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PART 47 (45/52)

PART 47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사토미는, 그대로 계단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4층을 통과해, 이내 옥상으로 통하는 문에 다다른 후,  잠겨있는 문을 열기 위해 열쇠뭉치를 보았다.

 「아, ...이런...」

다발로 묶여있는 그 열쇠들은, 어디 열쇠가 어디 열쇠인지 전혀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겉으로 봐선 모두 그 열쇠가 그 열쇠 같았다. 사토미는 하는 수 없이, 열쇠 한개한개를 모두 끼워 넣어보기로 했다.

 첫번째, 두번째... 모두 열쇠구멍에는 들어갔지만, 돌릴수는 없었다.

(빠, 빨리 하지 않으면 시간이...)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다간, 정해진 55분안에 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정해진 시간을 넘기기라도 하면, 선생이 임의로 수업을 빨리 끝낸 클래스의 학생들이 복도로 몰려나올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한창 복도를 뛰어다니는 와중에, 교실에서 학생들이 때를지어 나온다면...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에, 아래위로 학생들이 몰려온다면... 최악의 사태를 생각하고는, 사토미는 몸서리를 쳤다.

 그리고, 3번째 열쇠를 끼워넣자, 겨우 찰카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을 통해 햇빛이 작열하고 있었다.

 (시, 싫어...)순간 사토미는, 모두 벗은 하반신을 땡볕 아래 노출시키는 걸 주저했다.

(가, 가야해, 사토미! 한바퀴, 한바퀴만 돌면 돼.)

 사토미가 발을 내딛을려는 순간, 뒤에서 유미가 손을 뻗어 왔다.

「열쇠, 내가 맡아둘께.」

사토미는 유미에게 열쇠를 넘기고는, 과감히 옥상으로 나갔다.

 (아, 아무도... 없어.)

열쇠로 잠겨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없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만일을 대비해, 사토미는 하반신을 양손으로 가린 채, 옥상을 둘러보았다.

옥상은 교사의 형태와 똑같은『コ(코)』자형이고, 모퉁이 부분은 사토미가 서있는 위치에선 보이지 않는 사각지역이 일부 있었지만, 

보이는 범위 안에서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다.(조, 좋아, 가자...)비장한 결의를 하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잠깐!」

 「잠깐 기다려!」

과감히 뛰어나가려는 사토미에게, 유미와 타카하시가 동시에 소리쳤다.

 「에? 뭐야?」

수치를 참으며 모처럼 내린 결단의 맥이 끊기자, 사토미는 자기도 모르게 쏘아붙이는 투로 말했다.

 「어라? 그런식으로 말하도 괜찮을라나? 이 카메라를 통해서, 교실에 있는 애들 모두 실황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유미는 웃으며 카메라를 들고는, 화면모드 전환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에는, 2학년 1반 교실안에서 이곳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이봐 사토미, 지금 행동은 뭐지? 이것으로 로스타임 3분 추가야. 아아, 다음 수업 시작해 버리겠네.」

수화기를 통해,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그래,라는 맞장구도 이어졌다.

 「그, 그런, 용서해줘. 무슨 지시든 따를테니.」

수업중에 비참한 일을 당하는 건 이제 싫어. 사토미는 자존심도 잊어버린 채 필사적으로 간청했다.

 「...좋아요. 그럼 용서해 줄께요.」

여전히 어이없어하는 미치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이~뭐야~, 남자들의 야유가 이어졌다. 

「자자, 사토미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이번 한번은 너그럽게 봐주는 걸로 하죠. 

아, 그리고, 시간도 앞으로 3분밖에 없으니, 연장해 줄께요. ...그래, 5분연장, 종이 완전히 다 칠때까지 돌아오는 걸로, 어때요?」

미치요가 간사한 미소를 흘렸다.

「단, 앞으로 두 사람 말을 거역할 시엔, 어떻게 돼도 난 몰라요.」

 「좋아, 사토미, 용서해줄께.」

다시 휴대폰 화면모드를 변경하면서, 유미가 말했다.

