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71화 -- >
우리 일행과 클린트 매형은 베아트리스에게 맞고 날아간 아슈튼 대신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로 허둥거리면서 몇 분 동안 거북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잠시 뒤에 아슈튼 대신이 비틀비틀 일어서는 것과 동시에 소란을 우연히 들은 낸시 씨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넌, 앤디 군?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 겁니까, 아버님」
「내, 낸시……날 막지 말아다오. 나는 이놈을 죽여야 성이 풀릴 것 같으니까」
「아버님께는 무리일 것 같은데요」
「너무 주저없이 확신하는 거 아니냐!」
「10살배기 아들과 진심으로 싸워도 지시는 분이 현역 병사를 죽이는 건 불가능해 보입니다만」
「그, 그건 토니오가 워낙 강해서 그런 거고」
「지금 시점에서는 아직 평범한 수준인데요」
「아, 아니 아니, 그녀석은 틀림없이 에이스 나이트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단 말이다」
「군무를 맡으신 분이 가족이라고 해서 그렇게 무른 평가를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정말이지」
답답한 어조로 말하던 낸시 씨가 아슈튼 대신이 들고 있던 검을 빼앗아 버린다.
「앗, 돌려다오!」
「이런 장난도 이제 그만 두시지요. 아버님께서는 디아네와 힐다를 진심으로 화나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읏……그래도……」
울상짓는 수염 아저씨. 엄청 꼴불견이다.
아무리 검술을 배운다 해도 10살짜리 꼬마 정도는 쉽게 이길……수 있으려나 어떠려나. 나도 솔직히 자신은 없다.
「라이라, 안제로스……만약 내가 진짜로 칼에 맞았으면 어쩔 생각이었어?」
「호. 저런 느려터진 칼에 맞을 주인님도 아니지 않나. 용사와 마스터 나이트에게까지도 정면으로 맞선 그대가」
「만약 정말로 맞았다면 당연히 응징했겠지만, 저 분의 몸놀림을 보면 앤디가 맞을 것처럼은 안 보이던데」
……그러고 보니 나, 지금까지 다양한 녀석들을 상대로 위험한 싸움을 몇 번이나 하면서도 살아남았구나.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지만,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 했다.
「무엇보다, 아버님의 그 행동은 너무 갑작스러우셨어요. 지금까지 그가 이룩한 업적을 보면 이미 개인 수준이 아닌, 세레스타 상국이 먼저 나서서 감사해야 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만」
「허나 낸시! 이놈은 디아네와 힐다로 만족 못하고, 노르까지 덮쳤단 말이다! 게다가 지난번 코스모스에 들렀더니 거기 아가씨들도 이놈 이야기를 하더군! 내가 얼마나 부럽……아니, 화가 났는지 알기는 하느냐!」
「……또 어머님들 몰래 코스모스로 가신 건가요?」
「아, 아니, 방금 그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해 다오. 어쨌든 이대로 내버려 두면 다른 딸들까지 위험하단 말이다! 나는 아버지로서 이놈을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지금의 그 말씀으로 아버님의 신용이 땅에 떨어졌다는 걸, 어째서 모르시는 건가요……」
낸시 씨가 이마에 손을 대고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응. 역시 여자 관계가 난잡한 놈을 비난하던 사람이, 사실 그 자신도 유흥업소를 밥먹듯이 드나들었다는 게 밝혀지면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지겠지.
이 사람도 아내가 10명 넘게 있다고 했었지, 아마?
「어쨌든 아버님. 여기는 카를로스의 이름을 건 행사가 준비되는 곳입니다. 아무리 아버님이라고 하셔도 지나친 소동은 자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카를로스도 이놈을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고 했었다만!」
「네네, 그이 성격을 보면 확실히 그렇겠죠」
낸시 씨는 더 이상 어울려주지 않고, 자신을 따라온 메이드더러 아슈튼 대신을 끌고 가게 해 버렸다.
「이거 미안하군. 아버님도 평소에는 저러지 않으시던 분이다만……」
「하아, 그런가요?」
「디아네도 그렇지만, 노르도 특히 천재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어서……가문의 자랑거리이긴 하지만 부모의 보살핌이 별로 필요하지는 않은 아이였지. 그리고 가족 사랑이 지극한 아이이기도 하고. 그런 그 아이까지 앤디 군에게 빠져 버린 것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실 거야」
「으, 으-응……물론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눈먼 칼에 맞아죽고 싶지는 않네요」
그렇달까 노르 씨가 그렇게나 내게 집착했던가? 아니, 밧슨까지 쫓아온 걸 보면 충분히 그렇게 보이려나.
