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과장의 경쾌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마침내 순록경주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 순간 순록들은 모두 성숙한 여성답게 이런 어처구니없고 성차별적인 경주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순록들은 회사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무 또한 있었다. 순록들은 곧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주 초반은 기대만큼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었다. 넓은 강당을 5바퀴나 돌아야 하는 장거리 경주이기에 순록들은 예전 학교에서 했던 식으로 시작부터 2열종대로 줄을 맞춰 천천히 강당을 돌고 있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순록들의 젖가슴은 사방으로 튕겨 다니면서 젖방울을 울리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고삐로 연결된 보짓살들이 거기에 맞춰 들썩들썩 춤을 추고 있었으며, 뒷구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꼬리 어널 플러그마저 그 속을 휘젓고 있었다. 거기에 이런 자신들에 쏠린 전 직원들의 시선에 순록들은 어느새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순록들의 평화로운 페이스는 첫 반환점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순록들이 도착하자마자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던 뽑힌 직원들이 바로 손에 든 공을 순록들의 보지 구멍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순록들은 그 갑작스런 진행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흥분하기 시작한 순록들의 보지는 금세 습해지며 고무공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직원들은 구멍 속에 고무공을 모두 넣고는 손가락을 집어넣어 구멍 깊숙이 밀어 넣었다. 순록들은 보지 속을 자극하는 그 손길에 자기들도 모르게 강한 쾌감을 느꼈지만, 직원들이 엉덩이를 찰싹 치면서 출발을 알리자 곧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무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치고 나간 건 역시 힘이 좋은 주혜림과 이미경이었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에 자신 있는 두 순록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열심히 달리고 있었고, 그 뒤를 손나연이 뒤따르고 있었으며, 한송이는 아까 오전시간에 체육회에 너무 힘을 쏟았는지 다른 순록들 보다 조금 뒤쳐서 달리고 있었다.
가장 처음 무대에 오른 건 이미경이었다. 그리고 간발에 차로 뒤진 주혜림은 모두 두 번째 공을 보지구멍에 담고는 계단을 내려가 반환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보지 속에 공을 넣고 뛰는 건 만만치 않았다. 두 순록은 너나할 것 없이 매 걸음마다 공 두개가 자신들의 보지 속을 돌아다니면서 전해주는 자극에 흥분하면서 보지를 더욱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공들은 젖은 보지 속을 미끄러져 다니면서 더욱 순록들을 자극하고 있었다. 결국 앞서가던 이미경이 먼저 공 하나를 떨어뜨렸다. 주혜림도 몇 발자국 가지도 못하고 똑같이 공을 놓쳤다.
이런 예상치 못한 사고로 두 순록이 발을 멈추고 있는 동안 뒤를 따르던 손나연이 그들을 추월했다. 그리고 다른 순록들이 다시 보지에 공을 채우고 반환점을 도착했을 땐, 손나연은 이미 세 번째 공을 보지에 넣고 무대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자 슬슬 경주에서 이기기 위한 조건이 들어나고 있었다.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순록들이 속도보단 아랫도리 운영에 더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록들은 모두 하나같이 달리는 내내 공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아랫배에 힘을 주며 공들을 꼭 잡고 있어야만 했다.
다행인건 진호 덕분에 오전 내내 그 구멍에 팔뚝만한 당근들을 파묻고 다녀서인지 순록들은 매 바퀴 구멍 속에 차곡차곡 고무공이 쌓여감에도 어느 정도 여유 있게 공들을 담고서 경주에 임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사방에서 전해지는 모든 자극에 민감해진 순록들의 흥분은 점점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었다. 매번 동료직원들이 공을 넣기 위해 보지에 손을 델 때마다 순록들은 거의 절정 직전에 도달하고 있었고, 이젠 흥건히 젖어있는 보지 구멍은 점점 더 공들을 관리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하고 있었다.
실제로 손나연은 무대 위에서 낮에 만났던 박보권 대리가 자신의 보지에 공을 넣고선 손가락으로 깊숙이 밀어 넣다가 갑자기 그 상태에서 손가락을 몇 번 흔들며 엄지로 자신의 콩알을 건드리자 자기도 모르게 전 직원 앞에서 분수를 내품으며 절정에 휩싸였다. 물론 그런 나연의 보지에선 공들이 우수수 무대 위로 떨어지면서 나연의 절정쇼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연이 시간을 지체하는 사이, 다시 선두는 이미경과 주혜림이 탈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다음 반환점에서 나연과 똑같이 온몸으로 절정을 맛보며 보지에 담은 공들을 자기도 몰래 떨어뜨리고 있었다.
