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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50화 (50/100)

< -- 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50화 -- >

아침이 되자, 나가기 전에 힐다 씨에게 볼튼 할아버지의 눈을 진찰해달라고 부탁했다. 

언젠가 여기에 또 오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가, 볼튼 할아버지는 큰 여관의 주인이므로, 가장 신세 지기 쉬운 상대다.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은혜를 미리 입혀둬서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것도 삶의 지혜 중 하나니까.

뭐, 눈의 질환을 치료해 준 것으로 감당할 수 있는 도움……정도가 한계겠지만.

「할아버지-, 혹시 젊었을 적에 대장장이였니?」

「할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이래뵈도 아직 150이니까. ……그래, 한때는 대장장이였었지. 재능이 없어서 관두긴 했지만」

「그때 받은 눈 안쪽의 대미지가 천천히 퍼지는 듯한 느낌이야. 게다가 많이 탁해져 있기도 하네……눈 자체가 약해져 버린 부분도 있고」

「나을 수 있는 건지 없는 건지나 빨리 말해다오」

「그야 낫기는 하겠지만, 나이에 의한 쇠약은 완전히 치료할 수 없어요. 여유가 있다면 폴카에 가서 영천으로 치료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폴카의 영천이라면, 꽤나 옛날에 소문으로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군. 어떤 병이든 상처든 낫게 한다던가. 그게 사실이라면 의사도 필요없을 것 같은데」

「사실이랍니다. 뭐 가는 도중에 큰 산맥을 넘어야되서 찾아가기 어려운 장소라는 게 가장 큰 단점이지만」

「……그게 정말인가? 눈도 고칠 수 있다고?」

「물론이양? 팔이든 다리든 머리든, 심지어 심장이든 자지든, 뭐든지 평소의 건강했던 그 무렵으로 되돌려주는 기적의 샘이니까☆」

「뭐야, 당신 거기 간 적이 있나? 폴카는 다른 종족들에 대한 차별이 심한 트롯에서도 오지(奧地)라고 들었는데, 다크 엘프도 부담없이 갈 수 있는 곳일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게 말이지―. 사실 난 이미 거기에 살고 있걸랑―☆」

힐다 씨는 가벼운 분위기로 볼튼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눈을 진단한 다음, 「약 5분 정도 눈이 보이지 않게 되지만 신경쓰지 말아줘―」라고 말하면서 뭔가 마법을 걸었다. 환영을 응용해서 감각을 차단시키는 마취 같은 걸까.

「미, 믿어도 되는 거냐? 이대로 아예 안 보이는 건 아니지?」

「정말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니까요? 다 큰 어른이 칠칠치 못하네에―☆」

「그, 그래도 그게……나, 지금 눈 뜨고 있는데?」

「눈을 감게 해도 자기도 모르게 뜰 수 있으니까 그냥 보이지 않게 한 거야. 자, 이제 입도 움직이면 안 돼요오―」

「웁」

옆에서 조수를 맡은 테테스가 볼튼 할아버지의 머리와 턱을 누른다. 이걸로 이제 말도 할 수 없다.

그 사이에 힐다 씨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근처의 허공을 어루만지듯이 주문을 빠르게 건 다음, 다른 마법도 차례대로 걸어간다.

「……네, 치료 끝. 이제 밤에도 책을 읽을 수 정도로 편해질 거야―」

「진짜로?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다시 보인대도. 드워프 주제에 참 성급하네에」

「누가 성급하다는 거냐? 나를 광산에서 죽어라 땅만 파는, 사투리 심한 시골 드워프와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난 이래뵈도 도시파라서 훨씬 세련……오,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낮에는 느긋하게 자다가 밤에만 손님을 받는 여관의 주인이 그런 말을 하니까 영 믿음이 안 가네」

볼튼 할아버지는 잠시 동안 눈을 크게 뜬 채로, 뭔가를 잡으려는듯이 허공에다 손을 휘젓고 있었지만, 어느 시점부터 시야가 또렷해졌는지, 움직임이 갑자기 명확해진다.

