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1화 -- >
여기가 마물령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경치가 맑고도 아름다운 산악 지대로만 보이겠지.
나와 네이아, 그리고 라이라는 실버 드래곤의 거주지, 「크리스탈•팰리스」를 가장 먼저 방문했다.
「디아네를 먼저 찾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디아네 씨야 뭐 우리가 가서 도와줘야 될 저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닐 테니까. 그것보다는, 에마나 레이처럼 부상을 심하게 입은 장로파들이 끝까지 폴카로 오지 않은 게 신경 쓰여서 말이지」
「뭔가 일이 있었다면, 알아서 전령을 보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만」
「뭐 아무 일도 없었다면야 다행이지만」
내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분쟁 때문에, 이 땅에서 처음으로 내게 협력해줬던 드래곤들은,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버렸다.
드래곤은 자연치유력을 조작해서, 자신의 몸에 생긴 부상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
평상시라면 상처를 입어도, 체력을 대가로 신속하게 치유할 수 있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너덜너덜해져도 체력을 상처의 치유에 집중시키면, 딱히 별다른 치료 없이 휴식을 취하기만 해도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게 드래곤들의 강점이다.
요점은 먹을 필요도 잠을 잘 필요도 없으면서, 부상을 입어도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뿐만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신체 능력과 감각력, 마법 능력 등등……그리고 비행 능력과 브레스. 모두 다른 종족에게는 울면서 도망쳐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 위협적이긴 하지만, 사실 가장 무서운 건 이 「치유력 컨트롤」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상처나 병을 치료받지 못해서 죽는다……는 경우는, 드래곤에게는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니까.
하지만, 그런 드래곤들끼리 싸우게 되면, 공격이 필연적으로 참혹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종족이라면 거의 죽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될 듯한 급소를 공격받아도, 드래곤들은 순식간에 상처를 치유하면서 반격해 버리니까.
특히 같은 종류의 드래곤끼리는, 상대를 쓰러뜨릴 결정적인 수단이 없는 격투전으로 상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입혀서, 상대가 그 상처들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빠질 때까지 소모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상대가 중상을 입은 채로 더 이상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면, 그제서야 승리가 확정되고 그 몸을 구속할 수 있다. 그 상태가 되어서도 저항을 계속하면 죽일 수밖에 없다.
레이와 에마를 포함한 장로파의 일곱 드래곤들은, 그런 식으로 체력을 다 소모당한 끝에, 상처를 고칠 여력도 없는 채로 갇혀 버린 것이었다.
「일단 리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은 했었는데……」
「호. 치유의 영천의 효과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상당히 어려우니 말이다. 게다가, 용에게는 다른 종족들이 갖고 있는 「요양」이라는 개념이 없다. 중상을 입어도 스스로 낫게 할 수 있으니까. 굳이 폴카를 찾아올 필요도 없이, 자력으로 상처를 낫게 한 다음에 인사하러 찾아오려고 했던 건 아닐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군」
「드래곤도 머리가 좋다 보니, 설명이 부족해도 스마이슨 씨가 자기들을 위해서 주의를 기울여 줬다는 게 신경 쓰였나 봐요……」
네이아도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의 칼윈은, 드래곤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굴러갈 수가 없다.
네이아든, 국왕 대리인 듀크 신관장이든, 드래곤과의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지 않으면 더욱 힘들어질 뿐이겠지.
일단 내가 앞장서서 크리스탈•팰리스의 드래곤들과 친해지면, 충돌은 틀림없이 줄어들 터. 무식한 나로서는 세세한 일도 어려운 일도 불가능하지만, 이것 또한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그럼 들어갈까?」
「음」
「네」
셋이서 팰리스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마중나온 레이와 장로를 보고 맥이 빠져 버렸다.
「……어라?」
「어서 오십시오, 위대한 라이더여. ……무슨 일로 찾아주셨습니까?」
「거, 건강하네……그렇달까 에마는?」
「에마는, 몸을 꾸미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심한 상처나……떨어진 체력 때문에, 위험한 거 아니었어?」
틀림없이, 끔찍한 상처를 아직까지 드러낸 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직 움직이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동료 용들이 힘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전에는 싸우다가 붙잡힌 상태였으니만큼, 그런 도움은 받을 수 없었습니다만……역시 분쟁이 끝나면, 같은 팰리스의 동료니까요」
「에, 그게―……그건, 치료광술 같은 거야?」
「주인님. 그건, 브레이크 코어 녀석의 몸에서 남아도는 기를, 나나 마이아가 받아들여서 치료하는 마법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 그렇구나―……」
확실히 그런 마법이 있었지. 확실히 생명력의 그릇 같은 걸 서로 연결하는 느낌이었던가?