「그래서 오늘 여기에는 어떤 일로 왔나? 정령제를 즐기러 온 건가?」
「아, 그게 말이죠……」
일단 마약 환자였떤 여성들을 소개하면서, 그 경위를 설명한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낸시 씨가, 그녀들을 품평했다.
「여자 혼자 상인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아니면 적당한 곳으로 시집보내는 걸 전제로 일을 시킨다라…… 그 정도는 딱히 대단한 부담도 아니니, 우리가 맡아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그녀들을 계속 치료하고 사회 복귀를 지원해 줄 수 있는가 여부는 확답해 줄 수 없어」
「아무리 오닉스라도, 말인가요?」
「나름 여유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어디까지나 상인이다. 그저 마약 상인에게 납치당했다는 이유로 찾아온 사람을 무작정 책임질 수 없어. 일에 열의를 갖고 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뭐, 그것도 그러네요」
우리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그녀들은 평생을 마약에 중독된 노예로 살아가야만 했겠지. 뿐만 아니라 납치당한 시점에서 이미 돌아가는 고향도 친척도 없는 여자들이 많았다. 살아가려면 일을 반드시 해야만 하니, 그녀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우리로서는 그녀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해줘야 했다.
하지만, 그것과 실제로 그녀들이 일에 대한 적성이나 의지가 있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모든 여성들이 성실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일이 적성에 안 맞는 여자들도 있을 테고.
그걸 확인한 것도 아니고, 그저 「마약 상인 라비네스의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데려와서는, 돌봐달라고 부탁받는 측도 「물론 얼마든지 데려오라고―」는 할 수 없다.
모두 몇 명이나 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거대 상사라도, 수천까지는 아니겠지만 다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마약 환자의 치료 및 재활을 끝까지 보장하는 건 여려울 테니까.
「라비네스를 해치웠을 때에는,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슨 것이야말로 사람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역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두고 움직여야 했었나 봐요」
「디아네가 계획 없이 움직일 리는 없으니까, 앞서 들은 바에 따르면 디아네에게 나름대로 생각한 게 있어서 앤디 군에게 맡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만」
「역시 디아네 씨 없이 움직인 건 경솔했구나……」
「뭐, 이 정도 수라면 가문에서 어떻게든 지원할 수 있는 규모군. 일단 여기로 온 사람들만큼은 우리가 돌봐주도록 하지」
낸시 씨가 보증해주자,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령제 쪽은 어떻게 하겠나? 이번에도 노르가 춤추게 되었지. 예정상 내일 안으로는 탈크에 도착할 테지만……만약 너희들이 기다리지 않고 이대로 떠나 버린다면, 그녀석도 무척 아쉬워할 것 같다만」
「이, 이대로 떠날 리가 없잖습니까. 염치가 있는데」
「그거 다행이군」
낸시 씨가 빙긋 웃으면서, 어느새 주변으로 모여든 메이드들에게 방을 준비하라고 지시한다.
「정령제까지 탈크를 천천히 즐기도록. 뭣하면 여기서 1년 정도 머물러도 괜찮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이래뵈도 진심인데」
낸시 씨가 어깨를 움츠린다.
하지만, 솔직히 아슈튼 대신이나 카를로스 씨가 있는 저택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면 위에 구멍이 뚫려 버릴 것 같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응접실은 방도 넓고 앞뜰도 있는 데다, 한창 축제 준비로 소란스러운 거리와 축제 회장에서 떨어진 곳에 있어서, 정말 지내기 좋은 방이었다.
「렌 네스트나 헬리콘의 저택도 상당히 훌륭했지만, 그래도 여기가 가장 훌륭한 것 같아요」
「나야 여기가 친가니까 당연히 편하지만요―. 애물단지 취급받으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곳보다, 훨씬 쾌적해☆」
잘 준비를 마친 다음, 속옷 차임으로 편히 누워 있는 글로리아 씨와 힐다 씨.
덧붙여서 내게는 다른 방이 주어졌지만, 곧바로 힐다 씨가 「그는 내 방에서 잘 거야!」라고 말하면서 나를 납치해 버렸다.