「오……오, 오오, 정말 잘 보인다……이거 굉장하군. 안경을 안 썼는데도, 시야가 너무 깨끗해」

「지금은 그렇겠지만, 1, 2년 정도 지나면 다시 잘 안 보이기 시작할 거에용. 나이를 먹을수록 초점을 맞춰 주는 눈의 근육이 약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런가. 이거 나이 먹는 게 싫어지는구만……」

기쁨도 잠시, 진저리치듯이 중얼거리는 노인에게, 힐다 씨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폴카로 오면 돼요―. 거기라면 이런 노쇠 정도는 쉽게 회복되니까요☆」

「……당신 정도의 실력이면, 그냥 왕진하기만 해도, 돈을 얼마든지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비록 이 도시가 인간 이외의 종족에게는 차갑긴 하지만, 당신 같은 솜씨 좋은 의사는 기꺼이 받아들일 거다」

「그런 푼돈 따위는 이제 관심 없답니다. 지금의 나는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사는 여자니까☆」

사람을 멋지게 치료한 다음 이런 말을 하는 그녀가 너무나도 근사해 보였지만, 그 상대인 나와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걸 생각하면 몹시 거북해진다.

물론 그런 속사정을 모르는 볼튼 할아버지는, 손바닥을 내려다보면서 호기심이 생긴 것처럼 중얼거린다.

「폴카라……젊었을 적에는 건강했으니까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뭘 해도 힘들어지는 지금에 와서는, 그런 이야기에도 흥미가 생기는군」

「지금은 세레스타 사람도 가기 쉬워졌으니까, 만약 가고 싶어질 경우 오닉스 상사(商會)의 관계자에게 이야기하면 절차를 밟아 줄 거에요☆」

「오닉스……? 아, 이 근처에서는 별로 잘 나가지 않는 상사니까, 나중에 따로 아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되겠군. 당신, 거기 관계자인가?」

「우리 오빠가 거기 회장이거든. 이전부터, 폴카와 그 너머에 있는 북방 엘프령과의 교역을 늘린다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시키고 있으니까, 그 교역 상단에 껴서 갈 수 있을 거에용」

「호오, 오닉스의 총수의 가족이란 말인가. 그렇다면야……」

볼튼 할아버지가 옷매무새와 앉은 자세를 바로 한다.

그런 할아버지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던 글로리아 씨가, 어깨를 움츠리면서 나를 곁눈질한다.

「오닉스라는 이름이, 볼튼에게는 가장 잘 통하는 것 같네……사실 이 집단에는, 그거만 있는 게 아니지만」

「일을 까다롭게 만들고 싶지는 않으니까 거기까지……」

나는 입술에 손가락을 세운다. 그러자 글로리아 씨가 짖궂게 웃는다.

벡카 특무백인장과 바우즈가 인솔하는 전 마약 환자들은, 딱히 별다른 문제 없이 도시 대로변에 위치한 여관을 숙소로 잡은 것 같다.

라이라와 바우즈가 멀리 떨어진 거리를 무시무시한 청각을 통해서 대화할 수 있었던 덕분에(도시 반대쪽에서 보통 목소리로 말한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꽤나 수월하게 합류할 수 있었다.

벡카 특무백인장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숨.

「이 도시의 특수한 사정은 워낙 유명하니까, 너희들 중 누군가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유감스럽게도 동부 출신이거나 여기에 머무른 적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일단 라이라가 잠시 머물렀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100년 전이었기도 하고…….

「벡카 특무백인장은 국내 한정으로는 진짜 모르는 게 없는 것 같네요」

「첩보 여단의 임무 중 절반이 국내 내탐(內偵:남모르게 살펴봄)이니까. 하나로 굳건하게 단결되지 않은 나라라는 것도 참 큰일이지」

「설마 이 근처에도 잠입한 적이 있나요?」

「북방 군단 사령부라고 하면 일단 듣기는 좋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직(閑職)에 불과해. 도련님 출신 장군 후보생들이 사관학교 대신 모이는 곳이지. 하지만 사람이 한가해지면 잡생각이 많아져서, 무슨 짓을 꾸밀 지 알 수 없으니까」

세레스타의 북부 국방을 책임지는 북부 군단 북쪽에는 트롯 군단이 있으며, 트롯 군단은 혹시 모를 반란이나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트롯인 부대를 포함한 정예 부대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보다 남쪽에 있는 북방 군단은 딱히 위협 요소가 없는 비교적 안전한 군단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건 파랑뱀산맥으로 가로막혀서 적의 대규모 침공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동방 군단도 마찬가지.

