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39화 -- >
오후에는 밧슨으로 나왔다.
걸어가면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도, 드래곤을 타고 가니 겨우 몇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너무 게을러지는 것도 안 좋을 것 같은데……체력 단련을 겸해서 뛰어오는 게 좋았으려나」
「그런 걸 걱정할 필요가 있나? 디아네씨가 남은 일을 모두 끝내고 나면, 어차피 퇴역할 거 아니었어?」
안제로스가 한 말을 들으니, 그것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래도 말이지. 이미 군부도 내가 드래곤을 거느리고 있다(디아네씨가 어느 정도 적당히 무마해준다고는 해도)는 사실을 알고 있고 드래곤을 이용하기 위해서 특무대라는 특수 부대까지 창설했는데, 그리 쉽게 놓아줄 지도 의문이라서 말이지.
「그만두고 싶어도 군단 사령부 레벨이나 아슈톤 대신이 반대할 게 뻔하니까, 우왕좌왕하다가 퇴역도 못하고 계속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서……」
「라이더나 되는 분이, 그런 억지를 계속 감당해야만 하는 겁니까?」
「저기 말야 에마. 라이더로서의 권력은 가능한 한 아껴둬야 평온하게 살 수 있어. 진심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갑자기 오버 나이트 같은 걸 보내서 죽이려들 지도 모르니까」
「……?」
「아, 그렇지. 에마는 그 사람들을 못 봤겠구나……」
아마츠시마 장군도 같은 인간이 맞나 의심스럽지만, 「포학의 아넷트」와 맞먹을 정도의 최강 클래스 일렉콘인 「번개의 오버 나이트」 빈센트 장군의 공격은, 일단 맞추기만 한다면 드래곤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 칼윈의 전투에서 보나파르트 아저씨와 디아네 씨의 용맹이 워낙 인상적이라서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는 못했지만, 틀림없이 그 사람도 용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하다.
「그렇다 해도 땅을 기어다니는 존재이니, 진심으로 두려워할 만한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진짜로 대단하다니까. 날아서 도망쳐도 번개를 맞혀서 떨어뜨릴 것 같았거든」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 자의 번개는, 지상에서 벗어나면 그 위력이 크게 줄어드니까」
「……에, 그래?」
꼬마 라이라가 한 말을 듣고 살짝 놀랐다. 그런 약점이 있었구나.
「뭐,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얕볼 만한 상대도 아니지만. 허나, 설령 국가의 고관이 억지를 강요한다 해도, 디아네가 그런 무리한 요구는 알아서 막아 줄 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으, 응……」
「앤디는 군을 그만두는 게 무서운 거야?」
「그, 그럴 리가……어, 없잖아?」
안제로스에게 정곡을 찔리자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사실, 군에서 퇴역하는 게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으니까.
한 사람 몫의 직공이 되기 전에 병사가 되어 버렸고, 어른이 된 이후에는 계속 군인으로서 별다른 걱정 없이 살아왔다. 군인으로서의 일을 주업으로 삼고, 직공으로서의 일은 여가 겸 부업으로 했던 덕분에, 육체도 정신도 피폐해지지 않은 채로 나름 즐겁게 살 수 있었다……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딱히 군에 남아 있을 필요 없이 퇴역해서 직공으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 아닌가……라고 할 지도 모르지만. 사실, 모두 그걸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백수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 응.
그건 사람으로서의 소중한 부분을 내팽개쳐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그리고, 드래곤 라이더라는 지위를 내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건 그것대로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그런 지위에 전념해서 대국을 움직일 만한 그릇도 아니고.
모두 떠받들어 주기는 하지만, 나는 드래곤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드래곤이 도와준다면야 매우 고마……울 듯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은 생각도 못할 없는 선택지를 갖고 있을 뿐이니까.
아무리 지금까지는 일이 잘 풀렸다 해도, 거기에 도취해서 드래곤에게 명령하는 것을 본업으로 삼는 것은, 역시 크나큰 착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직공으로서 확실하게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르다.