다른 순록들이 이렇게 절정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동안, 선두를 차지한 건 의외로 꼴지를 달리던 한송이였다. 한송이는 느리긴 해도 꾸준한 속도로 다른 순록들의 뒤를 크게 뒤쳐지지 않고 묵묵히 따라가다가 기회를 보자 곧바로 선두로 치고 나왔다. 한송이는 평소 즐겨하던 명상 덕분인지 예상외로 자신의 흥분을 잘 관리하면서 다른 순록들과의 차이를 조금씩 벌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바로 다른 순록들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린 순록들은 직원들의 도움으로 보지에 공들을 주어 담고 맹렬히 달려나갔다. 덕분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가 반환점에 다다를 무렵엔 격차가 꽤나 좁혀진 형국이었다.
그런데 변수는 역시 반환점에서 나왔다. 아까 박대리의 장난에 동했는지 이번 반환점에선 모든 직원이 공을 넣는 대신 순록들의 보지를 가지고 놀기 바빴다. 덕분에 네 순록들은 모두가 그 자리에서 보물처럼 모아둔 공들을 쏟아내며 동시에 절정에 빠지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순록들이 이렇게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경주가 재개되었다. 선두는 여전히 한송이였다. 그 뒤를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의 손나연이 뒤따르고 있었고, 그때까지 절정에 허덕이던 주혜리와 이미경은 그제야 다른 순록들을 추격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경주는 이미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바퀴만 남겨둔 상황에서 재빨리 따라잡지 못하면 이대로 순위가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경과 주혜리는 최대한 가랑이에 힘을 줘 보지 안에 든 공들을 꽉 물고는 있는 힘껏 달려가기 시작했다.
두 순록의 노력으로 경주는 마지막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8번째 공을 습득하고 마지막 공을 받으러 반환점을 향할 무렵엔 이미 순록들의 격차는 각자 양팔 간격으로 좁혀지고 있어서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다.
이 때문인지 마지막 반환점에 거의 동시에 도착한 순록들은 오히려 마지막 공을 든 직원들을 보채며 승부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시 순록들 자신이었다. 아무리 크기가 작지만 벌써 8개나 공을 채우고 있는 순록들의 보지는 이미 여덟 번째 공이 보지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을 정도로 또 다른 공이 들어갈 공간이 도저히 없어보였다. 그러나 인체의 신비를 보여주는 듯이 손으로 구멍 안을 잘 휘젓자 간신히 공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생겼다. 직원들은 서둘러 거기에 공을 채우고는 순록들을 출발시켰다.
이렇게 시작한 마지막 코스는 순록들에게 시간의 상대성을 온몸으로 체험시켜주고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젖가슴이나 보짓살이 출렁이는 것과 별개로 공으로 가득한 아랫배가 무겁게 요동치고 있었다. 순록들은 빽빽히 공들로 구멍을 채우고 있는 보지의 터질 듯 한 압박감과 매 걸음 중력에 따라 흔들리는 아랫배 그리고 부츠의 징이 바닥을 치릴 때마다 몸을 타고 올라오는 진동이 보지를 흔들어 대는 느낌에 힘겨워하면서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결승선까지의 거리가 한도 끝도 없이 멀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순록들은 끝까지 신중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보지에 힘이 빠지는 실수라도 한다면 그 순간 경주는 끝난 것과 같았다. 순록들은 하나라도 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 굼벵이 같은 속도에도 경기 자체는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만 있었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순록들이 흥분과 고통 속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벌이는 건 그보다 더 보기 즐거운 게 없었다.
하지만 여느 명 경기처럼 이 순록경주 또한 팽팽하던 승부는 한순간에 결정되었다. 결승선 바로 앞 마지막 코너에서 손나연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바로 뒤를 따르던 주혜리와 이미경은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는지 손나연과 부딪히며 간신히 보지에 틀어쥐고 있던 공들을 우르르 떨어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경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달렸던 한송이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우승자가 가려졌다.
이렇게 힘겹게 우승을 차지한 한송이는 모든 힘이 다했는지 결승선을 통화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질듯 하는 것을 진호가 옆에서 얼른 부축하고 한 손으론 공이 떨어지지 않도록 얼른 한송이의 보지를 틀어막았다.
