가 닮았다기 보다는 제가 죽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아빠가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힘들었을 때니까..."

"그날 저 한끼도 안먹었거든요. 허기도 지고, 춥기도 하고..."

"그랬겠네..."

"근데 옷을 벗으시더니 덮어 주시는데, 얼마나 따뜻한지...훗"

소영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이젠 눈물보단 간간히 웃음을 보이기까지 한다.

"참나...기억이라곤 손톱 만큼도 없으니...뭐라고 할 수가 없네..."

"어쨌든 그래서 우리가 만난거잖아요..."

"그러네....후후"

"지금 생각해 봐도 그날의 하이라이트는요? 한참을 혼자 얘기하시다가 별안간 일어서시더니,

재워 준다며 무조건 같이 가자고 하시는 거예요!"

"..."

"풉...근데 무섭거나 의심이 드는게 아니고, 오히려 확신 같은게 생기는 거예요.

아빠가 보낸분이 맞구나...하고...큭큭큭"

"..."

"방에 들어가선 어떠셨는지 아세요?

제가 화장실 가야 된다는데도 안된다고 막무가내셨어요!

춥고 힘들다고...얼른 자라고...그리곤 이불까지 덮어 주셨거든요!"

"음..."

"저는 그날 너무 좋았어요. 아빠랑 있는거 같기도 하고...마음도 얼마나 편한지 정말로 금방 잠든거 같아요"

"근데 내가 왜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네..."

"그게 아니고, 오라버니가 막는 바람에 소변도 참은데다 씻지도 않아서 그런지 중간에 깼거든요.

일어나 보니까 오라버니는 팬티만 입고는 침대 옆에서 움크리고 주무시고 계시길래,

제가 올라와 주무시라고 그랬죠..."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

"아뇨...괜찮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하시더니, 씻고 나와 보니까 벌써 올라가서 주무시고 계셨어요"

"내가 진짜 정신이 나갔었구만...휴~~"

그 날 우리가 만났던 얘기를 하면서는, 재미 있다는 듯이 말이 빨라지며 깔깔거리기 까지 한다.

"그럼말야? 내가 소영이 옷을 다 벗겼어?"

"네!"

"에에? 진짜? 어휴~~~"

"큭큭...아니예요...사실은 씻고나서 제가 그냥 벗은채 오라버니 옆에서 잔 거예요"

"아니 왜?"

"글쎄요? 그건 설명이 좀 어렵네...

그냥 그래도 될 거 같았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렇게 해야만 할 거 같았다고 하는게 맞을지도 몰라요"

"내가 덮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아...뭐...덮치기...는 했지만 서도...음"

"그런건 어떻게 되던 신경 안 쓴거 같아요. 어쨌든 오라버니 때문에 다시 살아갈 용기가 생겼으니까..."

로또에 당첨돼 본적도 없긴 하지만, 그 만큼의 확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우연이 아니라 대단한 인연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안되는 상황임엔 틀림없다.

"그럼 그렇지?"

"뭐가요?"

"나 같은 놈이 소영이 같은 여자를 만난 다는게 말이 되겠냐?

맨정신 가진 여자라면 천부당 만부당 같은 얘기지! 안 그래?"

"왜요? 오라버니가 어때서? 그럼 난 비정상인가?"

"어...하하...그게 또 그렇게 되나? 하하하"

"오라버니야 말로 저한테는 과분하신 분예요!"

"예끼!...누가 들으면 욕하겠다!

그나저나 언제 아버님께 감사하단 말씀이라도 드리러 가야겠다!

이렇게 이쁜 딸을 만나게 해 주셨으니까..."

"훗! 그러네...그래요 그럼..."

어깨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불가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소영과의 만남이 그져 단순한 인연이 아니었슴을 알게된다.

"근데 이게 모야? 왜 고기를 다 태웠어요?"

"내가? 아...아닌데...그냥 얘기 듣다 보니까..."

"아잉...이게 모야? 나 배고프단 말예요...에잉"

소영의 투정을 들으며, 배가 부를만큼 고기도 먹었고,

대신 술은 기분이 좋아질 만큼만 마셨다.

"오라버니? 이건 뭐예요? 일 할거 가지고 오신거예요?"

소영이 욕실을 행해 소리치듯 묻는다.

"뭔데?"

"무슨 서류 봉투 같은데? 누런색요! 이거 완전 옛날 봉투네..."

"아~~?"

사장이 전해준 서류 봉투가 떠올랐다.

급하게 내려오는 통에, 기차에서 보겠노라고 해놓구는 까맣게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그거! 그냥 꺼내둬! 씻고 나가서 볼께..."

"네~~"

문득 궁금증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까 뭘까? 더군다나 나한테만 전달할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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