「그럼, 즉시, 명령에 따라야겠지? ...우선, 자기소개부터 해 봐. 이런식으로...」

유미는, 사토미의 귀에 대고 다음 할 말을 속삭였다. 순간, 사토미의 볼이 더 새빨게졌다.

 「아, 알았어...」

명령에 절대복종할 수 밖에 없는 사토미는, 미소를 지으며, 정면에서 찍을 준비를 하고 있는 유미와 타카하시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응시했다.

 (...어쩔 수 없어...)사토미는 속으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지시받은 대사를 읖조리기 시작했다.

 「저, 저, S고교 2학년 1반, 시, 시로이시 사토미는, 평소엔 태연한 척 클래스위원을 하고 있지만, 

사, 사실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는 걸 매우 좋아하는, 노, 노출광입니다. 

오늘은, 거길 노출하고서, 옥상을 뛰어다닐 수 있어, 매, 매우 기쁩니다. 빠짐없이 녹화해 주세요.」

 말을 마치고는, 사토미는 카메라를 등지고서, 얼굴만 카메라를 돌아본 채, 미소를 띄우며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었다. 

(너, 너무해...)틀림없이, 2년 1반 교실 컴퓨터에는 자신의 엉덩이가 클로즈업되어 있을 것이다.

「음란증 체크」라는 미명하에 가해지는 끝없는 치욕에, 사토미는 넋이 나가 있었다.

(아, 안돼...어, 어째서, 이상한 기분이 드는 거야...)

 그러나, 유미는 동성특유의 잔인함을 드러내며, 단호히 말했다.

「안됏! 전혀, 기뻐하는 것 같지 않잖아! 진심으로 즐기는 것 처럼 보일 때까지, 몇번이든 계속할거야!」

 사토미는 결국, 치욕적인 대사를 2번이나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

 「좋았어, 그럼 이제 노출러닝. 스타트! 꼭,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야 해. 밑에 있는 사람한테 보일정도로.」

유미의 호령과 동시에, 사토미는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았다. 대낮에 작열하는 강렬한 태양빛이, 더욱더 사토미의 노출된 피부를 눈부시게 하고 있었다.

인기척없는 옥상에서, 세라복 상의만을 몸에 걸친 소녀가 뛰어다니는 그 모습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이었다.

 「이야~, 창작욕을 불태우게 만드시는구만. 엉덩일 드러내놓고 옥상을 뛰어다니니,  

화면엔 엉덩이가 더 크게 보여서, 허리가 상대적으로 잘록해 보이는 게 무지 자극적인 걸?」

미치요가 카메라 줌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피부가 새하얗기 그지없네, 정말, 색기가 넘쳐흘러, 거기다 까만털이 대조돼서 더 음란해보이구 말이야.」

유미가 휴대폰 무비카메라의 프레임에 정확히 사토미의 고간을 포착하며 맞장구를 쳤다.

 여유로운 분위기의 두 사람과는 달리, 사토미는 도를 넘은 수치심에 불이 날듯한 얼굴로 뛰고 있었다.

 유미가 지시한대로,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달렸다. 

즉, 반대로 말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위를 올려다보면 사토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제까지는,『コ』자형의 바깥쪽, 교사 안쪽과 양옆 테두리를 따라 뛰고 있었지만, 

다음 모퉁이를 돌게되면,『コ』자형의 안쪽, 다시말해 교정을 향해있는 부분을 따라 뛰게 된다. 

사토미에겐 불행하게도, 지금 이 시간, 교정에서는 두 클래스가 체육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 교정쪽으로 다가가자, 사토미는 자기도 모르게 두려움으로 온몸이 굳어 버렸다. 

젊음의 열기를 내뿜는 듯한 환호성이, コ자형의 교정에 메아리 치며, 밑에서부터 들끓어 오르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한명이라도 옥상을 유심히 지켜본다면...

들끓는 환호성이 자신의 낯뜨거운 모습을 보며 모두가 비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자, 무릎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사토미, 앞으로 7분 남았어.」

옥상계단으로 통하는 출구, 지금 사토미가 봤을 때 대각선상에 있는, 유미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바리케이트가 있으니 안보인다구, 사토미의 거.기」

 바리케이트란, 위험방지를 목적으로, 옥상 테두리에 설치되어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말한다. 