그 때문에, 지휘 및 전략을 배우는 장군 후보생은, 즉시 전력으로 써먹을 수 있는 전망이 있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해적이나 남부 대평원으로부터의 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남방 군단이나 아피룸의 침공을 대비해야 하는 서방 군단으로 가게 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북방이나 동방 군단에 배치되서 경력을 쌓게 된다.

하지만, 뭔가 지방 파벌이나 종족 주의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있는 게 세레스타군의 약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젊은 장군 후보를 중심으로 이상한 사상을 가진 집단이 형성되서, 중앙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소홀히 하……는 건, 유감스럽지만 별로 드문 이야기도 아……닌 듯하다.

그 정도는 말단 병사, 그것도 특수 부대로서 디아네 씨의 지휘를 받던 우리들 크로스보우대에게는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였지만.

「몇번이고 그런 도련님들을 상대로 명탐정 흉내를 내는 꼴이 되어 버렸지. 사관 교육을 받는 장군 후보들은 보통 대상인의 일족인 경우가 많거든. 그래서 확 죽여 버릴 수도 없는 데다가, 정작 때가 되면 돈으로 매수하려든다거나 등등, 정말 성가시기 짝이 없었어」

「……그거 정말 안됐네요」

「저런 임무는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앞으로 더 이상 전선에서 날뛸 수 있는 나이가 아니게 되면, 저런 일만 주로 하게 되어 버리는 걸까. 아, 싫다 싫어」

벡카 특무백인장이 고개를 절래절래 가로젓는다.

그때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던 바우즈가 끼어들어왔다.

「잡담은 그 정도로 해 두고,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이쪽 여자들이야 천천히 관광시켜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대의 암컷 노예들은 이 도시의 분위기가 거북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곧 나갈 거라면 이쪽도 준비시키도록 하겠다」

「아……으-응」

내가 제멋대로 데려와 버렸으니까, 그쪽 여성들에게도 다소 정도는 관광할 기회를 줘야겠지?

사실 우리들도 아인종들이 모여 사는 거리 쪽에 있으면 딱히 곤란한 건 아니니까, 그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쩌지……」

내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아이리나가 슥 앞으로 나왔다.

「그럼, 그쪽 아가씨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어서 도시를 돌아다니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어딘가 답답함을 느끼는 아가씨가 많은 듯 하다. 같은 인간을 상대로 공격적인 사람은 딱히 없었지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더군」

「분위기라……흠」

내 눈에 보이는 하모니움의 분위기는 따뜻하고도 부드러웠으며, 딱히 답답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쿠라베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고, 길도 모두 드넓었으며, 도시 중심부의 완만한 언덕에 설치된 북방 군단 사령부 주변으로 계단식 밭처럼 조성된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으므로, 딱히 치안이 나쁜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는다.

「너무 통제되어 있군」

아이리나가 입가를 가리면서 쓴웃음을 짓는다.

「너무 통제되어 있다니?」

「마을의 분위기가 지나칠 정도로 가라앉은 것 같지 않나? 다른 종족들이 모여 사는 뒷골목에서 느껴지던 활기를 저쪽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으니 말일세. ……군이 도시를 강하게 위압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아―, 그건 그런 이유도 있지만……이 근처를 주름잡은 녀석들의 짓이기도 해」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글로리아 씨가 입을 열었다.

벡카 특무백인장이 내게 입모양으로 「이 사람은 누구?」 라고 물어와서, 나는 가볍게 소개.

「이쪽은 다른 종족들이 모여 사는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글로리아 씨입니다. 하늘색 씨족의 파문자이기도 하지요」

글로리아 씨는 「파문자」라는 말을 듣자 귀를 움찔거렸지만, 별다른 반응 없이 말을 이었다.

「스프링스 상사 녀석들이 압도적인 자금과 세력으로 여기를 지배하고 있어. 이 도시의 모든 가게도 서비스도 그 자금의 흐름을 역추적해보면 거의 전부 거기로 모이게 되지」

「……뒷세계의 지배자란 말인가」

「여기서 살아가고 싶으면, 반드시 녀석들에게 무릎을 꿇고 복종해야만 해. 군은 별개로 치고 말이지. ……행정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석들에게, 약점을 잡힌 채로 살아가는 건,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정말 괴로운 일일 뿐이야」

「그렇군……」

세레스타 안에서 인간족 세력의 거대 거점 중 하나인 하모니움.