앞으로 폴카를 본거지로 삼게 된 이상, 군에 계속 남아 있는 것도 슬슬 무리고, 드래곤 라이더라는 지위는 어디까지나 직공이라는 본업 아래에 위치해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그야 편한……것도 사실이지……물론 훈련이나 전투가 있으면 참여해야 하긴 하지만, 평소에는 군인이 맞는지 정말 자유로운 편인 데다가……동료들은 모두 좋은 녀석들 뿐이고, 아무런 생각 없이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그냥 수행하기만 해도 되니까」
「그렇다 해도, 언제까지 계속 군에 남아 있는 건 무리야. 세레스타 상층부는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니까. 이미 너는, 아무 생각 없이 나라에 몸을 맡길 만한 입장이 아냐. 지금 당장이라도, 수상하거나 믿을 수 없는 놈이라고 인식……되면, 곧바로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지」
세레스타의 최종적인 결정권은 상왕이라고 불리는 국가 원수가 갖고 있지만, 그건 타국의 왕과는 달리, 10년마다 한 번씩 다시 선출되는 대표자에 불과하다.
그 자리를 교대로 맡으면서, 권력 다툼을 활발하게 벌이던 세력들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지금까지야 디아네 씨와 아슈톤 대신이 대신 잘 막아줬지만, 그 사정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계속 세레스타군 소속으로 남아 있어도, 언젠가는 그 이외의 세력도 내게 반드시 공작을 걸어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엘프령과 남작의 후원을 받으면서 폴카에 정착할 경우, 그런 대국들이 공작을 걸어올 가능성은 드래곤들을 거느린 채로 여기에 군인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훨씬 낮아진다.
드래곤을 이동 수단으로 쓰지 않는 한, 폴카에 대한 물리적 거리는 두꺼운 성벽과 맞먹을 정도의 방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
「수행이라면, 쟌느의 할아버지나 엘프의 대장장이 등등, 지금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도 충분하지 않을까나?」
「으-응……글쎄, 스리드 공방에서의 수행도 완전히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저런 다른 수행을 하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도 들어서 말이야」
내가 팔짱을 낀 채로 말하자, 마차 뒷좌석에 있던 아이리나가 부채로 찰싹 때렸다.
「까불지 말게나. 그대가 존경하는 그 하프 오거 직공도, 상대가 누구든 열심히 배우면서 노력하고 있지 않나. 어쨌든 일단 실력을 먼저 기르는 것이 먼저라네」
「그, 그것도 그러네」
내게는 너무 사치스러운 말이었구나.
밧슨에 도착하자, 암컷 노예들이 각각 무리를 지어서 관광에 나선다.
여기가 근거지였던 건 그리 옛 일도 아니지만, 다양한 가게들이 그대로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반가워진다.
아이리나는 안제로스와 페넬을 거느린 채로 여기저기 열린 노점을 돌아다니고 있고, 오로라와 알메이다는 고서점(古書店)으로 함께 들어갔다. 테테스는 샤론과 함께 과자 가게 앞에 못박혀 있고, 네이아는 튀김 가게 앞에서 행복해보이는 표정으로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요리가 끝나면 그대로 사서 먹을 생각일까.
「보이드 군 발견―! 아-아-아-아 이런 곳에서 만난 것도 우연인데 관광 안내 좀 부탁해도 될까요?」
「켁, 나리스 씨……」
「지금 「켁」이라고 했나요?」
「기, 기분 탓일 겁니다! 사, 사실 저 지금 산에 사냥하러 가던 중이었거든요」
「사냥!? 활로요!? 좋아, 그거 잘 됐네, 어-이 루나 쨩! 보이드 군이 사냥하러 간대요!」
「나도 간다」
「아, 아니, 방금은 관광 안내를 부탁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
「지겹지만 않으면 뭐든 상관없어요」
「응」
나리스와 루나가 보이드를 찾아내서는 질질 끌고 간다.
일단 못 본 걸로 하자.
「라이라들은 어떻게 할 거야?」
「나는 한 잔 하러 가지. 힐다여, 어떤가」
「응―, 낮부터 마시는 건 조금 보기 안 좋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땡기네에―☆」
「말은 그래도 즐거워 보인다만」
라이라와 힐다 씨는 술집으로 가고 있다. 뭐, 라이라가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괜찮겠지.
그리고 마이아와 에마는.
「나는 여기에 남겠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그쪽으로 간다」
「저,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길모퉁이에 진을 치고 혹시 암컷 노예들에게 손대는 놈이 없나 경계하려는 것 같다. 뭐 평범한 남자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강자들뿐이니까,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삼삼 오오 흩어져 가는 그녀들을 배웅하고, 나도 잠깐 걸으면서 뭘 할지 고민하던 차에.