「원래는, 용이 같은 동료들끼리 체력을 나누기 위한 마법이었다. ……나나 블루 드래곤들이야, 생명력이 줄어들어도 폴카의 영천에서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으니만큼 거의 쓸 일이 없어져 버렸지만 말이지」
「그, 그랬구나……잠깐, 라이라는 혹시 이미 알고 있었던 거?」
「나도 듣고 나서야 생각났다. 많은 용들이 살고 있는 여기라면,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듣고 보니, 나와 만난 적이 드래곤들은, 여기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혼자였거나, 아니면 팰리스치고는 구성원 수가 대단히 적은 미스티•팰리스의 드래곤들밖에 없었다.
이런 마법으로 상처를 낫게 할 가능성을 잊어버리……는 것도, 라이라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뭐 쓸 일이 없으면 잊어버리는 것도 어쩔 수 없겠지.
「모두, 상처가 완전히 나은 건 아닙니다만, 이제 부상자라고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한 자들은 없습니다」
레이가 보증한다.
「이건 뭐랄까……유감, 이라고 해야 될까요……?」
네이아가 복잡해보이는 표정을 짓는다.
「뭐 유감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긴 해도……폴카의 영천은 큰 부상을 입은 드래곤도 순식간에 낫게 해 버릴 정도로 효능이 대단하니까, 왔으면 좋았을텐데 」
「뭐, 이 팰리스 안에서도 상처를 빨리 낫게 할 수 있다면, 그쪽이 더 편할 테니까. 폴카로 찾아오는 건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응. 폴카에 왔으면, 확실히 상처로 괴로워하는 시간은 짧아졌겠지만…….
이 유감스러운 기분은, 대체 뭘까. 역시 폴카를 자랑하고 싶었다……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려나.
잠시 뒤에 에마가 나타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스마이슨 님. 일부러 저를 찾아주시다니」
「아니, 여기서 이름을 알고 있는 드래곤은 레이와 에마, 그리고 리다 정도밖에 없는데」
그리고 라이너가 데리고 있던 드래곤들의 이름도 알고 있긴 하지만.
「제게는 무한한 영광입니다」
동방 산지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침착하면서도 호화로운 배색……그리고, 고귀함이 느껴지는, 섬세하고도 화려하게 장식된 옷을 입은 에마.
머리카락도 튀지 않도록 포인트를 억제한 채로 땋아내려서, 그 모습은 이국적이면서도 어딘가 중성적처럼 보일 정도로 늠름했다.
겉모습은 마이아와 비슷해 보일 정도로 어렸지만, 빈틈없이 의상을 갖춰 입은 모습을 보니, 귀여움과는 다른 매력도 느껴졌다. 마치 어느 작은 나라의 공주님 같은, 보이지 않는 패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되려까…….
뭐 드래곤이니만큼, 그저 그런 공주들보다야 의식(意識)도 신분도 훨씬 높겠지만.
「꾸미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게 이해될 정도로, 상당히 아름다운 모습이군. 주인님도 갖고 싶어지셨을 거다」
「!?」
에마가 시선을 미묘하게 피하면서, 얼굴을 살짝 붉힌다.
「아니, 갖고 싶어진 건……」
「주인님. 그대, 리다에게 손을 대지 않은 건 이녀석과 선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 아니었나? 그뿐만이 아니라, 그대에게 보이기 위해서, 이렇게나 아름답게 꾸미고 나왔다만. 설마 거꾸로 기분이 상해 버렸다……같은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야 확실히 사랑스럽지만……그래도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갖고 싶다든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아니잖아. 일생이 걸린 문제라고」
「힘의 계약은, 양자가 모두 동의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알면 계약을 거부할 리가 없지」
「…………」
「사랑과도 같다.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와 반드시 인연을 맺는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고 해서 상대와 인연을 반드시 맺지 않는 것도 아니니까. 아직 인연을 맺지 못했다고 해서 굳이 호의를 감출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게 지나치면 상대의 호의를 무시해 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테니」
「그것도……그렇긴 하지만」
머리를 긁는다.
