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인생(프롤로그-1장)
안녕하세요 도린입니다.
여러분 앞에 제 부족한 글을 또 다시 내 놓읍니다.
물론 1%의 사실도 섞여있지 않은 픽션이구요,
재미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읍니다.
제 2의 인생
프롤로그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한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귀밑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의 매서움에 절로 목이 움츠러 든다.
재현은 걸음을 재촉한다. 잠시라도 멈춰 있으면 추위에 몸이 한없이 수축되는 것 같다.
그나마 걷고 있으면 추위를 덜 느낄 수 있다.
바야흐로 한창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연말.
사람들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얼굴 가득 웃음이 퍼져있다.
그들과는 반대로 재현은 눈을 지푸리며 두 손을 주머니 속에 더욱 깊숙히 찔러 넣는다.
'제기랄, 어지간히도 춥네. 쳇...'
이상기온이네 어쩌네 하며 예년보다 따뜻하다고 하지만 돈없고 빽없는 놈에게는 더럽게 춥게만 느껴진다.
올 2월에 대학을 졸업한 취업 재수생 김재현은 이번에도 여기 저기 원서를 내 보았으나 그 때마다 면접은커녕 서류심사에서 탈락.
백수 생활에 접어든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도무지 살길이 막막하다.
중학교 시절에 양 부모를 여의고 악착같이 살아온 재현이다.
소위 명문 대학이라고 불리는 곳에 갈 수도 있었지만 학비 때문에 그러질 못했다.
그래도, 재현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면접 볼 기회조차도 주질 않으니...
'아, 여기까지인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딸랑 딸랑,
손에 잡히는 것이라곤 동전 몇 개뿐.
재현은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쉰다.
집세가 밀려서 쫓겨나 친구 자취방에 빈대 붙은지도 3달이 넘어간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친구는 부담없이 취직이 될 때까지 머물러도 좋다고 하지만 이제는 친구 녀석 얼굴을 볼 면목도 서질 않는다.
'이렇게 하루종일 어슬렁 어슬렁 돌아만 다닌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에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안 그래도 추위에 움츠러든 재현의 어깨가 더욱 왜소해 보인다.
해가 서쪽하늘로 사라지고 어둠이 깊게 물들어 가기 시작할 무렵,
민욱은 이불을 걷어 차고 일어섰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두리버 거리던 민욱은 시간을 확인한다.
7시 24분. 민욱은 잠시 침대에 앉아 굳어 있는 뇌를 활성화 시키고자 애쓴다.
창 밖이 어두운 것을 보면 아침은 아닌가 보다.
"아함~ 도대체 몇 시간을 잔거야. 우, 머리 아파..."
어둠에 눈이 적응을 한다 싶자 민욱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방에 불을 켜고 세면장으로 향한다.
'일단 세수부터 하고...'
강민욱(16세). 중학교 3년.
돈 잘버는 아버지와 현숙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슬하에서 부족함 없이 지내는 철부지.
세상 어려운 것이라곤 손톱에 낀 때만큼도 모르고 구김살 없이 자라는 민욱은 요즘 오토바이에 한창 빠져있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말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민욱을 드라이기를 멈추고 수화기를 든다.
"여보세요."
"민욱이냐? 일어 났음 빨랑 나와."
"어, 헌재냐. 무슨 일 있냐?"
"양광 중학교 알지. 오늘 걔네랑 한 판 붙기로 했어. 중학 시절의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 해야지."
"오케이. 금방 가마."
민욱은 재빨리 잠바를 걸치고 방을 나섰다.
"엄마, 저 나갔다 와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선미가 아들의 말에 서둘러 되묻는다.
"민욱아, 저녁 먹을 시간인데 어딜...."
선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뭐가 그리 바쁜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민욱을 위해 준비된 한끼의 식사가 주인을 잃고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꼬르륵, 꼬르륵.
'아, 배가 고픈걸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인가 보군.'
재현은 배를 한 번 쓰다듬고는 어두운 하늘 한번 땅 한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쉰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내 쉬는 한숨인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먹은게 언제였드라... 에잉, 기억도 안 나네...'
재현은 주린 배를 부여 안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긴다.
몸을 움직일 여력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멈추면 그대로 쓰러져 버릴 것만 같다. 하긴, 그래도 상관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좀 있으면 배고픔이 가실테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습득한 사실.
배가 고픈 것은 잠시였다. 그 시간만 어떻게 보내고 나면 한 동안은 그럭저럭 견딜만 하다.
재현은 어서 빨리 배고픔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횡단보도 앞에 섰다.
딱히 길을 건너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목적지도 없는 발걸음인데 그러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이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엄마 손을 잡고 떠들어 대는 꼬마녀석의 모습에 쓸쓸함이 깊어진다.
'아,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그리고 춥고.... 제길...'
지금 서 있는 곳이 서울 어디에 붙어 있는 동네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무작정 걸음을 옮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거리가 낯선 것을 보면 멀리도 온 것 같다.
신호등에 파란 불이 들어오자 앞으로 나가려던 재현이 주춤 멈춰섰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은 것 같은 어린 것들이 떼를 지어서는 신호등도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가로 질러 나간다.
일반 오토바이보다 훨씬 시끄러운 소음을 뒤에 남기고 어린 것들은 사라져 갔다.
'부러운 녀석들이군...'
재현은 어린 폭주족의 꼬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부러움 섞인 시선을 던진다.
자신이 중학생일때는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 돈을 벌랴, 학교에 다니랴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 밑에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그저 투정이나 부리면 되는 녀석들의 처지가 한없이 부러워 진다.
'아참, 빨리 건너야지. 신호 바낄라...'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재현은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그 순간,
"야, 이 새끼야 비켜...."
난데없는 욕설에 재현의 시선이 돌아간다.
슬로 비디오처럼 느릿느릿 돌아간 재현의 눈에 앳되고 곱상하게 생긴 아까의 어린 녀석들과 비슷한 얼굴이 클로즈 업 되어 다가 온다.
연신 악을 써대는 녀석의 오토바이가 재현에게 부딪혀 왔다.
재현은 자신의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마치 거인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뒤로 내 던져지는 듯한...
'뭐지? 아까 그 녀석들과 한 패인가...?'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재현의 뇌리를 스친 의문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뒷 머리부터 아스팔트위에 떨어져 내렸다.
이미 어두워진 별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이 시선속으로 들어왔다.
슬로 비디오처럼 돌아가던 시간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사물은 보이는 것 같은데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재현은 입만 벙긋벙긋 대는 사람들을 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스꽝 스러워. 이런걸 판토마임이라고 한다지...'
첨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던 귀에 천둥치는 듯한 소리가 울리자 재현은 아미를 찌푸렸다. 이내 초점마저 흐려지자 재현은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아, 머리... 머리부터 땅에 떨어졌으니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깨졌겠지...?'
재현은 무엇이라고는 딱히 집어 말할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는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갔다.
'피가 나려나...'
재현은 손을 들어 확인해 보려 했다.
하나, 마음 뿐. 재현의 몸은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다.
이런게 완벽한 암흑이라는 것일까...?
재현은 몇 번을 더 시도하다가는 이내 포기해 버렸다.
'에이. 배도 고픈데 움직이지 말자. 걍 이렇게 누워 있으니 편하네... 그런데 내가 누워 있기나 한 건가?'
불우한 청년 김재현이 의식의 끈을 놓기전 마직막으로 생각한 것이었다.