그렇게 진호가 한송이를 바닥에 눕히고 있는 동안, 간신히 공을 주워 담은 다른 순록들이 차례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2등은 그나마 자신의 몸을 간신히 추스른 손나연이, 3, 4등은 흘린 공들을 다시 구멍에 채우느라 시간을 소비한 주혜리와 이미경이 나란히 차지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드디어 모든 경기 결과가 나오자 무대에 오른 차과장은 힘차게 외쳤다.
"자, 여러분! 올해 순록경주 우승자는 바로....... 영업팀 한송이양입니다!"
그러자 테이블 사이에서 엄청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차과장은 그런 직원들의 뜨거운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이제 재갈을 푼 한송이를 옆에 불러 세우고는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예상 외로 초반에 고전하다 치고나와 끝까지 선두를 놓지 않으셨는데요. 그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처음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포기 하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한 게 맞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승까지 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예. 평범하지만 마음에 와 닫는 말씀이군요. 그럼 우승 확정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차과장의 말에 한송이는 그게 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건 과연 한송이씨가 경기 규칙대로 모든 공을 넣고서 올바르게 완주를 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자, 진나씨.“
다시 무대에 등장한 유진나는 두 손에 투명한 유리그릇을 들고 있었다. 차과장은 진나에게 한송이의 뒤에 무릎을 꿇고서 한송이의 다리 사이에 그릇이 오도록 들게 했다.
"자, 송이씨. 그럼 지금부터 하나씩 공을 꺼내주시기 바랍니다.“
한송이는 차과장의 말에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벌인 수치 쇼도 모자라 마지막까지도 직원들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한송이는 한꺼번에 여러 감정이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마무리는 제대로 하자는 생각에 차과장이 말한 대로 다리를 벌리고 아랫배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공 하나가 보짓살을 비집고 그릇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계속해서 총 9개의 공이 보지에서 떨어져 나와 종치듯 그릇을 때렸다. 그것을 확인한 차과장이 직원들을 돌아보며 힘차게 외쳤다.
"총 9개 맞습니다! 순록경주 우승자는 한송이양입니다!“
또 다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자 그럼 한송이양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그, 그게 먼저 저를 선택하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송이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주에도 우승은 기쁘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차과장는 그런 한송이에게 마음을 진정할 시간을 주려는 듯 서둘러 인터뷰를 마무리 하고는 준우승인 손나연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손나연 역시 뱃속에 든 공들을 하나씩 꺼내어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이는 주혜리와 이미경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모든 순록들이 공정한 경주를 한 것을 전 직원 앞에서 보여준 차과장은 이어서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자,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지금 자리 뜨지 마시고요. 이제부터 우승자를 맞춘 직원들을 추첨해 푸짐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우선 우승자를 제외한 다른 순록들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세 순록을 부른 차과장은 순록들을 순위대로 세우고서 다른 직원들을 불렀다. 그러자 진호와 다른 남자 직원 둘이 아까 순록들이 뱃속에서 꺼낸 공들을 들고 들어왔다.
"자, 이제 추첨방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추첨방법은 간단합니다. 여기 순록 분들 구멍에 다시 공을 넣습니다 .순록들은 순위대로 손나연씨가 백 단위, 주혜리씨가 십 단위, 꼴찌인 이미경씨가 일 단위를 담당하며 뽑히는 번호대로 추첨자를 결정합니다. 참, 쉽죠? 그럼 추첨을 위해 먼저 공을 준비해 주세요.“
여자들은 차과장의 말에 다시 한 번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남자들은 하나씩 공을 차곡차곡 여자들의 은밀한 구멍에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손나연에게 다행인 건 다른 두 순록과 달리 자신은 0, 1, 2 번호가 적힌 공 세 개만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공 삽입이 끝난 나연은 다른 순록들이 꾸역꾸역 아랫배 가득 공을 채우면서 고생하는 것을 편안히 지켜볼 수 있었다.
일단 그렇게 공 삽입이 끝나자 남자들은 한손으로 순록들의 보지구멍을 막고 다른 손은 순록들의 아랫배를 꾹꾹 눌러주면서 공들이 잘 섞이도록 흔들어 댔다. 순록들은 공들이 섞이면서 보지 속을 자극 하는 색다른 다른 느낌에 더욱 흥분하기 시작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관리팀 유진나가 다시 뭔가를 밀면서 무대에 등장했다. 그건 작은 이동식 테이블이었는데, 그 위에는 굵은 철사 프레임으로 만든 미끄럼틀 같은 구조물들이 붙어 있었다. 유진나가 그 테이블을 순록들 앞에 세우자, 차과장이 말했다.