「…………」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베아트리스가 눈에 띄었다.
……아, 그러고 보니 네이아가 먹을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구나. 여기 사람들과는 말이 안 통하니만큼 네이아나 테테스나 나리스에게 붙어다녀야 하지만, 그건 왠지 내키지 않았나 보다.
「베아트리스」
「……응」
「뭔가, 하고 싶은 거 없어?」
……내가 묻긴 했지만 정말 애매모호한 질문이군.
무엇보다도, 베아트리스는 이 마을에 무엇이 있는지……아니, 그 이전에 세레스타의 마을이 보통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모를 테니까.
어느 정도는 지식이 있어야 「이런 장소는 없나」 「이런 걸 보고 싶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외떨어진 나라와 초 시골인 폴카밖에 모르는 베아트리스에게, 이런 지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일단 대충 돌아볼까? 응, 그게 좋겠군」
나는 억지로 그렇게 결정하고는, 베아트리스의 손을 잡아당겼다.
베아트리스는 순간 「아……」 작은 신음 소리를 냈지만 굳이 거부하지는 않고, 내게 손을 이끌려서 걷기 시작했다.
밧슨의 관광 안내라.
……그럼, 어떤 곳을 보여주는 것이 좋으려나.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합승 마차가 천천히 오고가고, 마을 여기저기서 상인들이 큰 목소리로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밧슨은 원래부터 활기가 넘치는 마을이었고, 트롯과의 교역 거점이니만큼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겠지.
그런 밧슨의 번화가는 그저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고, 내가 없는 동안 늘어난 가게도 눈에 띄었으며, 또 트롯에 비해 다른 종족들이 훨씬 많은 것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3인조 오거 젊은이와 수인 아이들, 리자드맨 상인과 다크 엘프 여행자. 모험가인지 큰 짐을 짊어진 드워프도 있다.
이렇게나 다양한 종족들이 이 정도로 완전히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은, 세레스타 이외의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 사이를 스쳐지나가듯이 걸어가면서, 어때, 재미있지? 라는 듯한 눈빛으로 베아트리스를 바라봤지만, 베아트리스는 주위 모습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자기 손을 잡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따라올 뿐.
……이거, 뭐랄까……곤란하네.
어떻게 된 걸까 생각하면서 북적이는 거리를 빠져나온 다음, 골목에서 한숨 돌리면서 베아트리스를 다시 바라본다.
베아트리스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내가 손을 놓아 주려고 하자 당황하면서 되려 꼬옥 붙잡고는, 얼굴을 살짝 붉힌다.
「……저기」
「응?」
내 귓가에 입술을 갖다댄다.
딱히 그렇게까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도, 베아트리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 귓속말을 들어보니.
「……아빠. ……저기……또 내 자궁에, 아빠의 자지를 넣어줬으면 좋겠어요……」
「!?」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달까,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베아트리스는 얼굴을 한층 더 붉히면서.
「……두, 둘만이서……상냥하게, 범해 주세요」
「자, 잠깐……지금, 무슨 말을」
「……우―」
베아트리스가 신음 소리를 내고는, 내 손을 삐걱거릴 정도로 억세게 움켜쥔다.
「……이, 이렇게 말하면……해, 주는 거, 아니었어?」
「……아, 아아―」
에, 그게-그러니까, 그건 말이지.
……어젯밤만의 설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마, 마을 구경 같은 거……안 해도 괜찮은 거야?」
「……하고 싶은 게 있냐고 물어봤잖아」
「……에, 그걸……하고 싶은 거야?」
「몇번씩이나 말하게 할 생각인데……」
라고 투덜거리는 베아트리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그녀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워졌다.
한낮의 골목 안.
……하지만 지금은, 환영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알았어, 그럼 ……그래, 저기가 좋겠군」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눈에 띈 것은……러브호텔.
지금까지의 내 화려한 섹스 편력을 생각하면 별로 내키지 않는 시설이지만, 이렇게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로, 부끄러움을 참으면서도 섹스해달라고 하는 베아트리스를 데리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니까……왠지, 묘하게 흥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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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을 넘어서 충격과 공포로 가득했던 2016 丙申년도 어느새 다 끝나가는군요.
지금보다 더 아래가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다가오는 丁酉년은 아무쪼록 보다 나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