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9
그 후로 약 1개월간, 사토미에게는 평온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사토미의 얼굴엔 이전의 자신감에 찬, 명랑한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야 어찌됐든, 교탁위에서 다리를 넓게 벌리고서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고간을 노출한 채,
로터로 괴롭힘 당하며 쾌감의 절정에 이른 모습을 클래스 전원에게 보인,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치태를 연출한 것이다.
(더 이상 살기 싫어. 죽어 버리고 싶어...)원래 부끄럼을 많이 타는 연령대인 사토미가 몇번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사토미를 지탱해준 힘은, 소수의 이해자인 카오리, 유우카이와 1학년인 산죠 토모미, 그리고, 장래엔 반드시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이었다.
그 후로 카오리는,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단 한시도 사토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항상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유우카이도, 봐서는 안되는 모습을 봐버린 죄책감때문인지, 적극적으로 말을 걸진 않았지만,
눈이 마주치면, 편안한 미소를 건네며 필사적으로 격려해 주려는게 사토미에게도 느껴졌다.
글래스내의 분위기도, 일단은 잠잠해져 있었다.
자신의 치태를 수없이 보인 수학과 영어, 체육시간이 사토미에겐 고통이었지만, 다행히 그 어떤 교사도, 일부러 사토미를 못살게 구는 일은 없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제까지 수도 없을 정도로 찍힌 치욕적인 사진들의 행방이었다.
그 중에 한장이라도 클래스 밖으로 새나가면, 자신의 인생은 그 날로 끝이었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선 카오리와 유우카이가 확인해 주었다.
카오리 말에 따르면, 그런 류의 사진들은, 전부 미치요가 보관하고 있고, 남자들에겐 건네지 않는다는 것이엇다.
미치요는, 만약 혼자서 무단으로 사진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고 못박아 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사토미를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정없이 괴롭혀 온 남자들은, 그 말에 두려움을 느껴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유우카이도, 불만을 품고 있는 오히코에 대해, 이 이상 사토미를 괴롭히는 듯한 낌새가 보이면,
자신이 말려드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그게 상당히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사토미도,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예전의 자신감과 밝은 표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제 괜찮아, 미치요도 꼭 조만간 (사진을) 돌려줄거야. 그런거 가지고 있어봤자 소용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은 달콤한 기대에 불과했다는 것을,
아니, 그렇기는 커녕, 그 평온한 시간은, 더욱더 상상을 초월하는 굴욕과 치욕을 연출하기 위한 의도적인 준비기간이었다는 것을,
사토미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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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3교시, 2학년 1반은 학급회의 시간이다.
S고등학교는, 학급회의 시간이 클래스마다 제각각이고, 이 시간에 학급회의를 하는 반은 2학년 1반밖에 없었다.
또한, S고등학교는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교사는 원칙적으로 참가하지 않고,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회의를 이끌어 나가게 되어있다.
교단에 서있는 사람은, 클래스 위원이자 의장인 사토미와, 부위원이자 서기인 오히코다.
1개월 전의 치욕에도 불구하고, 사토미의 하복 차림새는, 산뜻한 단발머리와도 어울리며, 지적이고 청순가련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자~, 그럼, 학급회의를 시작하겟습니다. 오늘의 의제는,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입니다.
여름방학 땐 해이해지거나, 풍기가 문란해지기 쉽습니다.
선생님께 주의를 받기 전에, 학생으로써, 어떻게 여름방학을 보내야 할지 생각해 볼까 합니다만,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사토미가 앙증맞은 입으로, 버릴 말 하나 없이 깔끔하게 운을 뗐다.
확실히 모범답안 같은 식상한 내용이지만, 사토미가 맑은 목소리로 말하면 이상하게도 싫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 연약한 입매를, 짖궃은 미소를 흘리며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다.
(그 앙증맞은 입, 남자들이 무슨 생각하면서 보고 있는지 아니, 사토미? 남자들은 말이야, 굉장한 늑대들이거든...)
그리곤, 살짝 손을 들었다.
「저기... 의견이 한개 있습니다만...」
사토미의 어깨가, 순간, 실룩거렸다. (뭐, 뭐야... 제대로 된 제안일거야... 설마...)
불길한 예감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사토미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미치요양.」
「그러니까....」
미치요는 여기에서 일단 말을 멈추곤, 클래스메이트들을 쳐다보았다.
미치요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눈치챈 남자들은, 갑자기 교태를 부리기 시작했다.
클래스안의 공기가 급변했음을 느끼고는, 사토미의 불길한 예감이 한층 더 강해졌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사토미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시선 속에서도, 음탕한 기운이 똑똑히 느껴졌다.
(...시, 싫어. 이제 그런 짓을 하는 건 정말 싫어!)도움을 청하는 듯, 카오리가 있는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카오리는 그 때에만 유독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들려고 하질 않았다.(카, 카오리, 도와줘...)
모두의 표정을 천천히 관찰한 미치요는, 말을 이었다.
「풍기위원으로써 말씀드리자면, 이 클래스 안에 너무 풍기가 문란한 사람이 한명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맞아맞아! 라고 남자들이 외침과 동시에, 사토미는 어깨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이젠 싫어. 정말 싫어!)
「물론, 그게 누군인지는 아시죠? 성적우수, 두뇌명철하신 클래스 위원님?」
미치요의 눈이 탐욕스럽게 빛나며, 드디어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후훗, 1개월을 기다린 만큼, 기대도 큰 걸? 사토미가 어떤 표정을 지어 줄려나...)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지금 즉시, 의장대리를 제안하고 싶습니다만.」
「네?」
뜻밖의 상황 전개에, 사토미는 무심코 반문했다.