다른 여자들도 각자에게 주어진 방으로 흩어졌고, 오늘은 이미 밤도 깊어졌고, 낮에 헬리콘에서 섹스를 실컷 즐겼으므로, 슬슬 자자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다크 엘프의 저택에서, 나 같은 흰색 엘프가 이런 훌륭한 대접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다크 엘프도 흰색 엘프를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아닌데? 물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응―……뭐, 그것도 그럴려나」
「실은 흰색 엘프가 지나치게 배타적인 거에용. 드워프도 인간도 수인도 오거도 모두 싫어하니까」
「꼭 그런 건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네. 뭐, 적어도 인간과는 적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싶어」
「이전의 삼림령이나 북방 숲의 정세를 보면, 인간과의 사이도 좋다고는 할 수 없답니다아. 다크 엘프야 수천 년 동안 사이 좋게 지내왔으니까, 얘기가 다르지만☆」
「흐응―……하지만 평균적으로 10배나 오래 사는 장수종이 단명종의 시간 감각에 맞추는 것도 조금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드는데」
글로리아 씨는, 엘프 사회로부터 쫓겨난 지금도, 엘프다운 편견을 아직까지 갖고 있는 듯하다.
「시간 감각이 그렇게까지 다른가요?」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너야 인간이니 별로 실감이 안 날지도 모르지만, 자신보다 10분의 1정도의 시간 동안만 살다가 죽는 상대와 같은 시간 감각으로 살아간다고 한 번 상상해 보렴. 인간은 태어난 지 40년 정도가 지나면 쇠약해지고, 70년 정도가 지나면 죽잖아? 그걸 다시 10으로 나눈 다음……그렇게 짧게 사는 종족과 친구가 되거나 함께 일하거나 섹스하거나 등등. 신경 써야할 게 너무 많다는 생각 안 들어?」
「……에-그러니까」
즉 작년 초에 태어났던 아이가 올해 연말에는 어른이 된다는 느낌이려나. ……아니 잠깐, 엘프도 성인이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인간과 비슷하잖아.
일단 그건 제쳐두고.
올해 태어나서 겨우 말하게 되고 움직일 수 있게 된 녀석이, 내후년에는 이제 자기도 나이를 먹었다고 말하고, 그로부터 2년 뒤에는 허리가 구부러지기 시작한다. 그 다음, 다음 다음 해에는 늙어서 죽는, 거려나.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만……」
「엘프가 인간과 함께 사는 건, 그런 시간 감각에 맞춰서 바쁘게 생활하는 것. 네가 1개월 걸려서 하는 일을 3일 만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 하루 정도는 느긋하게 쉬고 싶은 데도, 휴식은 겨우 1시간이나 2시간 뿐, 친구나 동료인 단명종은 벌써 다음 일을 시작하고 있지.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야 되는 거야」
「……그 정도인가요?」
「물론 엘프도 그렇게까지 미련한 종족은 아니니까,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엘프들은 엘프 나름대로의 시간 감각으로, 사물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을 지향하는 편이고……이건 숲을 이루는 나무들의 성장 속도와 조화된 합치한 삶의 방식이기도 해. 지나치게 느긋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울창해지는 숲과 보조를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엘프의 숙원이라는 측면도 있어」
「……정말 장대한 이야기네」
잘은 설명할 수 없지만, 엘프 같은 장수종들은 우리들 단명종과는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한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드래곤이,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는 것처럼.
엘프는, 역시 내가 속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물이다.
하지만.
「그래서 글로리아 씨는, 그런 엘프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단명종과 사귀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
「그야 물론 엘프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바쁠지도 모르고, 조금은 느긋하게 살아도 괜찮을 지도 모르지. ……이런 우리들과 엘프들이 같은 시간 감각으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글로리아 씨가 당황한다.
씨족에서 파문당한 그녀는, 이제 엘프로서는 「정도(正道)」인 삶의 방식을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까.
그리고, 힐다 씨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옹. ……자신이 오래 산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무시해야 하는 건 아니지. 오히려 나는, 같은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즐기고 싶어. 함께 웃고 울면서 서로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절대로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아」
「……그건, 그럴지도」
「그러니까」
힐다 씨가 나를 바라보면서 살짝 웃는다.
「사양말고, 사랑을 나눠요☆」
「결국 결론은 그겁니까!」
「앤디 군, 당신은 큰 착각을 하고 있어요」
힐다 씨가 다리를 들어올리고, 속옷을 스르륵 벗으면서 당당하고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앤디 군과 함께 있게 되면, 어떻게 하면 섹스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있답니다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어요!」
「에―. 기뻐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엥」
……뭐, 싫은 건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