폭 50센치, 높이 60센치로 된 그것은, 확실히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서있어도, 교정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어떻게든 하반신을 가려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 보일리가 없어...)사토미는 자신을 타이르며, 교정쪽 가장자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사토미는, 가능한한 교정에 있는 학생들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뛰기로 했다. 

コ자형의 안쪽, 교정을 향해있는 부분은 총 150~200미터 정도다.(기껏해야 30분만 참으면 돼, 괜찮아.)

사토미는, 다벗은 하반신을 노출시킨 채, 필사적으로 스피드를 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밑에서부터, 

「우와앗!」

이라는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됏!」

사토미는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 설마, 들킨건가!? ...어, 어떡하지...)최악의 사태가 예상되자, 머리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질 않았다.

 「그런게 아니야, 사토미.」

사토미 앞에 다가온 유미가 교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농구하다가 3점슛이 성공돼서 난리인 것 뿐이야.」

 (다, 다행이다...)사토미는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기운을 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방금전에 느낀, 온몸이 마비될 정도의 강열한 자극을 불식시킬 수는 없었다.

(어, 어떻게든, 빨리 교실로 돌아가야해...)2학년 1반 클래스메이트들에게만 알몸을 보이는 것이, 지금보다 백배는 더 낫다고 느끼고 있었다.

 사토미는 하반신을 손으로 가리지도 않고, 양손을 크게 흔들며, 필사적으로 뛰었다.

이따금 교정에서 들려오는 환호성이 수치심을 부채질하고 있었지만, 볼 수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서 이를 악물며 참았다.

그리고 마지막 코너를 돌아, 계단까지 30미터만을 남겨두자, 사토미는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 교정에서 보일 걱정은 없어. 전력으로 뛰면, 앞으로 1분안에 교실에 도착할 수 있을거야.)

 그러나, 잔인하게도 현실은, 사토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계단까지 20미터를 남겨둔 지점에 다다르자, 갑자기 계단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안에서 누군가가 열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안됏!」

사토미는 당황하여 몸을 180도 틀어, 반대방향으로 도망치듯 뛰기 시작했다.

(누, 누구지!? ...유미, 타카하시, 대체 왜 열쇠를 잠궈두지 않는거야!)사토미는 문이 열리는 걸 느긋하게 바라만 보고있는 두사람을 원망했다.

 그리고, 이내 교정쪽 구석에 다다른 사토미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른 채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옥상문은 무겁고, 여닫이 상태가 안좋아서, 아직 완전히 다 열리진 않았다. 

앞으로 수초간의, 도망칠 시간이 있지만, 사각지역이 없는 만큼, 어디로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사토미는 노출된 하반신을 양손으로 가리고서, 온몸이 굳어버린 채, 불안에 떨며 멍하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때, 사토미의 머리속에서 묘안 하나가 번뜩 떠올랐다.

(그래, 반대편에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 거기까지만 가면...)

아니나다를까 대각선상을 바라보자, 확실히 그곳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사토미는 과감히 그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리로 치면 130~140미터 정도이므로, 옥상으로 올라온 인물이 이쪽을 돌아볼때까지 다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인물이 오기 전까지 비상계단으로 나가버리면, 하반신을 노출한 사람이 자신인 줄은 모를것이다. 사토미는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막 중간지점을 통과하자, 사토미가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꺄앗, 거기, 누구얏.」

「와아, 엉덩이가 다보이자나!」

「왜 옥상을 뛰어다니고 있는거지?」

「하하하, 믿기지가 않는걸? 누구지?」

「쫓아가 보자!」

그 말과 동시에, 2명 이상이 뛰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려하고 있던 일이 현실이 돼버리자, 사토미는 더욱 스피드를 냈다. 

이미 엉덩이는 봐버렸지만, 지금이라면 누군지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비상계단 입구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다. 

(누, 누구지?... 어쨋든, 지금은 도망치는 수 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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