"자, 그럼 경품 추천을 시작하겠습니다. 순록 분들은 충분히 공을 섞었으면 앞으로 나와 주세요.“
이 말에 남자들은 순록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순록들의 보지가 각 미끄럼틀 구조물 바로 위에 오도록 순록들의 위치를 잡고는 뒤로 물러났다.
"좋습니다. 이제 참가상을 추첨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손나연양, 공을 하나 꺼내 주세요!“
손나연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오늘 하루 종일 별별 일을 다 당했지만, 자신의 소중한 보지를 이렇게까지 이용해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하지만 동료직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머뭇거릴 여유는 없었다. 나연은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공 하나를 보지 밖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나연의 보지에서 떨어진 공은 바로 아래 있는 미끄럼틀을 타고 데굴데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유진나가 번호가 잘 보이도록 그 공을 들고는 미소를 지었다.
"자, 앞 번호는 1번! 백 번 대입니다. 그럼 계속해서 십 단위 부탁드립니다.“
이번엔 주혜리 차례였다.
순록들은 이렇게 추첨이 끝날 때까지 매 번 공을 하나씩 뽑았다가 다른 추첨을 위해 다시 공을 넣고 안에서 잘 섞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만 했다. 순록들은 흥분보단 수치심을 더 자극하는 이러한 방식에도 또 다시 흥분하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끝을 맺은 특별 이벤트의 여파는 한동안 회사 내에서 계속되었다. 우승자인 한송이는 우승 기념으로 연말까지 순록 복장을 하고 자신을 응원해준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자 각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봉사를 해야만 했고, 다른 순록들 또한 벌칙으로 업무시간 내내 하의를 모두 벗고서 각자 털을 깨끗이 민 보지에 아직 한참 남은 당근들을, 뒷구멍엔 순록 꼬리를 넣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다른 직원들에게 시원하게 선보여야만 했다. 물론 털을 민 자리에는 각자의 순위가 마커로 적혀있어서 당사자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 감명 받은 직원들도 보다 하드한 플레이에 관심을 갖고 보다 즐거운 사무실을 위해 다양하게 창의성을 발휘하는 등 이날의 특별 이벤트는 여러모로 회사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사장과 진호 또한 모니터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과연 다음에는 어떠한 이벤트를 할까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신입사원.
"75번부터 80번까지 들어오세요."
수빈은 자신의 순번을 부르는 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취업 시즌을 맞아 이미 수많은 면접을 체험한 수빈이었지만, 그럼에도 입안이 바짝 마르고 심장은 요동치며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해도 이런 상황에서 매번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만 같았다.
수빈은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키고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면접실로 들어갔다.
수빈이 지금 와 있는 이 회사는 그동안 지원했던 대기업들과 비록 규모는 비교할 바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곳이었다.
거기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창의적이고 활력 넘치는 기업 이미지나 남녀 평등적인 사내 문화, 넉넉한 급여, 복지수준 또한 화끈하단 평이어서
현재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꽤나 매력적인 회사 중 하나로 뽑히고 있었다.
면접실 안은 다른 회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문 맞은편에 자리한 긴 테이블 뒤로는 면접관들이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수빈과 다른 지원자들을 위한 의자들이 일렬로 나란히 놓여있었다.
지원자들이 거기에 앉자 곧 면접이 시작되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수빈은 살짝 눈을 들어 면접관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이 중년의 회사 임원들인 건 다른 회사들과 비슷했지만, 특이한 건 그 중 한 자리를 젊디젊은 남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남자는 면접 중에도 별다른 질문이나 대화 없이 다른 뭔가에 바빠 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수빈의 차례가 오자, 면접관들은 간단하게 연주에게 지원 동기나 성장환경, 전공 관련 질문들을 차례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데 수빈이 미리 준비한 답변을 늘어놓는 동안, 젊은 남자는 수빈의 입사지원서를 꼼꼼히 살피더니 갑자기 수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것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아닌, 대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온몸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문뜩 그 끈적끈적한 시선을 느낀 수빈은 아무리 면접 자리라 해도 난생 처음 보는 남자가 그런 식으로 쳐다본다는 게 썩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내는 건 면접에 크게 도움 안 될 게 뻔했기에
수빈은 애써 그 남자의 시선을 무시하며 최대한 쿨한 표정과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잠시 뒤, 면접을 끝낸 수빈은 온몸의 기운이 싹 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다행히 면접은 큰 실수 없이 잘 끝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경쟁률이 만만치 않은 터라 마냥 안심하긴 일렀다.