그렇다면 당연히, 상업을 으뜸으로 여기는 세레스타이니만큼 대상인이 나타나게 된다.

탈크에서는 오닉스 상사가 가장 큰 세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상사들의 상호 경쟁을 통해서 활기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단 하나의 세력이 모든 걸 독점하고 있다.

좋게든 나쁘게든, 경쟁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서로를 비판하게 된다. 물론 서로를 깎아내리기 위해 소모적인 비난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자정과 개혁을 촉진시킨다.

반대로 말하면,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보다 뛰어난 것으로 바뀔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고, 자정도 개혁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도 그 자리에 멈춰 버린다. 현재 상태를 유지할 뿐 보다 위로는 올라갈 수 없게 된다.

「과연, 그렇다면야 가슴이 답답……한 것도 당연하겠군」

「시골뜨기라면 몰라도, 활기가 넘치는 곳에 익숙해진 녀석에게는 별로 재미없는 분위기일 거야」

글로리아 씨가 손을 가볍게 펼친다.

「한 번 이렇게 된 이후로는 변화의 계기가 될 만한 '바람구멍'도 거의 뚫리지 않았지. ……여기에는, 지금에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놈들밖에 없어」

「글로리아 씨도?」

「글쎄 그건 어떨까나. ……많이 튀는 녀석으로 대우받긴 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여기에는 파문자라고 해서 그 이상으로 추궁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도 하고」

「…………」

어딘가.

무뚝뚝하게, 자조하듯이, 잘라 버리듯이 말하는 그녀의 말에는, 비애가 담겨 있었다.

그녀에게 '파문'이라는 과거는,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 이상 동정받는 건……그녀도 바라지 않겠지.

실제로, 파문당해서 쫓겨난 엘프가, 그 이상의 행복 같은 건 바라기 어려웠을 거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왠지 모르게 느끼고 있는 건 쓸데없는 감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녀는 모든 걸 각오하고서, 다른 사람이 닿지 않는 위치에 서 있다.

도움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거기에 서 있는 그녀에게 어거지로 손을 뻗어서 닿는다 해도, 그게 그녀를 「돕는」 건 아니다.

「그렇군. ……하지만, 슬슬 질리지 않아요?」

「응……?」

「여기가 이렇게 안정되어 버려서, 지금 같은 경직된 일상밖에 없다면. 지금의 이 도시처럼 죽은 분위기에서만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한다면. ……슬슬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나요, 글로리아 씨?」

「……그것도 그러네. 머릿속으로만 고민하는 것도 질리던 참이었으니까. 그래도 내게는 여기가……」

「그럼 함께 여러가지를 보러 가요」

나는, 글로리아 씨의 눈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리는 그림이 좋아요. 당신이 답답한 곳에서 부자유스럽게 갇혀 있다면, 신선하고도 맛있는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꽤 억지스럽네. 한 번 범하면서, 정이라도 든 거야?」

「물론 그것도 있고」

나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당신과의 섹스가 너무 기분 좋아서, 이대로 놓치는 게 너무 아깝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요」

「그럼 순서를 기다려야지」

「다른 놈들은 몇 개월 정도 기다리게 하죠 뭐」

「……이봐 이봐」

「우리들은 지금부터 다양한 장소로 갈 겁니다. 드래곤의 날개를 타고, 틀림없이 이 도시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그런 곳으로 갈 거에요. 그걸 본 당신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보고 싶습니다」

「……설득할 거라면, 좀 더 여자를 설레게 만드는 말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사실 난, 내가 직접 여자를 떨어뜨린 적은 별로 없거든요. ……그래도 나는, 당신이 이 비좁은 세계에 숨어 살아야만 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몇 개월만이라도, 내게 시간을 줘요. 나와 함께 가 줘요. 그래도 여기로 돌아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다시 돌려보내겠습니다. 약속하죠」

「……하아, 이런이런.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나이로구나」

글로리아 씨가 쓴웃음을 짓는다.

「……좋아. 확실히……여기서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면서 지낸다 해도, 뭐가 어떻게 바뀌는 건 아니니까. 잠깐 휴가를 즐긴다는 느낌으로 따라가볼까나」

내가 지금에 만족한 그녀에게 손을 뻗는 건,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손에 넣고」 싶어서 손을 뻗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걸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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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일이 없는 한 2~3일에 한 편 씩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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