「정말 답답하신 분이네. 피고와 재판관은 겸할 수 없단 말입니다, 간단하죠?」
미치요는 안달이 난 듯 말했다.
「그래서, 의장대리 말입니다만, 산죠양이 어떨까요? 산죠양이라면, 누구하곤 달라서 결백하고,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없는 짓을 클래스메이트들 앞에서 하거나 하진 않으니까요.」
클래스안의 시선이 카오리에게로 모아졌다.
사토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카오리가, 미치요의 말을 듣고 순순히 의장대리를 맡을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럼 왜, 미치요는 카오리를 지명한 것일까.
미치요라면 분명, 뭔가 속셈이 있는 게 틀림없어...
사토미도 모두와 마찬가지로, 수상하게 여기며 카오리를 보았다.
(어째서 카오리를? 거절할 게 뻔하잖아?)그러나, 카오리가 좀처럼 얼굴을 들려고 하질 않는게 꺼림칙했다.
「어때요, 산죠양? 맡을지 거절할지 확실히 정해주세요. 물론, 어느쪽이든 산죠양의 자유입니다.」
부의장인 오히코가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이 액면 그대로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클래스 안의 모든이들이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다.
「예, 예에, 저, 저는...」
잠시 침묵한 후, 카오리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의장대리, 맡겠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듯 말꼬리를 흐렸지만, 분명히 카오리는 수락할 뜻을 나타냈다.
천천히 일어나서 사토미의 시선을 피할려는 듯이 고개를 숙인 채로, 교단으로 걸어갔다.
뜻밖의 상황 전개에, 남자들이 탄성을 지르며 흥분했다.
「이야, 대범하신 카오리 아가씨께서, 사토미랑 사이가 나빠지셨나?」
「뭐 그래도, 역시 미소녀고, 사토미보다 청초하니, 얼마든지 좋아.」
「아, 이렇게 되면, 미스 S고교의 자리도 넘볼 수 있겠군.」
「그런가, 즉 지금이 사토미를 밀어낼 찬스라는 얘기로군.」
저마다 제멋대로 지껄이며, 두 미소녀의 우정을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카오리는 그 말을 부정하지도 않고, 교단에 올랐다.
「에... 그럼, 회의를 계속 하겠습니다. ...사토미양은 이제 의장이 아니니,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잔뜩주어 말했다.
「카, 카오리...」
사토미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상해, 카오리. 무슨 일 있었어? 미치요들한테서 무슨 말을 들은거야?)
「이, 이봐, 카오리...」
한 남학생의 어리둥절해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유우카이였다.
「이상한데? 카오리가 사토미한테 풍기가 문란하니까 클래스 위원 자격이 없다고 하진 않을 테고, 어째서 대리를 맡고 있는 거야?」
쓸데 없는 말 하지마, 라고 투덜댄 남학생은, 유우카이가 쏘아보자 고개를 움츠렸다.
「그래그래, 그렇게 흥분하지마.」
손뼉을 치며 미치요가 끼어들었다.
「그럼 카오리 한테서, 대리를 맡은 이유를 들어보면 돼잖아? 카오리, 왜 대리를 맡은 거지? 사토미의 풍기가 문란해서?」
「네, 그렇습니다.」
카오리는 싱거울 정도로 간단히 긍정했다.
「설령 협박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본인한테 자질이 없으면, 그런 짓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겁니다.」
너무나도 의외의 말에, 교실은 일순간, 정적에 감싸였다.
카오리의 말 속에는, 사토미에 대한 혐오감이 확실히 내포돼 있었다.
협박당해 억지로 말하고 있는 거라면, 그런 감정까지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군~, 정말 두 사람 사이가 나빠졌나 보네.」
「미스 S고교를 향한 경쟁이, 드디어 시작된건가?」
「난, 청순한 카오리 아가씨파!」
「그럼 난, 색기 넘치고 음란한 사토미파!」
마지막 말에, 교실안이 폭소로 뒤덮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토미는, 심한 모욕에 반론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모두들, 조용히 해주세요!」
카오리의 맑은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럼, 풍기위원 미치요양, '풍기가 문란한 학생'에 대해 검토할까 하는데, 제안할 게 있습니까?」
「네, 한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미치요가 주저없이 대답했다.
「음란한 성격은, 좀처럼 고치는 게 어렵다고 들었습니다만, 학교 안에서의 행동만 규제하면,
거꾸로 여름방학동안 그걸 발산시키게 되서,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치요는 거기에서 한박자 쉰 뒤, 종이 한장을 꺼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차라리 학교에서는 규제하지 말고, 거꾸로 발산시키도록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론, 여기 선서문을 준비했으니, 이걸 모두 앞에서 읽고 선서하도록 해서, 자신의 음란함을, 클래스 안에서만 발산시키도록 했으면 합니다,
그 대신, 학교 밖에서는, 품행방정하게 행동해서 S고등학교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을 것을, 선서하게 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카오리가 모두에게 의견을 물을 것도 없이,
「이의 없음!」
라는 합창과 동시에,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손을 들었다.
물론 그 두 사람은, 사토미와 유우카이다.
유우카이는 무슨일이냐고 말하고 싶은 듯, 교단위의 카오리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카오리는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