수빈은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면서도 문뜩 자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남자의 눈길이 떠오르자 살짝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수빈은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졌지만, 곧 그런 생각들은 다 털어버리고는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친구들과의 점심 약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첫 출근.
수빈이 젊은 남자의 정체를 아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며칠 뒤, 갑자기 날아온 문자에서 언제까지 출근하라는 회사의 메시지를 확인한 수빈은 그 자리에서 하늘로 뛰어오를 듯한 기분이었다.
이미 다른 면접에선 모두 떨어진 뒤였기에 그 기쁨은 더욱 컸다.
수빈은 흥분과 기쁨,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기분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뒤, 출근 당일 늦지 않도록 예정보다 일찍 회사로 향했다.
회사는 출근시간 전이어서 그런지 아직 한산한 분위기였다.
로비에 미리 마중 나온 직원의 안내를 받은 수빈은 직원이 알려준 대로 곧장 건물 위층에 자리한 회의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수빈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대부분의 자리가 다른 신입사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빈도 나름 서둘렀다고 생각했었지만, 다른 이들은 자기보다 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빈은 왠지 의문의 1패를 당한 기분이었지만, 자신의 특기를 살려 평소대로 도도한 (혹은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앉을 자리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때 뭔가 특이한 사실을 발견한 수빈은 이번엔 진짜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건 거기에 있는 신입들 중 수빈을 포함한 여자가 절반 이상 차지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그 여자들의 외모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수빈도 자신의 미모엔 한 자신하는 편 있었지만, 다른 여자들 또한 그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 때문인지 주위의 남자사원들은 하나같이 황홀한 표정으로 눈을 어디 둘 줄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다.
문뜩 수빈은 이 회사가 능력보단 외모를 보고 여직원을 채용한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수빈은 점점 이 회사의 직원 선발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둬야만 했다. 이내 회의실 앞문이 열리면서 회사 임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는 면접 때 자신을 훑어보던 걸로 인상 깊었던 젊은 남자도 있었다.
“반갑습니다. 회사를 대표해 신입사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통통하면서 인상 좋은 중년 남자가 환한 웃음과 함께 입을 열었다.
수빈은 예전에 뒤져봤던 홈페이지 속에서 CEO라고 소개된 그 남자의 사진이 생각났다.
사장은 한동안 유쾌하고 열성적으로 거창한 환영의 문구들을 마구 나열하다가 앞으로 모두가 즐거운 회사생활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로
장황한 인사를 마쳤다.
그 뒤로 간단한 임원들의 소개가 이어진 뒤, 사장과 임원들은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모두가 아까 전 들어온 문으로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신입사원들은 이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음엔 어떤 순서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회의실에 홀로 남은 젊은 남자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자, 모두 집중해주세요. 저는 여기 관리이사를 맡고 있는 이진호라고 합니다.
주로 인사관리부터 회사 내 자질구레한 일들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동안 여러분이 가장 자주 만나보게 될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말에 신입사원들은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관리이사라고 하기엔 자기들과 나이 차도 얼마 안날 정도로 너무 젊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호가 언급한 인사담당자란 직급은 마냥 가볍게 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무슨 생각 하는지 압니다. 다들 제가 어떻게 이런 자리에 있는지 궁금하시죠?
답은 간단합니다. 여기서 여러분의 재능과 실력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럼 회사는 성과만큼 여러분께 보답해 드릴 겁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제가 보증하죠.”
진호가 과연 어떤 성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원래 사장의 친인척 같은 금수저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신입들은
그저 진호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박수몰이하기 바빴다.
“그럼 환영식은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 지금부터 간단히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겠습니다.
올해는 인원이 많은 관계로 2팀으로 나눠서 진행하겠습니다. 여기부터 오른쪽은 여기 남아주시고,
다른 분들은 회사 견학 차 여기 계신 관리팀 유진나씨를 따라가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신입사원들 중 절반이 유진나를 따라 회의실을 나가자,
진호는 수빈을 포함한 남은 신입들을 보며 앞으로의 진행될 신입사원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앞으로 석 달 동안 회사 내 여러 부서들을 돌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됩니다.