장로와 레이가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띄운다.
「위대한 라이더는, 세세한 순서를 중시하시는 분인 것 같군」
「에마가 마음에 드신 건 확실하니만큼, 이야기가 빨라져서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오라버니」
에마가 살짝 토라진 것처럼 목소리를 높인다.
나이는 최소 60대인 마이아보다 많겠지만, 에마의 그런 모습은 겉모습과 비슷할 정도로 어려보였다.
「그런 일은 시간을 충분히 두고 천천히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장로, 위대하다는 말은 좀 빼 주면 안 돼? 귀가 간지러워서 말이야」
「아뇨, 당신은 정말 위대한 분입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오래 살면서 수많은 라이더를 겪어 왔습니다만, 당신만큼 사람들의 꿈과 용의 긍지를 실현시킨 라이더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딱히 그렇게까지 추켜세워질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나, 군대에서는 손재주가 조금 있을 뿐이지 별로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평판이었으니까」
장로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젓는다.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리고 쓰여지기를 바라는 힘도 있지요. 그리고, 나서야 할 때가 찾아왔을 때, 때를 놓치지 않고 꿈과 힘을 조화롭게 쓰는 자를, 옛부터, 위대한 영웅이라고 불러 왔습니다. 당신 혼자서는 힘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허나 그것뿐이지요. 용은 위대한 영웅인, 당신의 힘을 보충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럴, 려나」
「사람은 개미 천 마리보다 강합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과연 사람이 개미보다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강할지도 모른다, 그뿐입니다. 용 또한 그와 같습니다. 다른 자들이 당신을 어떻게 판단하든, 조금도 신경쓰지 않아요. 당신이 위대한 개미라면, 그 뜻에 함께해서, 힘 있는 자로서의 긍지를 만족시킬 뿐입니다」
「……알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모르겠네」
위대한 개미는 또 무슨 말일까. 상상이 안 간다.
「지금 당장은 이해하기 힘드셔도, 머지않아 역사가 증명해줄 것입니다. 저희들이야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이미 의심조차도 하지 않지만요. 에마가 갖고 싶으시다면, 부디 데려가셔서 당신을 위해 봉사하게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왔는데, 드래곤은 라이더에게 자기 가족을 데려가달라고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것 같단 말이지 ……」
「그만큼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굳이 내키지 않으신다면야, 본인에게 직접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런 말은 너무 비겁하잖아!」
내가 목소리를 높여도, 장로와 레이는 킥킥 웃기만 할 뿐.
그리고 불안한 것처럼 나를 올려다보는 에마에게 몸을 돌리고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했지만, 딱히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에-그러니까……정말 아름다워」
「……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막힌 채로,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라이라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지금만큼은 아무도 화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잠깐……좀 조용히 해 봐」
「보는 저희들이 안타까워요」
킥킥킥 웃는 라이라와 네이아에게 등을 떠밀리면서, 뭔가 좋은 말이 없으려나 필사적으로 생각해봤지만, 결국 끝까지 떠오르지 않았다.
「아―……그게, 그러니까……」
「……네」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 여자를 엄청 좋아해……솔직히 꺼려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용서되는 것도, 또한……인덕이지요」
「……아―, 응」
그러고보니 드래곤은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
크리스탈•팰리스의 드래곤은 얼핏 보면, 라이더는 드래곤 하나와만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라이너는 동시에 세 드래곤과 계약을 맺었는데도, 아무도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 외에 딱히 다른 변명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포기하고.
「……에마, 내 드래곤이 되어 줄래?」
「네」
에마는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즉답하고는, 참고 있던 숨을 내쉬는 것처럼 힘을 빼면서, 활짝 웃었다.
……아, 결국 말해 버렸다.
괜찮은 걸까? 이래도 정말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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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3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칼윈 동란 당시 든든한 아군으로 활약했던 에마와의 계약 이야기군요.
확실히 야한 장면이 없다보니 망애보다는 번역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만, 어째 그런 장면이 없으니까 좀 허전한 느낌도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