일종의 인턴기간 혹은 업무적응기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여러분의 전공이나 지원 분야가 다 다르다는 건 압니다만, 우리 회사는 이 과정을 통해 여러분이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아
보다 즐겁게 일하는 게 여러분 본인과 회사에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막상 일하다 보면 아시겠지만 여러분이 생각하신 것과 실제 업무가 다른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따라서 회사에선 석 달 뒤 여러분의 의견과 회사의 판단을 모두 종합해 여러분이 일하실 부서를 정할 겁니다........”
진호의 설명이 한동안 이어지는 동안,
회의실의 따뜻한 공기에 슬슬 긴장이 풀린 수빈은 진호의 말을 자장가 삼아 명상의 영역에 돌입하기 바로 앞에서 간신히 정신 줄을 붙잡고 있었다.
다행히 그 무렵, 먼저 나섰던 그룹이 돌아왔다.
수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신입들과 함께 관리팀 유진나를 따라 회의실을 나섰다.
회사는 생각보다 큰 규모였다. 빌딩의 각 층마다 각 부서의 사무실이 빼꼭히 들어차 있었고, 그 안에서 많은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수빈과 다른 신입들은 유진나의 설명을 들으면서 각 사무실을 이동할 때마다 그들을 발견한 선배직원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면서
신입사원들을 반겨주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회사 투어를 끝낸 신입들은 이어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들고는 잠깐 휴식시간을 가진 뒤 핸드폰에 전송된 메시지에 따라 지정된 회의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간에 맞춰 회의실로 들어간 수빈은 회의실 내부를 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번 회의실은 오전에 환영회를 했던 접이식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강당 같던 공간과는 달리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커다란 길쭉한 직사각형 유리 테이블과 사무용 의자들이 놓여있는 진짜 회의실이었다.
하지만 수빈이 놀란 건 이게 다가 아니었다. 회의실 안에는 온통 여직원들뿐이었다.
이 상황에 다른 여직원들 또한 영문을 몰라 주변을 둘러보면서 조그맣게 웅성이고 있었다.
그러나 곧 진호가 들어오자 회의실 안은 아까처럼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식사 잘했나요? 다들 입에 맞으셨으면 좋을 텐데요. 그럼 오리엔테이션을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턴 우리 회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밖에서 얼핏 보는 거랑 실제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아, 물론 오전처럼 저 혼자 따분하게 떠드는 건 아니고요. 다들 훨씬 재미있는 시간이 되실 겁니다.
그럼 모두 자기 앞에 있는 VR기기를 머리에 써 주세요.”
진호는 각각 의자 앞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인 안경처럼 생긴 기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기기 앞에는 안경 알 대신 직사각형 모양의 장치가 달려 있었는데,
그걸 머리에 쓰자 갑자기 눈앞에 회사로고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하얀색 가상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수빈은 마치 자기가 진짜 그 공간 안에 들어온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느낀 건 자기만이 아닌 듯 수빈은 여기저기서 가벼운 탄성들이 나오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모두 괜찮으시죠? 어지러운 기분이나 멀미가 나는 분들은 지금 바로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이 안에 내장된 프로그램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합니다.
VR 안에서 이동이나 선택은 모두 앞에 있는 컨트롤러로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모두 준비되셨죠? 이제부터 쇼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보다 편한 분위기를 위해 일부러 남자직원들과 따로 자리를 만들었으니까
다들 마음 푹 놓으시고 편안하게 사용해 주세요.”
진호의 목소리와 함께 경쾌한 음악이 흐르더니 곧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대박이었다.
수빈은 마치 게임처럼 구성된 VR 화면 덕에 회사의 연혁이 전시된 가상 박물관을 돌아다니거나 시간상 가보지 못한 회사 내부를 둘러보고,
흥미가 가는 부서에선 발걸음을 멈추고 그곳에 있는 애니메이션 스타일의(만든 이의 취향이 드러나는) 가상 직원에게 질문을 선택하는 식으로
부서 업무를 물어보는 등 다양한 체험을 경험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기기를 벗어 제자리에 놔두시고요.......”
갑자기 영상이 멈추면서 들려오는 진호의 목소리에 수빈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기를 벗은 수빈은 곧 창문 밖으로 노을이 지기 시작한 것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벌써 퇴근시간이 다된 것 이었다.
수빈은 아쉬움 반, 안도감 반으로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